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에게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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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
작품등록일 :
2023.12.19 07:48
최근연재일 :
2024.02.1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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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4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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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이상(異常)

DUMMY

위지혁과 추오의 격렬해지는 싸움 와중에 하나의 그림자가 늘어났다. 누구도 모르게.


그 그림자를 맨 먼저 알아차린 것은 초승이었다.


“오셨습니까?”


“아아.”


낙명은 고목같이 덮여있는 한쪽 눈썹을 들어올려 위지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본존께서 혈향이 난다고 하시길래, 급히 와봤는데.....흠.”


“예사 놈이 아닙니다. 낙명님께서...”


“아니. 지켜보지.”


“네?”


마음이 급한 초승과는 달리 낙명은 여유로웠다.


“저렇게 혼자 잘 상대하고 있지 않은가.”


“.......”


“그래도 혹시나...”


“쯧. 자네도 이제 그 노파심을 고쳐야 하지 않겠나?”


낙명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래도 마을에 처음으로 생긴 외부에서의 인사가 아닙니까.”


“그렇지. 그러니 이 마을 안에서 살아가다 보면 이런 일은 얼마든지 겪을 수 있는 일이고.”


“......”


“저런 몸을 지니고 패배한다면 그건 저 녀석에게 살아갈 자격이 없었다는 것에 불과하다네.”


‘....확실히.’


낙명의 말에 초승도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기연으로 얻은 좀 단단하고 억센 육체라고 생각했을 뿐인데. 설마하니 선계에서 사는 요괴의 발톱까지 아무렇지 않게 견뎌내다니.


“.....보아하니 스스로의 몸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걸 보아 어떤 기연이 있었을 터. 그렇다면 그것을 잘 쓸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도 위에 서는 자가 할 일일세.”


“......그것도 그렇습니다만은. 아직 초식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녀석에게는 저 재빠른 놈을 잡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지켜보면 알 일 아닌가.”


그 말에 초승도 더 이상 대꾸할 말이 없었다.


낙명이 싸움에 집중하자 다들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확실히.....아직은 서툴러. 무겁다고 하는 게 더 맞겠군. 그럼에도 좌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군 그래.”


“......생 초짜에 가깝다 보니..”


“이사람.....오늘 따라 침착하고 현명한 사람이 오늘 따라 왜 그러나?”


“네?!!”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나 돌이켜 보는 초승이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초승이었다.


“힘의 가감에 애를 먹고 있긴 하지만 저건 모두 초식을 제대로 펼치고 있는 걸 모르겠나?”


“......”


초승이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이해할 수 없었다. 초식을 맞게 사용 한다기보다는 그저 멋대로 쓰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쯧쯧. 전신의 경락이 저렇게 뚫려 있다면 그게 보통 사람과 같겠는가?”


“!!!”


그 말에 초승의 머릿속이 번쩍였다.


“지금 저 녀석이 펼치고 있는 것은 자네가 가르친 번천권이 틀림없다네. 단지 그 초식을 자신에 맞게 펼치고 있을 뿐이지.”


“.....”


그것을 듣고 나서야 초승은 무언가가 보이는 듯 했다.


“.......사실 나도 갸웃하긴 했네만, 틀림없다네.”


초승이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낙명이 말을 이어나갔다.


“보게나. 낙룡등천에 이은 번천격까지.”


“저게 저렇게.....이어질 수도 있었습니까?“


“가능하지. 지금 자네가 보고 있는 것이 그 증거가 아니겠나.”


“.....제가 살았던 세계가 이렇게나 좁았건 것인지....회의감이 드는군요.”


“......그렇게까지 자책할 필요는 없네. 어찌 되었든 아직은 거칠지만 확실히 상대를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어. 필시 타고난 기질이 그러하겠지.”


둘의 말이 계속 이어지는 사이 싸움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피처럼 붉은 입김도 모자라 붉은 땀까지 흘리는 추오의 모습은 섬뜩하기 그지 없었다. 허나 그럼에도 위지혁의 몸은 멀쩡했다.


그렇다고 위지혁의 주도권을 잡은것은 아니었다. 뚫을 수없는 육체와 너무 빨라 맞지않는 육체. 둘다 타격을 주지 못하는 것은 동일했다. 단지 지쳐 보이는 추오와 달리 위지혁은 만전에 가까운 상태라는 것이 달랐지만.


'어떻게 한다....'


