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빼앗긴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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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작품등록일 :
2024.01.02 21:58
최근연재일 :
2024.02.1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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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7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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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DUMMY

#1 (S사이트 삼각산, 신앙)


삼각산 중턱. 얼마나 뛰었는지 코이네 가족과 노인 무리는 숨을 길게 몰아 쉰다. 더는 절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어두워진 밤에 삼각사에 켜진 불빛만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노인은 잡고 있던 코이란 작은 남자아이의 손을 놓아준다.

코이는 달려가 자신의 부모 품에 안긴다.

그의 형인 호이는 자신의 부모와 동생을 등 뒤로 지킨다. 그들을 노려보며 소리친다.


“당신들 뭐야!”


무리는 그 호이라는 청년의 행동에 당황하며 발끈한다.


“아니. 물에서 건져주니까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격이네?”

“그러니까. 우리 차이펑 영감님 아니었으면 당신들도 아까 그 가족 꼴 났을 거요!”

“고맙다는 말은 못 할망정 어디 어린놈이 소리를 질러?”


그런 그들을 말리며 노인이 앞으로 걸어 나온다.

차이펑이란 이름의 노인. 그들 중 유일하게 계량한복을 입고 있는 노인이다. 언뜻 보면 스님들이 입은 옷과 비슷해 보이는 먹색의 계량한복을 걸치고 있다. 그러나 하얀 더벅머리와 어울리지 않는 금목걸이가 스님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게끔 한다. 만약 그가 스님이라면 이미 파계승이라 불려도 이상할 것 없는 모습이다.

그런 못 미더운 외관과는 다르게 너무나 인자한 그의 웃음만은 사람의 마음을 안심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이고. 많이 놀라셨죠?”


아이들의 부모는 호이의 뒤에 숨어 그들을 두려운 듯 바라본다.

호이는 코이의 손을 꽉 쥐고 가족을 보호한다.

차이펑 영감은 그런 호이라는 청년의 얼굴을 흐뭇하게 잠시 바라본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자신의 무리를 꾸짖는다.


“사과해. 이것들아. 왜 엄한 청년에게 화를 내느냐?”

“아니. 영감님. 저놈 표정 보세요.”

“이놈이. 그래도!”


차이펑이란 영감은 자신이 들고 있던 지팡이로 중얼거리는 놈의 머리를 친다.


딱-!


“아야, 아야! 영감님.”

“얼른 사과하라니까!”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우리는 나쁜 인간들이 아닌데 의심하니까 그랬어요.”


호이라는 청년은 사과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경계하는 눈빛이다.

아빠로 보이는 흐엉뛰엔은 호이를 다독인다.

엄마인 린타오도 호이의 손을 잡는다. 부모는 괜찮다며 호이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호이도 그제야 경계를 풀고 부모의 뒤로 가서 긴 숨을 내쉰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아빠인 흐엉뛰엔은 차이펑의 손을 맞잡는다.

차이펑은 인자한 얼굴로 그를 안아 준다.


“아이고, 고생 많았습니다. 아랫동네 사람이시죠?”

“그걸 어떻게?”

“저희는 삼각산에 사는 바퀴족입니다.”

“바퀴족이요?”

“네. 여러분들 같은 사람들을 돕는 부족입니다.”

“저희 같은 사람들이요?”

“네. 종종 아랫동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삼각사의 전설을 듣고 아이언스를 피해 올라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삼각사는 여러분들이 아는 그런 절이 아닙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식인종 놈들이 사는 곳입니다.”


차이펑 영감 뒤에 있는 그의 무리는 고개를 떨군다. 모두가 슬픔에 잠긴 표정이다. 차이펑은 그들을 한번 본 뒤 말을 이어나간다.


