무시무시한 광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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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해다찬
작품등록일 :
2023.07.3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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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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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두 가지 조건

DUMMY

 엿들을 생각은 아니었다.


 울면서 참 다행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선뜻 말을 걸지 못했을 뿐이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많이 무서웠겠지.


 그녀를 대신해 화내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사람을 어디까지 괴롭히려고 그러는 거지?


 익숙한 얼굴, 익숙한 문신.


 처음 길드에 들어갔을 땐 이 사람을 꽤 무서워했다.


 비비 꼬인 성격에 거친 말투. 전형적인 양아치였으니까.


 근데 그런 사람이 물에 빠져, 아니 자기 피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을 보니 참 우스웠다.


 일말의 두려움을 느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죽고 싶을 만큼.


 뭐든 해보라길래 살짝 베었을 뿐인데, 피를 보고 겁을 먹긴.


 알아서 돌아가겠지?


 나는 무책임으로 책임을 다했다.


 그리고 해가 뜨면 다시 부회장을 찾아가기로 했다.



 ***



 사람들은 때로 행복회로를 돌린다.


 [D급 던전에 경호원 존나 많던데 뭐임?]

 [헉 설마...]

 [또또또 이 새끼들은 뭐만 하면 기승전 유호네ㅋㅋ]

 [ㄹㅇㅠㅠ]

 [아니 근데 몇 명 암살자 길드 소속인 것 같던데]

 [응 사실상 은퇴야~ 행복회로 꺼라 나처럼~ 그럼 편하다]


 유호가 저주에 걸렸다는 걸 알 리 없는 사람들은 그가 사실상 은퇴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과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다행히 한 번은 티비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춰주었지만 그곳에서 보여준 표정과 말들은 그날의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유호가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감히 추측했다.


 어떤 악질들은 그래도 S급이라면 나와서 싸워야 하지 않겠냐고 소리를 내곤 했지만 무참히 짓밟히기 일쑤였다.


 아직도 그날의 참혹함을 담은 영상들이 낮은 화질로 돌아다니고 있었기에.


 처음 올라간 녹화 영상은 단 며칠 만에 조회수 오천만 회를 돌파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댓글들은 균열에 대해 두려워하기보단 채라의 명복을 빌거나 유호의 안위를 걱정했다.


 모두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그곳에서 한 남자의 비명을 또렷하게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이다.


 암살자 길드는 그와 관련된 영상들을 모조리 지우려 애썼다. 유호가 저주에 걸렸다는 걸 들킬 만한 껀덕지는 하나도 없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유호는 그들의 통감이 위로가 되었다.


 죽음이 보다 가까워진 세상 아닌가.


 천사조차 감히 예언할 수 없는 천재지변에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 채라도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채라가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건방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유호는 그저 붉은 눈이 가려버린 채라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얼마나 보고 싶었냐면, 이따금 무재에게 채라와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그녀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자세히 듣는 걸 좋아했다.


 무재가 해주는 말을 듣고, 사진 속 배경으로 그날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클래식을 듣듯 감상에 젖는 걸 사랑했다.


 이것만은 그 누구도 뺏어갈 수 없었다.


 유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웃으며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을 때 엄청난 환호성이 들려온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강대는 자기가 왜 여기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



 이곳은 B급 던전. 정확히는 차원문 앞.


 유호 헌터가 빛나는 미소를 짓고 청춘만화 뺨치는 아련한 눈빛으로 주변을 훑었다.


 암살자 길드의 경호원들은 먹이라도 발견한 짐승처럼 달려드는 기자를 막아야 했다.


 “뒤로 가세요! 뒤로!”

 “유호 님!! 이쪽으로 한 번만 웃어주세요오오!!”


 곧이어 기자들의 뒤도 핸드폰 카메라를 높게 들고 유호 헌터의 얼굴을 1초라도 더 보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로 가득 찼다.


 찰칵! 찰칵!


 “뭐야? 유호? 내가 아는 그 유호?”

 “미친. 이 정도면 연예인 아님?”

 “흐어엉엉어.”


 그들 중엔 손으로 입을 막고 흐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와···.’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이게 S급 헌터의 인기인가? 아니면 그냥 유호라는 사람의 인기인 걸까?


 주변 교통도 마비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면역이 없는 나는 마치 유명인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카메라 불빛을 손으로 막아야 했다.


 그런 모습을 경호원 무재가 발견하고 두꺼운 몸으로 불빛을 막아주었다.


