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빼앗긴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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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작품등록일 :
2024.01.02 21:58
최근연재일 :
2024.02.1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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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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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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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5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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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전쟁(1/2)

DUMMY

#1 (공원의 끝 바깥, 벽 너머)


도플라와 엑스는 로비 밖으로 나온다.

엑스는 처음 나와보는 바깥세상에 눈이 먼다.

공원 안에서 불던 따뜻한 바람이 아닌 조금은 쌀쌀한 바람, 독방에서 보는 뿌옇게 흐물대던 태양이 아닌 감히 눈 뜨고 쳐다볼 수 없는 밝은 빛의 태양, 심어놓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자연 스스로 키워진 나무와 울창한 숲, 그리고 감히 상상해본 적 없는 하늘 위로 높게 뻗은 절벽.

그 모든 것들에 엑스는 시선을 빼앗긴다. 퀭하기만 하던 그의 눈에 초점이 모인다. 하나씩 보고 하나씩 들으며 하나씩 느끼기 바쁘다.

그런 그의 감상을 끝내는 것은 도플라다.


“그년 구하고 싶은 건 너 아니었나?”


엑스는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공원의 끝 문을 열 장치를 찾는다. 모든 것이 생소한 그는 문을 열 스위치의 생김새 따위를 알 리가 없다.

두리번대며 얼 타는 엑스를 도플라가 발로 걷어찬다.


“여기다. 이 멍청아.”


도플라는 문과 연결된 박스 앞에 서 있다. 그 박스 위로는 비밀번호를 누르게끔 되어 있다. 도플라는 머리를 긁는다. 그러다가 대충 아무 숫자나 눌러본다.


1,2,3,4.

“삐빅-, 비밀번호가 틀렸습니다.”

0,0,0,0

“삐빅-, 비밀번호가 틀렸습니다.”

“뭐하는 거야?”


엑스가 도플라의 어깨를 잡고 묻는다.

도플라는 단검을 뽑아 어깨에 있는 손을 밀어내며 말한다,


“내 몸에 손대지 마. 다음번엔 잘라버릴 거야.”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시간 없어.”

“이 박스 안에 스위치가 있어. 모르면 제발 입 닥치고 기다려.”


엑스는 도플라의 말을 듣고 뒤돌아 어디론가 걸어간다.

그런 모습을 보고 도플라는 한숨을 쉰다.


“어휴. 저 병신.”


그 뒤로도 도플라는 비밀번호를 누른다. 박스에서는 계속 같은 알림만이 뜬다. 도플라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생각한다.

‘도대체 비밀번호가 뭐야?’

도플라는 주변을 둘러본다. 높은 절벽 아래 길게 뻗은 건물. 그리고 그 옆에 놓여있는 작은 표지판 하나. 표지판은 현재의 건물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아이언스의 언어로 표지판에 무어라 적혀있다.

[KE,S8]

‘에이 설마?’

도플라는 천천히 표지판에 있는 명칭을 적는다.


삐-, 삐-, 삐-.

빠직-.


“응?”

“비켜. 애꾸새끼야.”


어디선가 큰 돌을 들고 온 엑스가 옆에 서 있다. 그는 박스를 돌로 반쯤 날려버렸다.

도플라는 그 모습을 멍청하게 쳐다본다.

엑스는 한 차례 더 힘차게 박스에 돌을 내리찍는다.


빠직-.

삐용삐용삐용-.


박스가 박살 나자 건물 밖으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진다.

도플라는 당황하며 주변을 살핀다.

박스 뒤에 있는 파란색 버튼을 엑스가 누른다.

그때 절벽 위에서 메머드의 발소리보다 훨씬 빠르고 큰 소리가 울려 퍼진다.


쿵, 쿵, 쿵, 쿵쿵쿵쿵, 쿵-.


“전군 공격!”

“가자!”

“으아!”


도플라는 커다란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서는 견백을 필두로 한 독립군이 절벽 아래로 쏟아져 내린다. 독립군의 모든 부대가 그곳에 집결해 있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절벽을 내려온다.


“뭐야? 저 새끼들이 왜 여기에?”


엑스도 그 광경을 쳐다본다.

도플라는 엑스를 잡아끌고 어디론가 숨는다.

엑스가 발버둥 치지만 소용없다.

도플라는 엑스를 바위 옆으로 숨기고 단검으로 목을 겨눈다.


“가만히 있어. 새끼야.”

“저들은 누구야?”

“욕망 덩어리들. 다 죽어 마땅한 짐승들.”


그 진귀한 광경을 본 엑스는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엑스는 그들의 얼굴에서 강렬한 의지를 본다. 누군가를 살리겠다는 의지, 승리하겠다는 의지, 기필코 인간으로 살아보겠다는 그런 굳은 의지들 말이다.

태어나고 자란 지 17년. 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본 모든 순간보다 건물 밖으로 나와 경험한 이 찰나의 순간이 훨씬 더 엑스의 피를 돌게 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간의 강렬한 표정에서 그는 알 수 없는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왔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집단이란 강렬함에서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리고 그 안에 속해 있는 자신을 상상한다. 굳은 의지를 갖고, 강인한 표정을 지으며, 함께할 무리와 달려오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한 발 앞으로 걷는다.

