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에게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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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
작품등록일 :
2023.12.19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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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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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3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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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최후

DUMMY

“응? 누구냐 너?”


웃음을 멈춘 손오공이 물었다.


“.....모른다고? 이 나를?”


“이 미련한 놈아. 네놈이 뭔데 이 몸이 기억하느냐? 이 몸의 기억에도 없다면 기억할만한 가치가 없었다는 얘기밖에 더 되느냐. 그래. 무명이라고 부르면 되겠구나.”


뿌드드드드드득.


“거. 빌린 육체로 그렇게 맘대로 써도 되겠느냐?”


“하. 네놈이라고 그런 말할 처지더냐? 육체는 물론 백까지 찢어져서 온전치 못한 사념주제에.”


“하. 이 몸이야 숙박비정도는 내고 있지. 이 녀석이 살아있는 게 누구 덕이겠느냐.”


“그래. 그거다.”


“뭐가?”


열을 올리며 손을 들어올린 본존과 다르게 손오공은 시큰둥한 얼굴로 귀를 후비고 있었다.


“그 점이 마음에 안 들었다. 네놈처럼 강한 네놈이 인간 따위에 홀려서 여래놈들과 전투를 벌인다는 것 부터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하아....품. 그래서?”


“뭐?”


“네놈이 스스로가 싸운 것이 아니더냐? 아니 생전의 내가 언제 네놈들보고 싸우라고 부추기라도 했느냐. 제 놈이 제멋대로 날뛰고 싶어 제멋대로 끼어들어 싸워놓고는, 왜 엄한 요괴를 붙잡고 난리더냐. 난리는.”


“웃기지마라. 네놈이 얼토당토 하지 않은 이유로 여래에게 항복한 이유로 네놈의 형제들은 물론 우리들이 얼마나 뒤처리를 해야 했는지 아느냐!!”


“이거야 원. 명색이 선인, 요선이란 놈이 제 놈 스스로 똥을 싸제끼고는 그 밑도 남에게 닦아달라고 한다니.”


“뭐?!”


“네놈이 네놈 의지 하에 싼 똥이 아니더냐. 그 뒷수습까지 이 몸에게 맡기는 건 아무리 이 몸이 유능해도 그렇지. 못할 짓이지. 쯧. 무엇을 위해 그렇게 처량하게 살아가느냐?”


“이 빌어먹을 원숭이 놈이.”


“그래......오래 살기 싫은 게지. 감히 억지는 물론, 이 몸을 그따위로 부르다니. 죽어 싸다.”


“어디 한번 죽여 봐라!!”


본존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왼쪽인가 싶으면 오른쪽에서, 오른쪽인가 싶으면 왼쪽에서. 신형이 하나 둘씩 늘어나더니 마침내 수십 개의 환영이 마을의 한쪽 구석을 가득 메웠다.


“그놈 참. 가만있지를 못하는구나.”


엄청난 속도로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는 본존과 달리 손오공은 몸의 일부분만을 조금씩 까딱 움직이며 피해내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는 안 돼지. 아무리 빨리 움직인다고 한들 결국 내 몸에 손을 대기 위해선 한정된 동작만으로 행해지는 것이 공격이거늘. 중요한 것은 이때다 하는 순간을 잡는 것이다.”


손오공이 검을 들 필요도 없다는 듯 왼쪽 바닥에 검을 꽂으며 말했다.


“닥쳐! 닥쳐!!! 닥쳐!!!”


흥분을 못 이긴 듯 계속 잔상을 만들어내며 달려드는 본존의 팔이 손오공에게 붙잡혔다.


“아무리 빨라도 그것으로 이득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후웅!


왼손으로 본존을 단단히 속박한 손오공이 오른손을 들어 붕권을 날렸다.


콰지지직.


“커흑.”


“이렇게 말이야.”


손오공의 주먹 한방에 본존이 바닥을 굴렀다.


“쿨럭. 쿨럭. 허억. 헉.”


한 수에 궁지로 몰린 본존이었다. 아무리 빌린 육체라고는 하지만 전의가 대부분 깎여나갔다.


손오공이 마지막에 기세를 죽이지 않았다면 낙명의 육체와 함께 피떡이 되어버렸을 것이라는 공포가 그의 뇌리에 새겨졌다.

“뭐야. 기세 좋게 덤벼들더니. 벌써 끝이야?”


‘괴물같은 놈....’


금단기에 든 자신이 초라하게 보일 정도의 괴물. 그래 그랬다. 그의 뇌리 속에 있던 손오공은 언제나 무적이었고, 언제나 거침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런 대 요괴가, 선계를 진동시켰던 대 요괴가 한낱 인간에게 휘둘려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대 요괴가 무엇이 아쉬워서.....그런 선택을 했는지.


“으.......”


손오공이 한 발자국 다가갈 때마다 본존의 몸이 뒤흔들렸다.


