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빼앗긴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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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작품등록일 :
2024.01.02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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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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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2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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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

DUMMY

#1 (끝 마을, 정돈)


지구는 본래 생명력이 강하다. 고작 500년이란 시간 동안 꾸준히 바이러스를 제거하고 치료하고 다시 물을 주고 생명을 키워나갔다. 그 결과 짧은 시간 만에 죽어가는 지구는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기적이었다. 그러나 너무 빠른 재생의 결과가 문제였을까? 지구는 방심했다. 바이러스의 생명력을 우습게 봤다. 바이러스를 지구에 살아가는 생명체 중 하나로 인정해버리다니. 바이러스는 바이러스일 뿐이다.

500년 만에 정상궤도에 올라선 지구는 고작 톱질 한 번에, 고작 못질 한 번에 또 균형을 잃어버렸다.


탕-!


6중대 소속 병장 마틴은 초소의 기반을 잡는 첫 못질을 하고 있다. 망치질을 하다 말고 일어난다. 그는 절벽 옆, 길게 뻗어진 소나무 숲을 본다. 초소의 위치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 칸 더 옆으로 옮기자니 초소끼리 너무 붙을 거 같고, 그대로 짓자니 옆에 있는 소나무들이 시야를 가린다. 팔짱을 끼고 쳐다보던 그는 지나가는 6중대장 앵글로를 발견한다.


“독립! 중대장님.”


앵글로는 1소대장과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다가온다.


“마틴 병장. 무슨 일이지?”

“현재 제6초소를 작업 중입니다. 그런데 위치가 영 별로인 듯싶습니다. 이곳에 지으면 소나무들이 시야를 가려 초소가 제 역할을 못 할 거 같습니다.”


앵글로는 주변을 살핀다. 그러곤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소나무 숲을 3초 정도 쳐다보다 입을 연다.


“밀어버려.”

“잘 못 들었습니다?”

“다 잘라 버리라고.”

“···뭐를?”

“소나무 숲 말이야. 하루면 다 벌목하겠구먼. 싹 밀고 그 위치에 초소 더 지어. 언제 아이언스가 들어 올지 모른다. 경계는 생명이야. 거슬리는 거 있으면 다 뽑고 밀어.”

“네! 알겠습니다.”


앵글로는 1소대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절벽 아래로 내려간다.

마틴 병장은 들고 있던 망치를 집어 던지고 톱으로 바꿔 들며 중얼거린다.


“일 크게 만들었네. 조졌네.”


톱을 땅에 기대고 머리를 박박 긁는다. 그리곤 뒤에 있는 병사들을 보고 소리친다.


“초소 작업 끝난 인원들 집합. 오늘 안에 이 소나무 숲 벌목 끝낸다. 움직여!”

“독립!”


주변에 있던 병사들은 톱을 들고 걸어온다. 지구의 바이러스들은 그렇게 또 스멀스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2 (공원, 대화)


공원의 분위기는 한층 변해있다. 복도로 연결되던 모든 통로는 개방되어 있다. 사료를 제공하던 칸막이들은 다 부서져 한쪽으로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 쌓여있는 칸막이에 사발레타가 걸터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3중대장 애거시가 무리를 이끌고 다가온다. 그의 뒤로는 대충 옷을 여민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사발레타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애거시 왔어? 이 사람들이 마지막인가?”

“응. 전 건물을 다 뒤져서 찾아낸 사람들이야. 건물 규모가 말이 안 돼.”

“징그러운 새끼들. 인간들을 가둬 놓고 짐승처럼 교미를 시켜? 다음번에 만나면 그 대갈통을 씹어 먹겠어.”


애거시는 사발레타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돌린다.

사발레타는 애거시의 표정을 보지 못하고 혼자 분노에 차 있다.

애거시는 앞에 있는 사람 중 하나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 눈을 본다. 초점이 없다. 그는 사발레타에게 묻는다.


“아직도 이 상태인 거지?”

