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빼앗긴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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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작품등록일 :
2024.01.02 21:58
최근연재일 :
2024.02.1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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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3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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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트라

DUMMY

#1 (도시, 사냥)


높은 빌딩이 화려하게 불을 내뿜는 어느 도시의 밤. 모든 도시에 있는 건물은 그저 형태만 남아 있다. 그 중심에 높게 솟은 빌딩은 작은 도시를 밝게 비춘다.

그 빛으로부터 숨어 다니는 들개들이 있다. 그들은 거지꼴을 한 인간들로 바퀴벌레처럼 어두운 폐건물로 숨어든다.

분명 폐건물임에도 관리받듯 깨끗하다. 그런 건물들 사이사이로 나무, 꽃 심지어 풀들까지 자라난다. 자연 친화적이라 해야 할까? 어색한 듯싶지만, 꽤 자연스러운 이 모습은 자연이 건물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 모양새다.

어둠 속에서 건물들 사이사이로 수십 개의 발이 지나쳐 간다. 아이언스가 신고 있던 군화와 같은 종류의 군화들이다. 그 무수한 발들은 어느 한 폐건물 2층으로 올라간다.


타다닥-.


폐건물 2층에는 들개들이라 불리는 거지꼴의 인간 8명이 모닥불 주위를 감싸고 있다.


타다다닥-.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들개 중 한 명이 주변에 철근을 집어 든다. 나머지 일곱도 주변에 보이는 아무거나 집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 같이 모닥불 주위에 서서 입구를 경계한다. 발걸음이 멈춘다. 모두가 긴장하며 입구를 바라본다.

입구에서는 도플라가 걸어 나온다. 그는 아이언스가 입고 있던 하얀 군복과 하얀 군화를 신고 있다.

그 뒤로 같은 복장의 인간 수십 명이 따라 올라온다.

도플라는 무전을 든다.


[미산트라 소속 도플라다. 이곳은 S사이트 210번지, 2층 건물. 들개 8명 마리를 발견했다.]

[생포하라.]

[알았다. 오바.]


“크크크. 크큭.”


도플라는 무전을 끄고 미친놈처럼 웃기 시작한다.

주변에 있는 다른 미산트라라 지칭한 집단의 병사들도 도플라를 따라 웃는다. 모닥불은 높게 치솟아 그들을 악마로 보이게끔 한다.

그 모습에 들개들은 공포감을 느낀다. 그 중의 대장으로 보이는 들개가 앞으로 나오며 묻는다.


“당신들 인간이요?”


도플라는 웃다가 가까스로 진정하며 그를 쳐다보고 답한다.


“응.”

“우리도 같은 인간이요. 근데 왜 그 옷을 입고 있는 거요? 어째서 아이언스 말을 할 줄 아는 거고?”

“우리는 아이언스의 개니까.”

“그게 무슨?”


도플라 뒤에 있던 빡빡머리의 하야토는 앞장서 나오며 자신의 검을 어깨에 올리고 삐딱하게 서서 묻는다.


“어이. 너희들 미산트라를 몰라?”

“···미산트라?”

“너희 같은 벌레를 잡아 죽이는 집단이다.”


그들은 그 단어를 듣고도 웅성거리지 않는다. 만약 모른다면 서로를 쳐다보며 그런 집단을 아느냐고 물어볼 법도 한데 그들은 미동조차 없다. 그저 자신들의 무기를 꽉 쥐고 도플라와 무리를 노려볼 뿐이다.

그 모습에 도플라는 피식 웃는다.


“하야토. 나와.”

“여어. 도플라. 대장인 듯 명령하지 마.”

“나오라고. 멍청한 놈아. 저 새끼들 지금 아이언스들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잖아.”


도플라의 말을 들은 들개들의 표정이 바뀐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표정에서 죽음을 불사할 전쟁 병사의 표정으로 바뀐다.

그런 그들의 표정을 보고 하야토는 소리친다.


“이 개자식들. 아이언스는 너희 안 죽이는 걸 알고 시간 끄는 거였구나. 비겁한 인간 놈들. 대가리를 제법 굴릴 줄 아는구나?”

“하야토, 네가 멍청한 거야. 이 병신아.”


도플라는 자신의 앞에 있는 하야토를 발로 걷어차 치워버린다. 그리곤 허리춤에 단검을 꺼내 그들을 향해 달린다.

그 뒤로 수십의 미산트라 병사들이 따라 달린다.

거지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철근을 들고 도플라를 향해 힘껏 내리친다.

도플라는 가볍게 피하고 아주 우아하게 대장의 목을 그어 낸다.

들개 대장은 목을 부여잡으며 쓰러진다.

그 뒤로 미산트라 병사들은 나머지에 달려들어 모두 잔인하게 죽인다.

그들은 제대로 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미산트라 병사들의 하얀 제복이 모두 빨간 물감으로 아름답게 수 놓인다.

도플라는 단검에 묻은 피를 제복에 닦고 허리춤에 꽂아 넣는다. 그러곤 들개들의 대장이 들고 있던 철근을 불에 달군다. 빨갛게 달궈진 철근을 들고 자신의 팔에 가져다 댄다. 선글라스를 쓴 그의 얼굴엔 변화가 없다. 그저 선글라스 위 미간에 주름이 가득해질 뿐이다.

