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에게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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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
작품등록일 :
2023.12.19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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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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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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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여선자

DUMMY




위지혁이 일어나기 전, 연기를 들이마시고 내면세계에 떨어진 것은 초승뿐만이 아니다. 위지혁 또한 보패의 공능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자연스레 내면세계로 빠져들었다. 물론 초승은 물론 평범한 사람들의 그것과는 다른 곳이었지만 말이다.


가부좌를 틀고 참선을 하던 위지혁은 어느덧 생소한 곳에 이르렀다.


“여기는?”


마치 꿈에서 막 깨어난 느낌이었다. 어쩐지 정신이 멍하고, 어째서 자신이 여기에 있는지도 정확히 떠오르질 않았다.


“쯧.”


“!!!”


갑작스레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흠침 놀란 위지혁이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놀랄 것 없어.”


그였다. 자신의 몸에서 동거하는 요괴.


“....분명 죽음을 맞이할 때나 다시 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 그래야했지. 분명.”


“...”


무언가 걸리는 말투였다.


“그렇게 경계할 것 없다. 이렇게 보게 된 것은 내 탓이 아니니까. 너희들이 간 곳에서 사용한 보패 탓이다.”


“보패?”


“그래. 선인들의 도구지. 병기라고 해도 좋고.”


“병기로 어떻게 당신을 깨운다는 거지?”


“병기이자 도구라니까. 선인들이 자신의 영성으로 벼리어낸 무구가 단순히 도검의 날카로움만을 가진다면 뭐 하러 만들겠나? 세계의 법칙을 비틀고 손댈 수 있는 도구라는 말이지.”


“그래서.....그 보패가 당신을 되살렸다고?”


“하. 보패로 이 몸의 생사를 주관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절대자라고도 불릴 수 있는 선인뿐이겠지. 내가 아는 한 그런 보패는 들어보지도 못했고 말이야.”


“그럼 지금 상황은?”


“여긴 현실이 아니다.”


“뭐?”


무슨 소리를 하는지 위지혁을 진심으로 궁금했다. 지금 이렇게 두 팔 두 다리로 서있는 자신들이 현실이 아니라니.


“여긴 정신세계에 가까워. 정확히 말하면 보패가 정신세계에서 특정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거지. 일종의 정신 공격이랄까.”


“아.”


위지혁은 그제야 떠올랐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를. 분명히 시험이었다. 입문을 위한 시험. 그렇다면 지금 이것이 시험이란 말인가?


“불쾌한 일이야. 빌어먹을.”


“무슨 소리지?”


갑작스레 분노를 일으키는 손오공에게 위지혁은 따라가질 못했다. 하지만 손오공은 어떠한 대답도 없이 그저 한 곳을 응시했다. 자연스레 위지혁도 손오공의 시선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저건?”


“.....”


지금 앞에 있는 손오공은 위지혁 자신의 모습에 체모만이 돋아나 있었다. 허나 저기서 보이는 이 또한 손오공처럼 체모가 돋아난 것이 마치 형제인 것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여기는 과거. 빌어먹을 보패가 보여주는 과거의 환상이다.”


“그럼 저것은...”


“나다. 과거의 나. 가장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


손오공이 바라보는 과거의 그는 눈앞에 누운 여인의 손을 꼭 잡고 조용히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잃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언제나 당당하고 오만해 보였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처연한 어조의 말이였다.


“......”


아무것도 모르는 위지혁으로선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죽기 전 내가 잃어버린 나의 반신이다. .....저 녀석과 만나고 나서야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이들도, 아니 하늘의 별보다 더욱 눈부시게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잠시 입을 다문 손오공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녀에게 좀 더 잘해 줬어야 할까. 그도 아니면 그녀의 스승이란 여래를 먼저 죽여 뒀어야 할까. 지금 와서 몇 번을 생각해도 후회만 가득할 뿐이지.”


“......”


“하. 왜일까. 이런 얘기를 너에게 꺼내는 이유는. 널 보고 있자면 과거의 내가 떠오른다.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를 잃어버린 기억 때문일까.”


“그래서 날 살린 건가?”


“.....살렸다고 하기엔 어폐가 있군. 너는 그저 나의 파편 중 하나를 몸에 거두었을 뿐이다. 내 의지와는 무관한 육체인 백과 정신인 혼의 결합일 뿐. 기억에 없나? 나를 가두고 있던 부적을 네가 찢고 코와 입으로 흡입했던 것을.”


“아.”


떠올랐다. 자신의 가족을 죽인 도사와 처음 마주했을 때가. 분명 정신없이 도망치던 중 무언가 가루가 되었던 느낌이 있긴 했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그것인가?’


고민하는 사이 손오공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넌 나와 닮았다. 소중한 이를 잃고 삐뚤어진 이 세계를 부정하지.”


“부정이라고?”


“너와 난 한 몸이나 다름없어. 너도 지금 어느 정도는 내 감정을 느끼고 있을 텐데. 나 또한 네 감정과 기억도 알 수 있고.”


