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빼앗긴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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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작품등록일 :
2024.01.02 21:58
최근연재일 :
2024.02.1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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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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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말살 작전(8/12)

DUMMY

#1 (비봉산 공원, 내분)


왕리는 양 손바닥을 발케탄에게 보이며 한 걸음 다가간다.


“위협하지 않습니다. 전 무기도 없어요. 우리 대화를 해봐요.”

“에이 썅! 이놈들하고 무슨 대화를 합니까? 그냥 총 갈겨서 모두 죽여버리고 저 좀 구해달라고요!”


발케탄 손에 인질로 잡혀 있는 씨엠이 소리친다.

발케탄은 그런 씨엠의 허벅지를 검으로 한 번 푹 찔렀다 뺀다.


“으악!”

“씨엠. 입 닥쳐! 저놈들에게 우리를 팔아넘긴 네놈을 당장이라도 찢어발기고 싶은데 참고 있는 거라고.”

“아파. 아프다고!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거야? 인간이 인간답게 살게 해줬는데, 드디어 자유를 얻었는데 왜 다시 저 아이언스 놈들에게 돌아간다는 거야?”

“인간이 뭔데? 인간다운 게 뭔데? 다 필요 없다고. 그냥 생각 없이 밥 먹고, 자고, 아무런 위험 없이 살고 싶다고···. 왜 우리를 일 시키고 괴롭게 하는 거야!?”


그곳에 있는 독립군들은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들 앞에는 보이지 않은 벽이 있었다. 그럴수록 왕리는 고민에 빠졌다.

‘저들을 차라리 내보내야 하나?’, ‘그랬다가 저들이 죽기라도 하면?’


“진정하세요. 여러분들을 내보내고 싶지만 이대로 나가시면 모두 죽어요.”


원주민들은 왕리의 말에 서로를 쳐다본다. 그들은 쑥덕쑥덕하며 인상을 잔뜩 쓴다.

발케탄은 왕리를 보며 화를 낸다.


“거짓말하지 마! 아이언스는 말만 잘 들으면 단 한 번도 우리에게 위협을 가한 적이 없어!”

“이전과는 다르다고요! 지금의 아이언스는 달라요. 진압봉으로 제압하는데 그치지 않고 모두 죽이고 있어요. 지금 저 위에는 우리 병사들의 시체가 가득하다고요.”

“그야 너희들이 덤볐으니까! 자연의 섭리를 거슬렀으니까!”


발케탄의 고함에 모두가 입을 다문다.

독립군의 머릿속에도 작은 생각들이 스쳐 간다. 동료의 머리가 터져가는 장면을 떠올리며, 그 압도적인 아이언스의 힘을 생각하며 그들은 잠시 생각한다.

‘정말로 우리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건 아닐까?’


“개, 개소리를 아주 성심성의껏 하고 있네.”


어둠 속에서 가르텐이 걸어온다. 높게 뜬 달은 공원의 돔도 뚫어내며 가르텐의 걸음에 빛을 비춰 준다. 바알을 본 후 정신이 나가 있던 가르텐의 눈에는 여전히 공포가 서려 있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공포를 초월한 모습이다.


“자연의 섭리? 주, 주는 밥이나 얻어 처먹으면서 똥 싸고 잠이나 쳐 자던 네놈들이 자연의 섭리를 알아?”

“우리도 알아! 강자에게 고개 숙이고 강자 옆에서 편하게 사는 것. 그러면 모두가 편안하고 위험하지 않게 살 수 있어!”

“자연이 없는 곳에서 살아본 적 있어?”

“뭐?”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곳에서 배고프면 모래를 씹어 먹으며 살아본 적 있냐고?”

“그건 너희들이 아이언스에게···.”

