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에게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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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
작품등록일 :
2023.12.19 07:48
최근연재일 :
2024.02.1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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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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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혈원불사

DUMMY

이미 숨이 끊겨진 육체 속에서 누군가의 생각이 계속 이어졌다.


‘뭐냐???’


‘이 족쇄보다 무거운 육체는....기맥이 꽁꽁 막혀 있는데다가 다 죽어가잖아.’


‘젠장.....억겁과도 같은 시간을 지나 만난 것이 이따위 육체라니.’


‘남은 모든 힘을 다 써서 육체를 새로 만들어야겠군.’



* *



오랜 시간 감겨있던 눈이 뜨여졌다.


“오!! 드디어 움직이는 거냐!!!”


‘여긴.....’


청년이 눈을 깜빡거렸다.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눈앞의 것들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기에.


청년의 앞에 있던 도사가 손에 쥐고 있던 종을 흔들었다.


“일어나거라.”


‘.....’


청년은 잠시 눈에 들어온 도사를 응시했다. 그리고 흘러 들어오는 기억들.


떠올랐다. 도사가 누구인지, 자신이 누구였는지.


‘살았어!!!’


위지혁은 자초지종은 몰라도 아직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도사에 대한 원한도 사라지지 않았음을.


혈원불사(血怨不死), 피로 새겨진 원한은 결코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법이었다.



* *



도사는 날이 지날 때마다 매번 찾아와 위지혁의 몸을 만지작거렸다.


위지혁의 몸의 강도가 궁금했는지 매번 와서 강도를 시험했다.


처음은 가벼운 나무 몽둥이였다.


퍼억. 퍽.


기이하게도 위지혁은 약간의 충격만이 느껴질 뿐. 전혀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사가 내리치는 힘을 좀 더 강하게 주자 몽둥이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우드드득. 콰직!


점점 더 강해지는 힘을 이기지 못한 나무 몽둥이가 부러지고 말았지만 위지혁의 몸은 멀쩡했다.


마치 몸이 강철이라도 된 것처럼.


“흐음.....”


도사는 썩 만족한 눈치였다. 그리고 이내 몸을 돌려 위지혁이 있던 창고에서 빠져나갔다.


이 기행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매일같이 이어졌다.


‘빌어먹을. 아프진 않지만 정말 기분 더럽군.’


위지혁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팔은 물론이고 다리까지 쇠사슬과 형틀에 묶이고 매달린 채 누군가에게 맞는다는 것은 결코 좋은 기분이 될 수 없었다. 설사 그것이 아프지 않다고 해도 말이다.


나무 몽둥이의 다음날은 철로 된 몽둥이였다.


몇 날 며칠, 몇 시간을 내리쳤을까.


조금씩 강해지는 위력 앞에 철 몽둥이는 휘어버리고 말았다.


“이상하군.”


자신이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동시(動屍)였다. 크게 네 가지 등급으로 나눌 수 있는 강시 중 두 번째 단계의 동시.


강시(殭屍),동시(動屍),생시(生屍), 인시(人屍)에서 동시 급의 시체라 한들 방금 사용한 곤철(昆鐵) 방망이를 이만큼이나 견딜 수는 없을 터였다.


제강 후라면 또 모르겠지만.


원독과 한이 쌓인 시체를 하나의 보패로서 만들어내는 것이 강시다. 제강이라 하면 강시를 만들어내는 단계 중 마지막의 단계. 그것을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리 좋은 재료라 한들 그저 시체에 지나지 않거늘.


도사 장충의 머리가 급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좋아. 좋아. 항상 자신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에 무슨 흥미가 있겠어?’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일에 그는 영환도사로서의 흥미와 창작의욕이 고취되고 있었다.


강하다면 모든 것이 용납되고 존중되는 선계에서도 욕먹는 이가 영환도사였다. 허나 그것은 결코 강시제조가 시체를 주무른다는 역천의 행위라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것이 선계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수행자가 모두 하늘의 뜻, 천리를 거스르고 경지에 도달하여 정해진 수명을 벗어나 살아가거늘.


영환도사가 경원시 되는 이유는 단지 시향(屍香)이 선계인들에게 있어 견딜 수 없을 만큼의 악취를 풍기기 때문이었다.


원독과 한이 쌓인 영육과 주검이 제강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강시란 선계에선 썩을대로 썩은 취두부와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시향조차도 기쁘게 맡을 수 있는 이가 장충이었으니, 그만큼 무언가에 미쳐있는 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그런 장충이 지금 흥분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 사고의 그물이 뻗어나가다 한 가지 결론이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강시 중 마지막 단계의 인시 급의 주검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분명히 있었다.