위지혁은 고민했다. 비록 상대방이 자신에게 타격을 주지는 못해도 자신 또한 제대로 들어간 타격이 없었다. 맞으면서 치려고 몇 번이나 유도했지만 놈의 치고 빠지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저렇게 지쳤음에도 이 쪽이 치려고 하면 번개처럼 빠치는 것이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추오의 자세를 무너트려 피하기 어렵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깨달은 위지혁이 다음에 이을 행동은 물론 상대의 반응까지 머릿속으로 그렸다.


지금껏 놈은 이쪽의 공격을 피하고 철저히 손톱으로만 응전해왔다. 하지만 입에 달린 저 커다란 이들과 어금니는 장식이 아닐 터. 상대의 커다란 공격을 유도하기 위해 위지혁의 사고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적으로 따지면 찰나의 순간. 한순간에 머리속에서 생각을 마치고 위지혁이 움직였다.


캉. 카앙.


발톱이 어깨와 갈비뼈를 치고 지나갔다.


“큿.”


상대가 의식치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넘어진 위지혁이 엉덩이를 바닥에 댄 순간!!


추오가 여지껏 쓰지 않았던 입을 벌려 달려들었다. 여태껏 상대한 위지혁의 단단함을 모를 정도의 지성은 아니었지만 지쳤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아니 그 둘 다일 것이다.


입을 벌린 추오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


“저. 저”


천축의 무사들이 입을 벌린 추오를 보며 신음했다.


“낙명님”


초승또한 낙명을 불렀지만 낙명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콰직!!!!


추오의 입속에서 무언가 씹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담하군.”


여유로운 낙명의 모습에 초승이 다시 살피자 그때가 되어서야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위지혁이 쓰러진 것은 상대의 맹공에 상처입거나 힘이 다한 것이 아니라 너무 빠른 상대방을 붙잡기 위한 유인이었다는 것을.


“컥....커...컥..”


인간의 상반신을 반쯤 물어제낀 커다란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입속을 통해 들어간 주먹이 추오의 중요한 목숨 줄이라도 잡고 있는 것인지 추오는 맥을 못추고 있었다. 그 빨랐던 속도는 온데간데없이 그저 몸을 부들부들 떨뿐.


“잘 가라.”


추오의 입안에서 나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찌지직!!


그것이 호계동을 지배하던 추오의 마지막이었다.



***


“와아아아아”


천축이 떠들썩했다. 고기로 연회가 이렇게 열리는 것도 오랜만의 일이었다. 평소에는 그니마 열매로나 연명했기에 간만에 고기를 먹는 것은 마을에 있어 축제나 다름없었다.


“이거 오라버니가 잡은 거라고?”


사공혜가 신기한 듯이 연신 물었다.


위지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공혜가 미소를 띄우며 위지혁에게 달라붙었다.


“얘도 참...”


사공혜의 모친이 만류하는 시늉을 해도 사공혜는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놈 참. 누가 보면 정인에게 달라붙는 건 줄 알겠구나.”


사공혜의 부친이 놀리듯이 말했다.


“응. 난 혁 오라버니에게 시집갈 거야.”


이제 막 열 살을 벗어난 아이답게 치기어린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그냥 듣고 흘릴 수 없는 사람이 있었으니.


위지혁 옆에서 고기를 먹고 있던 명옥상이었다.


“여자 아이가 함부로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단다.”


미소 지으며 하는 말이었지만 어딘가 섬뜩했다.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여자라는 것일까? 무언가를 느낀 사공혜가 되받아쳤다.


“못생긴 검은 언니랑은 상관없어”


홱!!


냉랭히 내뱉고는 보기 싫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


명옥상은 굳은 미소를 지은 채로 잠자코 있었다.


“풋”


그 상황을 지켜보던 장이족들이 실소했다.


그렇게 전체적으로 화기애애한 마을이었지만 유독 분위기가 다른 곳이 한 곳 있었다.


“칫.”

사람들로 둘러싸인 위지혁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하운이 혀를 찼다.

“심통난 얼굴로 뭐하고 있느냐.”


초승이었다. 평소의 굳은 얼굴과는 다르게 풀어진 얼굴이었다. 그는 간만에 술을 먹어 살짝 취기를 느끼고 있었다.


“.......”


“네 마음은 이해한다만.....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을 말입니까.”


하운이 씹어 내뱉듯이 말했다.


