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근자 수선지로(無靈根者 修仙之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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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키
작품등록일 :
2023.08.0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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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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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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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선홍빛 그믐달, 연분홍빛 초승달

DUMMY

 ‘연기, 연단진군 같은 것 아니어도 도호라는 게 다 천맹 정보망에 등록되는 거구나.’


 “···알 다이라 뿐만 아니라 다른 천맹 지부에 입점한 어느 가게에 방문하셔도 동일 대우를 받으실 수 있으며···.”


 ‘살만한 건 다 샀으니 비상용으로 조금만 남기고 나머지는 부모님께 드릴까?’


 범죄자를 잡고 나온 현상금으로 수많은 부적을 구매해 단숨에 주요 고객이 된 하늘색 두루마기 입은 도련님은 남은 영석 중 일부를 부모님께 보낼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든 물건을 구매한 그는 그렇게 가게를 나왔다.


 빠빠빠빠빠밤ㅡ


 둥- 둥-


 “정민 수사, 요 앞에서 난리 났던데 또 무슨 일 일으킨 거야?”


 천맹 지부에서 몇 주 만에 영보동자(靈寶童子)가 탄생하자 각종 호들갑을 뜰며 ‘지구 수선연맹 이정민 영보동자 도호 획득’과 같은 배너와 모니터 등으로 축하하고 있었다.


 입점한 가게들 앞에서는 이미 수백 명의 분장한 사람들이 퍼레이드하듯 악기 연주와 행진을 하고 있었다.


 “응··· 부술점에서 물건 구매했더니 나보고 영보동자래. 천맹이라는 은하계급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사업 전략이겠지만 너무 요란하네···.”


 “아니, 그런 도호를 얻는 건 누적 금액으로 계산이 안 되어서 한 번에 이천 영석 이상은 써야 할 텐데?! 아무리 삼천 영석을 들고 갔어도 그걸 한 번에?!”


 실제로 정민의 수중에는 이제 740 영석만 남았다.


 여전히 지구에 사는 범인 가정이 평생 만져 볼 일 없는 거금이지만 앞자리가 달라지니 적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내가 장로님들께 받은 것도 있고, 부사의 길을 걸어야 하니까 먼 미래를 보고 투자한 셈 치는 거지.”


 “연기사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자미목천뢰환 같은 법보급 묘리가 담긴 걸 만드는 건 운으로 안 돼. 실력이지.”


 일행은 그렇게 한담하며 종문과 연락해서 결단기 수사 한 명의 동행을 요구했다.


 “내일이면 장로님이 오신다니 다행이네요.”


 “이제 아무 데나 빨리 방을 잡자. 그 책임관 말로는 도시 내에서 안전하다지만 밤이 되면 또 몰라.”


 이미 알 다이라의 행정 능력에 큰 의문을 가지게 된 그들이었기에 모두 하은의 말에 동의했다.


 “당신들이군요.”


 마치 정민 일행을 찾아 다녔다는 듯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 곳에는 참새가 아닌 완전한 인간 모습의 인영이 코트 같은 복식을 한 옷을 입고 서 있었다.


 “···벌써 찾으셨네요? 젠장.”


 “제 아들은 현상금이 걸려 있었기에 이미 옥에 수감되었습니다. 한데 그렇게 만든 자들이 고작 축기기 넷이라··· 비문명인 다운 행동입니다.”


 비록 도시 안이라 서로 수위를 끌어낼 수 없었지만 상대의 기백 자체가 의심의 여지 없이 결단기의 그것이었다.


 “아들이라고요? 부모와 자식이 깡패 짓거리나 하고 참 잘난 집안이···?”


 “그만.”


 ‘시간을 끌 순 없나? 이렇게 되면 실내로 가는 게 더 위험해진다!’


 정민이 어떻게든 시간을 벌려고 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결단기 참새 대장은 그의 말을 잘라냈다.


 “당신들이 종문에 연락하던 때부터 다 들었습니다. 산수는 아니란 뜻이니 뒷배가 있어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겠죠.”


 “···?”


 “제 아들 현상금 5,000 영석에 정신적 피해보상 5,000 영석까지, 총 일만 영석을 저에게 주시면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물론 거래하기 전에, 당신들이 부른 내일 온다는 그 장로도 오지 말도록 요청 하십시오."