원독으로 자극된 영육이 육체를 가득 메운다면 제강 전에도 강시(殭屍)급의 단단함을 자랑하면서도 뻣뻣하게 굳지 않은 상급의 재료가 나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장충 자신조차도 선대에게서 물려받아 다루어본 것이 생시 급의 강시이지, 재료로서는 한 번도 다루어본 적이 없기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화와 복은 같이 굴러온다더니.’


얼마 전 거슬리는 장이족의 금지옥엽을 잡느라 모아두었던 대부분의 강시들을 잃은 참이었는데, 이런 행운이 찾아올 줄이야.


입꼬리를 길게 늘인 장충이 창고에서 떠나갔다.


스르르르릉.


장충이 나가자 석문이 저절로 닫혔다. 그리곤 이내 형틀이 꿈틀거렸다.


“젠장할....”


위지혁은 오늘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머리까지 울리는 충격은 토할 것처럼 기분이 나빴다.


위지혁은 요 며칠간 뭔가 비몽사몽 같은 느낌이 짙었지만 오늘은 그나마 괜찮은 느낌이었다. 어중간했던 감각도 어느 정도 돌아오고, 몸도 움직일 수 있었다.


허나 이대로는 놈의 수집품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이해하고 있었다.


이대로 숨만 쉬는 것이 살아있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았다. 적어도 이렇게 갇혀있는 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끼익끼익.


“쳇.”


위지혁이 형틀을 세게 움직여 봐도 요지부동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인계에 속한 자들의 육체적 힘이야 뻔한 것이니까.


‘기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가.’


왜인지는 몰라도 놈은 자신을 시체마냥 취급했다. 눈을 뜨고 있음에도. 거기에 기회가 있다고 여긴 위지혁은 각오를 다졌다.


살아남기 위해. 이 저주스러운 선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



위지혁은 몸의 감각이 어느 정도 돌아오다가 멈추었음을 깨달았다.


어째서일까?


무언가 묘하게 둔한 감각. 하긴 그래서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일까? 고통은 느끼지 않는 것은 좋았지만 그것뿐이었다. 몸은 둔하고 감각도 절반정도. 도망치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몸의 감각이 전부 돌아와야 어떻게든 할 것이 아닌가.


‘후....’


벌써 며칠이 지난 것일까.


기이하게도 목조차 마르지 않았지만 위지혁은 그것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살아남는다, 그것이야말로 선계에서 인간들이 지상명제로 삼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도사 놈이 매질을 멈추었다. 하지만 그것이 더 위지혁을 불안케 했다. 필요가 있어 매질만으로 넘어갔지만 앞으로 어떤 정신 나간 짓을 더 할지 모르지 않은가.


시체에 하는 매질만으로도 충분히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그것마저 익숙해지고 고통도 없는 위지혁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탈출이었다.


그리고 위지혁이 두려워하던 그날이 마침내 찾아왔다..


“흥. 흥.”


장충이 기분이 좋은지 콧바람 소리까지 내며 오더니 연신 위지혁의 몸을 살폈다.


“아직도 굳지 않았고, 무기하나 들어가지 않다니. 정말이지 잘만하면 인시급의 강시가 나올지도 모르겠어.”


‘시발. 강시가 뭔데 도대체 이 지랄이야.’


“혹시나 싶어 다른 놈들도 모조리 잡아 들여서 실험을 해보았지만 혹시는 역시나였을 뿐이니.”


장충은 생시급이 두 마리만 있어도 자신의 전력들을 복구하는 것은 쉬운 것이기에 기대했지만, 그것은 헛된 기대였다.


‘뭐?’


“모....조..리?”


쉬어터진 목소리가 위지혁의 목에서 흘러나왔다.


“뭣?!”


장충이 위지혁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허어.”


장충은 정말 놀란 표정으로 위지혁의 얼굴부터 발끝까지 살폈다.


“정말이지 기이하군. 제강도 하지 않은 놈이 의식을 가지고 있어? 설마 이런 놈이 인시급이 되는 건가?”


장충은 위지혁의 말 따윈 중요하지 않아 흘려넘겼다. 그저 죽은 시체가 말을 했다는 것에 상념에 젖었을 뿐.


‘뭐.....제강을 해봐야 알수 있겠군.’


장충의 수염이 길어지는 입술을 따라 움직였다. 기분나쁜 미소였다.


“다.....죽인 것이냐?”


‘흐음.....’


위지혁의 물음에 장충이 잠시 머리를 굴렸다.


‘이 강시 되기 전의 상태에서도 원독을 쌓으면 인시가 탄생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고민은 짧았고 장충의 행동은 빨랐다.


“오냐. 다 죽였지. 헌데 쓸만한 놈이라곤 하나도 없더구나. 네놈 하나뿐이었어.”


“아...아....”


위지혁의 입이 열린 채 닫히지 못했다.


“아아아....아아아.”


얼굴이 일그러진 채 신음했다. 비록 십년 넘게 숨어 산 이들이었지만 그에게 있어 가족이나 다름없는 이들이었다. 비록 도주할 때 누구하나 뒤를 돌아보진 않았지만 원망 따윈 없었다.


