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에게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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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
작품등록일 :
2023.12.19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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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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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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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무공입문

DUMMY

세상은 크나큰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변하지 않는다. 378년 전의 선계와 인계의 겹쳐짐처럼 크나큰 일이 아니고서는 말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한 촌락의 실력자가 쓰러져도 세상은 변함이 없는 일이다. 단지.....하운에게 보이는 세상이 달라졌을 뿐이다.


“으.”


벌써 며칠 째일까.


하운은 위지혁을 볼 때마다 몸이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작은 자만감, 부풀었던 자심감 그런 것들이 모조리 뿌리에서부터 뒤흔들리고 자신이 밟고 있던 세상이 사라져가는 것처럼 느낄 정도였다.


이런 세상이기에, 더욱 힘은 필요하고 그 가치는 스스로에게도 중요한 가치 중 하나였다. 아니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런 하운이 믿고 있던 자신의 힘이 동년배의 누군가에게 완전히 부정당한 것은 그의 세상을 부셔놓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위지혁이 나타나면 하운이 금세 자리를 피하는 것을 주변 이들이라고 모를 리는 없었다.


그의 스승인 낙명부터 시작해 중년 사내 초승까지 천축의 중요 인물들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챈 상태였다.


“흘흘.”


낙명은 자신의 제자가 핑계를 대고 자리를 비우는 것을 보며 사람 좋게 웃을 뿐이었다.


“내 제자가 자네를 보면 오줌이라도 마려워지는 모양이군.”


“.....”


위지혁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천축이라는 이상향에 들어와 바로 이런 일을 벌였으니 그로서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위지혁이 그냥 멀뚱히 서있자 낙명이 입을 다시 열었다.


“딱히 자네를 탓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네.”


“......”


“어차피 이 같은 일은 자네가 아니더라도 언제가 맞닥뜨릴 일이었다네. 생각해보게. 세상에 신과도 같이 군림하는 신선들과 대요괴들이 존재하거늘, 언제까지 저놈이 저리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오히려 자네한테 고맙다고 해야 할 일이지.”


위지혁은 그 말에 어느 정도 깨닫는 바가 있었다. 확실히 그랬다. 자신이 상대한 두 명의 선인들만 해도 결코 하운이 당해낼 만한 상대들은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헌데 자네는 무엇을 익혔는가?”


낙명의 질문은 핵심을 꿰뚫는 말이었다. 위지혁이라는 존재를 알기 위한 최선의 질문.


“......”


위지혁은 여전히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익혔단 말인가. 그저 죽지 않기 위해 죽기 살기로 도망치다 우연히 얻은 힘이 전부인데. 힘이 어디서 왔는가 짐작되는 곳은 있지만 그게 다였다.


낙명은 그 속을 알 수 없는 얼굴과 눈으로 계속 응시할 뿐이었다. 낙명의 눈빛을 못 이긴 위지혁이 입을 간신히 열었다.


“없...습니다.”


“없다라....쉽게 믿기지는 않는군.”


“저는 정말-”


“아아. 자네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하는 건 아니라네.”


“......”


“자네들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위험이나 위기가 없었다고 한다면 그게 오히려 더 믿기지 않겠지. 물론....”


잠깐 뜸을 들이던 낙명이 말을 이었다.


“장이족들이나 자네의 태도를 보건데 자네에게는 무언가 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고. 하지만 자네 스스로도 정의할 수 없는 힘이라면 위험하지. 칼날은 사용하는 이가 제대로 쥘 때 비로소 그 역할을 다할 수 있지 않겠나?”


“.....”


위지혁은 낙명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없어 여전히 듣고 있는 채였다.


“흐음.....어떤가? 그 칼날을 제대로 벼려볼 생각은 없나?”


“그게 무슨...”


“이런이런. 이 천축에서 수련을 해보지 않겠는가, 라고 묻고 있는 거라네.”



***



“알겠나? 고대에 신(神)처럼 군림했던 선인들과 달리 인간은 아무런 힘도 없었다. 어떠한 권능은 물론 기도 다룰 수 없었지. 특별한 자질만이 주어져야 발을 디딜 수 있었던 선도(仙道). 그 길을 걷는 수도자들에게서 호흡을 훔쳐내 그것이 도교로 정리되는 과정에서 누구나가 수행이라는 과정을 거쳐 도달할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내단(內丹)이다. 인간이 신을 엿보고 넘볼 수 있게 된 것이지.”


중년 사내, 초승(楚繩)은 간만에 여는 수업이라 그런지 아주 열성적으로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이미 머리통이 굵어져 자신의 조언 따윈 듣지도 않는 하운에 비하면 초롱초롱한 눈으로 보고 있는 위지혁의 모습은. 그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우수한 학생이었다.