 자기 아들 남은 일생마저도 돈으로 보는 이 정신 나간 깡패 결단 수사를 보고 일행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잠깐, 시골 출신 종문이기 때문에 일만 영석을 갑자기 융통하는 건 힘들다고 변명하면?’


 그리고 그런 인륜 없는 그의 행동을 보고 정민의 뇌리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수사 말씀대로 우리는 알 다이라와 비교하면 비문명국인 은하 변방 출신입니다. 종문 전체의 자금력을 동원해도 일만 영석을 바로 마련할 수는 없어요.”


 정민이 시간만 주면 보상을 해줄 수 있다는 자세로 나오자 결단 참새도 고민에 빠진 것 같았다.


 “···한 달의 여유를 드리겠습니다. 가능하시겠죠? 물론 결단기인 저는 언제 어디서나 당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또한 도시 밖으로 나가시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린 원래 몇 주 후에 교외로 나가야 해서요. 일만 영석 얘기를 하면서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점도 같이 알리겠습니다.”


 양측의 합의가 끝나자마자 코트를 입은 인영은 정민 일행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영식을 통한 대화도 소용없겠죠? 그냥 제안에 따라야겠네요.”


 ‘물론 제 의식이 영식처럼 대화할 수 있다는 건 절대 안 들키니까 별개지만요.’


 정민은 마치 결단기 대장의 말을 군말 없이 따라야 한다는 듯 굴면서 의식으로는 다른 말을 일행에게 퍼트렸다. 


  “···그래. 어차피 축기기인 우리가 결단기에게 대항할 순 없어. ‘한 달 후’까지 기다리자.”


 하은이 정민의 표면적인 말에 맞장구치며 대화가 어색하게 끊기지 않도록 이었다.


 “장로님들께 어떻게든 일만 영석을 구하라 해야겠어요. 물론 딱 한 달로는 안 되겠지만 그때 영석 일부를 주면서 기한을 조금 늘려달라고 사정하면 기한을 늘려 주겠죠.”


 ‘그렇죠. 한 달 후면 천맹 회의잖아요? 제가 회의에서 수선연맹 의제라서 사람들이 어떻게든 찾으러 올 거에요. 아! 그리고 방금 떠오른 생각인데···.’


 일행이 종문에 연락하며 일만 영석을 요구하고 숙소를 잡아 들어가기 전까지 그들의 연기는 계속되었다.


 알 다이라에서 한 달은 그렇게 도시 내 숙소에서 입정에 든 채로 지나갔다.


 “수위가 벌써 축기 중기네요. 알 다이라 하루가 지구보다 세 배 정도 느리구나.”


 어느새 회의 당일 날이 되었고 결단기 대장과의 약속일이자 천맹 회의 개최일이 되었다.


 정민 일행과 결단기 참새 대장이 약속 장소에서 만났다.


 “이제 저기 보이는 장로님이 일만 영석을 주실 거에요. 우리도 종문 입장에서는 귀한 인재라서 어떻게 마련하셨나봐요. 정말 이걸로 끝이죠?”


 “저도 그렇게 째째한 사람은 아닙니다. 아들이 간 것은 간 것이고, 영석은 영원하죠. 우리의 은원은 이것으로 다 풀리게 될 것입?!” 


 영석을 가지고 와야 할 ‘장로님’은 갑자기 감춰둔 수위를 원영 수준으로 끌어올려 법력으로 결단기 대장의 수위와 영식을 모두 구속해 버렸다.


 “부맹주님!”


 “이곳에서 속을 썩이던 범죄 조직 중 하나의 수장이라는데, 그를 잡았으니 조직 전체를 일망타진한 것이나 마찬가지구나.”


 ‘장로님’, 수선연맹 부맹주 아디티 아속이 그 말을 끝으로 정민 일행을 법력으로 감싸 천맹 회의 개최지로 날아갔다.




 “위성 은하에서 반지세계의 초공간 기술로 영력 착취를 일삼고 있는···.”


 천맹 회의장은 수백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는데, 의장인 부술진군이 법력으로 목소리를 퍼트려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회의를 벌써 시작하고 있네요?”


 “의제가 많아서 우리 차례가 되려면 이곳 시간으로도 며칠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부맹주는 그 말을 하면서 동시에 지구 수선연맹 자리를 찾아 정민 일행을 데려다주었다.


 “···위성 은하 외곽에 전송진법을 건설해서 진출··· 외교적 해결법을 고려··· 천맹 영향력···.”


