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랑전(極狼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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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HaL
작품등록일 :
2023.10.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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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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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8화. 늑대가 나타났다. (1)

DUMMY

“제기랄!!”


한 청년이 거친 숨을 헐떡이며 벽에 몸을 기대섰다. 청년의 다리엔 화살이 한 대 박혀 있었고, 피가 흐르는 중이었다. 그는 자신의 운이 여기까지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거의 다 왔는데···!”


청년은 품에 넣은 무언가를 꽉, 틀어쥐고 이를 꽉 깨물었다.


“이쯤 하지.”


그때, 담벼락 뒤에서 청년을 쫓던 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포위는 이미 자네를 완료했다. 살 수 있다. 지금 순순히 투항한다면. 오직 천지회와 접선하려 했던 자네의 행적에 대한 조사만 있을 것이다.”


그 의미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지만, 몇 번을 들어도 적응이 안 되는 기묘한 말투다. 그리고 저 말투엔 이유가 있었다.


“차라리 날 죽여라, 달자(韃子: 타타르 족의 멸칭)놈아!”

“···네가 말하는 뿌리는 내가 아니다. 타타르(韃靼)는 내 조상의 원수. 예케 몽골 올로스가 나의 뿌리이며, 네가 말하는 나는 틀렸다. 하지만, 모욕적으로 느껴지는군.”


몽골의 후예를 자처하는 사내, 아라부카는 씩,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하지만 내가 이 치욕을 갚는 방법은 죽은 네가 아니라 산 너를 잡아가는 것이겠지. 도발은 관계없··· 아니, ‘무용지물’이다.”


아라부카는 척, 손을 치켜들었다.


“산 채로 잡는 것이다.”


청년은 이를 악물고 허벅지에 박힌 화살을 잡았다. 화살을 뽑고서라도 달아날 셈이었다.


퍽!


“끄악!!”


그러나, 청년이 미처 화살을 다 뽑기도 전에 다른 화살이 날아와 청년의 어깨에 박혔다. 포위를 완료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던 것인지, 어느새 청년을 앞지른 놈들이 화살을 날린 것이었다.


“···대장, 미안해.”


체념한 청년이 품에 쥐고 있던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벽력탄이다!!”

“접근하지 마라, 벽력탄이 터진다!”

“···!”


청년의 손에 들린 것의 정체를 어찌 그리 빨리 알아챈 것인지, 순식간에 상황이 전파되었다. 한 놈이라도 더 많은 적을 길동무로 데려가려 했던 청년은 허망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겁쟁이 놈들! 은림방(隱林幇) 놈들은 죄 겁쟁이뿐이더냐!!”


아라부카는 ‘은림방’이라는 이름에 움찔, 어깨를 떨었으나, 그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이미 잡은 사냥감이다. 궁지에 몰린 사냥감에게 이빨을 들이밀지 않는 것 또한 지혜. 피는 충분히 흘렸다. 기다리기만 하면 놈은 쓰러진다.”


아라부카의 말에 따라, 은림방의 살수(殺手)들은 청년으로부터 충분히 거리를 벌리고 청년의 힘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이익!”


아라부카의 말대로 이미 많은 피를 흘렸던 청년은 최후의 도발마저 먹히지 않자, 벽력탄을 격발하기 위해 달린 끈을 잡았다. 하지만, 한쪽 어깨가 관통된 그는 이제 그것을 당길 힘조차 남지 않은 듯했다.


“이제 끝···.”

“이제 끝났냐?”


그때,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라부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서둘러 주위를 살폈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오호··· 말 공부 좀 했나 보네?”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리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은신이 뛰어나거나 어기전성(御氣傳聲)의 수법으로 먼 곳에서 목소리만 전달할 정도의 고수라는 뜻이다.


“나 못 찾겠냐?”


아라부카는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여 소리가 난 방향을 파악하려 애썼으나, 아무리 감각을 집중해도,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목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숨지 말고 나와라!”

