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랑전(極狼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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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H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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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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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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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유산(遺産) (2)

DUMMY

“「보라. 그리고 깨달아 알지어다. 천지를 뒤흔드는 바즈라-야크샤의 권능 앞에서, 숨는 자도 피하는 자도 없을진저.」”


광천사자─ 아니, ‘바즈라-야크샤’의 선언과 함께 파슈파타의 변화가 멈추었다.


구우우웅···!


그러나 파슈파타가 일으키는 ‘지진’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보름달과 초승달의 위치가 고정된 순간부터, 땅에 일어나는 진동이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구정삼은 입신의 경지에 이른 무인답게, 초월적인 오감과 공간지각력을 바탕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를 알아차렸다.


‘···인력(引力)과 척력(斥力)이다. 그리고 진동··· 아니, ‘지진’ 그 자체라고 봐야겠구먼.’


보름달 쪽에서는 인력을, 그리고 초승달 부분에서는 척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양쪽에서 뿜어지는 그 힘이 맞물리며, 저 ‘파슈파타’라는 무기를 중심으로 ‘진동’이 퍼져나간다.


진동─ 아니, ‘지진’이 영향을 미치는 건 오직 땅뿐인 것 같지만, 실은 아니다. 구정삼은 저 무기가 발하는 ‘지진’이 저 하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았다. 그 증거로, 미묘하지만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서서히 흩어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만물’이 흔들리는 중이다.


“···쉽지 않겠군.”


구정삼은 어금니를 사리물었다. 그는 초인의 경지를 돌파한 무인이며,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역전의 무인이기도 했다. 아니, 그야말로 당금 무림에서 가장 많은 싸움과 무공을 경험한 사내일 것이다.


그렇기에 구정삼은 저 무기의 위험성을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저 파슈파타라는 무기는 무한에 가까운 충격파를 매우 빠르게 연속으로 발산하는 무기인 셈이다.


마침, 구정삼은 저런 방식으로 공격하는 무공을 겪어본 적도 있었다.


“시우십결을 둔기로 쓰는 꼴인데?”

“「으하하하핫! 과연, ‘인세의 강룡’답도다.」”


구정삼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놈이 크게 웃음을 터뜨리자마자 머리가 살짝 어지럽고 핑, 도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놈의 목소리에서도 ‘지진’이 담겨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말을 오래 섞으면, 그것만으로도 뒤져나가겠구먼.”

“「그러하다! 본디 악인은 정법의 소리 앞에 제대로 설 수조차 없는 법!」”


아주 염병을 떤다며 핀잔을 주려던 구정삼은 말을 삼켰다. 말을 섞을수록 피해가 쌓일 것을 알면서도 계속 말을 섞을 수는 없다.


이미 광천사자의 주변 땅은 그냥 흔들리는 수준이 아니라 파도치듯 너울지는 중이다. 이대로 놈이 공세를 펼치면 아마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죽기 아님, 까무러치기지!!”


그렇기에, 구정삼은 늘 그랬던 것처럼, 공격을 선택했다.



* * *



쿠르릉!!


갑자기 일어난 지진에 심용학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앞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보니, 그야말로 신화 속에서나 들어볼 법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녕, 같은 인간이 맞는 것인가?


애초에 백련교의 대호법이 펼치는 것은 무공이라기보단 이능(異能)에 가깝다. 그저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사람의 골을 뒤흔들어버리기에, 그것을 귀신의 소리(鬼音)라고 부르지 않던가?


그러나 구정삼의 무공은 오직 그가 이뤄낸 노력의 산물이다.


“단지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으로··· 저기까지 해낼 수 있단 말인가.”


심용학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야말로 압도당하는 기분이다. 이제 막 땅을 뒤흔들며 태동하던 ‘지진’이 고작 한 인간의 발디딤에 짓밟혀 사라져버렸다.


“···꿀꺽.”