그 모습을 보고 다른 미산트라 병사들은 두려움에 고개를 돌린다.

하야토 역시 다를 것 없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구시렁댈 뿐이다.


“센 척은.”


도플라의 어깨에 빨간 화상 자국이 남는다. 그제야 도플라는 철근을 땅에 떨어트린다.

2층 계단으로 또 다른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저벅저벅-.


미산트라와 같은 옷을 입은 아이언스 5명이 천천히 걸어 올라온다. 아이언스들은 난장판이 된 건물을 둘러보며 묻는다.


[또 다 죽였네?]

[들개들이 워낙 사나워야지. 이거 봐.]


도플라는 자신의 상처를 보여준다.

아이언스들은 서로를 쳐다본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시체를 수습하기 시작한다.

도플라와 미산트라 병사들은 그런 아이언스를 두고 지나친다.

그러자 아이언스 하나가 도플라의 어깨를 잡는다.


[어디가. 시체 치워.]

“잔인한 새끼들. 동족의 시체를 치우라네.”


미산트라 병사들은 도플라의 말에 낄낄대며 웃는다.

그러자 앞에 있던 아이언스는 도플라의 머리털을 잡고 시체 위로 집어 던지며 명령한다.


[치워.]


도플라는 시체 위에 앉아 단검을 잡고 노려본다.

그러자 아이언스도 진압봉을 잡고 도플라를 향해 한걸음 걷는다.

모두가 긴장 속에서 둘의 대치 상황을 바라본다.

이내 도플라는 양손을 번쩍 들며 넉살을 부린다.


[미안, 미안. 예민했나 봐. 금방 치울게. 깔끔하게 정리하고 본부로 복귀할게. 너희는 먼저 가 있어.]

[후. 말 좀 잘 듣자.]

[네네. 그럼요. 우리 주인님들은 어서 가시지요.]

[가자. 철수한다.]


아이언스 5명은 그렇게 사라진다.


“크크. 그 잘나신 도플라님께서 이거 꼴이 말이 아니네?”


하야토는 아이언스가 사라지자 도플라 옆으로 와서 깐족댄다.

도플라는 붙어 있는 시체 둘을 발로 밀어 공간을 만든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하야토의 뺨을 친다.

뺨을 맞은 하야토는 당황한다. 그는 도플라에게 주먹을 내지르려 한다.

그러나 도플라는 쉬지 않고 하야토의 뺨을 쳐댄다.


짝-, 짝-, 짝-, 짝-, 짝-.


하야토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도플라는 빡빡머리인 하야토의 머리통을 악력만으로 잡고 시체 둘 사이로 집어 던진다.

하야토는 시체 옆에 드러눕는다. 그리고 양쪽의 죽어 있는 시체를 보고 벌벌 떤다.


“으아! 뭐 하는 짓이야? 도플라?”


일어나려는 하야토의 가슴을 발로 밟는다. 도플라는 주머니에서 상자를 꺼내 나뭇잎 향을 깊게 마신다. 그 뒤, 나뭇잎을 씹기 시작한다. 그리곤 시체 옆에 누워 있는 하야토를 보며 히죽거린다.


“야. 너나 이 새끼들이나 나한테 똑같아. 벌레 같은 인간 새끼들. 너희를 살려두는 이유는 단 하나야. 필요해서. 필요가 끝나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너도 이 새끼들도 다 죽일 거야. 이 들개 놈들처럼.”


도플라는 주변에 있는 미산트라 병사들을 쭉 훑어본다.

호랑이를 만난 강아지들처럼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도플라는 하야토 가슴에서 발을 떼며 걸어 나온다.

그런 도플라에게 병사 하나가 손수건을 건넨다.

도플라는 손바닥의 피를 닦고 손수건을 다시 건네주며 말한다.


“바알에게 보고해. 문제 없이 처리했다고. 그리고 아까 그 아이언스 새끼 시리얼 번호 기억나냐?”

“시리얼 넘버 13798입니다!”

“새끼. 기억력 보소. 고맙다. 얼른 시체 치우고 가자. 피곤하다.”

“네!”


미산트라 병사들은 군기 잡힌 독립군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하야토는 벌떡 일어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다. 그는 옷 소매로 흐르는 코피를 닦는다. 자존심이 상하는지 도플라를 노려본다.

도플라는 그저 아무 일 없다는 듯 징그러운 시체의 옷자락을 잡고 질질 끌고 갈 뿐이다.

하야토는 그런 도플라르 보고 마른 침을 삼킨다.


“괴물 같은 새끼.”


#2 (무등산 남단, 동족)


무등산 남단 중턱. 어느새 설산으로 바뀐 산의 풍경이 장관이다. 그 산속을 이 찬을 선두로 한 4중대, 5중대는 걷고 있다.

이 찬이 손을 높게 든다.

병사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앓는 소리를 낸다. “아이고야.”, “나 죽는다.”, “우리 집에 언제 가냐?” 등등 죽는소리가 새어 나온다.