“경고하는데, 나 보고 너무 놀라지 마라.”


무슨 소린가, 했는데─


타닷!


마치 그림자에서 불쑥, 솟아난 것처럼 목소리의 주인이 정체를 드러냈다. 아니, 정확하게는 ‘정체’를 밝힌 것은 아니었다.


사내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턱 부분이 없는 검은 늑대의 가면을.


“검은··· 늑대?”

“흑랑(黑狼)이라고 부르진 마라. 괜히 기분 나빠지니까. 딴 건 몰라도, 내가 짐승 새끼─ 아니, 말 새끼랑 같은 이름을 쓸 순 없잖아?”

“···무슨 개소린지 모르겠군.”


검은 늑대 가면 아래로 비치는 입술이 씩, 호선을 그렸다.


“몰라도 돼, 새끼야.”

“알고 싶지도 않다. 쓸모없는 한담(閑談) 따위는.”

“어쭈,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게 문자 읊냐?”


아라부카는 피식, 웃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은림방의 행사를 훼방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은림방? 천가방 아니고?”


‘천가방’이라는 단어에 아라부카의 표정이 흔들렸다.


“···누구냐, 넌? 그 이름을 아는 자는··· 이제 많이 남아있지 않다!”


사납게 소리치는 아라부카를 향해, 검은 늑대 가면의 사내는 챙! 검을 뽑아 겨누고 말했다.


“이름을 말해줄 것 같으면, 가면 같은 걸 쓰겠냐?”

“타당하군.”


아라부카는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화신(化身)」을 개방한다! 놈을 잡는 것이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은림방의 살수들이 복면을 벗었다. 복면에 가려져 있던 그들의 얼굴 위에는 나비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카하···!!”

“크흐흐흐, 흐하핫!!”


기괴한 표정으로, 기괴한 웃음을 터뜨린 살수들이 눈을 빛냈다. 곧 그에 반응하듯 나비 문신이 마치 살아있는 나비처럼 날갯짓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힘이···! 넘친다!!!”


쾅!!


흘러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살수 중 하나가 주먹으로 담벼락을 후려쳤다. 마치 포탄을 맞은 것처럼 담벼락이 부서지고, 갈라지는 모습에 늑대 가면의 사내는 휘유, 휘파람을 불었다.


“이게 ‘나비 표식’이었구만···?”

“죽어!!”


잔뜩 흥분한 살수 하나가 늑대 가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누군가 살수를 활시위에 재고 쏜 것 같았다.


스칵!


살수의 검이 허공을 가르고, 살수는 허공에 거꾸로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늑대 가면과 눈을 마주쳤다.


“재미없는 병신들인 건 변함이 없네.”


서걱!!


칼에 베이는 소리와 함께, 늑대 가면과 살수가 동시에 착지했다. 아니, ‘착지’했다는 표현은 살수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살수의 목은 땅에 떨어지는 즉시 몸통과 영영 작별했으니까.


“···설마!!”


그 모습을 본 아라부카는 오래전의 누군가를 떠올렸다.


“미친개···!!”


늑대 가면─ 득구는 가면 아래로 이빨을 드러내고 웃었다.


“흑랑(黑狼)!!”

“히히힝!!”


득구의 부름에, 거대한 흑마─ 흑랑이 모습을 드러냈다. 득구는 챙! 검을 칼집에 꽂아버렸다.


“밟아.”


그 말을 시작으로 말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 * *



“으악!! 이런 미친···! 미친 말이···!!”


평범한 인간도 아니고, 무공을 익힌 데다 「화신」까지 개방한 살수들이 고작 말발굽 따위에 채이고 짓밟히며 쓰러진다. 아라부카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미친개가 돌아온 것도 모자라서, 놈이 끌고 온 말이 제멋대로 날뛰는 이 상황을 말이다. 아니, 미친개가 돌아올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이긴 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7년 전에도 범상치 않았던 미친개가 이제는 아라부카로서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실력자가 되어 돌아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분명, ‘술법’이었다. 백련교의 그것과 같은···!’