도플라는 움직이려 하는 엑스를 바닥에 눕혀 제압한다. 그리곤 엑스의 턱에 단검을 가져다 대며 말한다.


“가만히 있으라고. 죽여버리기 전에.”

“야.”

“뭐라고? 야? 이 새끼가 미쳤나?”

“저게 네가 말한 욕망이란 거냐?”

“그래. 저게 욕망이다. 아주 더러운 욕망. 만족을 모르는 인간 새끼들의 욕망.”

“크크크크. 저거였어. 저거야. 갖고 싶어.”


엑스는 미친놈처럼 웃어대기 시작한다.

도플라는 그런 엑스를 보며 묘한 공포를 느낀다.

엑스가 웃어서일까? 아니면 도플라가 떨고 있는 걸까? 엑스의 턱을 겨눈 도플라의 단검이 떨려온다.


끼이이이-.


열려서는 안 되는 한 인간의 욕망을 품은 상자가 열리고 있다.


#2 (공원의 끝, 인간)


같은 시각. 공원 안.

햇님의 눈앞에 바람이 분다. 바람이 날아가는 결이 눈에 보인다. 꼭 누가 그림 그려 놓은 것처럼 눈에 보이는 바람을 보며 햇님은 신기해한다. 그 바람과 잎사귀들이 스산한 결말을 알리듯 천천히 날아간다. 시공간이 모두 느려진 듯한 기분. 햇님은 바람 한 줄기와 잎사귀 하나가 날아간 공간 멀리에서 아이언스가 걸어오는 것을 본다.

아이언스 하나는 무리를 향해 걸어온다. 햇님은 와이비의 손을 꼭 잡고 자신의 뒤로 보낸다.

햇님의 등 뒤에 숨어 있는 것은 와이비만이 아니다. 햇님이 이끄는 무리 모두가 저 작은 소녀의 등 뒤에 서 있다.

햇님은 무리에게 소리친다.


“이제 곧 문이 열릴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나갈 겁니다. 절대 잡혀가지 마세요!”


씨엠은 아이언스를 보고 벌벌 떨며 짐승처럼 겁먹고 소리친다.


“그 멍청한 새끼를 믿고 여기서 싸우라고? 다 개죽음이야!”

“여기서 짐승처럼 살다 죽는 건 개죽음이 아니고? 밖에 무슨 세상이 있는지 당신들은 모르잖아?”


햇님을 바라보는 무리는 주먹을 꽉 쥐고 햇님의 말을 듣는다. 소리치는 햇님을 보며 아이언스는 무전을 치며 걸어온다. 햇님은 그 모습에 다시 한번 소리 지른다.


“여기서 나가면 자유에요. 저런 뿌연 가짜 하늘이 아니라, 진짜 맑은 하늘이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다고요! 제발 절 믿어주세요. 진짜 세상은 밖에 있어요.”


햇님의 말에 모두가 손을 잡는다. 그리고 햇님의 앞으로 나와 햇님과 와이비를 지킨다. 그들은 다가오는 아이언스를 향해 짐승처럼 소리치기 시작한다.


“으어아아!”


아이언스는 그 모습을 보고 진압봉을 꺼내 든다.


[무리를 지은 짐승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강제진압 시작한다.]


아이언스는 가장 앞선에 있는 남자의 어깨를 진압봉으로 내리친다. 남자의 어깨에서 우지끈 소리가 나며 남자는 고통에 몸부림친다.

옆에 서 있던 여자는 짐승처럼 아이언스에게 달려든다. 아이언스 다리를 붙잡고 물어뜯는다.


[윽!]


아이언스는 발에 힘을 주어 여자를 멀리 걷어찬다.

그 모습에 서른 명이 넘는 무리는 모두 아이언스에게 달려든다. 물어뜯고 주먹으로 내리치고 발로 걷어찬다.

많은 인원이 달려들자 아이언스는 속수무책으로 얻어맞는다.

씨엠은 아이언스의 진압봉을 뺏어 들고 아이언스를 내리친다. 씨엠의 동작이 커지자 다른 무리의 인간들은 슬슬 뒤로 물러난다. 분노가 가득한 표정으로 아이언스의 머리를 계속 내리친다.

아이언스의 머리에서 피가 터진다.

그런 씨엠의 팔을 햇님이 붙잡으며 말린다.


“그만 해요!”

씨엠은 자신을 붙잡은 햇님을 집어던진다.

햇님은 나자빠진다.

그런 햇님에게 진압봉을 들고 달려든다.

주변 무리는 행패를 부리는 씨엠을 막는다.

무리에게 붙잡힌 씨엠은 햇님을 보고 미친놈처럼 짖어댄다.


“다 죽여버릴 거야. 네년도! 꼭 내 손으로 죽일 거야. 밖에서 온 것들, 못 나가게 하는 것들 전부 죽여버릴 거야!”