“......기분 나쁘군.”


“큭. 목숨을 건졌으면 그 정도는 받아들여라. 그도 아니면 나를 누를 수 있을 만큼 강해져.”


“......그럴 생각이다.”


“그래. 겹쳐진 길을 함께 걸어가는 이로서 네가 힘을 바라는 이상 나 또한 도와주마.”


쿵.


둘이 있던 세계가 뒤흔들렸다.


“이런.”


“뭐지. 지진?”


“누군가 내 정신세계로 들어오려나 보는군.”


“....도사인가?”


“아아. 떠올리기 싫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해준 보답을 해줘야겠군.”


“뭐?”


“잠시 몸을 빌려줘라. 애송이.”


“........어째서?”


“질문에 질문으로 답해야겠군. 네 가족이 죽어가던 것을 누군가 들쑤신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나?”


“더러운 기분이겠지.”


“그래. 그게 대답이다.”


“설마, 죽일 셈인가?”


“.....가능한 살려보도록 노력은 해보지. 나 또한 살생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까.”


“특이하군, 당신은.”


“대답은 나온 것 같군. 잠시 몸을 빌리마.”


“아아.”



***



화아아악.


위지혁의 몸에서 적갈색의 체모가 돋아났다. 손오공은 일어나자마자 팔을 돌리며 몸을 풀었다. 손을 쥐었다 펼 때마다 뼈소리가 들려왔다.


“으....다....당신은..”


도인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너냐? 보패를 사용한 것이.”


도인은 대답도 하지 못하고 몸을 벌벌 떨었다. 존재로서의 격. 그것을 방금 전 내면세계로 여실히 보았기에 그저 두려울 뿐이었다.


“혁 자네인가?”


초승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아니다.”


손오공의 단호한 답변이 바로 이어졌다.


“.......당신은 누구지?”


“그렇게 경계할 것 없어. 이 몸 주인이 뜻에 반하는 짓은 할 생각이 없다. 그저 불쾌한 기억을 보여준 저 놈 때문에 짜증이 났을 뿐이야.”


“......위지혁과 나는 여기서 수행을 받아야 하는 처지요.”


“알아. 그저 그냥 보패를 부셔버리고 싶을 뿐이니까.”


“수행을 위해 참아줄 순 없겠소?”


“너 또한 자신의 기억을 헤집어졌을 텐데? 그걸 당했으면 내가 어떠한 마음인지 대충 이해는 가지 않나”


“......”

초승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 또한 그에 대한 원망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니까. 허나 좋건 싫건 수행을 받아야 할 처지라는 것 또한 변함없는 사실.


그렇게 초승이 망설이는 사이 손오공은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손오공이 다가오자 벌벌 떨던 도인이 간신히 떨림을 이겨내고 움직였다.


“질(疾)”


도인들의 상투적 어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곧 이내 그의 주변에 있던 보검이 공중을 수놓았다.


캉!


카앙!


수 자루의 검이 손오공의 몸에 상처하나 내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으....”


“권주를 멀리하고 벌주를 마시려고 하지마라.”


“.....존귀한 자여.”


“호?”


도인의 호칭에 손오공이 감탄성(感歎聲)을 내었다.


“나를, 이곳을 적대하려는 거요?”


“적대는 무슨, 단지 보패 하나 부술 뿐인데.”


“......부신다면 후회하게 될 것이요. 저 보패는 그분이 만드신 보물. 게다가 감히 필멸자인 내가 처분을 논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요.”


“하. 역시나. 네놈 정도가 만들 물건은 아니긴 했지. 누구냐. 그분이라는 건. 보패를 만들 정도라면 분명 이 곳의 주인일 터.”


“그분은-”


“나는 여기 있습니다만.”


어디선가 가냘픈 음성이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돌아갔다. 아리따운 여 선자의 모습이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너냐?”


여 선자의 모습이 어떻건 간에 독이 오른 손오공이 으르렁 거렸다.


“......흠. 신기하군요.”


여 선자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의문을 입에 담았다.


“대답이 아니군. 보패를 만든 손모가지채로 분질러주랴?”


“당신, 섞여있군요. 인간이면서 요괴라고 해야 할지....”


“...그래. 계속 지껄이고 있어라. 그 턱부터 뭉개주마.”


손오공이 여 선자에게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푸콰앙!!


손오공의 돌진이 여 선자를 밀어내며 가옥의 벽을 뚫어버렸다.


“이런. 아무래도 몸을 쓰는 것은 서투른데 말이죠.”


여 선자가 밀려나는 도중에 공중에서 한가로이 말했다.


“하. 어쩐지 정신계 보패를 쓰더라니.”


“....그게 보패의 성향과 무슨 관계가?”


여 선자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정신계 보패를 사용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그러하거든. 움직이는 게 서툴거나, 내향적인 녀석들이 주로 정신계 보패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


“.....편견이군요.”