심용학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 대결의 결말을 직접 목도하고 싶다.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다. 무인으로서 얻을 것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호기심이 더 컸다.


신과 신의 싸움을 한낱 인간이 들여다본다고 하여 무언가 달라질 건 없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끝까지 지켜보고자 하는 것이 인간이 아니겠는가?


“···끄응.”


심용학은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억누르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강호 초출의 애송이라면 모를까, 한 집단을 책임지는 당주 자리에 오른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내야만 한다.


그게 ‘책임’이라는 거니까.


그렇게 다시 정주를 향하려던 심용학은, 고작 몇 발도 채 떼지 못한 채 다시 땅에 엎어져야만 했다. 뒤쪽에서 심상찮은 압박감이 심용학의 전신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어디, 받을 수 있으면 받아봐라!!”


구정삼의 포효와 함께, 무지막지한 기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구체(具體)의 고수들은 심상(心象)에 불과한 것을 현실로 끄집어내는 게 가능하다.


심용학에겐 아직 미답의 영역이지만, 적어도 그 경지에 들어가는 입구에는 간신히 발을 걸쳐두었기에 그 편린은 맛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이건 그 격이 완전히 달랐다. 구정삼의 손끝에서 피어오른 기의 폭풍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용의 화신’ 그 자체였다.


그 생생한 질감과 압도적인 존재감은, 넘쳐나는 기백이 펼쳐낸 환상이라는 오히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그 용을 보는 순간, 심용학의 가슴속에서 주책에 가까운 희망이 들끓었다.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저 광천사자라는 괴물이 죽을지도 모른다─ 라는 희망 말이다.


“「옴 마하 파드메 훔!!」”


그리고 그 희망은 광천사자가 펼쳐낸 만다라와 구정삼의 용이 상쇄되는 그때 무너졌다.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몸을 일으킨 광천사자는 이전과 같이 강맹하고 거대한 기세를 자랑하는 반면, 구정삼의 기세는 마치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어르신.”


그때, 심용학은 번민에 빠졌다.


이대로 달려가서 구정삼을 지원해야 하나? 아니면 당장 꽁지가 빠져라 도망쳐야 하나?


아마도 구정삼을 향해 달려간다면─ 심용학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기껏해야 구정삼이 죽을 때 그 옆에서 길동무가 되어주는 게 전부일 것이다.


번민은 길지 않았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 심용학은 구정삼에게서 눈을 돌렸다.


이대로 구정삼을 잃는 것은 강호 전체로 봐도 뼈아픈 일이나, 사실상 무의미한 행동이다. 그를 구할 수 있는 확률이 단 일 할이라도 있었다면, 심용학은 망설임 없이 그리했을 것이다.


‘아니, 이건 변명이로군.’


심용학은 자신이 두려워 도망치려 한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자존심이 중요하다지만, 그런 사소한 거짓말까지 용인한다면 결국엔 인간으로 몰락하고야 마는 것이 바로 사람이란 동물이니까.


‘···용서해주십쇼. 원수는 기필코 갚아 보이겠습니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다짐한 심용학은 호흡을 가다듬고 신법을 전개했다. 이번에야말로 단숨에 정주까지 달려갈 생각으로 크게 땅을 딛고 발을 굴렀는데─


털썩!


앞으로 쭉, 뻗어나갔어야 할 몸이 그대로 앞으로 나뒹굴고 말았다. 내공이 소진된 것도 아니고, 다리를 다친 것도 아니다. 귀음신후에 진탕되었던 내부도 진정됐다.


“끄으··· 커헉!”


「압력」이었다. 사방에서 보이지 않는 무형의 벽이 심용학의 전신을 짓누르는 것만 같은 압력이, 그를 옴짝달싹 못 하게 억누르고 있었다.


“이··· 이건···! 헉?!”


