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광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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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해다찬
작품등록일 :
2023.07.3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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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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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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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페르소나

DUMMY

 하경 씨는 어울리지 않는 목걸이를 차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한 건 그때의 일이 미안하고 고마워서였다.


 나는 인벤토리에 깨진 보석 목걸이를 하염없이 떠올렸다. 그 사이 하경 씨가 내 이름을 몇 번 불렀고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 여긴 어쩐 일로···.”

 “던전 때문에 왔죠.”


 하경 씨가 당연하다는 듯이 빙긋 웃었다.


 역시 상냥하다.


 “그럼 길드는···?”

 “그날 바로 탈퇴했어요. 아무 도움도 못 드려서 미안해요. 그나저나 몸은 좀 괜찮은 거예요? 치유 좀 해드릴까요?”


 어김없이 손을 올려 치유하려는 하경 씨에게 손사래를 쳤다.


 “맞다. 이거 드릴게요. 그땐 정말 고마웠어요.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요.”


 금이 간 사이로 피가 스며든 보석 목걸이를 하경 씨 손 위에 올려놓았다. 아무리 박박 닦아도 핏자국이 없어지지 않아 이걸 돌려줘야 할지 여러 번 고민했다.


 내게 말을 걸던 여자는 어느새 자리를 떴고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하경 씨의 표정을 읽으려 노력했다. 저 표정은 연민이었나.


 “다음에 꼭 보상할게요. 더 좋은 거로. 그리고···”


 하경 씨가 우물쭈물하는 나를 차분히 기다려주었다. 연민이었다. 연민이 아니라면 나는 그녀를 좋아하게 될 것만 같았다.


 “저랑 같이 던전 갈래요?”



 ***



 던전에 들어서자 넓고 우거진 숲이 우리를 맞이했다.


 끝이 보이지 않게 솟아있는 나무들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느끼게 해주었고 언뜻 정글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경 씨는 던전 경험이 적어서인지 아니면 단 둘이 있기 때문인지 주변을 경계하다가 시간이 지나 긴장감이 풀렸는지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그런 일이 있다 보니 팀 만들기가 꺼려졌는데 다행이에요. 이렇게 강대 씨를 만나다니.”

 “실은 저도 그래요. 이런 넓은 던전에서 남한테 등을 맡기기가 좀 그렇죠. 하경 씨라면 안심이에요.”

 “저는 큰 도움이 안 될 텐데···”


 휘이익, 퍽!


 말하던 도중 뒤에서 하경을 노리던 나무뿌리를 향해 단검을 던졌다. 당황한 하경 씨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번이 몇 번째 던전이에요?”

 “여, 열 번째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그때 저는 팀이 나가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고개를 숙여 박힌 단검을 뽑자 상처 입은 뿌리가 스멀스멀 돌아갔다.


 “아무래도 주변 대부분이 함정 같아요. 어렵진 않을 것 같지만···.”

 “루멘토.”


 태양 빛을 흡수한 하경 씨의 목걸이가 빛을 곳곳에 퍼뜨리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뻗어오는 뿌리들은 정화 효과에 정신을 못 차리며 타들어갔다.


 “하경 씨는 B급 힐러니까 몬스터가 근처에 얼씬도 못할 거예요.”


 미소 지으며 돌아본 하경은 수줍은 표정으로 목걸이를 꼭 쥐고 있었다.


 “힐 해드릴까요?”

 “네? 저 하나도 안 다쳤는데요?”


 B급 힐러와의 던전 탐험은 수월했다.


 치유 스킬 덕분에 독지네가 떼로 몰려와도 겁 없이 다가갈 수 있었고 대왕 지네가 등장했을 땐 우월해진 신체 능력으로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치유 스킬의 한계가 궁금해 하경 씨 몰래 몇 번 물리기도 해봤다. 작은 지네의 독 따위는 하경 씨 근처로 가기만 해도 정화되었다.


 “그건 왜 뜯고 있는 거예요···?


 대왕 지네의 턱을 뜯고 독을 가죽 주머니에 담고 있을 때 하경이 물었다.


 “아 이거요? 시스템이 모든 보상을 주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시체가 사라지기 전에 쓸만한 게 있는지 찾아보는 거예요. 이 독은 나중에 칼에 묻히면 되겠어요.”


 말은 그럴싸하게 했지만 사실은 사냥이 서툰 시절 좋은 보상은 남들이 다 가져갔기에 생긴 습관이었다.


 “강대 씨는 분명 D급 암살자라고 하셨죠?”

 “네. 왜요?”

 “아나르 길드에 있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너무 노련해서요. 저는 항상 뒤에서 모두를 관찰하다 보니까 더 잘 느껴지더라고요.”