 “죄송합니다. 유호 님이 사람들에게 인사를 꼭 하고 싶다고···.”

 “전 괜찮아요.”


 그래. 이해한다. 유호는 그런 사람이었지.


 잠시 고개를 돌려 유호를 바라봤다.


 정말 행복해 보였다.


 웅성웅성


 “저 사람은 누군데 얼굴을 다 가리고 있어?”

 “새 교육생인가?”

 “에이 설마, 유호 헌터가 직접 가르치면 최소 A급은 된다는 건데.”


 사람들은 나를 던전에 같이 들어갈 길드원1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얼굴을 가린 걸 보니 수줍음이 조금 많은 그런 사람?


 제기랄.


 생각해 보니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이건 사실상 유호 헌터의 복귀를 알리는 축하 파티가 아닌가?


 뭐가 실력 확인인데.


 아무래도 그 부회장에게 속은 것 같다.


 “부회장님. 분명 실력 확인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예, 그런데요?”


 부회장이 뭐가 문제냐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일반인 아니었으면 진작에 한 대 때렸다.


 “도대체 어느 길드가 D급 헌터의 실력을 B급 던전에서 봅니까?”

 “하하. 그게 걱정이셨습니까? 여기는 B급 던전 중에서도 최하급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증거로 저도 같이 가지 않습니까.”


 시발 진짜.


 내가 혐오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자 부회장이 덧붙였다.


 “그리고 무려 S급 경호원과 A급 경호원이 강대 씨를 지켜줄 테니 이보다 안전하게 실력을 확인할 순 없죠. 아 참. 강대 씨는 이미 A급 던전을 갔다 오셨죠? 하하하.”


 무재는 원래 경호원이니 그렇다 쳐도 유호를 고작 S급 경호원이라 칭하는 사람은 이 사람 말고 없을 거다.


 “그럼 이제 슬슬 ‘실력 확인’하러 갈까요?”


 이렇게 뻔뻔할 수가.



 ***



 시작은 그와의 민망하고 어색한 두 번째 만남이었다.


 “그,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다시 만난 부회장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자 손사래 치면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백퍼 피한 거다 이거.


 “크흠, 아닙니다. 저도 어제는 무례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오셨다는 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걸 본 부회장도 안도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그렇다면 계약은 이대로···.”

 “다만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뭐죠?”

 “첫 번째는 저와 하경 씨가 같이 가입하는 겁니다.”

 “그건 저희 쪽에서도 이미 생각하고 있었으니 받아들이겠습니다.”

 “두 번째는 저의 던전 단독 입장에 관한 것입니다.”

 “안 됩니다.”

 “물론 위험할 수도 있으니······ 네?”

 “안 된다고 했습니다.”


 부회장의 표정은 단호했다.


 솔직히 타협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것 말고 다른 조건은 없으십니까? 유호 님께서 웬만하면 해드리라고 하셨지만 강대 씨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만한 조건은 아무래도 힘들겠습니다.”


 웬만하면이라.


 부회장은 고민하는 내게 더 좋은 혜택을 제시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에라이, 그냥 한번 질러볼까?


 “그러면···.”


 말하기 전 떨리는 동공을 바로잡고 상체를 앞으로 들이밀었다.


 “특정 유형의 던전 소유권을 저에게 주실 수 있습니까?”

 “좋습니다.”

 “느에?”


 부회장이 알파고마냥 재빠르게 대답했다.


 그리고 내가 당황할 틈도 없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저도 조건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강대 씨가 헌터로서 자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철저히 확인할 계획입니다.”


 나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네, 그리고요?”

 “끝입니다.”

 “뭐가··· 더 없습니까?”

 “네. 아, 하나 더.”


 그럼 그렇지. 이게 끝일 리가 없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확인된 실력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던전 단독 입장도 생각해볼 의향은 있습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


 그 뒤로 여러 가지 복잡한 절차들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사람들이 나와 하경 씨를 낙하산이라 욕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하경 씨는 여전히 떨떠름해 보였지만 기쁘다는 말을 자주 했다.


 몇 개의 까다로운 테스트를 마친 우리 둘에게 부회장이 다가왔다.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다.


 “솔직히 의외입니다. 박하경 씨의 헌터로서 지식은 평균인데 반해, 강대 씨가······.”


 부회장은 말하기 전 나를 한 번 슥 쳐다봤다.


 “혹시 평소에 논문 보는 걸 좋아하십니까?”


 어떻게 알았지? 좋아하진 않지만 먹고 살려고 봤다.


