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빼앗긴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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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작품등록일 :
2024.01.02 21:58
최근연재일 :
2024.02.14 21:25
연재수 :
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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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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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9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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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짐승

DUMMY

#1 (삼각산, 조롱)


차이펑 영감은 손수 호이를 무장시켜 주고 있다. 호이 키에 맞는 창과 방패를 쥐여 준다. 꼭 친할아버지 같은 그의 따뜻한 손길에 호이는 마음을 연다. 차이펑은 미소를 짓는 호이를 안아주며 말한다.


“이렇게 마음씨 따뜻한 청년이 우리의 영웅이라 너무 다행입니다.”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짐승 새끼들 물리치고 우리 다 같이 잘 지내봅시다.”


차이펑 영감이 말을 마치자 멀리서 차이펑의 동료들이 달려온다. 그 무리의 숫자는 대량 총 스무 명 정도. 호이의 아버지인 흐엉뛰엔은 적어 보이는 인원을 보고 불안해한다.


“저, 영감님. 의심하는 것은 아니나, 이 정도 인원으로 가능할까요?”

“허허. 많이 못 미더우시죠?”

“아니, 아니요.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단지 이 인원이 전부인가 싶어서 물어봤습니다. 그냥 궁금증입니다. 하하.”


흐엉뛰엔은 민망해하며 웃는다. 차이펑은 흐엉뛰엔을 보고 인자하게 웃으며 말한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아드님은 창 한 번 휘두를 일 없이 금세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 아들은 왜 필요한 것일까요?”

“상징이죠. 승리의 상징 말입니다. 전투가 끝나고 나면 모든 게 이해가 될 겁니다.”


말을 끝내고 차이펑은 자신의 동료들을 보며 외친다.


“준비됐는가? 오늘 삼각사 스님 놈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이 산의 주인으로 살아갑세.”

“네. 영감님!”

“자, 출발하게.”


잘 훈련된 군인처럼 군기가 바짝 잡혀있다. 덩치가 가장 크고 살이 뒤룩뒤룩 찐 양 만덕을 필두로 바퀴족은 삼각사로 나아간다. 정작 영웅이라 불리는 호이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한다. 그런 호이와 호이가족들을 차이펑 영감이 데리고 나아간다.


“그저 삼각사 앞에서 앞장서 우렁차게 소리만 한번 질러주시면 됩니다.”


호이는 차이펑 영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어느새 그들은 삼각사 앞에 도착해 있다. 삼각사의 입구를 무장한 바퀴족이 틀어막는다. 스님들은 빗자루를 들고 걸어 나온다.

호이는 절 안에서 빗자루를 들고나오는 스님의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총 아홉 명이군. 이길 수 있다.’

그런 호이의 자신감을 본 것일까? 차이펑 영감은 호이의 등에 손을 대고 작게 이야기한다.


“영웅이시여. 앞으로 나아가시지요. 저 짐승 놈들에게 소리쳐서 알려주세요. 이제 그 사악한 짓을 멈추어라. 더는 너희들의 악행을 가만두지 않겠다. 라고 말입니다.”


호이는 긴장이 되는지 침을 꿀꺽 삼킨다.

차이펑 영감은 긴장하는 호이의 등을 밀어버린다. 호이는 밀려서 앞으로 나온다. 당황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응원하는 차이펑 영감과 자신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부모님과 코이의 모습이 보인다. 호이는 그들의 눈을 보니 자신감이 차오른다. 정확히는 아홉 밖에 안 되는 적의 인원을 보고 자신감이 차오른다. 호이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후 소리친다.


“이놈들아! 그따위 짓거리들을 하고도 살아남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오늘 우리는 너희를 모두 물리치고 삼각사를 차지하겠다. 그러니 너희가 한 짓을 반성하고 항복해라!”

“싫다 이놈아.”

“크크크.”

“킬킬.”

“킥킥킥.”


