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에게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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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
작품등록일 :
2023.12.19 07:48
최근연재일 :
2024.02.1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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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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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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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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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제천대성

DUMMY





“뭐야. 너는.”


위지혁의 입에서 경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흐음.......”


갑작스럽게 나타난 낯선 인영(人影)은 경계하는 위지혁을 그저 살필 뿐이었다. 그렇게 살피던 검은 옷의 인영이 입을 열었다.


“일찍이 선계에 큰 전란이 있어, 선인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져 큰 싸움이 벌어졌다.

그 전란에 그 누구보다도 큰 활약을 펼치어 하늘과도 같은 성인이라 추앙받았던 이가 있었으니 누구나가 그를 제천대성(齊天大聖)이라 하노라.

허나 그 누구보다도 강했던 그도 간교한 인간선인들에게 속아 패배하노니, 동료인 요선들과 함께 패배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뭔 개소리야?”


“후우....”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위지혁을 본 낯선 이가 한숨을 토했다.


“정녕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겠습니까? 하!!!! 그 무엇도 두려운 게 없어 제 것 인양 하늘을 활보했던 당신이. 진선계의 썩을 것들이 아주 좋아하겠구려. 미후왕이시여.”


“뭐라....어....”


막 말을 내뱉으려던 위지혁이 비틀거렸다. 마치 의식이 어딘가로 떨어지는 듯한 감각이 그가 느낀 마지막 감각이었다.


우뚝.


쓰러질 것만 같았던 위지혁의 몸이 바로 균형을 잡았다. 잠시 열렸던 동공은 닫히더니 붉은기가 도는 동공으로 변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볼의 가장자리와 전신에서 적갈색의 체모가 성큼 자라났다.


“불렀는가? 이 몸을.”


분명 위지혁의 얼굴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좀전까지와는 전혀 달랐다. 그것은 얼굴이 아니라 표정 때문일까?


위지혁의 몸에서 나타난 제천대성은 자신만만한 웃음을 짓더니 이내 숨을 들이쉬었다.


“좋군. 역시나 살아있는 몸은.”


“.......”

“뭐냐. 좀 전까지 이 몸을 그렇게 열심히 부르더니.”


“......참으로 꼴이 좋으십니다.”


비아냥거리는 상대의 말에 제천대성은 한차례 자신의 몸을 매만지더니 넉살좋게 대꾸했다.


“그래. 이 몸이 멋지게 생기기는 했지.”


“.......”


상대의 반응에 뭐라 대꾸할 말이 마땅치 않았던 검은 인영은 잠깐 입을 열었다 닫을 뿐이었다.


“그래서 뭐냐. 애타게 불렀으니 할 말이 있을 것 아니냐.”


“.......그렇게 모든 요선들까지 동원해 대전을 벌였던 일에 대해 늘어놓을 말이 고작.....그것뿐이오?!!!!!”


“하아......칭얼거리지 마라. 애새끼도 아니고.”


손오공은 진심으로 짜증내듯이 말했다.


“뭐?!!!!”


낯선 이가 격앙해 외쳤다.


“네놈도 나름 수행을 거쳐 요정에서 요선이 되었을 터. 네놈은 네놈의 행동에 스스로가 책임지지도 못하는 거냐? 스스로가 내린 결정까지 남이 처리해주길 바라지마라.”


낯선 이는 머리를 세차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몸을 잠시 부르르 떨었다.


잠시 격동하던 마음에 그가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몸을 바로잡았다.


“후우.....”


손오공은 마침내 그가 이야기 할 자세가 되었다는 듯이 그를 제대로 마주봤다.


“그래. 더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여래와는 어떻게 된 거요.”


“으음....”


손오공은 인상까지 찌푸리며 새로운 질문에 고심했다.


“모르겠다. 내 상태가 이러니”


“.....확실히.”


낯선 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살펴본 바로는 지금의 손오공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며,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었다.


반생반사라고 해야 할까?


죽어가는 위지혁의 육체에서 떠나가려는 혼을 붙잡은 것은, 손오공의 봉인된 육체 중 하나. 즉 백이었다.


지금 위지혁이란 존재는 인간의 혼과 요괴의 백이 간신히 균형을 맞추고 있는 괴이한 상태였다.


‘아니, 역시라고 해야 할까?’


낯선 이는 새삼 감탄했다. 다른 이라면 죽어도 백번은 죽었을 터인데. 한낱 백의 파편 따위로 저만한 영기를 품으며, 인간을 살리기까지 하다니.


“기억이 온전하지 않다는 거요?”


“그래. 이 빌어먹을 봉인까지 더해져서 말이지.”