“응. 말이 안 통해. 뭔 짓거리들을 한 건지.”


쿵-.


복도에서 공원으로 순령이 밀쳐지며 엉덩방아를 찧는다.


“아야. 아파라. 뭐 하는 짓이야? 쿄헤이!”


복도에서는 아이언스가 입혔던 하얀색 옷을 입은 쿄헤이가 씩씩대며 걸어 나온다.

순령은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쿄헤이는 순령의 멱살을 잡으며 묻는다.


“다시 말해봐. 그게 무슨 소리야? 내 자리를 앵글로 꼬맹이가 차지했다니!?”


순령은 쿄헤이의 손목을 잡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다. 넘어진 쿄헤이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진정하라고 새끼야. 좀. 너의 생사도 모르는데 그럼 6중대를 중대장 자리를 비워 놓으리?”

“내가 목숨 걸고 가르텐을 살려서 내려보냈어. 그 뒤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너희가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 무사히 목숨 부지하고 살아 있는 거, 전부 내 덕분 아니야? 근데 내 자리를 그새 앵글로 그놈한테 넘긴 거냐고?”

“네가 사라지고 정신을 차리기까지 반년이 다 되가 인마!”

“뭐?”

“저기 보여? 너랑 똑같은 옷 입고 뭉쳐있는 사람들.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넋 놓은 사람들. 너도 저들 중 하나처럼 저러고 있었다고. 반년 동안!”


쿄헤이는 멍하니 순령이 가리키는 사람들을 쳐다본다. 그러다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치기 시작한다.


“으악! 으아아아아!”


쿄헤이는 난리를 치며 순령에게 달려든다.

사발레타와 애거시는 달려와 그런 쿄헤이를 막는다.

뭉쳐서 멍하니 있던 사람들 중 몇몇도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치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공원은 아수라장이 되고 병사들은 사람들을 진압한다.

열려 있는 문으로 견백과 괴테몰리가 뛰쳐나온다.


“이게 다 무슨?”


견백은 아수라장이 된 상황을 인상을 쓰며 쳐다본다.

괴테몰리는 눈을 찌푸리며 사람들의 행동을 바라본다.


“음. 금단증상인가?”

“그것보단 약효가 끊어지고 있다는 신호 같아요.”


독립군의 유일한 약사, 도따의 손녀인 메르닉은 공원으로 나오며 말한다.

괴테몰리는 그런 메르닉을 재밌다는 듯 쳐다보며 묻는다.


“약효가 끊어지고 있다?”

“네.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생각이 들어요. 그들이 상시로 투입한 약은 생각보다 독했고 그로 인해 자연 해독의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 거 같아요. 지금 소리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독립군이었던 즉, 조금은 적게 약이 투약된 사람들이에요. 쿄헤이 중대장님도 그렇고요. 그 반면 이곳에서 길러지던 반려인이라 불리던 사람들은 여전히 멍한 상태에요. 아마 깨어나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에요,”

“그렇구나. 그나저나 도따 영감은 뭐라든? 해독제는 아직 이래?”


메르닉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 뿐이다.

견백도 그 모습에 그저 한숨을 내쉰다. 그는 소리치고 있는 쿄헤이에게 다가간다.

사발레타와 애거시는 붙잡고 있던 쿄헤이를 놔준다.

견백은 머리를 부여잡고 난리 치는 쿄헤이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미안하다. 너무 늦게 구하러 와서 미안하다. 살아 있을 거라 믿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쿄헤이 넌 독립군 모두를 살린 영웅이다. 긴 시간, 너무나도 고생 많았다.”


쿄헤이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고개를 들어 견백을 바라본다. 그리곤 무릎을 꿇고 견백의 군화에 이마를 가져다 대고 흐느낀다.


“대장. 대장. 정말, 정말 무서웠습니다. 살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대장.”


견백은 흐느끼는 쿄헤이의 어깨를 다독인다.