“날 때부터! 그냥 거기 살았어. 근데 그 아이언스 놈들이란 것들은 날 때부터 땅을 독차지하며 살았어. 이런 풍족한 자연을, 이 풍족한 땅을 좀 나눠 쓰는 게 자연의 섭리 아니야? 우리가 고작 남쪽 땅 조금 가졌다고 득달같이 달려와서 우리를 죽여대는 게 자연의 섭리야? 자연의 섭리 그딴 건 몰라. 우리는 그저 생존이야. 그러니 너희도 생존이면 그냥 꺼져. 나가서 죽, 죽어버려.”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가르텐의 눈은 이미 맛이 가 있다. 그러나 그가 내뱉은 말은 방황하던 독립군의 머릿속을 깔끔하게 정리해줬다. 독립군들은 모두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원주민을 향해 무기를 겨눈다.

그 순간, 왕리 만이 아직 원주민들을 위하고 있다.


“좋아요. 좋습니다. 내보내 드릴게요. 그런데 지금 그냥 나가면 죽을지도 몰라요. 그들은 당신들이 원하는 바를 모르잖아요?”


발케탄은 왕리의 말에 수긍하고 뒤를 돌아본다. 다른 원주민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왕리는 말을 이어나간다.


“잘 들으세요. 나가면 절벽 위 초소에 인간들이 자리 잡고 있어요. 그들이 왜 아이언스와 함께하는지 모르지만 아마 당신들처럼 아이언스와 함께 살고 싶은 자들이겠죠. 그러니 그들에게 당신들의 의견을 전할 수 있게 주선해 줄게요.”

“그렇게 해서 당신들이 얻는 이익이 뭐지? 우리를 속이고 모두 죽이려는 거 아니야?”

“그저 같은 동족이 허무하게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못 믿으시겠다며 그냥 나가세요. 보내드리죠.”


세상 다정한 왕리의 얼굴에 단호함이 보인다.

발케탄은 침을 꿀꺽 삼킨다. 다른 원주민들도 왕리의 단호함에 고개를 끄덕인다.


#2 (비봉산 절벽, 협상)


왕리는 건물 밖으로 걸어 나온다. 횃불을 들고.

초소 위에 있던 미산트라들은 그런 왕리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들의 수장 바알 역시 절벽 아래, 왕리를 본다.

도플라는 그녀를 알아본다.


“왕리···?”

“초소 위에 있는 너희가 인간이란 것을 안다!”


왕리의 외침에 아이언스들이 순식간에 초소 옆으로 달려든다.

바알은 손을 들어 아이언스들을 멈춘다.


[돌아가. 아직 때가 이르다. 작전을 세우고 진입한다. 그때까지 너희의 숫자를 보여줘서는 안 돼.]


아이언스들은 바알의 말에 절벽 위에서 자취를 감춘다.

왕리는 사라지는 아이언스를 보고 마음을 놓는다. 그리곤 소리친다.


“너희가 아이언스와 어떤 관계인인지는 모르나 아이언스에게 우리의 의지를 전해줬으면 한다.”

“항복이라도 하려고? 와서 발이라도 핥으면 미산트라에 끼워주고. 크크.”


초소 위에 있던 미산트라 병사 중 하나는 왕리를 조롱한다. 그 소리에 다른 미산트라들도 깔깔거린다.


탕-!


익숙한 굉음.

왕리는 그 소리에 흠칫하며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본다.

바알은 왕리를 조롱하던 병사의 머리에 총을 쐈다.


“흠. 내일 보여주려 했는데. 좀 빨리 보여줬네? 우리 병사가 추태를 부려서 미안. 그나저나 하려던 이야기마저 해봐.”


미산트라 병사들은 시체를 수습한다. 바알의 말에 모두가 얼어붙는다.

도플라 역시 그런 바알을 보며 중얼거린다.


“미친놈.”


그 옆에서 카일이 다가와 도플라에게 말한다.


“어차피 모든 인간이 정리되면 우리도 죽을 운명이다. 미리 죽는다 한들 문제가 있는가?”

“흥. 미친 새끼들. 꺼져. 너와도 말 섞고 싶지 않아.”


카일은 그런 도플라의 어깨를 두드리고 다른 초소로 이동한다.

왕리는 심호흡을 크게 한 뒤 다시 이야기한다.