 “이런 걸 그때까지 가만히 듣고 있어야 한다니··· 엄청 지루하겠네요.”


 부맹주의 호언장담대로 수선연맹 차례가 오기까지는 알 다이라 시간으로 무려 엿새가 걸렸다.


 “다음은 지구 수선연맹의 의제입니다. 회원국들의 이해를 위해 지난 회기(會期)에서 지구 수선연맹의 의제는···.”


 “정민 수사, 이제 네 차례야. 모두를 놀라게 해줘.”


 왕걸과 일행의 응원을 뒤로 하고 정민은 단상에 서기 위해 부맹주의 인도를 따랐다.


 “네가 따로 할 건 없고, 그저 부술진군 님의 질문에 답하거나 지시에 따르면 된다.”


 정민이 부술진군 앞, 회의장에 중심 단상에 오르자 수백만의 시선이 동시에 그에게 꽂혔다.


 ‘··· 태일종에서 비슷한 일 없었으면, 이미 기절했거나 놀라 죽었을지도 몰라.’


 “지구 수선연맹 소속 이정민이라는 축기 중기 수위를 지닌 수사인데, 연기기 때부터 영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이번 지구 수선연맹의 의제입니다.”


 감히 연기기 수사가 천지의 대 법칙을 무시하고 영식을 가졌다는 말이 전 회의장에 퍼지자 거의 폭격 소리와도 같은 수백만 명의 법력이 실린 웅성거림이 생겼다.


 “이미 축기 중기라면 그 이전부터 영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어떻게 증명합니까?”


 “다행히 이 수사가 알 다이라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축기 초기였습니다. 이는 와각상인(蝸角上人)이 직접 확인했습니다.”


 이후 한동안 의장국 후보를 위시한 검증단 측의 질의와 지구 수선연맹 측의 답변이 지속되었고, 진행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결론은 연기기 당시 지구 수선연맹의 자료 신뢰성에 대한 문제 제기인데,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도우(道友)들. 사실 지구 수선연맹도 이 아이의 체질에 대해 놓친 부분이 있습니다.”


  “···?!?”


 지구 수선연맹 측 증인으로 나와 있던 와각상인이 돌연 무언가 결심한 듯 의미심장한 말을 흘렸다.


 “이 말을 뱉으면 천기누설의 천겁이 올 것입니다. 회의장의 보호막을 최대로 가동하십시오.”


 “아니? 보호막이라니···?!”


 와각상인은 원영 후기의 수사였기에 천기누설에 대해 함부로 말할 경지가 아니었고 결국 회의장의 보호막이 최대로 가동되었다.


 “이 아이의 의식은 영식처럼 움직입니다.”


 “어찌 한 사람이 천지의 대 법칙을 둘이나 어기고 살아남을 수 있단 말입니까?!”


 천기누설이 온다는 와각상인의 호언장담과 달리 회의장 상공에는 어떤 천뢰의 구름도 발달하지 않았다.


 ‘뭐지···? 어찌하여 천겁이···?’


 “지구 수선연맹 이정민, 본인이 와각상인님의 증언에 직접 증거를 제출해도 되겠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정민이 거수해 본인이 직접 증명하겠다고 나섰다.


 “좋습니다.”


 부술진군의 허락이 떨어지자 정민은 주저 없이 허리춤에 있던 건곤척을 영식으로 움직였다.


 “다들 보시면 알겠지만 이 법기는 영식으로 움직이는 법기입니다. 그리고 제 영식은 한 줄기죠.”


  장내 모든 축기 중기 이상 수사의 영식의 시선은 이제 정민의 건곤척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영식을 저기 상공으로 날려 보내고···. 그런데도 떠 있죠? 뭐가 떠받치고 있는 걸까요?”


  “······.”


 영력으로 억지로 받치는 것도 아니고 숨겨둔 영식이 있는 것도, 다른 사람의 영식이 거드는 것도 아니었다.


 천맹 회의의 마지막은 그렇게 공영근보다도 더 이해 불가능한 역천(逆天) 그 자체가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더이상 아무도 다른 의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침묵만이 감돌았다.





 “덕분에 파급력은 더 강한데 이제 은하 전체가 내 의식을 영식처럼 쓸 수 있단 거 알아 버렸네.”


