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에게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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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
작품등록일 :
2023.12.19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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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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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8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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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되살아나는 자

DUMMY




위지혁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들렸던 것처럼 목소리의 주인은 낙명이 틀림없었다.


허나 보이는 모습은 그렇지 않았으니.


마치 급하게 이어진, 아니 찢어진 것을 억지로 봉합했다고 해야 부르는 것이 옳은 모습 자체가 굉장히 괴이했다.


인간의 몸이 저런 식으로 꿈틀대며 괴상하게 이어져 있을 수 있는거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 모습은 마치 인간이라기보다는....


“......괴물!”


“클. 너무하는구나. 그래도 마을에 한 달 넘게 지내면서 나름대로 정이 깃들지 않았더냐.”


“.....모습도 보이지 않고 아이들이나 제물로 바쳐 대는 작자와 친해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쯧. 거센 놈이로고. 들어왔을 때 바로 교육을 했어야 하나.”


“닥치고, 죽었어야 할 놈을 다시 제대로 지옥에 쳐 넣어주지. 지옥의 빗장이 헐거웠던 것 같으니.”


“크.....”


낙명의 일그러지고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진하게 지어졌다.


“그래. 사내라면 그래야지. 네놈의 그 혈기 찬 모습을 보자니 옛 강호가 떠오르는구나. 그래......정말 다들 죽어나자빠졌지. 강했던 놈들도, 약했던 놈들도 모두.”


“그래. 곧 네놈도 죽는다.”


“크하하하하하하핫. 사실 말이다. 네놈에게는 감사하고 있다.”


“뭐?”


위지혁이 황당하다는 뜻으로 반문했다.


“뭔 ....개소리를...”


“장이족이란 선계에 있어 보기 드문 이들이다. 사실 그것을 그들의 개체 수나 번식의 어려움보다는 선인들이 그들을 보면 가만히 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


위지혁은 무슨 소리를 늘어놓나 싶어 잠자코 듣고 있었다. 한순간의 틈이라도 생기면 놓치지 않겠다는 심산으로.


“그들의 몸과 정신은 선계에서는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거든. 선도를 닦는 이들에게 그들은 정말로 좋은 수행의 재료로 그야말로 극상의 재화들이지.”


“재....화라고?”


“그래. 선도가 바라는 바를 충족시켜 주는 더할 나위 없는 물건이자 재료.”


“.......완전히 미쳐버렸군.”


“쯧. 네놈이야말로 미친 게 아니더냐. 마을 전체를 위해 아이를 희생시키는 것에 분노하는 것도 사실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만은.....그건 그렇다 치자. 허나 장이족은 인간이 아닌 타 종족이지 않느냐. 그것도 우리 인간으로서는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해도 모자란 선계의 종족. 우리 인간이 얼마나 선계인들에게 시달려 왔는지 어린 네놈은 제대로 모르고 있다!”


“......하. 그럼 묻지. 네놈이 그렇게 떠받드는 본존은 선계인이 아닌가?”


“.......”


쉬지 않고 움직이던 낙명의 입이 한순간에 멈추었다.


“도움이 되냐 되지 않느냐로 희생자를 고르고, 강한 선도인에게 빌붙어 힘이라는 꿀을 받아먹으려는 네놈과 네놈이 그토록 싫어하는 선도인과 무엇이 다른 거냐!!!”


“이.....이 애송이가. 닥쳐랏!!!”


낙명이 분노에 사로잡혀 위지혁에게 돌진했다. 상대의 움직임에 위지혁도 화답하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서로가 서로를 용납할 수 없는 이들, 둘의 대결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죽어. 죽으란 말이다!”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말에 충격을 받은 탓일까? 낙명은 분명 서두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양 자간에 현저하다 못해 천양지차의 싸움경험은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있었다.


격분이 너무나도 큰 나머지 오랜 세월 닦아온 낙명의 초식과 무(武)는 분명 원래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초식이란 무릇 정해진 투로에서 어느 정도 정해진 기의 분배를 통해 펼쳐지는 법.