콰아아아앙!


말하는 것도 잠시 곧 두 사람의 신형이 땅바닥에 쳐 박혔다.


흙먼지가 비산하고 땅이 흔들렸다.


“이런이런. 흙먼지가.”


“맘에 안 드는군.”


“흐음....뭐가 말입니까?”


여선자의 느긋한 말투가 흙먼지가 자욱한 가운데서 울려 퍼졌다.


“그 느긋한 목소리. 여유작작(餘裕綽綽)인 그 태도가 짜증나서 견딜 수가 없다.”


“흐음.....그야 당연한 것 아닌가요? 선인과 선인이 싸우는 이상 강한 쪽이 여유로울 수밖에요.”


“미친 년.”


손오공이 거칠게 말했다. 모욕이었다. 선계의 그 누구도 두려워 하지 않고, 모든 이들의 경외의 대상이었던 자신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


“그야......당신이 강한 이라는 것은 제 보패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허나, 그것도 당신이 정상일 때 얘기 아닐까요?”


“......”


“요선인 당신께서 인간의 몸에 있을 이유로 생각나는 것은 몇 개 되지 않습니다. 봉인당했거나, 힘의 일부분을 나눠주어 사도 내지는 화신으로 사용한다던가. 헌데 아무리 보아도 화신 같지는 아니하고. 결국 모종의 사정으로 육신을 잃어 인간의 몸에서 동거하고 있다....라고 생각됩니다만?”


“하. 그래서? 네 년이 날 어쩔 수 있다고?”


“흐음.....”


여 선자가 느릿하게 검결지를 들어 올려 손오공을 가리켰다.


카아앙! 커다란 둔기가 손오공을 때리고 땅에 떨어졌다.


“과연. 그런 상태에서도 그 정도의 금강불괴라니. 대단하군요.”


손오공은 상대의 말투가 더 없이 불쾌했다. 허나 그럼에도 바로 달려들지 않는 것은 예감 때문이었다. 앞으로 나아간다면 위험하다는 경종이 그의 발을 제지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당신을 어찌할 수는 없고, 결국 이것을 사용해야겠군요.”


여선자가 소매에서 자그마한 방울을 꺼냈다.


보자마자 느껴졌다. 위험하다 라는 생각을 떠올리기 전 찌릿하게 느껴지는 육감으로 손오공이 움직였다. 손오공이 달려드려는 순간, 여선자의 말이 울렸다.


“울어라. 낙혼령(落魂鈴)”


따르르르랑.


마치 옥구슬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손오공의 귓가에 스며들었다. 그 소리를 들리자마자 손오공의 육신에서 힘이 빠지며 앞으로 쓰러졌다. 그렇게 잠이 들은 것처럼 누워있던 위지혁의 육신이 꿈틀거렸다.


“으......”


위지혁이 육신이 땅을 짚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퉤...퉷. 도대체 땅바닥에 얼굴은 왜 박고 있는 거야.”


입속에 들어간 흙을 뱉어내며 위지혁이 말했다.


“일어나셨나요?”


“??”


모르는 목소리에 위지혁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저희 선인동에 입문하겠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여선자의 물음에 위지혁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누구인지도 정확히 몰랐지만 대답해야만 할 것 같았다.


승낙하는 것을 본 여 선자가 다시 말했다.


“저희 선인동은 선도에 몸을 담으려는 자를 환영한답니다. 그래. 그대가 선도에 몸을 담으려는 바는?”


여 선자의 기묘한 목소리에 이끌렸을까. 위지혁의 입이 저절로 굴러갔다.


“힘을.....이 비틀어진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이 썩어빠진 세상을 바꾸기 위한 힘이 필요합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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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화 여선자 24.02.10 33 0 12쪽
19 18화 시험 24.02.08 35 0 14쪽
18 17화 남섬부주 24.02.04 52 0 11쪽
17 16화 단(丹) 24.02.03 44 0 12쪽
16 15화 분열 24.02.01 84 0 11쪽
15 14화 최후 24.01.31 70 0 12쪽
14 13화 대결 24.01.30 43 0 11쪽
13 12화 되살아나는 자 24.01.28 39 0 14쪽
12 11화 살아간다는 것 24.01.26 53 0 12쪽
11 10화 천축의 진실 24.01.25 41 1 11쪽
10 9화 이상(異常) 24.01.24 61 1 11쪽
9 8화 사냥 24.01.23 73 1 12쪽
8 7화 천축에서의 일상 24.01.21 61 1 11쪽
7 6화 무공입문 24.01.20 70 2 13쪽
6 5화 천축 24.01.12 75 2 16쪽
5 4화 제천대성 24.01.10 130 2 11쪽
4 3화 혼세암주 24.01.07 127 3 12쪽
3 2화 장이족 24.01.06 150 2 11쪽
2 1화 혈원불사 24.01.06 170 3 12쪽
1 서(序) 24.01.06 244 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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