공포라고 한 마디 붙이는 것이야 쉽지만 본존의 감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공포, 경악, 기쁨, 분노 온갖 감정이 점철되어 그를, 그의 몸을 흔들고 있었다.


“인정한다.”


잠시 말을 고르던 본존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응?”


“제천대성을 감히 빌린 몸으로 상대하려 했다니. 어리석은 짓이지.”


“그래서?”


“진신(眞身)으로 상대해주마!”


“이거나 그거나. 츱.”


손오공이 혀를 찼다. 상대가 누구인지도 기억에 없는데다 귀찮기도 했다.


‘죽여버릴까.’


오래 전 스스로 약조한 바가 없었다면 본존 따위는 지금쯤 혼백의 조각조차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그가 살아있는 것은 그저 손오공을 얽매고 있는 하나의 약속 덕분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사이 낙명의 몸에서 위압감이 사라졌다. 그 순간이었다. 마을 곳곳의 나무들이 꿈틀거리더니 한데 뭉쳐지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아!!"


“지진인가?”


“뭐야 도대체!!!”


마을 안 사람들이 모두 혼비백산해서 무너지는 집안에서 달려 나왔다. 마을 집 대부분이 나무를 골격으로 쓰고 있었기에 무사한 집 따위는 없었다.


나무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큰 나무를 형성했다. 마치 하나의 생명처럼. 얼핏 보면 숲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기괴했다. 거대한 나무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 말이다.


“나무의 요괴였군.”


“그래. 이게 내 진신이다. 여래 놈들과의 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내 육체는 이 토지에 묶였지. 같잖은 토지신이라는 노예직까지 받아서 말이다.”


“흐하아아아암.”


손오공은 하품을 길게 터트렸다.


“네놈 사정이야 아무래도 좋은 일이니까 후딱 끝내자.”


더없이 오만했지만 더없이 어울렸다. 본존 아니, 일찍이 계수정(桂樹精)이라 불렸던 요괴는 그렇게 생각했다.


‘끝이라.....’


“그래, 끝을 봐야겠지. 내 이름은 계수정. 팔백년 동안 동승신주(東勝神州)에서 살아남았던 이다!!”


계수정이 외치며 거대한 몸을 이끌었다.



***



뿌드드득.


마지막 뿌리밑동이 부러지며 뽑혀졌다.


“큭..”


뿌리가 모두 박살이 난 계수정의 몸은 점차 말라비틀어지고 있었다.


“크카카카캇....”


미약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쿡......그래....이게 제천대성 손오공이지.”


“뭐냐. 그 말투는. 혹시 죽고 싶었던 거냐?”


“.....크.....그럴지도. 오랜 세월 묶여 산다는 것에 지쳤을지도.”


“이놈이나 저놈이나.....그렇게 으스대던 놈들이 한번 졌다고 꼬라지하고는.”


“쿡쿡. 오행산의 대백(大伯)을 말하는 건가 보군.”


“그래 그놈. 기껏 보낸 곳이 네놈이 있는 이곳인데 말이지...”


“아아. 그놈 역시 인간을 싫어하는 쪽이니 말이지. 네놈과 인간이 한 몸 속에서 공존한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겠지.”


“쯧.”


손오공이 불쾌함에 혀를 차며 발을 옮겼다.


찰싹찰싹.


근처에 있던 명옥상을 안아 들더니 그녀의 뺨을 쳤다.


“으..으응.”


“괜찮으냐?”


“어...엇 은공?”


“......그놈은 자고 있다.”


“네..넷?”


명옥상의 머리가 바삐 움직였다.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요선 둘의 대화는 다시 이어졌다.


“......정말이지 변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변해버린 것 같군.”


“뭔 헛소리야.”


“이해를 못 하겠어. 그토록 강대했던 당신이.....한낱 인간에게 얽매여 그런 꼴이라니.”


“......나도 이해 못하겠으니까 이해하려 하지마. 멍청아.”


“크크큿. 그래도 가는 마당인데 같은 요선으로서 그 정도 궁금증이야 풀어달라고.”


“.........”


잠시 말을 고르던 손오공이 말을 이었다.


“여태껏 보이지 않았던 광채를 찾았다고 해야 되나. 우리에 비하면 순식간에 사라질 짧은 생애를 단숨에 불태워 살아가는 이들. 영원에 질식할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그들. 그 광채에, 그 아름다움에 맛이 가버린 걸지도.”


“크카카카카가아아......덧없는 것에 매달리고 있군 그래. 영혼의 아름다운이라니 크카카..갓. 역시 난 이해를 못하겠어. 하지만 그렇게 위태위태한 당신이었기에 나나.....다른 이들이 끌렸을지도 모르지.....크크. 그래. 다시 한 번 여래와 붙을 생각인가?”


“물론이다. 감히 자신만이 천하에서 존귀하다니(天上天下 唯我獨尊), 하늘의 성인인 이 몸과 공존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크흐흐흐....지옥길에서 그년을 기다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이번엔 지지 마라...”