 “정민 수사, 만약 상인님이 발견하지 않으셨다면 끝까지 숨길 생각이었어? 우리한테는 대놓고 말하길래 아닌 줄 알았네.”


 천맹 회의가 끝나고 정민 일행은 몰려드는 취재진을 뒤로하고 한 숙소에 박혀 있었다.


 “이제 천맹 수사 누구나 내가 가진 영식뿐만 아니라 한 줄기를 더 생각할 거 아냐?! 싸울 때 이점이 사라진다고!”


 “아··· 그것도 문제긴 하네. 사실 그것보다 천도가 그걸 허락하지 않을 텐데 어떻게 네가 여태 살아 있느냐가 제일 큰 문제지만.”


 정민 일행이야 정민이 지속적으로 영식 법기인 건곤척을 의식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여주고, 참새 대장을 잡을 때는 대놓고 말해줘서 그러려니 했었다.


 하지만 세간에서는 이 일의 결과가 ‘비어있는’ 영근보다 훨씬 높은 파급력을 가져오게 되었다.


 “정민아. 이 ‘사부’가 들어가도 되겠느냐?”


 그리고 같은 날 밤, 외무당 김 장로의 목소리가 정민 일행이 묵는 숙소 문밖에서 들렸다.


 “취재진 있는 거 아니죠?”


 “사람들을 전부 다 물렀단다. 본 장로가 그래도 결단 중기인데, 어느 누가 감히 따라오겠느냐?”


 김민우의 말에 정민은 즉시 문을 열어 그를 안으로 들였다.


 “정민아! 내 제자야! 덕분에 천맹 예산 중 일부분이 연구지원 명목으로 수선연맹에 오게 되었다.”


 “오! 그래도 제가 우리 하은 사저만큼 지구에 도움이 되었네요?”


 정민은 하은의 사제이자 제자로서 이 정돈 당연하다는 듯 덤덤하게 답했다.


 “사실 규모가 그때의 수 배 이상이란다. 아마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결단기 수사들이 원영기로 나아갈 수 있겠지. 한국이 당연히 제일 큰 수혜국이고. 금오교를 대표해서 정말 고맙구나.”


 “뭘요. 어차피 제 고향인데.”


 정민이 ‘고향’이라고 언급하자 서로 이별을 직감한 듯 둘 사이는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장로님과 할 얘기가 있으니까 둘은 나가줄래? 하은 사저··· ‘사저부’는 여기 계시고요.”


 류우세이와 왕걸이 숙소에서 나가고 실내는 이제 셋만 남게 되었다.


 “···어떤 소식을 들고 오신 거죠? 이 난리가 났는데 뭐든 없을 리는 없죠.”


 “빙 둘러 말하지 않으마. 너에게 세 곳으로부터 제안이 왔는데 무엇을 먼저 듣고 싶으냐?”


 그 제안이란 아마도 그들을 헤어지게 할 것일 터였다.


 “조건 비교하면서 속물처럼 보이긴 싫으니 그냥 제안이 온 곳만 다 말해 주세요. 한 곳을 고를게요.”


 “··· 금오교, 지구 수선연맹, 천맹이란다.”


 정민은 잠시 뜸을 들이나 싶더니



 “수선연맹이요.”



 누구도 예상 못 한 의외의 답을 냈다.


 “비록 내가 금오교 장로여도, 본교 제안은 네게 성에 차지 않을 것은 알고 있었다. 월면 분타에 순찰당 같은 부문을 만들어서 네가 축기 후기가 되면 장로직을 주는 게 다니까 말이다.”


 “왜 수선연맹을 골랐느냐 묻고 싶으신 거죠? 금오교는 그렇다 쳐도 천맹도 아니고.”


 하은은 여전히 둘 사이를 말없이 쳐다만 보고 있었고 장로만 고개를 끄덕였다.


 “탐욕에 눈이 멀어 저를 죽이려 한··· 그리고 류우세이를 아버지로서 돌봐주지 못한 월향문주에게 복수할 거에요.”


 “······.”


“근데 천맹의 손을 빌리려면 백 년이 걸릴지,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를뿐더러 그 힘이 월향문보다 너무 크니까 제 손으로 한다는 의미가 없어요.” 


