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광대가 되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바해다찬
작품등록일 :
2023.07.30 21:12
최근연재일 :
2024.09.08 19:30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280
추천수 :
1
글자수 :
107,653

작성
24.09.08 19:30
조회
6
추천
0
글자
12쪽

19화 잃어버린 기억

DUMMY

 “야이씨. 너 몇 살이야 이 새끼야. 어린 놈의 새끼가.”

 “···흠흠.”


 관리자는 당황스러운 듯 헛기침을 했다.


 “어서 가시죠.”

 “어? 무시해? 너 몇 년 차야. 몇 년 차냐고.”


 관리자는 캔딜의 말을 애써 못 들은 척하고 돌로 된 문을 열어주었다.


 “캔딜. 관리자는 너 아니었어? 나도 쟤는 전생에서 본 적이 없어.”

 “흑흑. 주인님이 날 버린 거야. 버렸다고. 저 새파랗게 어린 놈한테 밀린 거야. 내가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전혀 새파랗게 어려 보이진 않지만 하여튼 캔딜은 구슬프게 울었다.


 “허허. 누님이 선배님을 얼마나 보고 싶어 하시는데요.”

 “뭐?”

 “이것 보십쇼.”


 관리자가 손에 들고 있던 랜턴을 보여줬다. 캔딜과 똑 닮은 랜턴이었다.


 “됐어! 필요 없어!”


 나는 여전히 꿍해 있는 캔딜을 뒤로하고 관리자를 불렀다.


 “이봐. 그나저나 마녀가 왜 날 찾는 거야?”

 “음. 제가 듣기론 광대님이 도망치셨다고 들었습니다.”

 “도망쳐? 내가?”

 “아마 누님과의 계약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자세히 알진 못합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누님이 아주 많이 화나셨습니다.”


 관리자는 그로 인한 아픔이 떠올랐는지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럼 내가 굳이 마녀를 만나야 할 이유가 있나? 화가 난 마녀는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데.”


 그 말에 관리자가 우뚝 섰다.


 그리고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 그러면 안 될 텐데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저는요···.”

 “알았어. 알았어. 갈게. 가고 있잖아 지금.”


 안도의 한숨을 쉬는 그를 보며 뭔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시달렸길래.


 이 뒤부터 대화는 없었고 그저 관리자가 안내하는 길대로 따라가기 바빴다.


 횃불 거치대를 내리니 벽이 열리고 점점 좁아지는 길을 걷기도 했다. 하여튼 정상적으로 마녀가 있는 곳에 도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느 순간 등에 업은 부회장을 어디든 던져버리고 싶단 충동이 들었을 때 관리자가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부디 누님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은 삼가시길 바랍니다.”


 거대한 문이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 안에서 본 걸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나 있을까?


 한 여자가 콧노래를 부르며 요리를 하고 있었다.


 앞치마에는 마녀가 손수 만들어준 것임을 알려주는 자수가 박혀 있고 그런 앞치마를 자랑스럽게 메고 있는 그녀는 스푼으로 국물 맛을 보더니 흡족해했다.


 “으음. 굿.”


 이런 걸 스톡홀름 증후군이라 했나.


 “얀. 왔어? 너도 어서··· 어? 옆에는 누구···.”


 그녀가 관리자 옆에 있는 날 보자 들고 있던 걸 떨어뜨렸다.


 댕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마녀도 등장했다.


 “왜 그러니? 채라야.”


 역시 채라가 맞았다. 역시라고 할 것도 없이 그녀는 분명 채라였지만 굳이 이를 상기시키게 한 건 마녀의 희롱이었다.



 ***



 마녀의 계약은 하늘이 무너지는 한이 있어도 이루어진다고 했다.


 “너가 가장 증오하는 자의 목을 가져와.”


 그녀가 제시한 계약의 내용이었다.


 어렸던 나는 섣불리 받아들이지 않았다.


 증오했지만. 그리고 여전히 증오하지만. 너무너무 증오하지만. 그때라도 말없이 안아주면 용서하기로.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마녀의 계약을 받아들일 운명이었다.


 어쩌면 그들을 용서하려 한 건 죄책감 없이 죽이기 위한 이기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내가 가장 증오하는 자. 즉 부모님의 목을 가지러 가기 위해 저택을 맴돌았다.


 가장 큰 고통을 주기 위해 고민했기 잔대가리를 굴렸기 때문이다.


 그들의 하나뿐인 왕자를 납치할까?


 좋은 생각이다.


 미천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었다. 나를 버리고 얻어낸 그 잘난 왕자를 납치한다면 그들도 나 못지않게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곧장 동생의 뒤를 밟았다.


 근데.