이 찬은 그런 병사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뒷줄에 있는 망태에게 걸어간다. 그는 둘둘 말린 종이를 펴서 망태에게 보여준다.


“5중대장님. 이렇게 합쳐 놓으면 대충 아래 지역은 다 그린 거 같습니다.”


이 찬이 붙여 놓은 종이 여러 장에는 대한민국의 남단 지도가 펼쳐진다.

망태는 그 그림을 보며 흡족하게 웃는다.


“이쯤 해놓고 돌아가자. 고생 많았다.”


망태는 이 찬의 어깨를 두드린다.

이 찬은 웃고 있지만 어쩐지 만족스럽지 못한 모습이다.

독심술이라도 하듯 망태는 묻는다.


“기어이 도플라를 찾아내고 싶으냐?”

“그도 그렇지만. 조사하는 동안 아이언스의 기지를 두 곳밖에 발견하지 못한 것도 있고···.”

“두 곳이나 발견한 거다. 물론 그게 우리 4중대장님에겐 큰 의미는 없겠지만. 우리가 발견한 두 곳 중 한 곳에 도플라 중대장이 있지 않겠냐? 얼른 돌아가서 정비하고 두 곳을 점령하면 분명 만나게 될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지친 병사들 집밥 좀 먹게 해주자꾸나.”


이 찬은 고개를 돌려 중대원들을 바라본다. 몇 달 전보다 훨씬 야윈 중대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에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죄송합니다. 너무 저만 생각했습니다.”

“가자꾸나. 고생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망태는 군복을 한번 쫙 핀 뒤, 중대원들을 향해 소리친다.


“4중대, 5중대 들어라. 오늘 밤 이곳에서 취침하고 내일 아침 날 밝는 대로 집으로 돌아간다!”

“우와와와!”

“가자!”

“살았다!”

“감사합니다!”


모두가 축제의 분위기다. 그런 모습에 이 찬도 웃음을 짓는다.


#3 (무등산 남단, 동족)


막사 속에는 코를 고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늦은 밤,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 망태만이 막사 밖에서 달을 보고 있다.


“죽기 전에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목격할 수 있다니.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


뽀드득-.


눈을 밟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망태는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검은 실루엣 하나가 어렴풋이 보이는 듯싶다.


“거기 누구냐? 찬이냐?”


하나라고 생각했던 실루엣이 커진다. 망태 앞에 거대한 무리가 서 있다.

망태는 주변을 살핀다.

순식간에 막사 주변은 수십 명의 무리로부터 포위당했다.

망태는 급하게 자신의 거대도끼를 집어 든다. 그의 무기는 전 대장 바야르가 썼던 거대도끼다. 양손으로 도끼를 잡고 자세를 취하며 묻는다.


“너희들 뭐야? 누구야? 아이언스냐?”


포위한 무리 중 한 명이 횃불에 불을 붙인다. 그리곤 횃불로 자신의 얼굴을 보여준다. 검은 피부에 짧은 곱슬머리. 흑인으로 보이는 그는 횃불에 얼굴이 비쳐도 어둠 때문에 그 이목구비가 자세히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망태는 언뜻 보이는 피부색만으로도 아이언스가 아니란 것은 알 수 있다.

그가 횃불을 밝히자 그들 무리 중 몇 명도 횃불을 밝힌다.

망태는 포위한 그들이 하나같이 모두 무장한 것을 보고 긴장한다.


“독립군 크낙새 부대 5중대장 은고페페다. 너희는 어디 소속인가?”

“독립군···?”

“그렇다. 너희도 독립군이라면 소속을 밝혀라.”


망태는 그저 도끼를 들고 당황하고 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독립군이라니? 그나저나 이 땅에도 여전히 인간들이 살고 있던 건가?’


달보다 빛나는 횃불에 둘러싸인 망태는 살며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렇게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한 마지막 노후였다. 그 노후에, 그 어느 시절보다 밝게 타오르는 횃불 같은 화양연화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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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인간 말살 작전(1/12) 24.02.07 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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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독립군 24.02.05 11 0 13쪽
42 운명 24.02.04 6 0 12쪽
41 전보 24.02.03 8 1 13쪽
40 씨앗 24.02.02 7 1 13쪽
39 작전 24.02.01 7 1 13쪽
38 전쟁 준비 24.01.31 9 1 13쪽
37 우물 24.01.30 8 1 13쪽
36 짐승 24.01.29 7 1 12쪽
35 협력 24.01.28 11 1 12쪽
34 화양연화 24.01.27 8 1 12쪽
33 불씨 24.01.26 10 1 12쪽
32 동족 24.01.25 17 1 11쪽
31 바알 24.01.24 9 1 13쪽
» 미산트라 24.01.23 12 1 12쪽
29 정착 24.01.22 13 1 13쪽
28 미래 24.01.18 15 1 14쪽
27 승리 24.01.17 10 1 12쪽
26 전쟁(2/2) 24.01.16 17 2 13쪽
25 전쟁(1/2) 24.01.15 14 2 12쪽
24 조우 24.01.14 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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