씨엠은 자신을 말리는 무리를 뿌리치고 나무가 그려진 벽화 앞으로 간다. 그리곤 진압봉으로 벽화를 미친 듯이 여러 번 내리친다.


“열려! 열리라고. 왜 아직도 안 열리냐고!”


삐용, 삐용-.


공원에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진다. 경보음이 울려 퍼지자 공원을 감시하는 아이언스가 벽화 앞으로 모여들고 있다. 하나, 둘, 셋, 넷, 족히 열은 돼 보이는 아이언스가 무리를 향해 접근하고 있다. 그때 아이언스 무전에 명령이 떨어진다.


[여기는 본부. 공원의 짐승 하나가 독방으로 가던 중 이탈했다. 안에서 무리 생활을 하는 이들과 관련 있는 것으로 판단. 무리 생활하는 모든 짐승을 생포하라.]


열 명은 되어 보이는 아이언스가 무리로 걸어오자 무리는 금세 혼비백산이 된다. 씨엠 옆으로 모두가 달려들어 벽화를 두드린다. 종종 몇 명은 햇님을 향해 소리친다.


“금방 열릴 거라며!”

“그냥 독방에 잡혀간 거 아니야?”

“아 이러다 죽겠어. 살려줘!”

“살려줘. 제발!”

“문 열어!”


사람들의 절규에 햇님은 와이비를 더 세게 안고 눈을 질끈 감는다. 햇님은 생각한다.

‘생각해야 해. 살아야 해.’

햇님은 와이비의 발 뒤로 길게 이어진 파인 홈을 본다. 햇님은 와이비를 일으켜 벽화 쪽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 홈이 연결된 벽화에 손가락을 낀다.

두 그루의 나무의 딱 정중앙에 나무 높이까지 연결된 홈이 있다.

햇님은 소리친다.


“모두 이 파인 홈을 잡고 당겨주세요! 여기가 문이에요.”


무리의 인간들이 모두 달려와 벽화에 파인 홈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양쪽으로 당긴다. 그러나 철통같은 문은 열릴 생각을 안 한다. 문을 세게 잡아당기면 당길수록 오히려 사이렌 소리만 더 요란하게 울려 퍼질 뿐이다. 햇님은 멀리서 다가오는 아이언스를 보며 더 처절하게 문을 잡아당긴다. 기어코 햇님의 검지 손톱이 날아간다. 햇님의 다른 손톱도 절반은 뒤로 돌아가 있다. 햇님의 손에서는 피가 흐른다.

벽화 앞에 도착한 아이언스 무리는 햇님 무리를 진압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쉽사리 당해주지 않는다. 물어뜯고 소리치고 벗어나려 안간힘을 쓴다. 그런 인간을 진압봉으로 후려치며 제압한다.

면역자가 아닌 인간들은 각자 위치에서 나무와 바위 뒤로 숨어 벌벌 떨며 낑낑대고 있다.

햇님도 울부짖으며 문을 더 세게 잡아당긴다.


“제발 열려!”


끼이이이-.


녹슨 문소리가 기괴하고 거대하게 들린다. 두 그루의 나무 벽화는 서서히 멀어져간다. 두 그루의 나무 사이로 공원 안에서는 볼 수 없는 빛이 길게 들어온다.

그 빛이 한발 물러선 햇님에게 닿는다. 햇님은 생각한다.

‘따뜻하다. 진짜 빛이다.’

햇님은 그 빛을 보며 울컥한다.

두 그루의 나무는 점점 더 멀어지고 문이 끝에 닿으며 굉장한 굉음을 낸다.


쾅-!


햇님은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생각하지 못했던 매일 상상만 해 온 그리운 얼굴이 햇님을 기다리고 있다.


짤랑짤랑-.


풍경소리가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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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인간 말살 작전(3/12) 24.02.09 10 0 13쪽
46 인간 말살 작전(2/12) 24.02.08 8 0 13쪽
45 인간 말살 작전(1/12) 24.02.07 9 0 13쪽
44 죽음 24.02.06 6 0 13쪽
43 독립군 24.02.05 12 0 13쪽
42 운명 24.02.04 6 0 12쪽
41 전보 24.02.03 8 1 13쪽
40 씨앗 24.02.02 7 1 13쪽
39 작전 24.02.01 7 1 13쪽
38 전쟁 준비 24.01.31 9 1 13쪽
37 우물 24.01.30 8 1 13쪽
36 짐승 24.01.29 8 1 12쪽
35 협력 24.01.28 11 1 12쪽
34 화양연화 24.01.27 9 1 12쪽
33 불씨 24.01.26 11 1 12쪽
32 동족 24.01.25 17 1 11쪽
31 바알 24.01.24 9 1 13쪽
30 미산트라 24.01.23 12 1 12쪽
29 정착 24.01.22 13 1 13쪽
28 미래 24.01.18 15 1 14쪽
27 승리 24.01.17 11 1 12쪽
26 전쟁(2/2) 24.01.16 17 2 13쪽
» 전쟁(1/2) 24.01.15 15 2 12쪽
24 조우 24.01.14 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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