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빼앗긴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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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작품등록일 :
2024.01.02 21:58
최근연재일 :
2024.02.1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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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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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말살 작전(4/12)

DUMMY

#1 (제은산 서재, 죄인)


쿵-.

우르르-.


사발레타는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뜬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깜깜한 어둠이 사발레타의 앞을 가린다. 그녀는 졸린 눈을 비비고 하품을 하며 일어난다. 그리곤 기지개를 켜며 애거시가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무슨 소리야?”


사발레타의 눈앞에 애거시가 말없이 서 있다. 그녀는 의외의 장면을 목격한다. 책장에 꽂혀 있던 수많은 책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심지어 책장도 쓰러져 있다.

애거시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씩씩대고 있다.

사발레타는 조심스럽게 애거시에게 다가간다.


“애거시. 무슨 일이야?”

“이건 거짓말이야. 믿을 수 없어.”

“왜 그래? 뭐가 거짓말이라는 거야?”


애거시는 고개를 들어 사발레타를 바라본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절망과 슬픔이 가득하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묻는다.


“우리는 죄인이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애거시. 정신 차려.”

“우리가 망쳤어. 멈춰야 해. 견백님 어디 계셔?”


애거시는 사발레타를 지나쳐 급하게 달려간다.

사발레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불안이 엄습한다. 손을 뻗어 그를 급하게 잡아보지만 잡히지 않는다. 영영 떠나버릴 거 같은 그의 모습에 그녀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다.


#2 (제은산, 불안)


“견백님!”


애거시는 달려온다.

건물 앞. 견백과 모두가 건물 앞에 있다. 꾀죄죄한 야생인간들과 함께. 독립군과 견백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고 있다.

에르페를 비롯한 야생인간들은 허겁지겁 고기를 먹는다.

누군가는 맨손으로 뜨거운 고기를 집어 먹다가 손을 데기도 하고, 누군가는 입천장이 다 까지는지도 모르고 입에 고기를 쑤셔 넣는다.

그들에게 집중하고 있는 견백을 애거시가 다시 부른다.


“견백님.”


견백은 고개를 돌려 애거시를 바라본다.

애거시는 견백의 눈에서 따뜻함을 본다. 그는 견백의 눈에 담긴 따뜻함을 믿는다. 그리고 마음을 굳게 먹고 말을 하려 한다.

그런 애거시보다 먼저 말을 시작한 것은 에르페다.


“아, 잘 먹었습니다! 견백 대장님이라고 하셨죠?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에르페는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인다.

견백은 애거시에게서 눈을 뗀다. 그리고 에르페를 보고 묻는다.


“이야기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충분합니다. 제가 아는 것은 모조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면 저희 부족 여기서 일 좀 하게 도와주세요. 쓰임이 많을 겁니다.”

“그 부분은 긍정적으로 고려해보겠습니다. 아까 말씀부터 다시 시작해보세요. 이곳에 사는 독립군이 가족들을 빼앗다니요? 또 아이언스의 앞잡이라니요?”


에르페는 소화가 트림을 크게 한다.


“꺼억. 음. 그러니까 육지 사정을 전혀 모르신다는 건데. 그럼 일단 우리의 배를 채워주신 은인들과 비슷해 보이는 독립군 놈들부터 설명해 드리죠.”

“독립군 놈들?”

“아아, 은인님들도 독립군이라 하셨죠? 육지의 독립군은 결이 달라요. 아이언스 처단이란 명분을 핑계 삼아 들개들의 가족을 빼앗아갑니다.”

“들개들이요?”

“아 우리처럼 소속이 없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야생인간 부족을 들개들이라 부릅니다. 이런 떠돌이 들개들도 부모, 형제 그리고 자식들이 있죠. 근데 그놈들은 젊은 사람들을 다 빼앗아갑니다. 아이언스와 전쟁을 할 목적으로요.”


견백은 에르페의 말에 눈썹이 살짝 움직인다. 그리곤 되묻는다.


“전쟁?”

“네. 전쟁이요.”


견백은 에르페와 그의 부족들을 보며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질문한다.


“인류를 위해 독립군과 함께 전쟁에 나서는 것이 그대들에겐 그리 불편하고 마음에 안 드는 일이요? 그리고 우리도 아이언스와 전쟁을 하려 합니다. 그런데 우리와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하, 우리를 뭐로 보고. 전쟁이 무서워서 이런다고 생각합니까? 그놈들에겐 전쟁은 목적일 뿐입니다. 우리의 형제, 자식, 부모를 빼앗아가서 노예로 부리기만 합니다. 전쟁? 수십 년이 반복되는 역사 동안 아이언스를 향해 칼 한 번 제대로 들이민 적 없는 족속들입니다. 그 칼은 언제나 우리를 향하죠. 독립군이나 미산트라나 만만한 건 우리뿐이란 말입니다!”