웃기 시작한다. 스님들이 아닌 바퀴족이. 호이는 웃음이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한없이 인자하게 웃던 차이펑 영감이 웃는다. 아주 사악하게.


“으흐. 으하하하. 크하하. 아이고. 나 죽는다. 나 죽어. 푸하하하. 저놈 얼굴 좀 봐라.”


호이는 당황하며 차이펑 영감을 바라본다.

호이 옆으로 한 스님이 걸어온다. 호이는 놀라며 창을 들고 경계한다. 스님은 그런 호이를 한심하게 보며 밀친다. 호이는 뒤로 자빠진다. 스님은 차이펑 영감 앞에 선다.


“영감님. 이게 또 무슨 짓입니까?”

“흐흐. 재밌지 않은가? 아이고 난 웃겨 죽을 거 같은데.”

“재미, 하나도 없습니다. 장난 그만 치시죠. 주지 스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이 재미없는 작자 같으니라고.”


차이펑 영감은 스님을 따라 걷는다. 그러자 뒤에 있던 만덕이 소리친다.


“영감님. 이놈들은 어쩔까요?”


차이펑 영감은 뒤를 돌아 호이네 가족들을 슬쩍 쳐다본다. 그러다 호이를 보며 묻는다.


“어이, 영웅. 너 우리랑 한 편 할래?”


호이는 정신을 차리고 차이펑 영감을 노려본다. 그리곤 벌떡 일어나 차이펑 영감에게 창을 들이민다.


“우리 가족 보내줘! 당장!”

“우리 편 할 거냐고 이것아.”

“닥치고 우리 가족 풀어달라고!”


호이가 당장이라도 영감 목에 창을 꽂을 듯이 위협한다.

차이펑은 화들짝 놀라며 소리친다.


“무섭잖아! 이것아. 만덕아 그 애비 놈 데리고 와.”

“네. 영감님.”


만덕이란 놈이 흐엉뛰엔을 질질 끌고 차이펑에게 데려온다. 그리곤 무릎을 꿇린다.

흐엉뛰엔은 잔뜩 겁먹고 영감에 발목을 붙잡는다.


“왜 이러십니까? 살려주세요. 우리 가족 좀 살려주세요. 영감님.”


호이는 여전히 창을 바짝 붙잡고 경계한다. 차이펑 영감은 호이를 노려본다.


“이놈아. 이 창 치우고 얘기하자.”

“우리 가족부터 보내줘.”

“만덕아. 요놈 말 안 통하는 거 같은데 그 애비 놈 다리에 흠집 좀 내라.”

“네. 영감님.”


만덕이 흐엉뛰엔의 다리를 잡고 올린다. 그리곤 아킬레스건을 칼로 살짝 긋는다. 흐엉뛰엔은 발목을 잡고 소리치기 시작한다. 뒤에 있던 가족들도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호이는 놀라 소리친다.


“그만하라고!”

“이 창 치워.”


호이는 아파하는 아버지를 보며 창을 버린다. 그리곤 무릎을 꿇고 차이펑에게 애원한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 제발 보내주세요.”


차이펑은 고개를 숙이고 호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묻는다.


“아니야. 이것아. 그건 정답이 아니라고. 내가 묻잖아. 우리 편 할 거야? 나랑 놀 거냐고?”

“네네. 시키는 건 모든 하겠습니다. 영감님. 가족만 제발, 가족만 살려주세요.”

“스님. 식량이 얼마나 더 필요합니까?”

“한 명분만 더 있으면 아마 이번 달은 무사히 지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감님.”

“으음.”


차이펑은 못 미덥다는 듯 스님을 바라본다.


“우리 몰래 식량 빼돌리고 그런 건 아니겠지요? 매번 이리 꼬박꼬박 가져다드리는데 왜 한 달 치 밖에 안 남았을까요?”

“꾸준히 가져오셔야지 이렇게 한 번에 가져온다고 능사가 아니에요. 다 썩는다고요.”