“우리는 저 몹쓸 놈들에게 가족을 뺏기고 제 목숨만 부지한 바퀴벌레 같은 놈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대장은 스스로 바퀴라 칭하며 죄를 씻고자 하는 마음에 이리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는 활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좋은 일을 하시네요. 저희는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옆에 있던 린타오도 남편 흐엉뛰엔 옆에 서서 감사 인사를 전한다.

차이펑은 같이 고개를 숙인다. 그의 뒤에서 그의 무리들도 모두 함께 인사를 건넨다. 차이펑은 말을 이어나간다.


“이 모든 게 인간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우리의 신, 바퀴님 덕입니다. 그 바퀴님이 오늘 저희에게 신의 말씀을 전달하셨습니다.”

“신의 말씀이요?”

“네. 저희가 어찌 가족분들이 이리로 올 줄 알고 있었겠습니까? 다 신의 예지입니다. 삼각사를 찾는 어린 양을 보살펴라. 그리고 우리를 찾아온 영웅을 필두로 삼각사의 식인종 놈들을 물리치고 삼각사를 모든 이의 안식처가 될게 할 것이니라.”

“영웅이요?”


흐엉뛰엔은 쑥스러워 머리를 긁으며 웃는다.

차이펑 노인은 그 모습에 귀여워하며 웃는다.


“허허. 미안하지만 난세의 영웅은 저 청년이랍니다. 저 청년이 여기 있는 모두를 구하고 삼각사를 차지하게 할 난세의 영웅입니다.”

“아아, 제 아이가요?”


흐엉뛰엔은 어쩐지 좀 민망한 표정이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가 특별한 예언을 받은 영웅이란 이야기에 어쩐지 더 좋아한다. 그의 엄마도 호이를 자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정작 당사자인 호이의 표정은 영 좋지 않다.


“구해주신 것은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만, 우리 가족은 그저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야 이놈아. 그게 무슨 말이냐? 우리가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 나왔는데 그 끔찍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다니?”


아빠인 흐엉뛰엔은 아들 호이의 등을 때리며 말한다.

엄마인 린타오도 흐엉뛰엔을 도와 그를 뜯어말린다.


“그래. 아버지 말씀 들어 호이야. 이분들과 함께 움직이자.”

“아까 보셨잖아요? 그 스님이란 놈들 너무 위험합니다. 도움을 받긴 했지만, 그렇다고 오늘 처음 본 이분들을 어떻게 믿고 함께 움직여요? 그냥 돌아가시죠. 어머니, 아버지.”


흐엉뛰엔과 린타오는 차이펑의 눈치를 살핀다.

차이펑은 그저 인자하게 웃을 뿐이다.


“영웅이 내키지 않는다면 저희가 어쩔 도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다음을 기약해봐야죠.”


바퀴족 무리도 굉장히 아쉬워한다.

호이의 부모는 아쉬워하며 호이와 같이 몸을 돌린다. 그런 호이의 마음을 바꾼 것은 코이의 작은 소리였다.


“형. 나 돌아가기 싫어. 거긴 너무 추워. 호이 형, 그리고 나 너무 배고파.”

“이거라도 먹으렴. 꼬마야.”


차이펑 영감은 주머니에서 고구마 하나를 꺼내 아이에게 준다.

호이를 제외한 가족들은 허겁지겁 작은 고구마를 나눠 먹는다.

호이는 당황하며 그들의 옷자락을 잡는다.

그러나 가족들은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허겁지겁 작은 고구마를 먹는다.

차이펑 영감은 무리에게 손을 뻗는다. 그러자 무리들은 주머니에서 감자와 당근 등 다른 음식과 물을 꺼낸다. 차이펑은 그것들을 가족들에게 건네며 말한다.


“천천히 드세요. 먹을 것이 충분히 있습니다.”


호이는 호의를 베푸는 차이펑 영감을 보고 결심한 듯 묻는다.


“영감님. 제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


차이펑은 감동한 듯 호이를 빤히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고 말한다.


“아아, 영웅이시여. 지금부터 저희 바퀴족의 계획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차이펑 영감은 호이의 손을 맞잡는다.