 너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내 자리를 뺏어가 놓고.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잖아.


 왕자는 길거리 거지에게 독이 든 스프를 줬다.


 그걸 먹은 거지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자 녀석은 입이 찢어질 듯 웃었다. 또 하루는 그들 중 하나가 소중하게 여기는 편지를 목구멍에 쑤셔 넣고 조롱했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너는 선택 받았잖아. 나와는 달리 선택받은 넌 이보다 감사하며 살아야 할 텐데 도대체 왜···?


 마녀와의 계약은 여전히 유효했다. 다만 대상이 달라졌다.


 왕자. 너를 증오해.


 그래서 난 그에게 없던 형제를 만들어줬다.


 밤마다 찾아가 피눈물을 흘리며 그의 정신을 조작했다. 악몽을 꾸게 만들고 피폐해진 정신에 거짓을 섞는 것이다.


 이제 그는 있지도 않은 첫째 왕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자에게 독살을 당했단 사실에 고통받을 것이다.


 둘째 왕자가 미쳤을 땐 자신의 차례가 왔다는 두려움에 하루하루 죽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짓에도 효과가 있었다.


 매일 밤 성당에서 아네리아 수녀와 기도를 하던 녀석은 오랜 시간 수면 부족으로 쌓인 스트레스가 쌓이다 못해 터져버려 수녀를 제 손으로 십자가에 묶어버렸다.


 자비로웠던 수녀는 자비롭지 않은 그에게 자비를 바랐지만 그녀가 첩자라는 의심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곤 내가 한 짓이라 굳게 믿고 있다.


 이 모든 사실을 알려줬을 땐 무슨 반응을 보일까?


 녀석이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성인이 된 녀석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줬다.


 녀석은 자신이 고통받은 이유를 알게 되자 다시 고통받았다.


 나는 분노에 방향을 잃은 그에게 제 손으로 부모를 죽이면 해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자 페리 왕자는 일주일 만에 왕의 자리에 올랐다.


 단 일주일.


 지지 세력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정신병자 왕자에게 왕국을 맡기는 건 미친 짓이었다.


 그런 그를 꼭두각시 왕으로 세우고 자신들이 왕국을 통치할 속셈인 몽상가 몇 명이 다였다.


 경비대장은 울고불며 제발 쿠데타를 도와달라는 페리 왕자의 말을 무시하고 그를 지하 감옥에 가두었다.


 어쩌면 이 방법이야말로 대면을 금지당한 정신병자가 왕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개탄을 금치 못한 왕이 그를 찾아오자 페리 왕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쇠창살 사이로 손을 뻗어 왕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신발 밑에 숨겨둔 칼로 목을 겨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에겐 협상이 통하지 않았다. 표정과 몸짓에서 알 수 있었다.


 경비가 그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무장을 해제하고 다가갔다.


 왕은 절대 오면 안 된다고 소리쳤지만 그건 당신이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떨리는 손으로 잠긴 문을 풀자, 경비의 얼굴에 왈칵 피가 튀었다.


 출처는 왕의 목. 역시는 역시.


 왕은 앞으로 고꾸라졌고 여전히 무장을 해제하지 않은 경비병들이 뒤로 물러섰다.


 왕자는 곧장 그들을 처리하고 자신의 방으로 헐레벌떡 도망갔다.


 창문이 폐쇄된 그곳에서 더는 도망칠 수도 없었다. 꼬박 일주일을 뜬 눈으로 공방을 한 끝에 그가 왕이 되는 걸 반대하는 자는 사라졌다.


 폐쇄된 방에서 자결하지 못한 것도. 문 사이로 불을 질렀지만 질식하지 않은 것도 모두 내가 한 짓이었다.


 하지만 그는 더 고통받아야 한다.


 내가 맹세를 안 지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끝에 생을 마감해야만 한다.


 이것이 내가 계약을 지키지 않은 이유였다.


 마녀의 계약은 하늘이 무너지는 한이 있어도 이루어진다고 했나.


 나는 다음 생을 기약하며 스스로 계약에 대한 기억을 지웠다. 그러지 않으면 계약을 이행하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



 채라. 분명 채라를 만났었는데?


 꿈이었나?


 아. 근데 채라고 나발이고 숨 막혀 죽을 것 같아. 어지러워.


 “우리 작은 악마. 이제 기억이 났나 보네?”


 마녀는 계약에 관한 기억을 되돌리기 위해 진득한 입맞춤을 했다. 그 진득한 입술이 내 이마에서 멀어지고 나서야 난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품에서 놓아준 건 아니었다.


 어라? 근데 이게 웬걸?


 그다지 싫지가 않다.


