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에게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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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
작품등록일 :
2023.12.19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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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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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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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단(丹)

DUMMY

“고작 그 따위 것을 위해서? 처음부터 이 곳이 이런 곳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타자(他者)가 추구하는 바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 더군다나 나는 선인이고 너는 인간이 아니더냐.”


“하. 그래서 그 잘나신 선인께서 보고 싶은 것은 다 보았나?”


“......아니. 아직이다.”


“하!”


위지혁이 냉소를 아랑곳 하지 않고 토지신 대백이 말을 이었다.


“네 안의 그와 이야기하고 싶구나. 그를 불러주겠느냐?”


“뭐?!”

‘애송이. 잠깐 몸을 빌려줘라.’


동시에 터져 나온 내외의 말. 허나 그 주체는 전혀 달랐다. 한 몸의 두 존재가 거하고 있는 기묘한 현상 때문이었다.


‘내가....왜? 요괴 선인을 어떻게 믿고?’


위지혁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힘을 얻었던 경위를, 왜 본존이 원숭이를 찾았는지. 본존의 말대로였다.


‘이런이런. 아무리 그래도 네 소중한 것을 지켜준 이에게 하는 말치곤 너무하는구나. 고마움도 모르는 거냐?’


‘......그대로 네 몸을 빼앗으려는 건 아니고?“


‘거참. 조심성 많은 놈이로구나. 뭐, 이런 세상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나는 어차피 사념이다. 온전한 정신을 지니고 활동할 수 없어. 네놈처럼 팔팔한 영혼을 지닌 것이 아니란 말이다. 아까도 순순히 몸을 넘겨주지 않았더냐.’


‘......’


거래는 성립이었다.


위지혁의 몸에서 적갈색의 체모가 돋아나고 붉은색의 안광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래. 왜 불렀느냐. 그보다 네놈들 토지에 묶였다고 하지 않았나?”


“......오래 한곳에 살다보니 이런 꼼수라도 부려야 하지 않겠소.”


대백은 손오공이 깨어나자마자 힘을 행사해 천축의 사람들을 재웠다.


“뭐야? 애들은 왜 재워?”


“시끄러운 것은 질색인지라.”


대백 그가 기절시키지 않은 이들은 장이족 뿐이었다. 힘을 행사한 후 그는 숨을 헐떡였다.


손오공이 눈을 살짝 크게 뜨고 대백의 몸을 살폈다.


“.....화신 비슷한 건가?”


“비슷하오. 당신과 공존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 수를 써본 것이오. 다 죽어가는 인간에게 내 힘을 살짝 빌려줬을 뿐이지만.”


“뭔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적당히 해라.”


“뭘 말이오.”


“이 몸. 나 말고 이 녀석.”


손오공이 자신의 몸을 두드리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이 녀석을 계속해서 괜히 쓸데없이 들쑤시면 네놈이 있는 토지 채로 날려버리고 싶어지니까 말이다.”


“클. 그런 상태가 되고도 그 성질은 여전하구려.”


“잡설은 되었으니까 그래서 대답은?”


“걱정 마시오. 앞으로는 그러도 싶어도 더는 하지 못할 테니.”


“....무슨 말이냐? 묘하게 뼈가 있는 말 같은데.”


“당신이 돌아온 것을 알고 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소. 그래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살피다 우연히 아주 무서운 사실을 알게 되었지.”


“.....그래서 그게 뭔데?”


“이상하지 않소? 선계와 인계는 엄연히 구별되어 있는 공간. 달리 말하면 다른 차원이라고 해도 무방하오. 영기로 구성된 선계와 물질로 구성된 인계는 같은 곳에 공존하기가 어렵지. 간혹 공간의 일부가 겹쳐지는 일은 있어도 말이오.”


“그거야.....그렇지.”


화안금정을 얻어 세상사를 꿰뚫어볼 수 있는 손오공의 생각으로도 그러했다. 대관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요선들을 토지신으로 봉인한 것도 그렇고, 선계와 인계가 겹쳐진 것도 그렇고 모두 일련의 한 시기에 일어났던 바. 시작은 당신의 사라졌을 때부터요. 해서 나는 세계에 드리운 거짓을 벗겨내, 진실을 엿보았소.”


