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에게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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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
작품등록일 :
2023.12.19 07:48
최근연재일 :
2024.02.1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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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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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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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장이족

DUMMY

2화 장이족




흐느적.


주저앉아 있던 청년이 붉은 손으로 땅을 내리치고는 일어났다.


“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땅을 치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그는 양손을 들어 주변의 모든 것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꼬박 세 시진이 흐르고 나서야 그의 발광이 멈추었다.


“으.....아아.”


마음껏 주먹을 내질렀음에도 손은 멀쩡했다. 그의 손이 붉은 이유는 그저 장충의 피가 묻은 채로 굳었기 때문이었다.


“저.....저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위지혁은 들은 여유가 없어 그저 상념에 젖어 있을 뿐이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가 몇 번을 불렀을까?


마침내 위지혁의 귓가에 들려오자 그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살폈다.


“여기....여기입니다.”


위지혁은 그저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발을 향했다. 친족들을 모조리 잃은 탓이었을까? 그 자신은 의식하진 못해도 옆에 있어줄 누군가 필요했기에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헤맸다.


주변을 계속해서 살피자 위지혁이 완전히 부셔버린 석굴 옆의 지하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광란을 벌인 탓에 입구가 틀어진 또 하나의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의지해 나아갔다.


쾅!!


아직도 마음의 응어리가 남아있는 탓인지 위지혁의 손속은 거침없고 난폭했다.


한바탕 주먹질과 발차기를 하자 석문이 완전히 박살나며 열렸다.


위지혁이 동굴로 들어갔다. 들어와 주변을 살폈는데 야명주가 박힌 탓인지 동굴 안은 보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외길로 된 동굴 안을 나아가자 감옥 안에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위지혁이 감옥 안에 있는 인영의 얼굴을 보자마자 흠칫 놀랐다.


“귀...귀신?”


“.....귀신은 아니랍니다.”


귀는 옆으로 길게 뻗어나 있고, 머리는 은색으로 은은히 빛나고 있는 꼴을 본 위지혁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어찌 저리 생길 수 있단 말인가.


은발과 긴 귀. 그 두 가지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위지혁이 나가는 방향으로 급히 몸을 돌렸다.


“앗!! 잠시만!!”


은발의 여인이 급히 말을 토해냈다. 말에 담긴 간절함 탓인지 위지혁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부탁드립니다. 이곳에서 나가야만 합니다.”


“.......도사 놈의 같은 편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나보고 풀어달라고?”

“저는 그 도사에게 끌려왔습니다. 저 때문에 친족은 물론 저희 부족이 큰 피해를 입은 상황인데 계속 여기에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친족.


위지혁을 망설이게 한 단어였다.


선계의 인간들에게 있어 괜한 선의는 사치였다. 모르는 이에겐 철저히 무관심한 것이 보통이지만 지금의 위지혁에겐 약점이나 다름없는 단어가 가족이었다.


자신 또한 모든 것을 잃었지 않은가. 이제 와서 잃은 것도 없고.


위지혁은 반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부적들로 감싸인 철창을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까앙!!!! 깡!


몇 번의 주먹질 끝에 철창이 옆으로 휘어져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흑흑.”


“......”


위지혁은 아직도 그녀의 모습이 이상한 탓에 인상을 찡그리고 한 발짝 물러난 채였다.


그것을 모를 리도 없는 여인이건만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눈앞의 청년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안에서 소리로 대충 들었는데.....도사는 어떻게 되었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위지혁이 붉은 손가락을 들어 도사의 시체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은발의 여인이 발은 옮겨 마주한 것은 너무나도 참혹한 현장이었다.


시체라고 하기엔 남아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마치 포를 다진 것처럼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었다. 그저 군데군데 헐어버린 가죽이 좀 전까지 한 명의 선계인이 있었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허나 여인은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도리어 가죽에 침을 뱉고 발로 지근지근 밟을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은공.”


“......”


얼마 전의 위지혁이 보았다면 기겁을 할 일이었겠지만, 지금 그에게 있어 그런 정도의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 참혹한 현장을 만들어낸 것이 다름 아닌 그이거늘, 그가 벌인 일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사는 곳으로 가시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떠오른 대답은 거절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것, 해야 할 일 따위가 어디 있던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에게 갈 곳도, 목적도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놓아버리려 해도, 허무하게 죽기는 싫었다. 먼저 떠나간 이들도 그것을 바랄 것이라는 것을 그는 믿고 있었다.