“우리 인간 중 몇몇은 아이언스 통제하에 살던 원주민들이다.”

“알고 있어.”

“그들은 다시 아이언스에게 돌아가기를 원한다.”

“오. 그래?”


바알의 얼굴이 호기심으로 가득해진다.

왕리는 그런 바알의 얼굴을 보고 공포심이 느껴진다.

‘아까 가르텐이 보았다던 자가 저자인가? 확실히 어딘가 꼬여 있군.’


“그래. 그런데 아까의 아이언스를 보니 모조리 죽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음. 그렇지. 그건 너희들이 너무 위험하니까.”

“하지만 원주민들은 무기 한 번 제대로 다뤄본 적 없는 인간들뿐이다. 그러니 아이언스에게 그들을 죽이지 말라고 전달해줬으면 한다.”


바알은 깊은 생각에 잠긴다. 높게 뜬 달을 감상한다. 생각에 잠겨 아무런 표정 없이 달을 쳐다본다. 그러다 히죽이기 시작한다.

도플라는 바알의 움직이는 입꼬리를 보며 인상을 쓴다.

엑스는 바알의 모습에 흥미를 느끼면 함께 히죽인다.

왕리는 절벽 아래에서 바알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달을 보며 생각을 하는 그를 보고 잠시 견백을 떠올린다.

바알은 더 높게 턱을 치켜들고 웃는다. 아래의 왕리에게 자신이 웃는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는 입술을 깨물고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아낸다.


“흠흠. 그래. 그렇게 하지. 원주민들을 절벽 위로 올려보내도 좋다. 아이언스에게는 잘 말해두지.”

“그래. 고맙다.”


왕리는 몸을 돌려 공원 안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공원 문이 닫히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린다. 그런 그녀에게 가르텐과 다른 병사들이 함께 달려온다.


“괜찮으십니까?”

“응. 괜찮아. 가르텐 자네 말대로 굉장히 무서운 자가 있더군.”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저들을 보내도 될까요?”

“후. 그래도 같은 인간이니 죽이진 않겠지. 다만 저들처럼 아이언스의 개로 살아가겠지. 언젠간 우리와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게 될 수도 있고.”

“그렇다면 보내지 않는 것이···.”


왕리는 그 말을 건네는 5중대 3소대장 성 아현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저들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네?”

“자유롭다는 것. 그것이 인간이라는 증거다. 저들의 자유를 빼앗을 자격이 없어. 보내줘. 저들이 택한 자유가 우리와 싸우게 되는 것이라면 그 또한 인간의 선택이다.”

“독립!”


아현은 왕리에게 경례를 하고 돌아서 소리친다.


“5중대 들어라! 지금 바로 원주민들을 공원 밖으로 내보낸다. 실시!”

“실시!”


5중대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원주민들을 데리고 나간다. 원주민들이 줄지어 나가는 모습은 생각보다 장관이다. 그들의 인원 또한 무시하지 못할 숫자이기 때문이다.

공원의 문이 활짝 열린다. 하나씩 나오는 원주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바알은 절벽 위 초소 아래로 뛰어 내려온다. 그들을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는 속삭이듯 자신의 옆에 있는 미산트라들에게 말한다.


“보이나? 오늘 이 자리에서 지구상의 수천의 인간이 사라진다. 드디어 꿈이 이뤄지고 있다.”


어마어마한 인간들의 모습에 미산트라는 흥분한다.

절벽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위치에 아이언스들이 진압봉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원주민들은 풀려나자마자 신이나 절벽 위를 뛰어오른다. 반가운 얼굴을 보러 달리고 있다. 꼭 주인에게 달리는 짐승처럼.

그렇게 그 누구보다도 발케탄이 먼저 절벽 위를 오른다. 미산트라 뒤에 있는 아이언스를 발견하고 신이나 달려간다.

아이언스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무런 표정도 없이, 진압봉을 휘두른다. 발케탄의 머리가 터진다. 그 모습을 보지 못한 원주민은 끊임없이 절벽 위로 올라온다.