뒤를 돌아보니, 광천사자가 그야말로 신과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광천사자의 등에 떠오른 광배는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을 발하고 있었고, 그의 손에 들린 월아산 또한 마치 신의 권능이 담긴 물건처럼 스스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찢어질 듯, 두 눈을 부릅뜬 심용학은 그만 미혹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어쩌면, 백련교가 진정으로 「옳은」 게 아닐까?


사이비 무당이나 영매사가 신을 입에 담아봐야,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건 그저 ‘신기한 재주’에 불과하다. 날이 선 칼에 베이지 않거나, 애매모호한 예언을 뱉거나 하는 일 말이다. 물론, 뛰어난 영매는 진짜 신의 가호를 받은 것처럼 영험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


그래도 그들은 ‘사람’의 범주를 벗어나진 않는다.


빛을 휘감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빛으로 이루어진 월아산을 들고서 땅에 지진을 일으키는 인간을 도대체 뭐라 부를 것인가?


심용학은 그가 코흘리개이던 시절에 어머니가 읽어주시던 책들을 떠올렸다. 봉신연의나 서유기, 요재지이 따위의 신마소설(神魔小說) 말이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던 어린 시절에나 두근거렸던 이야기. 신선과 요괴 따위가 부리는 도술이나 보패(寶貝)보다도 힘 있는 권세가의 권력이 훨씬 무섭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그런 하잘것없는 이야기.


그러나 신화 속의 존재가 현실에 현현해버린 이 순간─


심용학은 어쩌면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 저게 정녕··· ‘신’인가···?”


입을 벌린 채, 저도 모르게 탄식하듯 말을 내뱉을 때였다.


화륵─


어디선가 불길이 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커헉···!”


구정삼은 피를 토하며 나뒹굴었다. 내장이 진탕되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대략 70합을 겨루는 동안 직격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단지, 공격을 하다가 ‘파슈파타’에 닿은 몇 수─ 아마도 스무 번이 채 되지 않을 그 몇 번의 충격에 내상을 입었다.


상대방의 공격을 막은 것이 아니다. 이쪽이 공격을 펼치는데, 놈이 무기를 들어 막으면 가공할 충격파가 몸을 타고 들어 온다.


“씨··· 발···!”


도대체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공격을 하면 할수록 이쪽에 피해가 쌓이는데?


“「필부였다면 이 파슈파타(主靈錘)에 닿는 것만으로도 죽어 나자빠졌을 터. 보면 볼수록 놀라운 강단이로다.」”

“시꺼!! 개시꺄, 칭찬하지 마!!”


구정삼은 버럭, 화를 내면서 거리를 벌렸다. 근거리에서 싸우면 불리하다. 결국, 답은 하나뿐이다.


“이번에야말로, 쳐 죽여주마!!”

“「추락이 두렵지 않은가? 항룡이 추락하는 까닭은 오직 교만일진저. 그대는 이미 ‘전력’을 다하지 않았더냐? 힘의 우열을 가늠치 못하는 것 또한 교만일지니···!」”

“되든 안 되든···! 끝까지 깻박쳐야 깨지는 거다!!”


구정삼은 일갈하며 다시 공력을 끌어모았다. 전신을 휘도는 내기를 전부 쏟아부어서라도, 놈을 쳐 죽일 수만 있다면─!


“「동귀어진인가? 그렇다면··· 그다음의 ‘뒷일’은 어찌하리오?」”


순간, 구정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놈을 제거하더라도, 백련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반면, 구정삼이 사라지면··· 백련교는 일사천리로 나아갈 것이다. 천하삼절 중 무려 둘이나 사라지는 게다. 과연 천하에 백련교를 저지할 힘이, 더 있을까? 해낼 수 있는 자가 과연 남아있는가?


한 소가주, 그 애송이 놈은 꽤 믿음직하긴 하지만··· 놈은 멸혼산에 중독된 상태다. 제갈 계집이나, 화산의 도사 놈, 미친개··· 이놈들이 과연 백련교를 막을 수 있을까?


구정삼이 사라진 이후의 ‘뒷일’을 부탁할 수 있을까?