“쳇. 알았습니다.”


차이펑은 혀를 차며 다시 호이를 바라본다.


“들었지? 우리 식량이 한 명분 더 필요하다. 그러니 한 명분을 네가 선택해. 그러면 우리 편이 되는 거야.”


호이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에 바보 같은 표정으로 차이펑을 바라본다.


“네 엄마나 네 아빠. 둘 중 하나는 우리가 먹어야 할 거 아냐? 둘 중 누구로 하면 될지 네놈이 선택하라고. 이것아. 이거 쓸만한 놈인 줄 알았는데 말귀가 어두워.”


기다리던 스님은 짜증을 내며 영감을 잡아끈다.


“차이펑 영감님. 장난 그만 치시라고요. 주지 스님이 기다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개잡놈의 빡빡이 새끼가.”


차이펑 영감은 자신을 잡아끄는 스님의 손목을 꺾는다. 그리곤 스님의 민머리를 손바닥으로 내리치기 시작한다. 민머리를 치는 소리가 꼭 뺨을 치는 소리와 비슷하다.


짝, 짝, 짝-.


스님의 머리가 빨갛게 된다. 차이펑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빗자루를 뺏어서 스님을 패기 시작한다. 스님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고 바닥에 처박혀 너덜너덜해질 때쯤 차이펑은 진정하기 시작한다. 그러곤 스님을 보며 이야기한다.


“스님. 이번 달 식량이 되고 싶지 않으면 자중 좀 하세요. 내가 나이가 먹으니까 식탐은 줄어드는데 이이 삶이 무료해. 그래서 재미 좀 보려는데 왜 자꾸 방해합니까?”

“죄, 죄송합니다.”

“그래요. 우리 조금만 기다립시다. 거기 그렇게 누워있어요.”


차이펑의 미친 짓을 보며 모두가 겁에 질려있다. 호이도 잔뜩 쫄아 차이펑을 바라본다.


“아이고 우리 편. 이제 말이 좀 통할 거 같은 얼굴이네. 자자, 이야기해봐요. 엄마예요? 아빠예요? 누굴 먹으면 좋겠어요?”

“영감님. 제발요. 살려주세요.”

“아니, 아니. 우리 편 안 할 거야?”

“하겠습니다. 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에이 씨팔. 존나 답답하네. 그냥 애미, 애비 다 죽여. 만덕아.”


흐엉뛰엔은 절뚝거리며 차이펑의 무릎을 감싸 안고 소리친다.


“영감님, 영감님!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차이펑은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흐엉뛰엔을 흥미롭게 쳐다본다.


“흐음. 아빠 쪽은 관심이 없었는데 아주 좋은 눈을 가졌어요?”

“네?”

“그럼 당신에게 기회를 줄게요. 우리 편 할래요?”

“네네. 하겠습니다. 영감님.”

“그러면 그쪽이 아드님 대신에 영웅이 되시렵니까?”

“네네. 제가 하겠습니다.”

“킬킬킬. 좋아요. 그럼 선택하세요. 첫째예요? 막내예요?”


흐엉뛰엔은 눈이 풀려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첫째 호이와 막내 코이를 쳐다본다. 그리곤 막내를 보고 침을 꿀꺽 삼킨다. 그 모습에 아내인 린타오는 소리친다.


“여보! 정신 차려. 당신 지금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아버지!”


호이는 흐엉뛰엔의 멱살을 잡는다. 그러자 차이펑의 부하들은 아내와 호이를 붙잡는다.

차이펑은 흐엉뛰엔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한다.


“힌트를 주자면 식량은 클수록 좋아요.”


차이펑은 들고 있던 빗자루의 머리를 뽑는다. 그 안에서 칼이 나온다. 그리고 그 칼을 흐엉뛰엔에게 쥐여 준다. 흐엉뛰엔은 떨리는 손으로 칼 손잡이를 꽉 잡는다.