 하경의 표정은 썩 진지했다. 나는 알아주니 고마울 따름이었고 애써 웃음을 참으며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아하하. 뭘요.”


 머리를 긁적이며 독이 든 주머니를 하경 씨에게 건넸다.


 “가지실래요?”

 “괘, 괜찮아요···.”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강한 몬스터를 찾기 위해 숲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자잘한 함정만 많아지고 있었다.


 “거기 조심해요.”


 빈번히 함정에 빠지던 하경도 몇 번 조언을 해주니 곧 능숙하게 함정을 피했다.


 “여긴 꽤 실망스럽네요. 보상도 얼마 안 되고요.”

 “그러게요. 지금 따라오고 있는 놈 빼곤 죄다 껍데기밖에 없어요.”

 “따라오고 있는 놈이 있다고요?”

 “네.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따라오던데.”


 나는 우리가 처음 있던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얼마나 신중한 녀석이길래 아직도 우리를 경계하고 있는지 놀라웠다. D급 던전 치곤 쏠쏠한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하경 씨는 약간 소름이 끼쳐 보였다.


 몰랐던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예민해진 걸 수도 있다.


 “어떻게 생겼어요?”

 “음, 생김새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언제 올지 계속 기다렸는데 그냥 우리가 먼저···.”


 말하던 순간 놈의 기척에서 이상함이 느껴졌다.


 “뱀···?”

 “네? 뱀이요?”


 숲 전체가 울렸다.


 놈은 웅크리고 있던 몸을 쫙 핀 것처럼 기다란 몸으로 순식간에 나와 하경 씨를 중심으로 숲을 에워쌌다. 어디를 둘러봐도 나무 사이로 놈의 커다란 몸통이 보일 정도로 매서운 속도였다.


 D급 던전에서 이런 게 가능한가 싶었지만 왜인지 다 보였다. 이 속도에 압도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달콤한 꼬리뱀이 당신을 먹잇감으로 인식합니다.]


 “어, 어느새?”


 당황한 하경이 서둘러 자세를 잡았다.


 부스럭부스럭


 그 사이 이름처럼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녀석의 꼬리가 천천히 앞으로 다가왔다.


 옆에선 나무 사이로 군침을 질질 흘리며 우리가 꼬리에 유혹되길 지켜보고 있는 뱀의 눈이 보였다.


 하지만 겨우 이런 거에 유혹될 리 없는 우리는 자리를 지켰고 천천히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뱀을 주시했다.


 [달콤한 꼬리뱀이 당신을 사냥감으로 인식합니다.]


 스스슥!


 시스템 창이 뜨자마자 뱀이 달콤한 냄새를 풍기던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었다. 그리고 꼬리 끝이 검게 변하며 녹색 가루를 흩날렸다.


 이곳의 몬스터들은 대부분 독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독에 중독됩니다.]

 [독이 정화됩니다.]


 하지만 B급 힐러가 마음만 먹으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뱀은 다시 빠른 속도로 우리를 둘러싸다가 주변에 녹색 가루가 충분히 퍼지자 공격해왔다.


 쿵! 쿵!


 D급 던전에선 보기 힘든 속도였지만 패턴은 단순했다. 두 번 정도 일직선으로 돌진하다가 다시 주변을 둘러싸고 꼬리를 흔들어 독을 뿜어댔다.


 녀석은 처참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돌진할 때 낸 상처만으로도 속도가 느려졌다.


 까다로운 점을 꼽자면 녀석의 영역 안에서 함께 우리를 노리고 있는 나무뿌리와 작은 독충들이었다.


 “키이이이익!”


 피를 흘리며 지친 뱀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듯 아가리를 커다랗게 벌리고 하경 씨에게 돌진했다.


 그녀가 독이 통하지 않는 이유란 걸 직감한 녀석의 마지막 발악이었겠지만 확연히 느려졌다. 내가 따라잡지 못할 리가 없었다.


 나는 가볍게 다가가 발로 턱을 밟고 단검으로 독니를 막았다.


 “흐읍···!”

 “강대 씨!”


 얇고 날카로운 독니가 바로 눈앞에 있다.


 온전하게 빼내면 D급 치고는 돈이 꽤 될 것 같은데···.


 어설프게 찔렀다간 뱀이 몸부림을 쳐 독니가 상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지금 확 뽑아 버릴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었다.


 [그거 아닌 것 같아 미친놈아.]


 ‘조용히 해요. 생각 중이니까.’


 [달콤한 꼬리뱀이 당신을 포식자로 인식합니다.]


 뿌드득!


 뱀이 겁에 질린 눈으로 아가리를 닫으려 힘을 줬다. 그리고 몸통을 이리저리 나무에 부딪히며 난리를 피웠다.


 “키에에에엑!”