“미산트라는 또 뭡니까?”

“아까 말씀드렸던 인간들을 잡아 죽이는 아이언스의 앞잡이 놈들이죠.”


그들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초조한 것은 애거시다. 애거시는 책에서 본 내용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에서 점점 더 목이 옥죄여옴을 느낀다.

그는 그 수많은 책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어떤 이야기를 들었길래 절망감을 맛보고 있는 것일까? 진실은 판도라의 상자를 연 애거시만이 알고 있다.

하지만 애거시가 말할 찰나를 주지 않고 에르페는 말을 이어나간다.


“아주 잔인하고 사악한 놈들입니다. 아이언스는 어쩐지 인간을 해치지 않아요. 죽이지 않고 늘 데리고 가서 기릅니다. 애완용으로. 하지만 그 아이언스 놈들의 개들은 이야기가 다르죠. 어떻게 아는 건지 아이언스보다 먼저 냄새를 맡고 달려옵니다. 그리고 우리를 물어뜯어 죽이죠. 아주 잔인하게요. 그들은 스스로 미산트라라고 부릅니다. 인간혐오족이란 뜻인 거 같았는데. 웃기지도 않죠? 자기들도 인간이면서.”

“같은 인간을 혐오한다? 그리고 인간을 죽인다? 이런 개자식들을 봤나?”


괴테몰리는 자신의 손바닥을 주먹으로 치며 분노한다. 분노하고 있는 것은 괴테몰리만이 아니다.

견백은 누구보다 그 이야기에 분노하고 있다.

독립군 모두가 분노하고 있다.

애거시만을 제외하고. 애거시는 에르페에게 묻는다.


“이유가, 이유가 있지 않나요? 왜 인간을 혐오한답니까?”


애거시의 질문에 에르페가 머리를 긁적인다. 그리고 인상을 쓰고 무언가를 생각한다.


“아, 뭐라 그랬더라? 되게 웃긴 이유였는데. 그놈들 중 하나가 한 말을 들었어요.”


애거시는 마른 침을 삼킨다.


“뭐라고 하던가요?”


에르페는 잠시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하다 허벅지를 세게 치며 일어난다.


“아 기억났어요! 닭을 잡아먹어서라고 했어요.”


바람은 맹한 표정으로 에르페를 보며 묻는다.


“닭은 맛있는데? 그놈들은 닭을 싫어하나?”

“생태계를 파괴하니까.”


애거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돌려 그를 본다.

애거시는 견백의 눈을 쳐다보며 말한다.


“멈춰야 합니다. 우리가 하려는 모든 것. 멈추고 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대장.”

“애거시.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책에서 보았습니다. 아이언스란 신인류가 왜 탄생했는지와 그들이 인간들을 말리지 않았으면 지구가 어떻게 되었을지요.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가 섬으로 쫓겨난 것은 어찌 보면 지구의 순리였습니다.”


애거시의 말에 먼저 반응한 것은 사발레타의 언월도였다. 그녀는 애거시의 뒤에 서서 언월도를 그의 목에 겨눈다.


“애거시. 입 닫아. 한마디만 더 하면 그 목을 내리칠 거야.”


애거시는 사발레타를 무시하고 견백에게 무릎 꿇고 이야기한다.


“견백님. 인간이, 인간이 다시 포식자가 된다면 육지는 우리가 살던 섬처럼 변해버립니다. 역사는 반복될 겁니다. 저 부족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의 욕망을 위해 같은 동족을 빼앗고 같은 동족을 죽이는 족속들입니다. 그런 인간이 자연을 차지하는 것은 모두를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일입니다.”

“애거시! 입 닥쳐!”


사발레타는 언월도를 높게 들어 애거시를 향해 내리친다.

견백은 빠르게 대검을 꺼내 들어 사발레타의 언월도를 막는다.

모든 독립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긴장 상태에 돌입한다.

견백은 남는 손으로 애거시의 멱살을 잡고 자신의 얼굴 앞으로 끌고 온다.


“애거시. 잘 들어라. 설사 이 모든 육지가 인간의 섬 꼴이 난다 해도 우리는 아이언스를 죽인다. 지구에 남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죽이는 것이 인간을 위한 일이라면 난 그렇게 한다.”

“대장. 그것은 결코 인간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애거시의 절규에 가까운 부탁에도 견백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견백은 애거시를 뒤로하고 명령한다.


“지금 당장 애거시를 가둔다. 그리고 3중대는 당분간 괴테몰리님이 맡는다. 이상.”