─아니.


틀렸다.


‘뒤’를 부탁하는 것이 아니다.


“···까득!”


구정삼은 생각을 멈추고, 이를 갈며 ‘광천사자’를 노려보았다.


“네놈만 사라지면··· 어떻게든 될 거다. 네놈만 사라지면··· 그다음의 ‘앞날’은 살아남은 놈들이 알아서 개척할 거다!!”


그래, 이게 맞다.


구정삼 자신이 그랬다. 누군가의 뒤치다꺼리를 처리하려고 이 자리까지 온 것이 아니다. ‘구정삼’이라는 사내가 걷고 싶은 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네놈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일어선다! 그리고 그중에는 내가 감히 이르지 못했던 저 하늘 너머의 하늘까지 이를 놈이 있을 것이다!!”


구정삼은 그렇게 포효하며 손을 펼쳐 내밀었다. 그의 손끝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화륵!


“아직, 아닙니다.”


그때, 서쪽에서 푸른빛의 화염이 타올랐다.


“아직··· 우리에겐 어르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푸른빛의 화염은 어둠을 사르고 나아와─


광천사자의 ‘빛’을 꺼뜨렸다.


“조금 더 도와주십시오. 어르신. 미력하나마, 힘을 보탤 터이니.”


구정삼이 뒤를 돌아보자, 거기엔 푸른빛으로 불타는 검을 든 설총이 서 있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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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 88화. 늑대가 나타났다. (1) 24.08.07 113 3 12쪽
297 87화. 회기서문(回其西門) (2) 24.08.06 124 2 15쪽
296 87화. 회기서문(回其西門) (1) 24.08.05 127 1 13쪽
295 86화. 자각(自覺) (4) 24.08.02 135 1 14쪽
294 86화. 자각(自覺) (3) +2 24.08.01 127 2 13쪽
293 86화. 자각(自覺) (2) 24.07.31 126 2 14쪽
292 86화. 자각(自覺) (1) 24.07.30 140 3 14쪽
291 85화. 불비불명(不飛不鳴) (2) 24.07.29 115 1 14쪽
290 85화. 불비불명(不飛不鳴) (1) 24.07.26 137 1 12쪽
289 84화. 7년의 밤 (7) +1 24.07.25 132 2 16쪽
288 84화. 7년의 밤 (6) 24.07.24 143 2 13쪽
287 84화. 7년의 밤 (5) 24.07.22 117 2 16쪽
286 84화. 7년의 밤 (4) 24.07.19 142 2 15쪽
285 84화. 7년의 밤 (3) 24.07.18 121 1 12쪽
284 84화. 7년의 밤 (2) 24.07.17 143 2 14쪽
283 84화. 7년의 밤 (1) 24.07.16 120 3 14쪽
282 83화. BAD END. (4) +2 24.07.09 160 3 14쪽
281 83화. BAD END. (3) 24.07.08 125 3 13쪽
280 83화. BAD END. (2) 24.07.05 141 1 14쪽
279 83화. BAD END. (1) +2 24.07.04 142 4 14쪽
278 82화. 유산(遺産) (4) 24.07.03 133 2 15쪽
277 82화. 유산(遺産) (3) +2 24.07.02 141 4 14쪽
» 82화. 유산(遺産) (2) 24.07.01 148 3 12쪽
275 82화. 유산(遺産) (1) 24.06.28 149 3 13쪽
274 81화. 운명이 부르는 소리 (4) 24.06.27 149 2 15쪽
273 81화. 운명이 부르는 소리 (3) 24.06.26 136 2 13쪽
272 81화. 운명이 부르는 소리 (2) 24.06.25 133 3 15쪽
271 81화. 운명이 부르는 소리 (1) 24.06.24 159 3 14쪽
270 80화. 꽃무리 모두 진 겨울에야, 매화꽃은 홀로 곱게 피어난다. (3) 24.06.21 14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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