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에게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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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
작품등록일 :
2023.12.19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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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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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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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살아간다는 것

DUMMY

11화 살아간다는 것.




시뻘겋게 물든 검과 상기된 얼굴. 그것만으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정황임에 틀림없다.


초승은 문을 부수고 달려든 위지혁을 보고도 담담한 채였다.


“쯧.”


초승은 혀를 한번 차고는 일어나 위지혁에게 다가왔다.


“이게...이 검이. 당신이 말하던 그것인가. 이딴 걸, 이런 구역질나는 짓거리를 판단이 필요하다고 지껄인 거야?!!!!”


초승은 버럭버럭 소리 지르는 위지혁을 바라보는 일도 없이 부서진 문 앞에서 앉더니 문은 매만졌다.


“쯧. 그나마 이 마을에서 얼마 되지 않는 정교한 나무문짝이거늘. 아까운 짓을 했군.”


“당-”


위지혁이 노성을 내뱉기 직전 초승이 먼저 말했다.


“그래서?”


“뭐?!”


“그래서 어떻냐는 말이다.”


“.......당신도 미쳤군. 미쳤어.”


“크하하하하하하.”


초승이 어딘가 광기어린 웃음을 터트렸다. 광기어리면서도 어딘가 처연한 느낌의 웃음.


“그래 미쳤을지도. 허나 미친 것은 이 세상이다. 우린 그저 광풍 속에서 휘날리는 처연한 나뭇잎에 불과하지. 그러면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살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


“뭔 개같은 소리를!!!!”


“조용히 말해라. 애송이.”


초승이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조용하지만 강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었다고 생각하느냐?”


“뭐?!”


“선도들의 입김 한번이면 날아가는 것이 아니고 죽어나가는 우리 인간들에게 다른 선택권이 존재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누가 좋아서. 자식을. 가족을. 바친다고 생각하느냐!!!”


초승의 꽉 움켜쥔 손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 자신의 힘을, 감정을 이기지 못한 탓이었다.


“다....당신.”


그때가 되어서야 위지혁 또한 알아차렸다. 눈앞의 사내도 분명 가까운 누군가를 잃었다는 것을. 허나 그렇기에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가 좋다고, 저런 늙은이와 이런 마을에 얽매여서....”


“크.....네놈이 뭘 안다고. 이 마을이 없었다면 지금 이 주변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 지금도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낙명 그 분이 괜히 제물로 어린아이들을 제한한 줄 아느냐? 나름대로 이 마을이라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생산력이 있는 어른들을 아이들을 선택한 거란 말이다!!!”


“초승 당신은 정말로 그걸로 만족하오?”


“만족? 생존에 그딴 게 왜 필요하느냐?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거늘. 마을의 수뇌진들이 자신들만 살자고 한 것이더냐?!!!”


“정말 진심이오?”


“.......”


“그렇게 떨리는 손으로 격앙된 표정으로 외치면서, 그 말을 진심으로 내뱉고 있냐는 말이오!”


초승의 뇌리에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자신이 잃어버렸던 것, 결코 놓고 싶지 않았던 손.


‘.......’


허나 지금의 그에겐 모두 과거의, 이제는 결별한 일이었다. 지금 와서 돌아가 버리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었다.


“그래. 진심이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허망하게 죽기엔 너무나 아까운 목숨들이다.”


“죽어간 아이들도 말이지.”


“...!!”


위지혁의 송곳같은 말에 초승이 눈을 크게 떴다.


“네놈이...-”


“낙명이나 당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목숨들을 지켜왔는지는 나로선 알 수 없어. 하지만 그 따위 효율적인 선별에 의지해서 살아갈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이 따위 마을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이......허울좋은 이상만 좇는 불나방 같은 놈이....네 깟놈이 가족을 잃는다는 의미를, 그 고통을 알기나 하느냐!!”


“...알아.”


“뭐?!!”


“안다고. 나 또한 모든 것을 잃었지.”


“......”


“허나 그렇다고 이따위 마을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들지 않아. 자신의 운명조차 선택할 수 없는 아이들로 살아남을 바엔 차라리 밖에서 떠돌다 죽겠다고!!!”


“이.....”


초승의 전신이 분노로 떨렸다.


“인간임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지? 이 따위 마을, 내가 부셔주지.”


“네놈에게 가당키나 한 일이더냐!!”


초승의 허리춤에 있던 칼집에서 검이 빠져나왔다.


“막을 텐가?”


“네놈 스스로도 다스리지 못하는 힘 하나 얻었다고 아주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그래. 그때의 나였지. 꽤나 시간이 흘렀는데, 지금은 어떨까?”

“.......”