바스슥.


말을 마친 계수정의 몸이 바싹 말라 가루가 되어 휘날렸다.


“후우....어이 여자.”


“네.”


명옥상이 침착히 대답했다.


“나는 다시 잠든다. 이 녀석을 잘 좀 부탁한다고.”


“저...저기.”


명옥상이 급하게 손오공을 불렀다.


“응?”


“미후왕....이신 겁니까?”


“그래.”


“그런데 어찌하여....은공의 몸 속에 계신지...”


“뭐. 이 녀석이 죽어가던 중에 나의 일부분은 몸에 품었다. 뭐 걱정하는 바는 알겠다만, 딱히 이 녀석 몸을 빼앗거나 한건 아니다.”


“그렇습니까....후우...”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젠장. 다 죽어서 남의 육체에 깃든 상태인데, 그놈을 살려준 이 몸만 의심받다니. 쯧 짝이 없는 요선은 외로워서 살겠나?”


“......짝이라니...”


명옥상이 홍조를 띠며 말했다. 손오공에게는 관심하나 없는 그 태도에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쯧. 간다.”


비틀.


의식을 잃은 위지혁의 몸이 쓰러지는 것을 명옥상이 부축했다.


손오공이 잠들자, 위지혁은 거의 바로 일어났다.


“큭.”


위지혁을 일어나자마자 몸이 비명을 지르는 듯 했다.


“일어나셨습니까 은공.”


“여기는...”


완전히 부셔진 마을의 모습에 위지혁이 분간하지 못했다.


“마을입니다.”


“.......어떻게 된 거요.”


“.......”


잠시 고민하던 명옥상이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



명옥상의 말을 들은 위지혁이 자신의 가슴을 더듬었다.


‘대 요괴라...’


그때가 되어서야 이해가 갔다. 자신이 어째서 살아남았는지를, 자신의 힘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물론 자신의 몸에 누군가가 공존한다는 사실까지 깨끗하게 납득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어쨌든 받아들여야 했다. 자신은 물론 장이족은 물론, 명옥상까지 살아남았으니까. 지금으로선 그걸로 충분했다.


모든 것을 한 번 잃어버린 그에게 지금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은 더 없이 안심되는 일이었다.

“클. 클.”


그 순간 낙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또한 본존이 몸에서 사라지자 정신을 차려 상황을 지켜보던 참이었다.


위지혁은 쓰러져서 본존처럼 몸이 사라지고 있은 낙명의 근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로가 얼굴을 마주보던 것도 잠시, 낙명이 입을 열었다.


“클......상처입은 늑대새끼인줄 알았더니....이무기도 아닌 용이었군.”


“꼴 좋군.”


“크......크하하하하. 이번엔 네놈의 운이 좋았느니라. 허나 이 세상을, 이 선계를 언제까지 운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


“아무리 네놈이 요괴를 몸에 품었다 한들 이미 죽어있는 요괴의 힘이라면 언젠가는 꺾일 터. 그때가 되면 네놈은 뼈저리게 후회하리라.”


“할 말은 그것뿐인가? 여태까지 해왔던 일에 대해서 할말은 없고?”


“.....크.....설마하니 이제 와서 내가 후회하고 반성이라도 할 줄 알았나. 웃기지 마라. 애송아. 나는 적어도 확실하게 가능한 많은 수의 사람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상만 앞세운 네놈이 뭔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희생도 없이 멀 얻겠다는 것이냐.”


“그래. 그럼 지옥에서 지켜보라고. 내가 무엇을 이룰지.”


위지혁의 발이 올라가더니 빠르게 내려왔다.


콰직!


구강호에서 살아남았던 이의 최후였다.


작가의말

재밌게 보셨다면 선작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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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화 단(丹) 24.02.03 43 0 12쪽
16 15화 분열 24.02.01 84 0 11쪽
» 14화 최후 24.01.31 70 0 12쪽
14 13화 대결 24.01.30 43 0 11쪽
13 12화 되살아나는 자 24.01.28 38 0 14쪽
12 11화 살아간다는 것 24.01.26 53 0 12쪽
11 10화 천축의 진실 24.01.25 41 1 11쪽
10 9화 이상(異常) 24.01.24 61 1 11쪽
9 8화 사냥 24.01.23 73 1 12쪽
8 7화 천축에서의 일상 24.01.21 61 1 11쪽
7 6화 무공입문 24.01.20 70 2 13쪽
6 5화 천축 24.01.12 74 2 16쪽
5 4화 제천대성 24.01.10 130 2 11쪽
4 3화 혼세암주 24.01.07 127 3 12쪽
3 2화 장이족 24.01.06 150 2 11쪽
2 1화 혈원불사 24.01.06 169 3 12쪽
1 서(序) 24.01.06 242 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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