 정민은 자신을 죽이려 한 월향문주 그 자체에도 언제나 마음속 깊이 격노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어릴 적 자신이, 부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어도 내색 하나 할 수 없는 류우세이와 겹쳐 보여 어떤 동정심에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연맹에 들어가면 알게 되겠지만 이전 소속과 국적을 버리고 중립적으로 활동하는 조직이기에, 일정 이상 직위에 오르면 월향문주의 신상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뭔가 더 숨겨져 있을 거란 말이죠? 그럼 복수에만 매몰되지 않고 모든 것을 낱낱이···.”


 한동안 이어진 대화를 끝으로 장로 김민우도 숙소를 떠나 이제 그곳엔 두 명만 남게 되었다.


 “사제자. 난 어쩌면 너에게 ‘돌’을 줬던 순간부터 이렇게 떠나보내게 되는 걸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네.”


 “지구를 떠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요?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자주 볼 수 있을 거에요.”


 하은도 정민의 결심을 막을 수 없다는 걸 느낀 듯 헤어지는 걸 기정사실로 했다.


 정민 역시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월향문주가 괜히 지구에서 두 번째로 원영기가 된 수사인 게 아닐걸. 조심해. 네 의도를 알게 되면 분명 그도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해 너를 해하려 할 테니.”


 하은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 귀걸이에서 ‘돌’ 하나를 빼내 정민에게 건넸다.


 “지금은 네가 은하 전체에서 유명해졌으니까 그가 당장은 손을 쓰진 못하겠지만, 유명세가 영원하진 않아. 가능한 한 빨리 결단기가 되어야 해.”


 약 팔 년 전 천맹을 그렇게 떠들썩하게 만든 하은도 지금은 소수만 공영근자라고 기억해 주고 있었다.


 세상의 가장 뜨거운 감자 같은 소식도 누군가에는 라디오에서 들려나오는 특이한 해외 뉴스 한 줄인 것이다.


 “결단기부터는 지구 어디서나 중요 인물이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정말 넓어질 거야.”


 그녀가 건넨 태양정수석이 정민의 손바닥에 살포시 얹어졌고, 그는 가려진 어떤 실체를 밝히기 위해 어둠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 차디찬 세상을 똑바로 마주하기 전, 아이에겐 지금 당장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있었다.


 “사저부, 아니 사저. 따지고 보면 오늘이 마지막 날이잖아요? 항상 같이 있는.”


 “새삼스레···. 왜, 왜 이래? 너 이런 애 아니었잖아?”


 정민은 얼굴이 체리처럼 빨개지며 줄곧 하고 싶었던 얘기를 끌어냈다.


 하은은 언제나 그렇듯 그 말을 한 번 튕겨냈지만 듣기 나쁘진 않은 듯 목소리에 기대감이 섞인 떨림이 생겼다.


“저, 사저와 만난 후로 단 한 번도 서로 제대로 부른 적 없었어요.”


 정민의 말에 하은은 수사와 학생으로서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공영근이 이 세상에서 자신에게만 있다는 알량한 자존감이 무너졌던 순간, 실은 내면에서 혼자서 모든 길을 개척했던 스스로와 달리 박하은 자신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으니 더 편하겠다는 질투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자기가 겪었던 어려움을 이 꼬마도 똑같이 겪지 않을까 하는 동정심도 들었었다.


 “···제대로?”


 “우리가 평범한 사이라고 생각 안 해요. 서로 모른 체 해왔던 거죠. 처음 머리 쓰다듬어 줬을 때, 사실은 세상 그 누가 나를 위해 해줬던 것보다 더 안심이 들었어요.”


 태일종에서 왕걸과 싸웠을 때, 자기보다 작은 키를 가진 이 아이가 혹여나 다칠까 무뚝뚝한 자기 성격에 걸맞지 않게 그가 자기가 가장 아끼는 사제임을 적극적으로 드러냈었다.


 “···제가 날 수 없어서 대신 법력을 씌워 줬던 예전 그 몇 달도 좋았어요. 축기를 했던 날도, 우리 둘만 있었더라면 평소처럼 받아들였을 거에요.”


 오미호 천교를 해치운 날, 축기를 해낸 소년은 적어도 겉으로는 스스로 날 수 있다는 걸 아이처럼 기뻐했다.


 그걸 본 그녀 자기 내면의 진짜 공영근을 찾아버린 듯 느껴지던 공허함은 어쩔 수 없었다.


 “···축기 공법 구결을 알려줬던 때, 웃었던 게 못생겼다고 했지만 실은 그렇게 이쁜 웃는 모습은 살면서 본 적이 없었어요.”