거의 모든 원주민이 올라왔을 시점, 바알은 검을 꺼내 든다. 그리고 달빛에 검을 한 번 담갔다 뺀다. 반짝이는 검을 눈앞의 작은 아이의 배에 찔러 넣는다.

시작을 알리는 총성처럼 미산트라, 아이언스는 학살을 시작한다. 그 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도플라와 엑스뿐이다.

도플라의 선글라스 아래로 눈물이 흐른다. 도플라는 고개를 돌려 빠르게 눈물을 훔치며 중얼거린다.


“이 미친놈이 왜 이러는 거야?”


엑스는 발정 난 개처럼 초소에 묶여 있는 밧줄을 풀기 위해 발악한다.


“이거 풀어! 이거 풀라고! 내 거야. 시발 내 거라고. 그건 내 욕망이라고! 그 손 치워. 이 개새끼들아.”


바알은 그런 엑스를 보며 재밌어한다. 그는 천천히 걸어와 엑스의 밧줄을 풀어준다.

엑스는 바알과 눈이 마주친다.

그 둘의 웃는 모습이 닮았다.

엑스는 바알을 지나쳐 달려간다. 그리고 눈앞의 인간들을 죽여 나간다.

왕리와 5중대는 공원에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 왕리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쥐어 잡는다.


“내가,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5중대는 그 말도 안 되는 참상을 지켜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절벽 끝에 걸려 죽어 떨어지는 원주민들의 모습을 힘없이 바라볼 뿐이다.

가르텐은 절벽 끝에 서서 공원을 노려보는 바알을 본다.


“견백님, 견백님을 불러와야 해.”


가르텐은 주변을 둘러본다. 모두가 공황상태다.


“나밖에 없어. 내가 해야 해.”


어둠이 찾아온 밤에는 또 달이 빛나고 있다. 가르텐은 공포에 잡아 먹혔다. 그렇게 공포 속에 갇힌 그는 더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알의 눈을 본 뒤 그는 깨달았다.

‘어차피 살 수 없다. 어차피 죽는다.’

그렇기에 오히려 가르텐은 단단해졌다. 그의 감은 틀린 적이 없으니. 그러니 그는 두려울 것이 없다. 그저 결심할 뿐이다. 어차피 죽는다면 저 달처럼 마음껏 빛나다 죽겠다고.

그는 그렇게 한 발을 내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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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말살 작전(8/12) 24.02.14 7 0 13쪽
51 인간 말살 작전(7/12) 24.02.13 7 0 13쪽
50 인간 말살 작전(6/12) 24.02.12 6 0 13쪽
49 인간 말살 작전(5/12) 24.02.11 9 0 12쪽
48 인간 말살 작전(4/12) 24.02.10 9 0 12쪽
47 인간 말살 작전(3/12) 24.02.09 10 0 13쪽
46 인간 말살 작전(2/12) 24.02.08 8 0 13쪽
45 인간 말살 작전(1/12) 24.02.07 9 0 13쪽
44 죽음 24.02.06 6 0 13쪽
43 독립군 24.02.05 12 0 13쪽
42 운명 24.02.04 6 0 12쪽
41 전보 24.02.03 8 1 13쪽
40 씨앗 24.02.02 8 1 13쪽
39 작전 24.02.01 8 1 13쪽
38 전쟁 준비 24.01.31 9 1 13쪽
37 우물 24.01.30 8 1 13쪽
36 짐승 24.01.29 8 1 12쪽
35 협력 24.01.28 11 1 12쪽
34 화양연화 24.01.27 9 1 12쪽
33 불씨 24.01.26 11 1 12쪽
32 동족 24.01.25 17 1 11쪽
31 바알 24.01.24 9 1 13쪽
30 미산트라 24.01.23 12 1 12쪽
29 정착 24.01.22 13 1 13쪽
28 미래 24.01.18 15 1 14쪽
27 승리 24.01.17 11 1 12쪽
26 전쟁(2/2) 24.01.16 17 2 13쪽
25 전쟁(1/2) 24.01.15 15 2 12쪽
24 조우 24.01.14 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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