본존의 힘을 통해 되살아나긴 했지만 되살아난 육체의 흥분과 위지혁에게 입은 마음의 충격이 그를 광기로 몰아넣고 있었다.


“요리조리 잽싸게 피하기는. 구법보를 만든 것이 이몸이다. 이 몸이란 말이다.”


분명 자신이 만들어낸 무공이기에 훤히 보임에도 그는 위지혁의 손에 들린 보검에 상처만 입을 뿐이었다.


수십이 넘는 공방이 이루어짐에 따라 낙명의 몸에서는 핏자국만이 늘어났다. 허나 본존의 힘 덕분에 들끓어 올랐던 흥분이 점차 가라앉고 있었다.


마치 피속에 흥분이 담겨 있던 것처럼.


홰액!!


매서운 일격이 낙명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슬아슬한 일격. 분명 한 치만 빗나갔어도 목이 찢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낙명이 냉정을 되찾기 시작한 명백한 증거였으니.


목에 이어 팔과 몸을 수없이 노렸지만 수십 번의 공격은 모두 맞추지도 못한 채 빗나가기만 했다.


‘......이 미친 괴물이..’


위지혁도 위화감을 느낀 지 오래, 처음에 느껴졌던 손맛은 온데 간데 없고 그저 허공을 베는 기분 나쁜 느낌만이 몸을 지배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눈앞의 괴물에게 쓰러지면, 자신은 물론 장이족들까지 끝이었다. 그의 뇌리에 장이족들의 모습과 맑게 웃던 명옥상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클. 왜 그러느냐. 공격이 뜸하구나.”


낙명이 위지혁을 도발했다. 이제서야 노회한 그다운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왜? 뭔가 이상하더냐?”


"......."


“네놈의 무공이라고 해봐야 한 종류. 그것을 훤히 아는 정도가 아니라 창시자의 앞에서 아무리 애를 써 봐도 한계가 명확한 법이다. 어떠냐. 시세를 아는 자가 준걸이다. 지금이라도 장이족들을 내놓고-”


말하는 도중 위지혁의 칼날이 낙명의 목을 노려왔다. 살짝 느슨해진 낙명의 틈을 노린 공격이 아쉽게 빗나갔다.


“말이 많아. 늙은이.”


“쯧. 마지막으로 건네는 자비였거늘.”


정확히 두발자국을 물러나 낙명이 말을 이었다. 물론 말하는 것은 거짓이었다. 자신의 속을 통렬히 파헤친 위지혁을 이미 죽이기로 마음먹은 그였다.


“나불나불 떠들기는. 말로 날 죽이기라고 하려고?”


“어리석은 놈.”


낙명이 확실하게 살의를 가지고 공세에 나섰다. 허리춤에 차고만 있던 검이 검명을 토하며 공간을 갈랐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초식에 위지혁은 금방이라도 검에 베어져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금세 수세에 몰린 위지혁의 목에 거센 검광이 뚫고 지나갔다.


파캉!!!


“콜록.”


“괴물 같은 놈. 검강으로도 뚫리지 않다니.”


“크으...쿨럭. 퉷.”


아무리 목이 뚫리지 않았다 해도 검강에 목을 직격으로 당한 탓에 상당한 충격이었다. 위지혁이 기침하다 침을 토해낼 정도였다.


“허나 제 아무리 금강불괴라도 충격은 입었군. 결국 진정한 의미의 금강불괴는 아니란 거지.”


“크으으으으으....퉷. 그래서 이딴 것으로 나를 죽일 수 있을 거 것 같아?”


“자신도 모르는 힘에 취해버렸구나. 네놈이 결코 무적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마.”


“누가 할 소릴!!! 선도에 혼을 팔아버린 네놈이 도취를 논해? 개가 웃을 일이다!!!”


“....그래 어디 죽어서도 나불댈 수 있는지 알아볼 참이었다!!!”