“그래서 본론이 뭔데?”

“......확실히 당신이 사념이란 것을 알겠구려. 이 정도를 얘기했는데도 눈치를 못 채다니.”


“쯧. 사념한테 뭘 바라는데?”


“....놈들은 당신의 육체로 세계를 재구축한 거요.”


“.......뭐?”


손오공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에 인상을 구겼다.


“그게 뭔 개.....”


손오공이 말을 하다말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이런 개 같은....”


“이제 이해하셨소?”


“이 새끼들이 시체팔이를 하고 있어? 그것도 감히 내 몸으로?! 여래 이 개 같은 년!!!”


손오공이 발을 구르자 지진이라도 난 듯이 땅이 흔들거렸다.


“나 또한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했소. 허나 수백 수천의 요괴들을 가둘 수 있는 억지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이 세상에 어디 그리 흔하겠소? 해서 사방을 살피다 놀라운 것을 발견했지.”


“......놀라운 것?”


“당신의 육체가 어떻게 되어있을 것 같소?”


“.......”


대백의 의미심장한 물음에 손오공이 침묵하며 상대의 말을 기다렸다.


“당신의 육체는 갈가리 찢겨져 지금 세계의 고정축을 하고 있소.”


“.......여래 그년이 할법한 일이군. 우라질.”


“모두 팔십 일 개의 파편이오. 모두 하나같이 생생하오만. 이 경우에는 오히려 더 문제겠지.”


“.....왜?”


“당신의 손가락에, 사지에 무슨 고등한 의지 같은 게 있소?”


“......있을 수도 있지. 이 몸이니까.”


설득력 없는 설득을 하는 손오공이었다.


“쯧. 말장난은 그만하시오. 모르겠소? 우리 요선들이 왜 토지에 붙잡혀 있는지?”


“설마...”


“당신의 육체는 모두 백(魄)뿐이고 혼(魂)이 없소. 헌데 주변에 요선들이 봉인해놓고 그것을 백(魄)의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토지신 봉인의 정체요.”


“.......”


“알겠소이까? 어떻게 보면 모두 당신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말이오.”


“쯧. 그래서 나를 들쑤시겠다고?”


“말하지 않았소. 그럴 생각은 없다고. 다른 요선들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신을 원망하다 못해 당신에게 칼을 들이대는 이들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내가 어떻게 장담하겠소.”


“.....”


손오공 자신이 생각해도 그럴 리는 없었다. 자신과 다른 요선과의 관계가 전부 원만하다고 말할 수는 절대 없기에. 오히려 분쟁이 많았으면 많은 편에 가까웠다.


“....고민이 많은 것 같구려.”


“쯧. 누구 덕분에.”


“하하. 당신 덕분 아니겠소.”


“빌어먹을.”


“하하. 이제야 좀 당신 같구려.”


“개뿔이.”


“하하.....그러니 힘을 되찾으시구려.”


잠시 웃던 대백이 정색하며 말했다.


“......무슨 의도로 이렇게 다 말해주는 건지 모르겠군.”


“모르겠소?”


“모르겠는데.”


“후......지금의 일그러진 세상을 좋아할 이가 몇이나 되겠소. 원래 자리로 돌리고 싶은 것이 백이면 백 요선들의 입장일 것이오. 나라도 다르지 않소. 게다가...”


“게다가?”


“난 당신의 강함을 동경했소. 오만불손한 당신의 성격은 .......모르겠지만 당신의 자유분방함과 강함을 좋아하는 이들은 제법 될 것이오.”


“거참. 이 몸의 성정이 매력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은데 말이다.”


“그건 그쪽에나 가서 얘기하시구려.”


“쯧.”


오늘따라 혀를 많이 찬다고 생각이 드는 손오공이었다.


“쿡. 너무 그렇게 성내지 말고 이거나 받으시오.”


대백이 품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


“......”


장난기 넘치던 손오공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너 이건...”


“내 단이오.”


“.......무슨 생각이냐. 네놈도 선도에 맥이 닿아 수행을 쌓은 자. 이걸 스스로의 몸속에서 꺼낸다는 것도 문제지만, 남에게 준다는 것의 의미를 모를리는 없을 텐데.”