손오공이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자, 이마에서는 한줄기 선혈이 흘러나왔다. 마치 무언가로 죄여지는 듯한 모습.


“.....그건 뭐요?”


“낸들 알겠나? 여래 녀석들이 긴고아(緊箍兒)라고 하는 것 같던데.”


“......당신이나 우리들이나 별로 다르지 않은 처지구려.”


그 말에 손오공이 낯선 이를 살폈다.


“.....묶여 있는 게군.”


손오공의 말을 들은 낯선 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빌어먹을 토지신이라는 체제 속에 갇혀 모두 노예처럼 영기를 빨려 죽지도 살지 못하고 있는 신세요.”


“그럼 이제 갚아주면 되겠군.”


“뭐....라고 했소.”


“쯧. 땅에 묶인 것도 모자라 귀까지 틀어 막혔나? 이제 갚아줄 때라고 했다.”


“......어떻게 말이오.”


“그거야 이제 알아볼 일이지. 설마하니 네놈들은 육체 하나 속박 당했다고 스스로를 노예라고 생각하기라도 한 거냐?”


“.......”


다른 이가 말했다면 즉시 머리를 깨 부실 말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손오공은 이미 갈가리 찢겨진 육체에 깃든 사념만으로 이빨을 드러내고 있기에 낯선 이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쯧. 네놈들은 내가 봉인되어 있는 동안 도대체 뭘 한 거냐.”


“......”


“네놈들보단 차라리 목숨을 불태우듯이 살아가는 인계의 인간이 낫겠군.”


“.....그 손가락으로 누르면 누르는 대로 저열하게 죽어버리는 이들이 말이오?”


“저열하다라....그래 가장 저열하게 살지도 모르지. 허나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갈 수 있지.”


‘비켜!’


“이 녀석처럼 말이야.”


터억!


손오공의 오른쪽 손이 자신의 목을 붙잡고 졸랐다.


“...!!!”


낯선 이는 눈이 휘둥그레 벌린 채로 응시했다.


“그놈 참. 팔팔하군.”


“......무슨 짓이요. 한낱 인간에게.....당신이 밀린다고? 아니..그럴 리가... 왜 몸을 내주려는 거요. 이제 막 일어난 시점에!”


“쯧. 내주긴 뭘 내줘.”


꽈아아악.


점점 더 힘이 강해지는 것과 동시에 털로 뒤덮여있던 오른쪽 손이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말했지. 치열하게 살아간다고. 이놈이 아주 요란이군.”


“어....어떻게 하면 되는 거요. 그 놈의 의식만 어떻게 따로 떼어내는 건....”


“무리지. 이놈과 나는 이미 하나의 존재로 묶인 거나 다름없어. 뭐. 내 육체를 전부 되찾는다면 모르겠지만.”


“.......빌어먹을.”


낯선 이가 힘을 행사하기 위해 영기를 집중시켰다.


“그만 둬.”


그렇게 말하는 손오공의 몸의 절반은 이미 털이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위지혁이 손오공을 몰아내는 것처럼 보였다.


“어쩔 생각이오. 이제 여래를 치는 것 아니었소?”


“지금 보고도 모르겠나? 네가 그렇게 깔보던 인간조차도 자신의 존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거늘.”


‘비키라고!’


“네놈들은 스스로 드러낼 이빨도 잃어버렸나?”


“...!!!”


“비켜!!!!”


마침내 위지혁이 몸의 주도권을 되찾아 입을 열었다.


‘......그놈 참. 한이 깊기도 하군. 뭐 다시 마주할 날이 오겠지.’


손오공은 그 말을 남기고는 다시 잠들었다.


“헉....허억..허억....”


자신을 훨씬 상위의 존재를 끌어내리기 위해 정신을 소모할대로 소모한 탓에 위지혁은 계속 헐떡였다.


“.....네....네놈들에게...후우우우”


위지혁은 말을 하는 중간 중간 숨을 몰아쉬었다. 누가 보더라도 한계였다. 특히나 낯선 이가 꿰뚫어본 그의 상태는 일어나 있는 것 자체가 신기 그 자체였다.


기본적으로 원영으로 성립되어있는 선계인들과 육체를 벗지 못한 인간. 이 둘은 생물로서의 기본적인 격이 달랐다. 그 둘이 한 몸에 깃들었다고 했을 때, 단연코 몸을 차지하는 것은 보다 강대한 자일 터.


“내줄 것은.....”


아무리 백의 사념이라고는 하지만, 저만큼의 기운을 가진 제천대성이었다. 그런 그가 밀려난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무것도 없다!”