호이는 내키진 않지만, 급하게 배를 채우는 가족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2 (무등산 입구, 타오르는 불)


아이언스 하나는 진압봉을 들고 은고페페에게 달려든다.

은고페페는 검을 휘둘러 아이언스의 진압봉을 막아낸다. 그러나 힘으론 역부족이다. 점점 거칠어지는 진압봉에 뒤로 밀린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나간다.

은고페페는 그들에게 가려 하지만 자신을 막아선 아이언스를 벗어날 수가 없다.

그때, 크낙새 부대 병사 하나가 머리에 진압봉을 맞고 피가 터지며 쓰러진다.

은고페페는 그 모습을 포기한 듯 검을 든 손을 내린다.

아이언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은고페페에게 달려든다.


“으랏차!”


망태의 거대한 기합 소리와 함께 아이언스의 몸뚱이가 대각선으로 썰려져 나간다. 넋 놓는 은고페페의 뺨을 세게 친다.


“이보시오! 은고페페!”

“어, 어르신.”

“정신 차리시오. 당신 부하들 여기서 다 죽일 셈이요?”

“아, 아닙니다.”


은고페페가 다시 검을 든다.

망태는 아이언스 중앙으로 달려가 도끼를 휘두른다. 거대한 도끼질 두, 세 번에 아이언스들은 한걸음 물러난다. 망태의 행동으로 독립군과 아이언스 사이의 찰나의 정적이 흐른다. 서로를 향해 무기를 꺼내 들고 대치만 할 뿐이다. 그 찰나를 노련한 망태는 놓치지 않는다.


“은고페페! 들으시오. 지금 당장 모두를 데리고 6시 방향 산을 향해 달려가시오. 다른 젊은 친구들도 듣게나. 자네들을 의심했네. 그래서 자네들을 피해 도망치려 했다네. 자네들을 버린 게 아니네. 그러니 부디 살아 돌아간다면 나의 동료들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 주게나.”

“어르신! 같이 가셔야 합니다.”

[저것들 뭐라 하는 거야?]

[시간 줘서 좋을 것 없어 보인다. 덮쳐.]


아이언스들은 다시 달려든다. 가장 필두로 달려드는 아이언스의 머리통을 정확히 반으로 쪼개내는 망태다. 그리고 자신을 지나치려는 아이언스의 목덜미를 잡고 귀를 물어뜯는다.

그런 망태의 복부를 다른 아이언스가 진압봉으로 후려친다.


“컥!”


망태는 피를 토한다. 그러나 물러나지 않고 다시 아이언스를 향해 거대 도끼를 휘두른다.

진압봉을 세워 도끼를 막은 아이언스는 뒤로 밀려난다.

크낙새 부대원들은 그의 처절한 희생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 있다.

은고페페는 검을 들고 나서며 말한다.


“전 대원! 어르신과 함께 싸우면 승리할 수 있다.”

“제발. 정신 차려라. 이 애송아!”


우레와 같은 목소리에 은고페페는 당황한다.

망태의 눈은 피로 물들어 빨갛게 충혈되어 있다. 무서운 눈을 하고 은고페페를 혼내기 시작한다.


“다 죽일 셈이냐? 승리? 이들을 이긴다 해도! 몇이나 살아남을 듯싶으냐? 살아가라. 가서 더 의미 있는 전장에서 죽어라. 여기는 나의 전장이다. 얼른 꺼져라. 이것들아!”


은고페페는 망태의 말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리곤 흐르는 눈물 한 방울을 팔로 훔치고 소리친다.


“크낙새! 모두 6시 방향으로 뛰어! 목숨 걸고 살아남아라!”

“독립!”


크낙새 부대 대원들은 달아나기 시작한다.

아이언스들은 도망가는 그들을 쫓는다.

그러나 망태는 단 하나도 보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아이언스를 붙잡는다.