초승이 말문이 닫혔다. 확실히 지금 위지혁의 몸놀림은 이 마을에 처음 왔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확실히 그래. 지금 저놈을...어떻게 제압한다지? 지금 놈의 힘은 처음 왔을 때와는 비할 바가 아냐. 더군다나 금강불괴를 가지고 있는 놈인데...’


‘관절을 억지로 제압하거나.....목을 조이거나.....두 가지 뿐이군.’


마음을 정한 초승이 발을 움직여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서로 간의 무기는 똑같이 장검. 길이도 거의 비슷해서 결국 두 사람의 실력만으로 결정될 승부였다.


“핫!!”


초승이 구법보를 시전하며 튀어나갔다. 옆에서 보면 마치 한줄기 선이 그어지는 듯한 속도.


검과 검이 거의 동시에 휘둘러졌다. 위지혁은 상대의 어깨 죽지를 위에서, 초승 또한 비스듬하게 위에서 내리쳤다.


서로간의 검이 부딪치려는 찰나, 초승의 검이 갑자기 기세를 잃었다.


위지혁의 힘과 육체의 강도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초승은 초식의 능숙함이나 현란함에 승부를 걸지 않았다. 그저 위지혁의 목을 조르기 위해 유인 초식으로 사용했을 뿐.


검을 내버리고 위지혁의 사각으로 파고든 그가 가슴팍에 있던 질긴 가죽끈을 꺼내었다.

추오의 가죽을 담금질한 것으로 아주 질기디 질긴 가죽끈이었다.


홰액!


순식간에 위지혁의 목 바깥에 줄이 둘러지고 즉시 죄어들었다.


꽈아아아악!!!!!


“후....후욱....후우....어떠냐. 이놈. 아무리 네놈이 금강지체라 한들....”


꾸구구구국.


초승의 계산했던 것과 달리 위지혁의 한손이 줄과 목 사이에 걸쳐진 채였다. 허나 무슨 생각인지 위지혁은 손가락을 써서 줄을 풀어내려 하지 않았다.


“그만하지.”


“뭐뭣???!!”


초승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설마 하니 조르기마저 먹히지 않는단 말인가? 저놈의 육체는 도대체 무엇으로 되어 있기에!!


그의 마지막 승부수가 빗나감을 알자 그의 손에서 힘이 살짝 빠지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위지혁의 금강불괴는 조르기 따위가 먹히지 않았다. 애초 제천대성이라는 백을 품음으로써 되살아난 상태의 위지혁에게 조르기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투우욱.


힘이 빠지긴 했으나 깨끗이 단념하지 못하는 초승을 떼어놓기 위해 위지혁이 손가락에 힘을 주자 가죽끈이 바로 찢어졌다.


털썩.


위지혁의 위에서 목을 조르던 초승의 전신에서 힘이 빠지고 바닥으로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하.....하하....괴물 같은 놈. 애초에 통하지도 않는 조르기를 당하는 척만 한 게냐......”


“큭.....큭...”


“어떻게 하시겠소?”


“......크하하하. 내 하운 녀석은 아니다만......그 녀석의 심정이 이제야 이해가는구나.”


“.....계속 하시겠소?”


“그래. 네놈처럼 힘을 가졌다면 네놈처럼 행할 수도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말하지 않았소? 나 또한 이런 몸이 되기 전에는 친족들을 모두 잃어버렸다고.”


“......그래서 그 알량한 힘으로 모든 것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그리 믿는 것이냐? 하급 요괴와 하급 선인들 일부를 이겼다고!!”


“뭔가 착각을 하고 있군.”


“무슨 착각!!!!”


초승이 일갈했다.


“설사 내가 이런 육체를 얻지 못한 한낱 평범한 인간일지라도, 나는 내 스스로가 인간임을, 인간다움을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소.”


“.....인간....다움...”


초승이 넋을 잃은 것처럼 중얼거렸다.


“그것을 고집하다 네놈이 죽어도? 네놈의 주위의 사람들이 다 죽어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죽도록 노력할 뿐이오.”


“........허울 좋은 소리다. 이 세상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 허다해! 네놈이 그렇게 자신한다면......어디 보여 봐라.”


“무엇을 말이오?”


“본존을 쓰러트려봐라. 낙명님을 없애고, 본존을 이겨 봐라. 네놈의 그 의지가 어디까지인지 보여달란 말이다.”


“......낙명은 이미 죽었다는 걸 알고 있지 않소? 죽은 이야 아무래도-”


“멍청한 놈. 그 분이....그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을 위인으로 보이더냐.”


“...?!”


위지혁이 처음으로 동요를 보였다.


“무슨 말이오 그게. 사람의 머리가 위 아래로 두 동강이 났거늘.”