미친개가 불러낸 거대한 흑마는 건물 뒤에 숨어있다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보였지만, 시각이 매우 뛰어난 아라부카는 볼 수 있었다.


저 흑마는, 어디 벽 너머에 모습을 숨기고 있다가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공간’을 가르고 튀어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천지회의 끄나풀도, 없다.’


게다가 미친개에게 시선이 집중되어 있던 사이, 다 잡아놨던 천지회의 첩자가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아주 깔끔하게 사라진 것이다.


아무리 미친개에게 정신이 팔린 상황이었다 할지라도, 그만한 어깨와 허벅지를 화살로 관통당한 청년 하나를 들어 옮기는데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오직 시공을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이능’이 있지 않고서는─


‘···늑대.’


하필, 놈은 늑대 가면을 쓰고 나타났다. 마치, 이제는 저잣거리를 뒹굴던 미친개가 아니라 저 드넓은 들판을 자유롭게 누비는 늑대가 되었다고 선언이라도 하듯.


‘방주님께 알려야 한다, 이 사실만큼은 반드시···. 그렇다면 지금은···!’


퇴각을 결심한 아라부카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것은 단검과 금강저(金剛杵), 그리고 피리를 하나로 결합해놓은 것 같은 독특한 형태였다. 한 자 길이(약 30cm)가 조금 안 되는─ 비수(匕首)로 쓰기엔 크고, 단도(短刀)로 쓰기엔 조금 짧은 애매한 크기였다.


손잡이는 금빛으로 빛나는 세 날 금강저의 형태를 하고 있었으며, 각 날에는 섬세한 연꽃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 금강저 형태의 손잡이는 검막이의 역할도 겸하는지, 칼날의 길이에 비해 꽤 크고 두툼했다. 금강저의 중앙에서 뻗어 나온 예리한 칼날은 은백색으로, 표면에 미세한 물결 무늬가 새겨져 있어 마치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손잡이의 반대쪽 끝은 정교하게 조각된 나비가 검파두식(劍把頭飾)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이 나비의 꼬리 부분에는 큰 구멍이, 그리고 날개에 뚫린 여러 작은 구멍을 통해 바람이 통과하며 기묘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라부카는 굳은 표정으로 단검의 나비 꼬리를 입에 가져갔다.


“도망치게?”

“···!”

“너 잘하는 거잖아. 불리해지면 퇴각! 철퇴! 이 지랄 하는 거.”


아라부카는 미친개의 도발을 무시하고 피리를 입에 물었다. 지금까지 이런 도발을 몇 번이나 당했으리라고 생각하는 걸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승리, 그리고 실리(實利)다. 쓸데없는 감정 낭비를 해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도망이 아니다. 내가 이 화접살(花蝶煞)을 꺼내도록 만든 건 너의 실수다, 미친개.”



* * *



피이─


소름 끼치는 곡조가 화접살로부터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살수들의 나비 표식이 화접살의 곡조와 비슷한 소리를 내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아으악, 으크흐아악!!”


나비 표식이 새겨진 살수들은 하나같이 끔찍한 비명을 질러대며 자기 몸을 손톱으로 쥐어뜯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그들의 온몸 곳곳에서 붉은 반점이 피어올랐다.


“「카하악!!」”


붉은 반점이 피어오른 살수 하나가 소리치며 흑랑을 향해 달려들었다. 득구는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저 살수가 내지른 소리에는 미약하지만, 귀음신후(鬼音神吼)의 경력이 담겨 있었다.


“또 지랄이네, 또.”


득구는 짜증을 내면서 양손을 폈다.


짝!!


양손을 마주쳐 손뼉을 치자, 기묘하게 청량한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는 이제부터 금지다. 뭔 말인지 알간?”

“「쓰와하!!」”


이성이 날아간 것으로 보이는 살수 하나가 곧장 포효하며, 흑랑을 향해 귀음신후를 발했다. 그러나 무언가 핑─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곧장 경력이 흩어지고 말았다.