 축기기 공영근 공법 구결을 읊어주던 날, 그가 그 이치를 쉽게 깨닫지 못하자 자기가 가르쳐줄 것이 아직 더 많이 남았다고 생각한 그녀는 내심 안심하고, 기뻐했다.


 자기가 지은 웃음을 본 소년에게 못생겨 보인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것이야말로 그에게 가장 듣고 싶어 했던 말이었다.


 “그게 이뻤다고? 항상 생각하지만, 넌 참 특이한 녀석이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의 입가는 다시 웃음으로 만들어졌다. 


 “···너무 늦게 물어본 것 같지만, 누나라고 불러봐도 될까요?”


 하늘색 두루마기 입은 소년은 그렇게 누나로부터 받은 쓸모없는 돌을 바닥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는 자기 연분홍빛 입술을 아직 앙다문 채 정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달궈진 듯 보이는 소년의 뺨에선 생애 처음 내는 용기가 피어 올랐다. 


 “내가 막은 것처럼 굴긴···.”


 “정민이 네가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었잖아?”


 “그럼, 지금 물어봤으니까 이제부터 제 누나에요.”


 '누나'는 마침내 그에게서 줄곧 원하던 말을 듣자 선홍빛 입술을 조금씩 가까이 가져갔다.


 불이 꺼진 방 안은 바깥의 달 없는 밤과 같아 마치 이 세상에 그들밖에 없는 것 같이 느껴졌다.


 청년은 그의 얼굴을 그녀의 그것에 좀 더 가까이, 긴장하며 아주 살짝 들이밀었다.


 지구를 위한 태양이 오직 하나고 달도 하나이듯, 이곳은 푸른빛의 쌍성(雙星)이 연인처럼 붙어다니며 낮을 밝혀서 밤에는 달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선홍빛 그믐달이 반대편에 있는 연분홍빛 초승달에 포개어져 밤을 밝혔다.


 연분홍빛과 선홍빛 두 달 사이에 무엇이 오고 갔는지, 아무도 모르고 그 누구도 알 필요 없었다. 


 차가운 밤, 달들 아래를 가리고 있던 구름이 물러나 바닥에 떨어져 밤공기는 따뜻해지고 대기에 향기가 맴돌았다.


 두 달은 하나로 완전히 포개져 둥근 보름달이 되었다.


작가의말

벌써 한 주가 반이나 지났습니다.


모두 이틀 남은 주말을 바라보며 행복한 하루 마무리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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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5. 백두문(白頭門)을 뒤집어 엎어버리다. (2) 23.08.24 435 16 14쪽
35 34. 백두문(白頭門)을 뒤집어 엎어버리다. (1) 23.08.24 471 15 14쪽
34 33. 건곤이척(乾坤二尺)·, 기천부(祈天符) 23.08.24 439 13 12쪽
» 32. 선홍빛 그믐달, 연분홍빛 초승달 +1 23.08.23 474 17 21쪽
32 31. 부술(符術)점을 휩쓸고 도호(道號)를 얻고 23.08.22 460 16 16쪽
31 30. 와각상인(蝸角上人)과 아베노 류우세이 (3) 23.08.21 467 15 15쪽
30 29. 와각상인(蝸角上人)과 아베노 류우세이 (2) +1 23.08.20 465 14 13쪽
29 28. 와각상인(蝸角上人)과 아베노 류우세이 (1) 23.08.20 484 15 14쪽
28 27. 자미목천뢰환(紫微木天雷環) (2) 23.08.19 490 16 13쪽
27 26. 자미목천뢰환(紫微木天雷環) (1) 23.08.18 519 17 14쪽
26 25. 천맹(天盟) 의장국 알-다이라 23.08.17 525 17 13쪽
25 24. 네깟 놈이 천지교자(天之驕子)라고 +1 23.08.16 547 17 13쪽
24 23. 공영검기 (空靈劍氣) (2) 23.08.15 560 17 14쪽
23 22. 태행산 (泰行山) (2) 23.08.15 543 17 13쪽
22 21. 태행산 (泰行山) (1) 23.08.14 577 18 13쪽
21 20. 공영검기 (空靈劍氣) (1) 23.08.13 608 16 14쪽
20 19. 삼도 축기(三道 築基) 23.08.12 614 2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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