말을 마친 낙명이 위직혁의 유근혈을 짚었다. 그리고 곧 이어 상반신과 팔의 대여섯 군대의 혈도를 짚자 위지혁에게서 곧 반응이 나타났다.


“큭....”


“아무리 외피가 단단하다고 한들 네놈의 내부도 기가 흐르는 피와 살이라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그렇다면 내부를 진탕시키는 점혈은 무공에 관해서 초보자 수준인 네놈에게 유효한 수법이지. 네놈은 네놈 스스로도 제대로 다스릴 수도 없는 그 힘으로 자멸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생전 처음 겪는 고통에 위지혁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크으으으으”


낙명이 위지혁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감상하며 입을 열었다.


“꽤나 버티는구나. 어설픈 금강불괴라도 역시 금강불괴라 이건가. 하지만 점혈은 끝난 것이 아니다. 어디 계속 해보도록 하자.”


‘크으으으’


스스로도 이것이 위기라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는 자신이 무사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위지혁의 몸을 지배했다. 하지만 이 고통스럽고 궁지에 몰린 상황이 그를 변혁시키고 있었다.


타다닥.


“음?!”


낙명의 손길이 처음으로 빗나갔다. 상대가 구법보를 펼치는 이상 눈감고도 맞출 수 있다고 자신하는 낙명이 처음으로 당혹감을 느꼈다.


‘이놈이?’


사람이 무언가를 할 때는 처음 한 번은 어렵고 그 다음 차례가 오면 올수록 쉬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의 학습능력이란 그러한 것.


그렇기에 위지혁의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에 낙명의 손이 차츰차츰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냐!!”


다시 한 번 검광이 번쩍이며 검강이 공간을 갈랐지만 위지혁은 곧이곧대로 맞아줄 생각이 없었다.


“크윽.”


제대로 대응할 수도 없는 처음과는 전혀 다른 회피 방식. 분명 다시 한 번 목을 향해 날린 참격 이었건만 맞은 곳은 어깨에 지나지 않았다.


‘분명 언제든 잡을 수 있는 조금 단단한 벌레였거늘....’


그것이 조금 전까지 위지혁을 보던 낙명의 인식이었다. 분명 그러했을 터였다. 그런데 도대체 어째서....


“네놈 설마 처음부터 딴 무공을 알고 있었던 거냐? 그렇지 않고서야...”


“뭔 정신 나간 소리를 하고 있어? 미친 늙은이가.”


“.......”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위지혁이었고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모를 낙명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설마하니...


“내가 사용하는 무공을 훤히 아는 정도가 아니라 창시자의 앞에서 아무리 애를 써 봐도 한계가 명확한 법이다. 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지. 누구도 본적 없는 무공을 지금 여기서 새로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지.”


“무슨...말도 안 되는...무공을 만든다는 것이 무슨 고기라도 굽는 것처럼 확 간단하게 만들어지는 줄 아느냐!!!!!!”


“큿. 지금 점점 피하는데 능숙해지는 나를 보면서도 그런 말이 나오나? 지금 이렇게 서있다는 것 자체가 명확한 증거라고. 늙은이.”


“.......”


문답은 그걸로 끝이었다. 그리고 다시 싸움이 시작되었다. 좀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유는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고 시작했기 때문이었을까. 그 흉험함과 기세는 지금까지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낙명은 수백 년 만에 위기감이라는 것이 샘솟기 시작했다.


위지혁의 보법과 초식은 전부 낙명 그 자신이 만든 무공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일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 원형을 찾아볼 수도 없이 위지혁에서 손에서 재창작되고 있었다.


물론 그 대부분은 초식의 투로가 정해진 것이 아닌 그 때 그 때 위지혁의 감각과 즉흥에 의해 새로 만들어지는 것에 가까웠지만. 그럼에도 효과적이었다.


낙명에겐 언제든지 짓눌러버릴 수 있는 벌레라고 생각했던 위지혁이 마치 태산처럼 느껴졌다.


‘그럴 리가.....그럴 리가 없다. 이런 곳에서 ......이런 놈에게 죽기 위해 수백 년을 살아왔던 것이 아니다.’