 푸욱! 푹! 푹!


 나는 팔을 깊게 집어넣고 녀석의 입천장을 단숨에 여러 번 찔렀다.


 그러자 녀석은 꼬리로 바닥을 쿵쿵 치더니 금세 힘없이 추욱 늘어졌다.


 [달콤한 꼬리뱀이 쓰러졌습니다.]


 “후아···. 까다롭긴 하지만 확실히 D급 던전이네요. 속도 말곤 별 볼일 없었어요.”

 “네? 방금 엄청 위험했던 거 아니에요?”


 독니를 안전하게 가져가기 위해 고민했다고 말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못 들은 척하고 뱀을 옆으로 눕혔다.


 인벤토리에서 가죽 장갑을 꺼낸 뒤 날카로운 독니를 잡고 부드럽게 빼내었다.


 “우와! 이것 봐요! 엄청 깔끔하게 뽑았죠?”

 “······.”


 하경 씨는 속이 거북한 듯 입으로 손을 막고 경멸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해요. 하나만 더 뽑으면 되니까 참아줘요.”


 나는 다시 뱀의 잇몸을 가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강대 씨, 원래 이렇게 빨랐어요? 제가 할 게 하나도 없잖아요.”

 “하나도 없다뇨. 계속 다가오는 나무뿌리랑 몬스터를 처리해줬잖아요. 그리고 독도 정화해주고. 그거 아니었으면 꽤 힘들었을 거예요.”


 하경 씨는 의문이 풀리지 않은 눈빛이었다.


 솔직히 나도 광대 가면을 쓰지 않은 상태라 스킬을 쓰지 못 하는데 이렇게 수월할 줄은 몰랐다.


 광대일 때의 신체 능력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일까?


 나는 개의치 않고 마저 독니를 뽑아낸 뒤 인벤토리에 집어 넣었다.


 때마침 보상도 들어왔다.


 [보상을 지급합니다.]

 [아이템: 달콤한 꼬리뱀의 꼬리]

 [원기 회복에 탁월합니다! 과도하게 흔들면 독이 되니 주의하세요.]


 “보상은 나가서 분배하도록 하죠. 얘보다 강한 몬스터는 이제 없는 것 같으니까···”


 하경 씨도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


 쿠웅!


 끝이 보이지 않던 커다란 나무가 우리 쪽으로 쓰러졌다.



 ***



 “차원문을 넘은 걸로 충분합니다. 얼른 돌아가시죠···.”

 “미안. 근데 오늘은 왠지 느낌이 좋아.”


 던전에 정장 차림으로 들어온 경호원은 창백한 얼굴의 남자가 말을 듣지 않자 애를 먹었다.


 경호원은 키가 2미터 가까이 돼 보였지만 남자의 몸에 손도 대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뒤를 따라 걸었다.


 “땀을 이렇게 흘리시면서 무슨 느낌이 좋으시단 겁니까···!”

 “하아···. 정말이야, 정말로. 이번엔 분명해.”


 남자는 애써 웃으며 식은땀을 닦았다. 자신의 경호원에겐 미안했지만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동안 차원문 앞에서 얼마나 많은 결심을 해야 했던가.


 남자는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위험천만한 분위기.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곳곳에 느껴지는 마력의 선명한 흔적.


 자신이 언제 정신을 잃을지 모르는 상태였지만 버틸 자신이 있었다.


 “우리 조금만 더 들어가 볼까? 여긴 꽤 안전한 것 같네.”


 남자가 끝이 보이지 않는 나무들로 가득 찬 하늘을 쳐다보며 물었다.


 경호원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까부터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는 나무뿌리들과 성가신 함정들.


 남자의 정신 상태를 고려하면 절대 안전하다고 할 순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는 다른 경호원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언제 재앙이 찾아와 목숨을 앗아갈지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분이 마지막으로 웃었던 게 언제지?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러시죠. 대신 앞으로 5분. 무조건 5분 안에 돌아가셔야 합니다. 그 뒤부턴 감당하지 못합니다.”

 “약속할게. 근데 나도 부탁할 게 있어.”


 남자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저분들은 모두가 돌아가게 해줘. 혹시라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무재는 침을 삼키며 유호 헌터가 쥐고 있는 검을 응시했다.


 ‘역시 알고 있었구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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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화 은인 잡아라 24.08.30 10 0 12쪽
10 10화 페르소나 24.08.30 11 0 12쪽
9 9화 페르소나 24.08.30 10 0 13쪽
» 8화 페르소나 24.08.30 15 0 12쪽
7 7화 페르소나 24.08.30 14 0 13쪽
6 6화 페르소나 24.08.30 16 0 12쪽
5 5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17 0 12쪽
4 4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1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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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24 0 13쪽
1 1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29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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