그 모습에 두통을 호소하며 난리를 치는 다른 병사들도 진정이 된다.

견백은 그들을 보고 외친다.


“이제야 정신이 든 나의 동료들에게 전한다. 그대들은 독립군의 훌륭한 전사들이다. 잘 살아남아 주어 고맙다. 그대들의 노고를 나는 잊지 않을 것이며, 그에 걸맞은 충분한 보상을 할 것이다. 모두 다시 만나게 되어 너무나 반갑다.”

“독립!”


정신을 차린 병사들은 힘겹게 가슴으로 손을 올리며 답한다.

견백은 그런 그들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3 (건물 앞, 훈련)


작은 체구의 머리를 뒤로 묶은 한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말없이 눈앞에 있는 허수아비를 향해 작은 손도끼를 끊임없이 내리친다. 추운 겨울임에도 얇은 민소매 한 장을 걸친 그녀의 어깨는 제법 근육이 잘 잡혀있다. 작은 입에서 입김이 ‘후우-, 후우-.’ 불어 나온다.

하얗게 올라오는 입김 앞으로 쪼그마한 와이비가 예쁘게 머리를 딴 채 그 모습을 바라본다.


“햇님이 언니이이이이. 언제 끝나? 조금만 하고 놀아준다며!”


햇님은 내리치던 도끼를 멋지게 돌리며 허벅지 주머니에 꽂아 넣는다. 그리곤 와이비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는다.


“우와. 우리 와이비. 칭얼거리지도 않고 잘 참아줬네. 고마워.”

“그치? 와이비 착하지? 이제 다 한 거야? 이제 놀 거야?”


햇님이는 와이비 옆에 있는 옷들을 입으며 말한다.


“응. 뭐 하고 놀고 싶은데?”

“일단 엑스 오빠 찾으러 가자!”

“그러자.”


와이비는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그 뒷모습을 보며 햇님은 과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작은 아이였던 자신을 놀아주던 피어라,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햇님은 자신의 주머니에 꽂힌 손도끼를 매만진다.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신발로 뚝 떨어진다. 햇님은 주변을 둘러보며 급하게 눈물을 훔친다.


“울어서는 안 돼. 다 나 때문이잖아. 난 울 자격 없어. 당당히 언니의 무덤 앞에 설 수 있는 그 날까지 참아야 해.”


햇님은 기다란 입김을 내뿜은 뒤, 건물로 들어간다.


#4 (대련장, 훈련)


“아자자자자!”

“엇차!”


바람은 무식하게 바토에게 달려든다.

바토는 그런 바람을 가볍게 넘겨 바닥에 메다꽂는다. 그는 한심하게 바람을 쳐다본다.


“넌 어떻게 나아지는 게 없냐? 네가 정말 도플라 이긴 거 맞아?”

“내가 이겼다고! 한 판 더 해.”

“아주 푹신푹신한 땅바닥 위라 기세가 등등하네. 그때처럼 손모가지를 분질러 놔야 하는데.”


아이언스들이 대련장으로 쓰던 이곳은 바닥에 푹신한 매트가 깔려있다. 바람은 괜히 푹신한 매트 위를 주먹으로 내리친다.


“그때 손목 안 부러졌거든? 자고 일어나니까 완전 멀쩡하더구먼. 허세는.”

“아 분명 우지끈한 소리를 들었는데. 저 몸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몸이야?”

“잔말 말고 한 판 더하자고.”

“오냐.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손모가지를 분질러주마. 들어와.”


바람은 바토에게 달려든다. 그 모습을 멀리 문밖에서 엑스가 쳐다보고 있다.


“무식해.”

“엑스 오빠아아아아!”


와이비가 멀리서 달려온다. 엑스는 쪼그려 앉아 와이비와 눈을 맞춘다. 밖에 있어서인지 볼이 빨갛다. 그 뒤로 햇님이 걸어온다. 햇님이는 엑스 앞에 선다.

엑스의 오른손에는 총이 들려 있다.