잠시 고민 끝에 마음을 바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



여인이 안내한 곳 그녀의 마을은 굉장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보다도 위지혁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여인이 이동하는 방법이었다.


마치 그녀는 나무 위를 미끄러지듯이 움직일 뿐만 아니라, 그 흔한 하급 요괴들조차 마주치지 않고 장거리를 이동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위지혁의 강렬한 눈빛을 느낀 탓에 여인이 마을 입구 앞에서 위지혁을 불렀다.


“은공?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지?”


“그게 무슨...”


“어떻게 나무 위를 미끄러지듯이 이동하고, 요괴들조차 마주치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거지?”


저 방법을 알 수 있었다면 적어도 그의 친족들이 그렇게 아무 의미 없이 죽어나가는 것은 대부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모두 죽은 지금에 와서는 이런 생각 따윈 미련에 불과할 뿐이지만, 이 선계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저 방법을 꼭 알고 싶었다.


“.....글쎄요. 저희 장이족의 특성이라 해야 할지....저희에게는 나무의 목소리가 들린 답니다.”


“.....”


위지혁의 표정은 똥 씹은 표정이었다. 나무의 목소리? 그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죄송합니다. 저로서도 딱히 설명드릴 수가..”


“......마을이나 들어가지.”


위지혁은 장이족의 마을에서 천천히 묶으며 알아볼 요량이었다.


여인이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무엇을 느낀 것인지 오십을 넘는 가구가 단체로 집밖으로 뛰어나와 여인을 반겼다.


“옥상!!”


은발의 여인을 수 명의 여자들이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했다.


분명 마음속 따뜻해지는 광경이건만 위지혁은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도 내심 마음이 훈훈하긴 했지만 그것보다도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모두.....귀가 길었다. 은색으로 은은히 빛나는 머리까지. 모두가 똑같았다.


‘혹시나 했는데....’


은발의 여인이 우연히 저런 모습으로 태어났나 싶었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저들 모두가 저렇게 태어나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이놈의 선계는 별의별 종족이 다 있군.’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장이족들의 해후가 끝나자, 그들이 위지혁의 머물 곳을 정했다.

위지혁이 구한 여인, 명옥상의 집이었다. 그들은 살갑게 위지혁을 대하였고 위지혁 또한 마음을 다스리기엔 나쁘지 않았다.


나무속에다 집을 만들어 놓은 것이 신기했으나, 들어가서 머물다 보니 안락하기 그지없었다. 신경 쓰이는 것은 달리 오히려 다른 점이었다.


위지혁은 잠을 청할 때마다 들려오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흑.......흑.”


‘......쯧.’


자신의 부모는 물론이고 친족들을 잃은 마당에 매일같이 슬퍼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것을 모를 위지혁도 아니었으나, 씁쓸했다. 그 모습이 자신과 똑같았기 때문에.


‘오늘도 제 때 잠들긴 글렀군.’


위지혁은 몰래 빠져나와 바람을 맞으며 마음을 정리했다.



***



장이족들의 생활은 더 없이 평화로웠다. 그들의 일원을 구해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위지혁을 손님으로 정중히 대우했고, 위지혁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곳에 장시간 머물 수 있었다.


매일같이 과일과 생선까지 대접받아 배부르게 먹고 나면 한가로이 잠까지 잘 수 있을 정도였다.


단지 잠을 자다 꿈을 꾸거나, 화인처럼 떠오르는 것이 있었으니 장충의 일이었다. 무아지경으로 몸을 놀려 그를 때려죽이긴 했으나 마음에 입은 상처는 사라지지 않고 매일같이 그를 괴롭혔다.


분노가 찾아왔다 사라질 때면 계속 여기에 있어도 되는가 하는 생각도 드문드문 들었다. 태어나서 매일같이 도피하고 이동하며 살아왔던 습관이 몸에 배어버린 탓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던 중 이변이 일어났다.