 “저조차 낯선 지식들을 아주 많이 알고 계시군요.”


 나는 외국어로 점철된 논문을 번역기에 복붙하는 생지랄을 떠올렸다. 때로 외국 교수의 동영상에 한국어 자막이라도 달려 있으면 감동의 눈물을 흘리곤 했다.


 “심지어 정확하기까지.”


 부회장이 감탄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예상보다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나는 그에게 은근슬쩍 다가가 속삭였다.


 “그러면 혹시 던전 단독 입장은···?”

 “흐흠···! 아직 한 가지 테스트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전 분명 생각해볼 ‘의향’이 있다고 말했지 허락한다고는 안 했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쪼잔하다고 느껴지는 건 왜일까.


 나는 실망한 표정으로 물러섰다. 부회장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이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시발.


 “내일은 마지막으로 실전 테스트가 있을 예정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그가 빠르게 말을 마치고 빠르게 멀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질문을 회피하려는 것 같았다.


 “부회장님 되게 멋있지 않아요?”

 “네? 뭐가요?”


 진짜 모름.


 “일 처리도 딱딱 잘하시고 공과 사가 뚜렷한 분 같아요.”

 “······.”

 “아! 물론 강대 씨도 엄청 멋있어요!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요.”


 내가 말이 없자 이상한 오해를 한 하경 씨가 서둘러 덧붙였다.


 길드가 마련해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고 하경 씨와 가는 길이 같아졌다. 덕분에 귀가 닳도록 칭찬을 들으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그리고 이건 배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경 씨의 집은 바로 옆이었다.


 하경 씨가 먼저 인사한 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족들이 그녀를 반기는 소리가 커지다가 문이 닫히자 뚝 끊겼다.


 나도 얼른 들어가 푹신한 침대를 맛봤다.


 역시 돈이 좋다.


 전 집으론 다신 돌아가지 않을 거다.


 얼마 전까지 모아둔 돈으로 부모님 생활비를 드리고 이젠 어떡하지 걱정하던 참이었는데.


 부모님에겐 길드에서 탈퇴당한 것도, 새로운 곳에 가입한 것도 말씀드리지 않았다. 돈도 평소에 보내던 액수에서 반 정도 올려서 드렸다.


 엄마 성격에 길드가 바뀐 것과 너무 많은 돈을 보낸 걸 알면 걱정할 게 뻔했다.


 그래서 엄마 아빠 각자 비밀 용돈이랍시고 더 보내드렸다.


 우웅-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왠지 내용이 예상된다.


 [강대야~ 용돈 고맙다. 근데 위험한일 하는건 아니지아들~? 늘 조심하렴~~^^]


 기분 좋게 답장하고 폰을 내려놨다.


 [그리고 저번에 그 꿀 같은 거 맛있더라~ 더 갖고 오렴~]


 “아이씨. 우리 엄마 따라 하지 마.”


 [큭큭~!]


 캔딜은 요즘 먹을 거에 맛 들여서 애를 키우는 기분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뭘 먹일 땐 마나 소모가 느려진다는 것이었다.


 “내가 있던 곳은 이런 거 없었단 말이야.”


 캔딜이 치킨 한 마리를 다 먹고 투정 부렸다.


 “너 그냥 나무 같은 거 먹으면 안 돼? 불이 뭔 치킨을 먹어.”

 “탑에서 배 터지게 먹었거든.”

 “진짜로 먹었을 줄은 몰랐네. 미안. 마녀가 음식은 안 줘?”

 “보통 자기 마나를 나눠줘. 근데·····.”


 캔딜이 주변 눈치를 보고 말을 이었다.


 “주인님은 요리를 잘 못해.”

 “나중에 마녀 만나면 일러야지.”

 “아, 안 돼! 하지 마아! 하지 말라고오!”


 만날 방법은 없었지만 캔딜은 어린애처럼 소리치며 내 멱살을 붙잡고 흔들었다. 나는 계속 웃었다.


 “알았어, 알았어. 장난이야.”

 “우이씨, 약속해.”

 “그래. 자.”


 내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캔딜이 고개를 흔들었다.


 “음··· 못 믿겠어. 마녀의 맹세를 하자.”

 “그게 뭔데.”

 “얼른!”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할 줄 알면서, 그럼 이건 뭔데?”

 “?”


 캔딜이 활활 타오르는 손으로 내 이마를 가리켰다.


 그곳엔 이상한 문양이 보랏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마치 입술 같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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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화 은인 잡아라 24.08.30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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