“독립!”


모두가 가슴을 치며 견백에게 경례한다. 또 일사불란하게 애거시를 포박한다.

애거시의 눈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본 햇님은 조심스레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애거시가 발견한 서재를 향해서.

지식에 접근한다는 것은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3 (비봉산, 초소)


비봉산 절벽에 마지막 초소 작업이 끝났다.

가르텐은 초소에 벌러덩 누우며 웃는다. 초소 위로 보이는 맑은 하늘에 눈이 먼다.


“아, 아름답다.”

“멋지지?”


앵글로의 목소리에 가르텐은 벌떡 일어나 초소 아래로 뛰어 내려온다.


“독립!”

“그래. 그렇게 자빠져 있을 거면 초소를 왜 필요하지? 방금 너의 행동으로 우리는 침략 당했다. 알고 있나?”

“죄, 죄송합니다! 순, 순간 다 끝냈다는 생각에 기, 기분이 좋아서.”

“우리가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순간은 아이언스를 모조리 도륙했을 때다.”

“네. 명, 명심하겠습니다.”


앵글로는 가르텐이 지은 초소를 살피고 주변을 한 바퀴 훑은 뒤 말한다.


“그래도 쳐 누운 거 빼고는 훌륭하다. 더 열심히 경계해라.”

“감, 감사합니다! 독립!”


앵글로는 자리를 뜬다.

가르텐은 십년감수 했다는 표정으로 초소에 기댄다. 그리곤 자신의 뺨을 두 번 때리고 초소 위로 올라간다. 그의 머릿속에 앵글로의 칭찬이 맴돈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가르텐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리곤 다시 자신의 뺨을 때리며 혼잣말한다.


“정신 차려. 앵, 앵글로 중대장님이 믿어주시는 만큼 더 열심히 경계한다.”


가르텐은 오버하며 주변을 경계한다. 그러다 아래 보이는 본거지 건물을 본다. 건물에서는 엑스가 걸어 나오고 있다. 엑스의 얼굴과 손은 온통 피범벅이다.

엑스는 터벅터벅 걸어 나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주머니에서는 양손 가득 들어갈 총알이 나온다. 그리고 그는 그 총알을 가방 속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두 발은 총에 꽂아 넣는다. 그는 마지막으로 도플라의 단검을 높게 들어서 날을 확인한다. 날카롭게 잘 갈린 날이 반짝한다. 그 단검 뒤로 가르텐이 보인다.

가르텐과 엑스는 눈이 마주친다.

엑스는 웃으며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쉿.”


가르텐의 눈에는 피를 뒤집어쓴 악마가 보인다. 그는 얼어붙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엑스는 그렇게 자연스레 독립군 기지를 벗어난다.

가르텐은 용기를 내어 뿔피리를 든다. 그는 뿔피리를 입에 물고 힘차게 분다.


뿌우우우-.


“탈영이다!”


탕-!


가르텐의 머리가 뚫리고 그는 초소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쿵-.


뿔피리가 초소 바닥에 떨어지며 나뒹군다.

가르텐의 상상이 끝났다. 그는 자신의 이마를 만진다. 상처 하나 없다. 그는 엑스의 표정에서 공포를 느끼며 초소에 주저앉는다.


“이건 정말 위험해. 빠, 빨리 알려야 해.”


가르텐은 떨리는 손으로 뿔피리를 분다.


뿌우우우-.


그렇게 내부에서 커지던 어둠은 결국 그 크기를 견디지 못하고 세어 나가 버렸다. 더 큰 어둠을 불러들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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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말살 작전(4/12) 24.02.10 9 0 12쪽
47 인간 말살 작전(3/12) 24.02.09 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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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운명 24.02.04 6 0 12쪽
41 전보 24.02.03 8 1 13쪽
40 씨앗 24.02.02 7 1 13쪽
39 작전 24.02.01 7 1 13쪽
38 전쟁 준비 24.01.31 9 1 13쪽
37 우물 24.01.30 8 1 13쪽
36 짐승 24.01.29 7 1 12쪽
35 협력 24.01.28 11 1 12쪽
34 화양연화 24.01.27 8 1 12쪽
33 불씨 24.01.26 10 1 12쪽
32 동족 24.01.25 17 1 11쪽
31 바알 24.01.24 9 1 13쪽
30 미산트라 24.01.23 11 1 12쪽
29 정착 24.01.22 13 1 13쪽
28 미래 24.01.18 15 1 14쪽
27 승리 24.01.17 10 1 12쪽
26 전쟁(2/2) 24.01.16 16 2 13쪽
25 전쟁(1/2) 24.01.15 14 2 12쪽
24 조우 24.01.14 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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