“말귀를 못 알아처먹네!”


챙!


검을 뽑아 든 득구가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약 1장 높이를 사뿐히 뛰어오른 득구는 느릿한 동작으로 허공에서 몸을 비틀었다. 허공으로 뛰어올라 다시 땅에 내려서기까지의 모든 동작은 매우 빨랐지만, 어찌나 여유롭던지 무척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매끄럽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한 호선을 그리며 땅에 내려선 득구는 별다른 동작 없이 그대로 다시 검을 칼집에 착! 꽂아 넣었다.


스칵!!


그리고 그와 함께 살수들의 목에서 피 분수가 솟구치며 하나둘 쓰러졌다. 혈우(血雨)가 쏟아지는 가운데, 득구는 늑대 가면 뒤에서 안광을 빛내며 말했다.


“도망쳐라. 처음부터 보내줄 생각이었으니.”


고요하지만 사납게 타오르는 눈빛으로 득구는 말을 이었다.


“‘탐랑(貪狼)이 극성(極星)을 집어삼켰다.’ 이렇게 전해라. 이제부턴··· 내가 너희들을 사냥할 차례니까.”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뭔가 계속 맘에 안 드는 부분을 고치다 보니 그만... 시간을 깜빡했네요ㅠㅠ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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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 88화. 늑대가 나타났다. (2) 24.08.08 115 1 12쪽
» 88화. 늑대가 나타났다. (1) 24.08.07 115 3 12쪽
297 87화. 회기서문(回其西門) (2) 24.08.06 124 2 15쪽
296 87화. 회기서문(回其西門) (1) 24.08.05 127 1 13쪽
295 86화. 자각(自覺) (4) 24.08.02 135 1 14쪽
294 86화. 자각(自覺) (3) +2 24.08.01 127 2 13쪽
293 86화. 자각(自覺) (2) 24.07.31 126 2 14쪽
292 86화. 자각(自覺) (1) 24.07.30 140 3 14쪽
291 85화. 불비불명(不飛不鳴) (2) 24.07.29 116 1 14쪽
290 85화. 불비불명(不飛不鳴) (1) 24.07.26 137 1 12쪽
289 84화. 7년의 밤 (7) +1 24.07.25 132 2 16쪽
288 84화. 7년의 밤 (6) 24.07.24 143 2 13쪽
287 84화. 7년의 밤 (5) 24.07.22 118 2 16쪽
286 84화. 7년의 밤 (4) 24.07.19 143 2 15쪽
285 84화. 7년의 밤 (3) 24.07.18 121 1 12쪽
284 84화. 7년의 밤 (2) 24.07.17 144 2 14쪽
283 84화. 7년의 밤 (1) 24.07.16 121 3 14쪽
282 83화. BAD END. (4) +2 24.07.09 160 3 14쪽
281 83화. BAD END. (3) 24.07.08 125 3 13쪽
280 83화. BAD END. (2) 24.07.05 141 1 14쪽
279 83화. BAD END. (1) +2 24.07.04 143 4 14쪽
278 82화. 유산(遺産) (4) 24.07.03 133 2 15쪽
277 82화. 유산(遺産) (3) +2 24.07.02 141 4 14쪽
276 82화. 유산(遺産) (2) 24.07.01 148 3 12쪽
275 82화. 유산(遺産) (1) 24.06.28 149 3 13쪽
274 81화. 운명이 부르는 소리 (4) 24.06.27 149 2 15쪽
273 81화. 운명이 부르는 소리 (3) 24.06.26 136 2 13쪽
272 81화. 운명이 부르는 소리 (2) 24.06.25 134 3 15쪽
271 81화. 운명이 부르는 소리 (1) 24.06.24 159 3 14쪽
270 80화. 꽃무리 모두 진 겨울에야, 매화꽃은 홀로 곱게 피어난다. (3) 24.06.21 14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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