“설마하니 내가 그걸 모르고 이러겠소? 이건 투자요. ”


“.......투자라고?”


“어차피 토지에 묶인 노예 신세. 이런 것이 있으니 힘을 크게 행사할 수도 없고 운신도 제약되는 상황이오. 그럴 바엔 당신에게 투자하는 것이 낫지 않겠소? 정 마음에 걸리면 봉인에서 나를 풀어주고 갚아주면 되는 거요.”


“.......닳고 닳은 놈들만 상대하다 보니 이러는 것도 신선하군. 아니 오랜만이라고 해야 되나....”


“싫건 좋건 어차피 단을 뽑았소. 내가 이걸 다시 소화시킨다는 것도 도박에 가까운 힘든 일이고. 어쩔 테요.”


“받는다. 내가 뭐 이런 걸 거부하기엔 뻔뻔하고 낯짝이 두꺼워서 말이지.”


“빨리 복용하시구려.”


대백이 재촉했지만 손오공은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느긋이 말을 꺼낼 뿐이었다.


“아니, 이걸 내가 먹는 것은 의미가 없지.”


“무슨 소리요. 그러면?”


“이걸 먹는 것은 내 안의 인간이다.”


“........내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보시오.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 그놈 채로 당신을 소멸시켜버릴 것 같으니 말이오.”


“당연한 얘기인데 말이지. 백만 강해져서 무슨 의미가 있지? 혼이 있고 나서야 강한 백에도 의미가 있는 법이라는 건 기본적인 이야기다.”


“.......그거야 그렇지만 그는 그냥 인간이 아니오.”


“여래도 인간이지. 인간 선인들도 인간이고.”


“그들은 선골을 지닌 이들이지 않소.”


“.....그냥 네가 인간을 인정하기 싫은 게 아니고?”


“.......”


“딱히 인간 모두가 대단하다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야. 인간의 가능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거지.”


“......역시나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군. 후우...”


대백이 큰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그럼 인간은 믿지 마. 인간의 가능성을 믿는 이 제천대성을 믿으라고.”


“.......그것도 싫소만.....”


대백이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다른 선택권도 없잖아.”


손오공이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직 인간을, 그를 인정하지는 못하겠소. 단지....단지 당신을 믿겠소.”


“킥. 어차피 너도 곧 이해하게 될 거야.”


“.....내가 보기엔 별 다를 것이 없는 인간이오만.”


“과연 그럴까?”


손오공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확실히 지금은 그가 특이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인정하겠소. 허나 그는 인간이오. 그의 감정이, 원한이 지금은 가득할지 몰라도, 그게 계속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잖소.”


대백이 마지못해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래. 확실히 그것 또한 인간이지. 하지만 너나 나나 자신의 욕망을 위해 미친 인간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


“.......판단은 보류하겠소.”


“...아아.”


부들부들.


대백의 몸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까지인 것 같군.”


“......”


“나는 아마 오랜 세월 잠들 것이오. 단을 당신에게 넘겼으니 말이오. 가능하면 내가 다시금 눈을 떴을 때, 예전의 선계의 모습을 보고 싶구려.”


“아아. 약속하지.”


손오공이 웃으며 말했다.


“.....작별이오.”


대백의 몸이 쓰러졌다. 손오공이 가서 대백이 깃들었던 몸의 맥을 확인하자 몸의 소유자도 이미 생을 마감한 후였다. 죽기 직전의 상대에게 자신의 혼을 조금 담아 움직였기에, 혼이 사라진 지금 육체만 남아 살수는 없었다.


“어이, 장이족 여아야.”


손오공이 명옥상을 불렀다.


“네. 넵.”


명옥상이 급히 대답했다.


“묻어주자꾸나. 아 그리고 이 단도 네가 좀 보관하고 있거라.”


“.....제가 말입니까?”


“아아. 설마하니 네가 훔쳐 먹을 것은 아니잖아. 이 몸의 주인, 위지혁에게 먹여야 할 것인데.”


“그...그럴리가요.”


“그래. 그럼 잘 지키고 있으라고. 네 님의 정기를 북돋아주는 보양식이니까.”


손오공의 말에 무엇을 상상했는지 명옥상이 얼굴을 붉혔다.


작가의말

재밌게 보셨다면 선작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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