칼을 들고 두 아들을 번갈아 쳐다보는 흐엉뛰엔을 보고 있는 차이펑은 방방 뛰며 아이처럼 좋아한다.


“어느 자식놈을 고를까요? 알아맞혀 보세요? 척척박사님! 척척박사님! 빨리요! 찌르세요. 누구예요? 궁금해 미치겠으니까 얼른 찌르라고! 이 짐승 새끼야!”


차이펑이 흐엉뛰엔의 귀에 대고 소리치니 흐엉뛰엔은 칼을 들고 아들을 찌른다.


푹-.


칼에 찔린 호이는 흐엉뛰엔을 붙잡고 피를 흘린다.


“아버지. 왜···?”

“미안하다. 호이야. 미안해. 네가 장남이잖아. 가족을 살려야지.”

“여보!”


린타오는 기절한다. 그 옆에 있던 코이는 오줌을 싸며 울기 시작한다. 호이는 칼에 질려 쓰러진다. 흐엉뛰엔은 한발 뒤로 물러나며 자신의 머리를 쥐어 잡는다.


“내가, 내가 무슨 짓을?”


차이펑 영감은 흐엉뛰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자하게 웃는다. 쓰다듬던 흐엉뛰엔의 머리카락을 꽉 잡으며 이야기한다.


“자자 보세요. 저게 바로 아름다운 상징입니다. 스스로 바퀴벌레가 되지 못하면 죽는 거예요.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저 살아남는 거랍니다. 참 잘했어요. 우리 편.”


차이펑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눈짓을 보낸다. 부하들은 쓰러진 흐엉뛰엔의 가족들과 죽은 호이를 들고 옮긴다.

흐엉뛰엔은 피로 가득한 흙바닥을 보며 흐느낀다.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고 땅을 내리친다.

차이펑은 그런 흐엉뛰엔을 흐뭇하게 한참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얼굴이 퉁퉁 부어 있는 스님을 보고 이야기한다.


“기다려줘서 고맙습니다. 이제 다 됐습니다. 스님. 가시지요.”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선다. 차이펑은 유유자적하게 뒷짐을 지고 스님을 따라간다. 그런 그의 발걸음이 가볍고 흥겹다.

입꼬리가 광대까지 올라간 차이펑은 혼잣말을 내뱉는다.


“오늘도 살아남았음에 감사를. 이 모든 영광을 바퀴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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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인간 말살 작전(6/12) 24.02.12 6 0 13쪽
49 인간 말살 작전(5/12) 24.02.11 9 0 12쪽
48 인간 말살 작전(4/12) 24.02.10 9 0 12쪽
47 인간 말살 작전(3/12) 24.02.09 9 0 13쪽
46 인간 말살 작전(2/12) 24.02.08 7 0 13쪽
45 인간 말살 작전(1/12) 24.02.07 9 0 13쪽
44 죽음 24.02.06 6 0 13쪽
43 독립군 24.02.05 12 0 13쪽
42 운명 24.02.04 6 0 12쪽
41 전보 24.02.03 8 1 13쪽
40 씨앗 24.02.02 7 1 13쪽
39 작전 24.02.01 7 1 13쪽
38 전쟁 준비 24.01.31 9 1 13쪽
37 우물 24.01.30 8 1 13쪽
» 짐승 24.01.29 8 1 12쪽
35 협력 24.01.28 11 1 12쪽
34 화양연화 24.01.27 8 1 12쪽
33 불씨 24.01.26 10 1 12쪽
32 동족 24.01.25 17 1 11쪽
31 바알 24.01.24 9 1 13쪽
30 미산트라 24.01.23 12 1 12쪽
29 정착 24.01.22 13 1 13쪽
28 미래 24.01.18 15 1 14쪽
27 승리 24.01.17 10 1 12쪽
26 전쟁(2/2) 24.01.16 17 2 13쪽
25 전쟁(1/2) 24.01.15 14 2 12쪽
24 조우 24.01.14 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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