“크.......너는 그 사람이 몇 살이라고 생각했느냐?”


“.....”


“이미 그와 동시대에 살았던 마을의 창시자들이 죽어버린 지금, 아무도 모르는 것이 그의 나이이다. 추측컨대 사백년은 족히 살았을 터. 그런 자가, 그 자가 그렇게 쉽게 죽을 위인이었다면 이 마을이 이렇게 되지도 않았다.”


“......그가 오래 살아 올 수 있었다는 것은 알겠지만, 머리가 잘려나갔는데 살아있다는 말이오?”


“곧 알 게 되겠지. 네 놈이 이 마을에서 지금 바로 도망가지 않는 한 그가 찾아올 터이니. 아니 네놈이 도망갈 수나 있을까? 그는 본존의 화신이나 다름없거늘. 그가 스스로 붙인 이름 낙명(落命)은 그 스스로가 이미 목숨이 다했음을 자조함이다. 허나 그럼에도 수명이 다한 그는 여전히 살아있지. 왜일까? 네놈의 그 모자란 머리로 헤아려 보거라.”


“칫......”


동요는 잠시였다. 위지혁은 마음을 금새 마음을 다스리고 발을 옮기려고 했다.


“어딜 가느냐.”


“아래로 가서 숨통을 끊어 놓을 생각이오.”


“.....아서라. 그보다 장이족들을 데리고 달아나는 것이 조금이라도 오래 사는 길일 것이다. 물론 그에게서 도망칠 수는 없겠지만.”


“...어쩐지 꽤나 상세하구려.”


“.....빌어먹을 야생의 짐승처럼 그런 느낌은 놓치지 않는구나. 더 이상 나눌 말은 없다. 어서 가라.”


초승이 과장되게 몸을 돌리며 위지혁에게서 방향을 틀었다.


“기다리고 있으시오. 당신이 얽매이고 당신을 얽매는 이따위 마을 박살 내줄테니 말이오.”


“하.! 그러면 이 마을사람들이 그걸 바랄까? 네놈을 원망만 하면 그나마 다행이지. 네놈을 죽이려다 죽이지 못해 자살이나 안하면 다행이겠군.”


“그것 참 이상하군.”


“무슨 소리냐?”


“아까 당신이 분명히 그러지 않았소. 모두가 살아가기 위해서라고. 그런데 마을 하나 사라졌다고 자살을??”


위지혁이 냉소하며 말했다.


“그만큼 이 마을이 그들의 전부란 뜻이다.”


“아니지. 아니야. 너무 편한 길만 쫓은 나머지,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 것에 불과해. 이 마을 전체가 돼지를 기르는 농장이나 다른 없는 거지.”


“빌어먹을 애송이같으니.....끝까지 속을 뒤집어놓는구나. 어서 꺼져라. 네놈의 그 잘난 힘으로 장이족들을 데리고 빠져나가. 애초에 본존이 너희들을 받아들인 것은 아마 장이족들을 노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만 보내고 돌아오겠소.”


말을 마치자마자 위지혁의 신형이 사라졌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모든 것이 다 지나간 후에야 저런 놈이 나에게 나타날 줄이야.”


‘.......너무 늦었어..’


과거란 아무리 후회해도 고칠 수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초승이기에 더욱 아팠다. 깊은 회한에 사로잡힌 그가 비틀비틀 대다 벽에 등을 기대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후우우우....”


방안엔 깊은 한숨만이 가득했다.



***



밖으로 뛰쳐나온 위지혁이 사방을 살폈다.


확실히 초승이 얘기한대로 마을은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 마을 전체가 술렁이는 느낌에 위지혁이 서둘러 움직이려 한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거라.”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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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5화 분열 24.02.01 84 0 11쪽
15 14화 최후 24.01.31 69 0 12쪽
14 13화 대결 24.01.30 43 0 11쪽
13 12화 되살아나는 자 24.01.28 38 0 14쪽
» 11화 살아간다는 것 24.01.26 53 0 12쪽
11 10화 천축의 진실 24.01.25 40 1 11쪽
10 9화 이상(異常) 24.01.24 61 1 11쪽
9 8화 사냥 24.01.23 73 1 12쪽
8 7화 천축에서의 일상 24.01.21 61 1 11쪽
7 6화 무공입문 24.01.20 70 2 13쪽
6 5화 천축 24.01.12 74 2 16쪽
5 4화 제천대성 24.01.10 130 2 11쪽
4 3화 혼세암주 24.01.07 127 3 12쪽
3 2화 장이족 24.01.06 150 2 11쪽
2 1화 혈원불사 24.01.06 169 3 12쪽
1 서(序) 24.01.06 242 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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