동굴 속에 울창한 삼림이 시들기 시작했다. 마을의 장이족들이 이변을 깨닫고 웅성거리기 시작했을 때, 그것은 갑자기 찾아왔다.


거대한 그림자.


요괴였다.


스스로를 혼세암주라 칭한 요괴는 장이족들이 사는 곳이 마음에 들었는지 장이족들을 참살하기 시작했다.


검과 활을 들어 맞섰지만 중과부적이었다. 반 수 이상의 장이족들이 죽어나갔다. 하지만 혼세암주는 멈추지 않고 마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남은 장이족들을 찾아다녔다.


혼세암주의 발걸음은 한 명과 마주하고 나서야 멈추었다.


“호?”

장이족들의 마을에서 뜻밖의 존재를 만난 혼세암주가 감탄성을 터트렸다.

“인간이 아니냐? 희한하군. 장이족들은 어지간하면 타 종족을 마을 안에 들이지 않는데 말이지.”


“너, 아니 너희 선계인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딴 짓을 저지르는 거냐.”


순수하게 그것이 궁금한 위지혁의 물음이었다.


“무슨 생각이라니?”


“혼자서 이 많은 사람을 죽일 정도로 강하다면 굳이 이렇게 조용히 살고 있는 이들은 건드리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는 거다.”


“.......뭔 소린가 했더니. 정말이지 시시한 소리구나.”


혼세암주가 흥이 깨졌다는 얼굴을 하고선 입을 열었다.


“.....반대로 묻지. 너희 인간이 살면서 고기나 생선을 입에 대지 않을 수 있느냐?”


“설마 선계인들이 이들같은 이종족이나 인간을 먹는다는 소리를 하려는 거냐?!!!”


위지혁이 성나 부르짖었다.


“먹기는 뭘 먹어. 개중이야 그런 놈들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만. 이 몸이 인간 따위를 먹어서 무엇 하겠느냐. 잘 기른 영초보다도 못한 것이 인간의 정혈이거늘.”


“그럼 도대체 그 말은 무어냐.”


“먹고 싶으니 먹고, 자고 싶으면 잔다. 너희 인간들은 욕망에 충실하지. 우리 선계인들도 욕망에 더없이 충실할 뿐이다.”


“욕망이라고?”


“그렇지. 먹지는 않아도 적어도 장이족 같이 태어나면서 영성이 트여 영육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라면 쓸모가 있지. 영육을 뽑아내 보패에 영성을 틔우든, 그도 아니면 결계로 만들던가. 보통 때라면야 나도 손해가 커서 신경 쓰지도 않았겠지만 보아하니 이미 한바탕 누군가가 휘저어 만전의 상태가 아닌 장이족의 마을이라면......구미가 당기지.


“.......”


역겨운 발상에 위지혁은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결국 자신에게 필요하니 말이 통하는 이들을 잡아 족치겠다는 뜻이 아닌가.

적어도 자신들은 살기 위해 무언가를 잡아먹지, 저렇게 욕망에 휘둘리지는 않았다.


“뭐. 간만에 대화도 나누었으니......이제 그만 죽어라.”


혼세암주가 손을 들어 올리자 그의 소매에서 수 자루의 검이 튀어나와 공중을 수놓았다.


“질(疾)!!”


기합 소리와 함께 검들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작가의말

재밌게 보셨다면 선작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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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화 최후 24.01.31 69 0 12쪽
14 13화 대결 24.01.30 43 0 11쪽
13 12화 되살아나는 자 24.01.28 38 0 14쪽
12 11화 살아간다는 것 24.01.26 52 0 12쪽
11 10화 천축의 진실 24.01.25 40 1 11쪽
10 9화 이상(異常) 24.01.24 61 1 11쪽
9 8화 사냥 24.01.23 72 1 12쪽
8 7화 천축에서의 일상 24.01.21 60 1 11쪽
7 6화 무공입문 24.01.20 70 2 13쪽
6 5화 천축 24.01.12 74 2 16쪽
5 4화 제천대성 24.01.10 130 2 11쪽
4 3화 혼세암주 24.01.07 127 3 12쪽
» 2화 장이족 24.01.06 150 2 11쪽
2 1화 혈원불사 24.01.06 169 3 12쪽
1 서(序) 24.01.06 242 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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