‘.....순수하군.’


첫 수업을 마친 초승의 감상은 간단했다. 오랜 세월 꽤나 많다면 많은 이들을 만나온 초승이기에 감이 왔다. 위지혁은 갓난아기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하긴 이런 세상 속이니......’


초승의 생각처럼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이 바쁘게 살아왔던 위지혁에게 있어 초승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비록 그것이 하운에게 있어 곰팡내나는 이야기라도 치부되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이제 제가 그 신기(神技)의 내단을 배우는 것입니까?”


“그래. 내단술(內丹術)이라고 할 수 있지. 단전에 단(丹)이 뭉쳐 응결하는 공부. 오래 전 인간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었던 시절, 우리는 그것을 무공이라고 불렀다.”


위지혁은 초승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말은 하지 않아도 마치 심취한 듯한 태도를 연신 보였다. 마치 할아버지의 오랜 이야기를 듣는 아이처럼.


그런 위지혁의 모습을 처음 보는 명옥상은 웃음을 띤 채로 위지혁을 옆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두 번이나 목숨을 구함 받은 명옥상은 좀처럼 위지혁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그것은 수업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얼핏 보면 이상한 일이기도 했지만 일반적인 상식이 부족한 위지혁에게 그러한 생각은 무리였고, 가족들과 친지들을 잃어버린 그녀의 상황을 동정해 딱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쯧쯧. 이상한 놈들끼리 모였군.”


초승의 수업하는 모습이 어떨까 싶어 보러 온 낙명이 셋의 모습을 본 후, 탄식과 함께 터트린 말이었다.


‘.....설명에 심취한 초승 녀석이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 싶었는데.....별 문제는 없겠군.’


설명광이라고도 불리는 초승의 수업을 끝까지 들은 이가 없기에 걱정한 낙명이었지만 그는 곧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



“그게 아냐!!”


열성적으로 자신의 수업을 따라오는 위지혁을 내심 기꺼워하던 초승이었지만 수업을 진행하는 사이 그의 언성은 어느 사이엔가 높아져 있었다.


위지혁이 좀처럼 자신의 가르치는 것을 따라오지 못하는 탓이었다.


“말했을 텐데. 호흡을 경건한 마음으로 섬기고, 이어 전신전령(全身全靈)으로 기를 구사하라고.”


“......”


말도 없이 그저 한결같이 집중하고 있는 위지혁의 얼굴에선 비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만 봐도 결코 위지혁이 허투루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을 모를 초승도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화가 나는 초승이었다.


물론 그 화가 위지혁에게 향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라는 것에 가까웠다.


가르침 받고 있는 이가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고, 기를 느끼지 못한 것도 아니다. 이미 기감이 트여 기를 느끼고 있다면 나머지는 특별히 고생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저 기를 한곳으로 움직이는 것만을 계속 노력하면 자연스레 운기가 시작되고 곧 구결에 이끌려 단이 형성될 터.


하지만 이것은 그 이전의 문제였다. 기감이 트여 기는 느낄 수 있지만 스스로 기는 움직일 수 없다? 이것은 초승의 관점에서 볼 때 무용지물의 폐인이나 다름없었다. 이 천축에서 기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가만. 이 녀석이 하운 그 녀석을 손봐준 게 정황 상 확실한데.....그런 놈이 운기 입문 따위에 이렇게 애를 먹는다고?’


그때가 되어서야 그 점에 착안한 초승이었다. 아니 애초에 이런 점에서 애를 먹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은 탓이었을까.


이상했다. 초승 그의 생각으로는 너무나도 이상했다. 딱히 위지혁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이 상황 자체가 이상했다.


영기로 가득 차 있는 선계에 인간이 내던져 진지도 사백년이 다 되어간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가 운기 따위는 자유롭게 입문 할 수 있거늘, 숨겨둔 한 수까지도 있는 놈이 이렇게 고생을 한다고?


“하아아아....”


초승의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도대체 뭐란 말인가. 눈앞의 위지혁이란 놈은. 머리가 지끈지끈 거렸다.


그가 위지혁의 운기를 돕고 싶어도 그에겐 그만한 성취가 없었다. 타인의 내공을 제어할 정도의 경지는 이 마을에선 낙명, 그가 유일했다.


초승이 마음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무(武)란 끊임없는 수련에 의해서만이 완성된다. 수련에 주먹이 갈라지고 찢어져도, 근육이터져나가도 닦는다. 오로지 무를 닦는다. 육체를 넘어서, 육신이라는 경계 너머로 나아가기 위해선 오로지 의지뿐이다. 지금 한낱 운기의 입문 따위로 고생하는 것은 네 마음 속 어딘가에 무를 깔보고 있기 때문이다!!! 구결에 몰두해라!!”