“오늘도 총 훈련한 거야? 같이 하자니까.”

“그냥. 기다리기 지루해서.”

“기초 훈련은 받았어?”


햇님의 질문에 엑스의 표정이 일그러져있다. 어쩐지 사료를 먹을 때 자신과 비슷한 표정이다. 햇님은 그런 인간적인 엑스의 표정이 반갑다.


“야 이 자식아! 햇님이한테서 떨어져!”


바람은 문밖에 그들을 보고 매머드처럼 달려든다. 그런 바람의 뒷덜미를 바토가 잡는다.

바둥거리는 바람을 보고 햇님은 귀여워한다.

엑스는 짐승 보듯 바람을 바라본다.

와이비는 바람의 모습이 재밌는지 까르륵대며 따라 한다.


“다들 준비는 잘 돼 가지?”


바토는 셋에게 질문한다. 그들은 그저 어깨만 으쓱한다. 햇님은 웃으며 말한다.


“저는 힘들 거 같아요. 그래도 지원은 해볼 거에요.”


바람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햇님을 보며 말한다.


“햇님아. 위험하다니까. 선발대는 나처럼 강한 남자만 하는 거야.”

“맨날 얻어터지기만 하면서.”


엑스는 바람의 말에 구시렁대듯 작게 내뱉는다. 바람은 그런 엑스를 보며 흥분한다.


“이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게. 뭐라 그랬어!?”


바토는 그런 그들의 모습이 재밌다는 듯 웃는다. 엑스는 바토에게 묻는다.


“간부님. 선발대를 뽑는 기준은 그저 육체적인 싸움뿐인가요?”

“음. 지금까지는 그랬지. 그런데 견백 대장님이 이번 전쟁으로 총의 중요성을 알았다고 했으니까 총 잘 쏘는 사람도 선발대로 뽑지 않을까?”


엑스는 자신의 총을 매만진다.


“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기초 훈련이 되어야 할 거다. 그러니까 오늘 빼먹은 훈련 해야지?”


바토는 엑스를 잡고 대련장으로 들어간다. 바토에게 잡혀가는 엑스의 모습이 꼭 종잇장처럼 나풀거린다. 끌려가는 엑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퀭한 동태 같은 눈으로 돌아와 있다. 그 모습을 보며 햇님과 와이비 그리고 바람은 웃는다.

그들은 각자의 이유로 성장을 갈망한다.

누군가는 누군가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기 위해.

누군가는 목숨을 걸어서라도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누군가의 빛나는 욕망을 빼앗기 위해.


그리고, 또 누군가는 욕망하는 모든 인간을 앗아가기 위해.

어두운 방 안, 빛 한줄기 들지 않는 곳에서 거꾸로 매달린 남자는 홀로 훈련하고 있다.


철컹-.


문이 열린다.


“도플라. 나와. 사냥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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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죽음 24.02.06 6 0 13쪽
43 독립군 24.02.05 11 0 13쪽
42 운명 24.02.04 6 0 12쪽
41 전보 24.02.03 8 1 13쪽
40 씨앗 24.02.02 7 1 13쪽
39 작전 24.02.01 7 1 13쪽
38 전쟁 준비 24.01.31 9 1 13쪽
37 우물 24.01.30 7 1 13쪽
36 짐승 24.01.29 7 1 12쪽
35 협력 24.01.28 11 1 12쪽
34 화양연화 24.01.27 8 1 12쪽
33 불씨 24.01.26 10 1 12쪽
32 동족 24.01.25 17 1 11쪽
31 바알 24.01.24 9 1 13쪽
30 미산트라 24.01.23 11 1 12쪽
» 정착 24.01.22 13 1 13쪽
28 미래 24.01.18 15 1 14쪽
27 승리 24.01.17 10 1 12쪽
26 전쟁(2/2) 24.01.16 16 2 13쪽
25 전쟁(1/2) 24.01.15 14 2 12쪽
24 조우 24.01.14 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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