낙명의 뇌리 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정확히 몇 년 전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옛 일. 허나 어느 때의 일이라는 것은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이 마을을 만들었던 시기의 자신이었다.


“......왜 그리 슬피 우느냐?”


“......매일매일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습니다......도와주십시오. 하루라도 쫓기지 않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흐음.....그러면 나에게 멀 해 줄 수 있지?”


그래. 그랬다. 그때 자신은 악마와 손을 잡아서라도 살아남겠다고. 지금 이런 곳에서 죽기 위해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살아온 것이 아니었다.


“우..........꺼져라. 이 괴물같은 놈!!!!”


끓어오르기 시작한 울분이 마침내 터져 나왔다.


수백 년을 닦아온 무공의 정화(精華). 한 초식에 그가 닦아온 모든 것을 담아 펼쳤다.


낙명일도(落命一劍)


위지혁은 아직 미숙했지만 미숙한대로 그 기세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일격은 그냥 받아 넘길 수는 없다고.


그가 스스로 펼치는 것에는 형태도, 이름도 없었지만 위지혁 또한 초식에 모든 것을 담았다. 지금까지 얻어온 것, 앞으로를 향한 의지 모든 것을 담아.


그리고 서로의 검과 검이 부딪쳤다. 마치 서로간의 신념을 담은 것처럼.


푸캉!!! 챙그랑!


한쪽의 검이 부러져 떨어졌다.


“이......이런 말도 안 되는..욱..컥..그르르르....”


기우뚱.


패자의 몸이 기울었다. 멀쩡했던 목이 순식간에 갈라져 피와 목소리가 되기 전의 소리를 흘려보냈다.


“으.......”


분명 다른 이라면 죽었을 상처였지만 그리 쉽게 죽지는 않았다. 흐르던 피가 엉겨 붙더니 상처를 막기 시작했다.


“커..컥....커헉...”


피기침을 내뱉는 낙명을 물끄러미 보던 위지혁이 입을 열었다.


“질기군. 그래. 어디 육편으로 만들어놔도 살아날지 보자고.”


위지혁이 발걸음을 옮겨 천천히 낙명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우.....”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낙명이 뒤로 물러났다. 평소의 그를 떠올릴 수 없는 추한 모습이었다.


‘아.....안 되. 여기서.....여기서 죽을 순 없어.’


‘기다리기 지루하구나.’


‘어..? 본....존..’


그것이 낙명이 기억하는 마지막 기억이었다.


부들부들.


낙명의 몸이 학질이라도 걸린 것처럼 경련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위지혁이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리고 검이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졌다.


쇄애액!


분명 갈랐을 터인 검에는 피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오랜만이다. 원숭이.”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무언가 조금 다른 목소리.




작가의말

잘못 올라간 글을 수정했습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선작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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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8화 시험 24.02.08 35 0 14쪽
18 17화 남섬부주 24.02.04 52 0 11쪽
17 16화 단(丹) 24.02.03 44 0 12쪽
16 15화 분열 24.02.01 84 0 11쪽
15 14화 최후 24.01.31 70 0 12쪽
14 13화 대결 24.01.30 43 0 11쪽
» 12화 되살아나는 자 24.01.28 39 0 14쪽
12 11화 살아간다는 것 24.01.26 53 0 12쪽
11 10화 천축의 진실 24.01.25 41 1 11쪽
10 9화 이상(異常) 24.01.24 61 1 11쪽
9 8화 사냥 24.01.23 73 1 12쪽
8 7화 천축에서의 일상 24.01.21 61 1 11쪽
7 6화 무공입문 24.01.20 70 2 13쪽
6 5화 천축 24.01.12 75 2 16쪽
5 4화 제천대성 24.01.10 130 2 11쪽
4 3화 혼세암주 24.01.07 127 3 12쪽
3 2화 장이족 24.01.06 150 2 11쪽
2 1화 혈원불사 24.01.06 169 3 12쪽
1 서(序) 24.01.06 244 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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