설사 반대의 처지라 할지라도 자신도 그리했을 것이다.


그것이 선계에서 인간들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행동이니까.


자신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준 어른들.


같이 숨기 놀이를 했던 형제들.


모두가 죽어갔다.


‘아......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입과 머리속에서 절규가 계속되었다. 끊이지 않고. 계속.


통곡이고, 영혼의 절망이었다.


하지만 위지혁의 눈에선 눈물 한 방울마저 흘러나오지 않았다.


“아아아아.”


장충은 그런 위지혁의 행동을 흥미깊게 지켜보았다. 그저 위지혁의 통곡은 그에게 있어 더없이 감미로운 소리로 들렸다.


인시급 강시가 탄생하기 위한 전주곡이라도 되는 양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


“아......아.”


일다경이 지나고 통곡이 점차 줄어들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중년의 여자가 애타게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던데. 혹시 아느냐? 혁아. 혁아 도망가렴. 하고 계속 흐느끼던데. 숨이 넘어갈 때까지 애타게 찾더구나. 쯧. 누군가를 걱정하기보단 한을 품었으면 좋았을 것을.”


“뭐?!”


위지혁은 직감했다. 지금 도사가 말한 이는 자신을 키워준 이모밖에 없었다. 위지혁에게 있어 엄마는 예전에 죽어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버리지 않고 길러준 이모만이 그에게 있어 유일한 엄마였다. 그런 엄마가.....눈 앞에 이놈에게 죽어?


장충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위지혁을 주시했다.


‘아무래도 이놈의 반응을 보니 당첨인 것 같은데?’


‘당시에는 괜한 수고를 했다고 후회했지만 지금의 반응을 보아하니 그런 하잘 것 없는 것들도 도움이 되는군.’


끼이이익.


형틀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위지혁이 형틀과 쇠사슬에 묶여있는 팔을 내리기 위해 힘을 주기 시작했다.


“하하. 그것이 보통 철인줄 아느냐? 인계의 철이라 한들 인간 따위가 벗어낼 수 없거늘. 선계에서나 볼 수 있는 곤철(昆鐵)이니라.”


끼기기긱. 으득. 으득.


위지혁이 팔과 다리에 힘을 계속해서 주자 쇠사슬이 팽팽히 당겨지며 비명을 흘리기 시작했다.


끼익끼익.


“어?”


장충은 그때가 되어서야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말도 안-’


챙! 우드드득!!


그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쇠사슬과 형틀이 부서졌다.


“뭐?!”


터업.


장충이 경호성이 끝나기도 전에 위지혁의 손이 그의 얼굴을 붙잡았다.


“어억.”


‘뭐....뭐야. 이놈. 힘이...’


“으아..아아아.”


위지혁의 양 손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조금씩, 조금씩.


“아..어걱..”


장충의 턱에서 뼈의 골절음이 흘러나오고 있음에도 위지혁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자...자. 까...ㄴ...”


장충의 말은 발음이 샌 채로 흘러나왔지만 위지혁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 보이고 들리는 것은 장충의 일그러지는 얼굴과 숨가쁜 소리 뿐이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지막 힘을 주기 위해 위지혁이 소리를 지르자마자 장충의 머리가 형체도 알아 볼 수 없게 변해버렸다.


우드드드득.


“하아.하아.”


격분의 감정으로 위지혁이 숨을 몰아쉬었다. 잠시 숨을 고르던 위지혁이 일어서서 주먹을 쥐었다.


아직 끝이 나지 않은 것이다. 그의 주먹이 수십 수백 개로 나뉘어 장충의 시체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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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7화 남섬부주 24.02.04 52 0 11쪽
17 16화 단(丹) 24.02.03 44 0 12쪽
16 15화 분열 24.02.01 84 0 11쪽
15 14화 최후 24.01.31 70 0 12쪽
14 13화 대결 24.01.30 43 0 11쪽
13 12화 되살아나는 자 24.01.28 39 0 14쪽
12 11화 살아간다는 것 24.01.26 53 0 12쪽
11 10화 천축의 진실 24.01.25 41 1 11쪽
10 9화 이상(異常) 24.01.24 61 1 11쪽
9 8화 사냥 24.01.23 73 1 12쪽
8 7화 천축에서의 일상 24.01.21 61 1 11쪽
7 6화 무공입문 24.01.20 70 2 13쪽
6 5화 천축 24.01.12 75 2 16쪽
5 4화 제천대성 24.01.10 130 2 11쪽
4 3화 혼세암주 24.01.07 127 3 12쪽
3 2화 장이족 24.01.06 150 2 11쪽
» 1화 혈원불사 24.01.06 170 3 12쪽
1 서(序) 24.01.06 244 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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