 어쩌면 인간으로서의 오랜 염원을 이룬 느낌.


 과거엔 마녀가 그저 미친년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복수를 도와줬더니 계약은 지키지 않는, 은혜도 모르는 상놈 중의 상놈 새끼를 넓은 마음으로 안아주고 기억까지 찾아주는 천사였다.


 무엇보다 마음이 정말 넓었다.


 근데 누가 그에게 마녀라는 아주 불경하기 짝이 없는 이름을 지었는가. 내 반드시 그 놈을 찾아 주리를 트리라.


 “이러다 죽겠어요!”


 뇌에 가는 산소가 줄어들며 이상한 환각을 보기 시작했을 때 채라가 날 마녀에게서 떼어냈다.


 “헤헤···.”


 “괘, 괜찮아요?”

 “부럽습니다. 광대님. 흐흐.”

 “넌 아가리 죽 닥치고 있어 개자식아.”

 “넵.”


 채라가 붉은 눈을 죽일 듯이 째려봤다.


 붉은 눈은 현재 벌을 받는 중이었다. 마녀는 붉은 눈에게 그가 던전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라고 했을 뿐 폭주니 뭐니, 감정을 선별하고 어쩌고 그딴 짓은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신이 삼등분된 채 축복받은 용사의 창에 탕후루 마냥 박혀있게 됐다.


 “붉은 눈. 자꾸 허락 없이 말하면 창 개수를 늘릴 거야.”

 “죄송합니다···.”


 저주에게 축복은 쥐약이었다. 다만 지금 붉은 눈은 쥐약을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 아파하는 것과 같았다. 여기서 창 개수가 더 늘어나면 진짜 죽을지도···


 “지금 눈깔 따위 죽든지 말든지 알 바야? 진짜 적당히 무시해!”


 랜턴에서 튀어나온 캔딜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변해 고함을 질렀다.


 “캔딜? 뭐야 그 모습은? 아직 환각이···.”


 캔딜은 정말 많이 참았다.


 얀이란 꼬맹이가 관리자 자리를 뺏어갔을 때도. 삐진 티를 팍팍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아닌 강대를 먼저 아는 척한 것도.


 하지만 제 맘대로 행동하다 벌 받는 눈깔 새끼 사정까진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서럽다. 주인님은 정말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걸까?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씩씩거리던 캔딜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곤 고개를 떨궈 흐느끼기 시작했다.


 캔딜의 눈에서 나온 불똥이 바닥에 떨어져 지글지글 소리를 내었다.


 그 모습을 본 마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캔딜에게 걸어갔다. 고개 들어 쳐다보지 않는 캔딜을 위해 무릎 꿇고 앉아 꼭 안아주었다.


 “당연히 보고 싶었지.”


 그 한마디에 캔딜이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작은 손을 펼쳐 마녀의 넓은 몸을 껴안았다.


 보고 싶었어요. 주인님.


 정체불명의 발음으로 그렇게 얘기했다. 마녀는 다 안다는 듯이 끄덕였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 지친 캔딜은 그 품 안에서 잠들었다.


 마녀는 슬픔으로 연소된 작은 불꽃을 무릎 위에 눕혔다.


 너는 900년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나와 함께 영원히 응석 부리며 타오를 것이다.


 다른 건 그러지 못해서 사랑하지 않았다.


 영원한 너를 사랑해서 다른 것을 사랑할 수 없었다.


 강대와 계약을 맺은 건 우리가 영원할 수 있는 마법을 완성시킬 증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에게 호기심이 생긴 건 너에게 참 미안한 일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시무시한 광대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19화 잃어버린 기억 24.09.08 7 0 12쪽
18 18화 잃어버린 기억 24.09.04 11 0 10쪽
17 17화 잃어버린 기억 24.09.02 13 0 12쪽
16 16화 잃어버린 기억 24.08.30 15 0 12쪽
15 15화 대서특필 24.08.30 14 0 13쪽
14 14화 두 가지 조건 24.08.30 11 0 13쪽
13 13화 은인 잡아라 24.08.30 11 0 14쪽
12 12화 은인 잡아라 24.08.30 10 0 13쪽
11 11화 은인 잡아라 24.08.30 10 0 12쪽
10 10화 페르소나 24.08.30 11 0 12쪽
9 9화 페르소나 24.08.30 10 0 13쪽
8 8화 페르소나 24.08.30 15 0 12쪽
7 7화 페르소나 24.08.30 15 0 13쪽
6 6화 페르소나 24.08.30 16 0 12쪽
5 5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18 0 12쪽
4 4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18 0 12쪽
3 3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23 0 14쪽
2 2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24 0 13쪽
1 1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29 1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