“.......명석한 네 녀석이니 잘 알겠지. 저 녀석의 힘을. 추오는 우리가 매번 그렇게 어렵게 잡던 선계의 짐승이었다. 아니 짐승이라고 치부하기에도 너무나 월등한 존재였지. 요괴라고 불리울 만한 존재였다. 그런 녀석을 도살장에서 돼지 잡듯이 처리했다. 한 마리뿐만이 아니라 이십 마리에 가까운 녀석들을.”


“사형이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나라면 뭐?”


“......”


“전혀 납득한 것 같지 않구나. 혹시나 해서 못 박아두겠다. 너는 확실히 타고났다. 내가 알고 있는 한에서 천축이 만들어진 이래 너 만한 재능을 가진 이가 존재했던 적은 없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아무리 누군가가 빨리 달릴 수 있다 해도 하늘 아래 누군가는 날 수 있는 법.”


“...!! 그게.....저 녀석이란 말입니까? 자신도 모르는 그 힘으로 설치는 천둥벌거숭이 따위를!!”


지금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것이 하운의 마지막 인내심이었다.


“.......어리석은 놈. 그런 여유 따위가 우리에게 허락된 상황이더냐?”


초승의 통렬한 공격에 하운은 고개를 푹 숙였다.


“쓸만한 무기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주워다 써야 하는 것이 현재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처지이거늘. 더군다나 오만함에 가득 차 행동하는 선도의 관계자라면 지금 저런 짓을 하겠느냐?”


“......”


“명심해라. 너와 저 녀석은 격이 달라. 섣부른 마음으로 일을 벌이지 마라.”


초승은 단단하게 못을 박아두고 자리를 떠나갔다.


‘.....격이 다르다고? 인정 못해...인정 못해. 인정할 수 없어.’


초승이 떠나간 이후 온갖 부정적 감정이 하운의 안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


대량으로 잡아들인 추오 덕에 마을은 한동안 평온했다. 식량을 다소 절약하며 날카로워졌던 분위기가 일시적으로 풀렸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마을에서는 여유가 넘쳤다.


위지혁은 언제나처럼 나무 옆의 무성한 잡초들 위에서 앉아 마을을 쳐다보고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연신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오지 않는군.”


“그 아이 말인가요?”


나무 위에서 걸터앉아 있던 명옥상이 물었다.


“아아.”


“......설마 그 아이에게 마음을 두신 것은 아니겠죠?”


“......?!”


위지혁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위로 올려다보자 명옥상이 당황해 손을 휘저었다.


“아니. 그... 그런 것이 아니고.”


“언제나 이곳에서 자주 놀았던 아이가 안 보이는 게 일주일이 넘었소.”


위지혁이 진지하게 말하자 그녀도 신색을 바로하고 답했다.


“......확실히 요 근래 보이지 않는군요.”


“이런 폐쇄된 곳에서 어디 놀러 나갈 것도 아니고. 이상하지 않소?”


“.......그러고 보니 언제나 밖에 나와서 가죽을 말리던 부모도 보이지 않는군요.”


명옥상의 말에 위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이 시작이었다. 천축에서의 기이한 일은.


작가의말

간밤에 잘못 올린 글을 수정했습니다.


재미있게 보셨다면 추천 선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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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8화 시험 24.02.08 34 0 14쪽
18 17화 남섬부주 24.02.04 51 0 11쪽
17 16화 단(丹) 24.02.03 43 0 12쪽
16 15화 분열 24.02.01 84 0 11쪽
15 14화 최후 24.01.31 69 0 12쪽
14 13화 대결 24.01.30 43 0 11쪽
13 12화 되살아나는 자 24.01.28 38 0 14쪽
12 11화 살아간다는 것 24.01.26 52 0 12쪽
11 10화 천축의 진실 24.01.25 40 1 11쪽
» 9화 이상(異常) 24.01.24 61 1 11쪽
9 8화 사냥 24.01.23 72 1 12쪽
8 7화 천축에서의 일상 24.01.21 60 1 11쪽
7 6화 무공입문 24.01.20 69 2 13쪽
6 5화 천축 24.01.12 74 2 16쪽
5 4화 제천대성 24.01.10 129 2 11쪽
4 3화 혼세암주 24.01.07 126 3 12쪽
3 2화 장이족 24.01.06 149 2 11쪽
2 1화 혈원불사 24.01.06 169 3 12쪽
1 서(序) 24.01.06 242 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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