아이언스는 그런 망태를 진압봉으로 내리친다.

피를 철철 흘리고 여기저기 처맞아 그 어디 하나 멀쩡한 곳이 없다. 팔은 부러져 더는 도끼를 들지도 못한다. 어떻게 서 있는 것인지 신기할 정도로 무릎은 돌아가 있다. 그런데도 망태는 쓰러지지 않는다.

그 순간, 빠르게 망태의 옆을 아이언스 하나가 지나친다.

망태는 뒤를 돌아 아이언스를 붙잡는다. 그의 무릎이 완전히 돌아가며 망태는 쓰러진다. 그는 아이언스의 발목을 붙잡고 실성한 듯 소리친다.


“이놈! 어디를 가느냐? 그 어디에도 못 간다.”


그런 망태를 다른 아이언스 5명이 달려와 진압봉을 내리치며 손을 떼어 놓으려 한다.

나머지 아이언스들을 도망친 크낙새 부대를 뒤쫓는다.

아이언스의 발목을 부여잡은 망태의 손이 마침내 놓아 진다.

다른 아이언스들도 그를 버리고 모두 독립군을 쫓기 시작한다. 죽어 자빠져 있는 아이언스들 시체 옆으로 망태가 덩그러니 누워 있다.

망태는 벌겋게 물든 하늘을 본다. 온통 피범벅이 된 세상을 바라본다. 그의 시야에는 그저 붉게 물든 하늘과 붉게 물든 산이 보인다. 그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눈을 훔친다. 그제야 붉게 물들였던 피가 거치고 맑은 하늘이 보인다. 푸른 산이 보인다. 망태는 다 부러진 손을 힘겹게 들어 하늘을 향해 뻗는다.


“너무나 아름답구나.”


망태의 뻗은 손이 땅으로 떨어진다.

망태의 화양연화가 막을 내렸다.


툭-.


망태가 눈을 감자 주변에 모든 새가 날아간다. 멀리멀리. 새들은 한참을 망태 주변으로 떼 지어 빙글빙글 돈다. 새 떼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도풍산 전역에 울려 퍼진다.

한참을 돌던 세 때는 힘차게 날갯짓을 한다. 높이 날아간다. 날아가는 새 떼 아래로 높디높은 도풍산 능선이 보인다. 그 능선을 독립군 200명이 바퀴벌레처럼 우르르 몰려간다.

달리던 독립군의 눈에는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방울들이 흘러 내린다.


죽어도 여한이 없던 망태의 불길은 오늘 영원히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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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인간 말살 작전(4/12) 24.02.10 9 0 12쪽
47 인간 말살 작전(3/12) 24.02.09 9 0 13쪽
46 인간 말살 작전(2/12) 24.02.08 8 0 13쪽
45 인간 말살 작전(1/12) 24.02.07 9 0 13쪽
44 죽음 24.02.06 6 0 13쪽
43 독립군 24.02.05 12 0 13쪽
42 운명 24.02.04 6 0 12쪽
41 전보 24.02.03 8 1 13쪽
40 씨앗 24.02.02 7 1 13쪽
39 작전 24.02.01 7 1 13쪽
38 전쟁 준비 24.01.31 9 1 13쪽
37 우물 24.01.30 8 1 13쪽
36 짐승 24.01.29 8 1 12쪽
35 협력 24.01.28 11 1 12쪽
» 화양연화 24.01.27 9 1 12쪽
33 불씨 24.01.26 10 1 12쪽
32 동족 24.01.25 17 1 11쪽
31 바알 24.01.24 9 1 13쪽
30 미산트라 24.01.23 12 1 12쪽
29 정착 24.01.22 13 1 13쪽
28 미래 24.01.18 15 1 14쪽
27 승리 24.01.17 11 1 12쪽
26 전쟁(2/2) 24.01.16 17 2 13쪽
25 전쟁(1/2) 24.01.15 14 2 12쪽
24 조우 24.01.14 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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