초승이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그도 정말로 위지혁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여기지는 않았지만, 그가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아직 완전히 포기할 상황도 아니고,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위지혁의 마음을 부채질하는 것 뿐이었다.


“.......”


초승의 말을 들은 위지혁은 더욱 더 정성을 다해 운기하려 했지만 기란 놈은 요지부동이었다.


“끄응.”


초승은 마침내 위지혁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으며 낙명에게로 향했다.


위지혁은 슬그머니 사라진 초승의 빈자리를 느끼지도 못한 채 반나절을 꼬박 운기에 몰두했다.


“제길!!!”


콰앙.


위지혁의 주먹에 바닥이 움푹 들어갔다.


“잘 안 되시는 건가요?”


굳이 애쓰는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잠자코 있던 명옥상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녀의 질문에 위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명옥상이 자신이 아는 바를 설명하기 위해 잠시 고심했다. 잠시 후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도 인간 분들이 익히는 무공이란 것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저희 일족도 오랜 세월 선계에서 살아가는 동안 수도자 분들하고도 종종 말을 섞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


위지혁이 명옥상의 말에서 무언가 실마리라도 찾을까 싶어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본디 힘이란 힘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 힘에 관한 걸 모르는 이들은 간혹 힘을 행사할 때 무언가의 요령이나 비법이 필요하다고 믿지만 그렇지는 않지. 그저 자신의 수족을 움직이는데에도 무언가를 요한다면 그것은 진실로 잘못된 일이지. 라고 하시던 수행자의 말씀이 저희 일족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지요.”


그 말을 들은 위지혁은 종으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모든 것을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무언가 가려져 있던 것이 점차 보이는 기분. 개안한 듯한 기분과도 같았다.


“제가 보기에 초승이란 분이 말씀하신 구결이라는 것은 요령이나 비법에 가까운 것. 선계에서 살아왔던 제가 보기엔 선계에서의 행해지는 힘이라는 것을 모방한 것에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그 얘기인즉슨 이미 힘을 행사하고 있는 은공께서는 무공의 구결에 구애 받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것이 제 부족한 생각입니다만.....”


말을 마친 그녀가 위지혁의 얼굴을 보자, 그의 입이 반 쯤 열려 멍하니 있는 상태였다.


마치 무언가를 얻었다는 듯한 위지혁의 표정과 행동에 명옥상이 입을 다물고 잠자코 기다렸다.



***



“해서 나한테 찾아왔다고?”


“.....그렇습니다. 낙명님께서도 그 아이의 힘이 신경 쓰이시기에 저에게 그런 일을 맡긴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입문이 안 된다......허. 참.”


오랜 세월 살아온 낙명으로서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쯧.....그 녀석. 이 노구를 어지간히 굴리게 만드는군.”


낙명이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구를 일으켰다.


“자 가지.”


낙명이 움직이고 그 뒤를 초승이 뒤따랐다. 잠시 후 위지혁과 초승이 있던 수련장에 둘이 당도했다.


도착하자마자 둘의 눈앞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자네....뭐가 어떻다고?”


“어....?”


초승은 그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위지혁이 들고 휘두르는 검에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단순히 기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고, 예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흘러넘치던 예기가 너무나도 짙어 실처럼 유형화되고 있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검기(劍氣)였다. 오늘 무공에 입문한 애송이 따위가 내뿜을 수 있는 것이 아닌 단계였다.


“뭐......야!!!!”


작가의말

일신상의 안좋은 이로 연재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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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7화 남섬부주 24.02.04 51 0 11쪽
17 16화 단(丹) 24.02.03 43 0 12쪽
16 15화 분열 24.02.01 84 0 11쪽
15 14화 최후 24.01.31 69 0 12쪽
14 13화 대결 24.01.30 43 0 11쪽
13 12화 되살아나는 자 24.01.28 38 0 14쪽
12 11화 살아간다는 것 24.01.26 52 0 12쪽
11 10화 천축의 진실 24.01.25 40 1 11쪽
10 9화 이상(異常) 24.01.24 61 1 11쪽
9 8화 사냥 24.01.23 72 1 12쪽
8 7화 천축에서의 일상 24.01.21 60 1 11쪽
» 6화 무공입문 24.01.20 70 2 13쪽
6 5화 천축 24.01.12 74 2 16쪽
5 4화 제천대성 24.01.10 129 2 11쪽
4 3화 혼세암주 24.01.07 126 3 12쪽
3 2화 장이족 24.01.06 149 2 11쪽
2 1화 혈원불사 24.01.06 169 3 12쪽
1 서(序) 24.01.06 242 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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