위지혁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었다. 빼앗기기만 해왔다. 그렇기에 빼앗기는 것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후우우우우후우...”


숨을 몰아쉬는 위지혁을 낯선 이가 노려보고 있었다.


‘인정할 수 없는 일이야. 한낱 인간 따위가.....선인을....아니 같은 선인이라고 불리는 것조차 강대한 그를....’


‘네놈의 어찌 그럴 수 있는지 확인해 볼 것이다.’


이 지역의 토지신이 위지혁을 시험하려고 마음 먹은 순간이었다.


콰당!!


그의 결심이 무색하게도 위지혁이 쓰러졌다.



***



“허어억.”


위지혁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그를 깨운 것은 악몽이었다. 그것도 아주 끔찍한 악몽.


가끔씩 밤마다 찾아오는 친척들을 잃던 날의 꿈.


땀을 뻘뻘 흘리며 상체를 들어 올린 그가 뜨여진 눈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빌어먹을.”


잠시 살피던 그가 주먹으로 침상을 내리쳤다.


콰앙!


충격으로 장이족의 집이 뒤흔들렸다.


“일어나셨군요.!!”


집이 뒤흔들리는 것을 느끼자마자 명옥상이 방으로 찾아왔다.


뒤에 누군가를 동반하고서.


“아 이분은 이곳의 토지신이십니다.”


‘토지신?’


위지혁은 처음 들어보는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다시 보는군.”


“.......어디서 본 적이 있소?”


중후한 장년인의 인사에 위지혁이 물었다. 몸을 되찾고 나서부터의 기억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 그였다.


“......”


‘쯧.’


예상치 못한 반응에 토지신이 속으로 혀를 찼다.


“자네는 기억 못하겠지만 자네가 혼세암주와 싸우는 것을 잠시 지켜보고 있었다네.”


“.....”


위지혁은 상대방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는데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불만이라면 있었다. 신이라면 진작 도와줬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장이족들에게 할 말이 있어서였네만. 자네도 같이 듣게나.”


“.....”


“어떤 말씀이신지...”


명옥상이 물었다.


“혼세암주 그놈이 설친 탓에 이 곳의 지력이 많이 말랐다네. 아마 장이족 자네들은 여기서 더 이상 살기 힘들 걸세.”


“그런....”


명옥상 뿐만 아니라 남은 생존자들도 주변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기에, 토지신의 말을 듣고 탄식했다.


“어....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명옥상이 묻자 토지신은 고개를 내저었다.


“힘들지. 자네들이 여기서 머물 수 있던 것은 강한 지력 탓에 생겨난 수목들 덕분이 아니던가. 그것들이 일종의 천연의 결계를 형성하고 있었던 게지. 하지만 한번 그것이 깨진 이상 다시 회복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테지.”


“.......”


명옥상이 긴 귀를 아래로 내리며 땅을 쳐다보았다. 그 동작만으로 그녀가 얼마나 슬퍼하고 있는지 짐작이 갈 정도였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위지혁이 입을 열었다.


“무슨 수는 없습니까?”


“.....살 곳을 달리 찾아보는 수밖에 없겠지.”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이런 곳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위지혁이 지난 생애를 돌이키며 말했다.


“꼭 그렇지만도 않지. 내 인간들이 모여서 평화롭게 사는 곳을 구축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바람에 들은 적이 있지.”


“인간들이 모여서.....산다?? 그게 무슨. 그게 어디입니까.”


위지혁이 다급히 물었다.


“천축이라는 곳일세.”



작가의말

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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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화 단(丹) 24.02.03 43 0 12쪽
16 15화 분열 24.02.01 84 0 11쪽
15 14화 최후 24.01.31 69 0 12쪽
14 13화 대결 24.01.30 43 0 11쪽
13 12화 되살아나는 자 24.01.28 38 0 14쪽
12 11화 살아간다는 것 24.01.26 52 0 12쪽
11 10화 천축의 진실 24.01.25 40 1 11쪽
10 9화 이상(異常) 24.01.24 61 1 11쪽
9 8화 사냥 24.01.23 72 1 12쪽
8 7화 천축에서의 일상 24.01.21 60 1 11쪽
7 6화 무공입문 24.01.20 70 2 13쪽
6 5화 천축 24.01.12 74 2 16쪽
» 4화 제천대성 24.01.10 130 2 11쪽
4 3화 혼세암주 24.01.07 126 3 12쪽
3 2화 장이족 24.01.06 149 2 11쪽
2 1화 혈원불사 24.01.06 169 3 12쪽
1 서(序) 24.01.06 242 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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