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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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ithrone
작품등록일 :
2024.05.0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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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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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9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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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DUMMY

“그래서, 그게 다야?”

다는 아니지, 물론. 그렇게 지하철 역 근방에서 괴별쩍은 헤어짐을 가진 후, 그래도 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예의를 다한다는 심정으로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도중 문자도 보냈었다.

「승미씨 조심히 들어가세요 오늘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당연히 답은 없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 발 닦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도 여전히 응전해 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자 아주 속이 개운하고 후련해 옴을 금치 못했었다. 뭐랄까, 이렇게 까지 했으니 답이 없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최소한 난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에 충만 가득한 떳떳함이 밀려올라왔던 때문이라고나 해야 할까?

“저녁 잘 멕이고, 헤어지고 나서 잘 들어가라고 문자도 했는데 답도 없네요.”

“그래? 왜 그럴까. 걔가 그럴 애가 아닌데.”

아씨~! 그러니까, 당신이 걔를 얼마나 아냐고!!

“뭐, 암튼 뭐 그렇게 됐어요.”

“그래 알겠다.”

“예 형.”

“아쉽네.”

이 몸은 별로 안 아쉽사옵니다.

“내가 다시 한 번 잘 말해볼께.”

뭐라구?

“네?”

“아냐아냐, 이거 너무 아쉬워. 내가 봤을 땐 걔랑 너랑 딱이야. 걔가 얼마나 괜찮은 앤데. 너 분명 걔 놓치면 후회한다.”

괜찮거등요. 형도 형이지만, 나도 뭐 걔 얼마나 봤다고. 태어나서 지금껏 삼십년 넘게 살아오는 와중 얼굴 마주한 거 고작 한 저녁 정도가 단데 아쉽고 후회하고 자시고가 어딨겠습니까.

“아니 됐어요. 형 괜찮아요.”

“아냐아냐, 내가 전화를 한번 해볼게. 뭣 때문에 그랬는지 함 물어보고 내가 잘 얘기해볼께.”

“아 진짜 괜찮다니까요?”

막무가내로 튀어나오는 형의 어사에 진짜 언성까지 높아질 지경이다.

“기다려 봐 인마. 내가 그런 거 또 잘해.”

“···하아~ 아뇨, 형. 하지 마시라구요. 그럴 필요 없”

“일단 기다려봐. 내가 이따 전화 줄께.”

그러고는 내 마지막 대답도 내어놓지 못했는데 일방적으로 끊어버리는 이양반이다.

···

참··· 뭐라 할 말이 없다.

아까까지의 좋았던 기분 어디로 도망쳤는지 꽁무니조차 보이질 않네. 그냥 한마디로 요약하여 「더럽게 걸린 것」 같은 기의가 드는 건 왜일까.

에이 썅~! 본인이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거지 왜 저렇게 나서서 오지랖 질이야 오지랖 질이! 그렇게 아쉬우면 내가 알아서 기별을 보낼 텐데, 저리 눈치가 발바닥이니 현전에 선녀가 앉아있어도 멍청하게 나무에다 도끼질만 해대고 있지! 그때 잠시 떠올렸었던 ‘만약 이 둘이 맺어진다면 완전 선녀와 나무꾼의 현대판 비주얼이겠는 걸?’이라는 생각 전면 폐기에 들어간다. 저렇게 감을 못 잡고 계시니 둘이 이어지기는커녕 어디 이거 선녀폭포 근처까지 갈 수나 있겠나!

별 수 없다. 어제 저녁 모든 것이 끝났다 여기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너무 안이한 생각이었었나 보다. 마치 마지못해 로데오 경기장으로 끌려나온 수소마냥 전혀 뜻하지 않은 연장전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임하게 되다니. 이건 아마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그 아가씨도 똑 같은 입장으로 견지하게 될 것임이 틀림없다. 공구함 속에 있는 자석들은 아무리 떼어놓고 가지런히 정리를 해놔도 시간 흘러 몇 번 왔다 갔다 하다보면 어느새 둘이 딱 엉겨 붙어있는 모습으로 여타 자재들 사이에서 발견되기 마련이다. 사람일도 대저 이와 같다. 서로 맞으면 천리 길 떨어져 있어도 언젠가는 만나게 되고, 맞지 않으면 얼굴을 대하고 있어도 불편하기 그지없는 법. 인간들이 제 아무리 노력한다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물며 지금 마음 피차없음 말 안 해도 태가 날 정돈데 가운데서 제삼자가 애쓴다고 상황이 무어 달라지겠는가. 심판으로 올라선 주선자의 위치에서 억지 어찌 두 사람을 시합장으로 내몰 순 있겠으나 이미 전반전과 후반전을 통해 모든 기력을 날려버리고 더 이상은 이기고 지는 것에 아무런 관심 없는 선수들의 경기가 연장되면 무엇 하리오. 가운데서 소리소리 지르는 주심만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어떤 의미도 건지려하지 않은 채 의욕 없이 경기장을 내려오는 무거운 두 발걸음만이 소리 없는 야유 속에 묻혀 질 뿐 일진데···. 젠장. 보신각종 사거리에서 출발해 YMCA건물을 지나고 삼일문을 거쳐 종묘광장공원에 이르는 등 정말 볼 것 많은 이 동네지만, 살랑 흐리어진 기분에 잠식된 시야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질 않으려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부지런히 움직이는 나의 족적은 마침내 종로성당을 끼고 돌아 충청남도의 어느 도시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을 갖고 있는 유명 제약회사 맞은편에 본체를 도달시켰다. 전화기를 켜보니 디지털 화면에 나와 있는 아날로그 모양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시간 11시 43분. 좀 서둘러 걸은 탓인지 인터넷 지도에 나오는 예상이동시간보다 2분 단축되었다. 약속시간에 늦지 않고 도착한 덕분과, 그에 더해 또 친구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내 주위의 대기가 조금은 나은 쪽으로 환기 된 듯하다.

이제 여기서 나의 벗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왕!”

“처언~!”

이게 우리가 서로를 알아보자마자 처음 내뱉은 말들이다. 큭큭 무슨 애들도 아니고···.

“오랜만이야!”

“살만한가배? 얼굴 좋네 그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가운 인사말을 속사포처럼 주고받다가 얼굴을 마주 할 만큼 가까워지자 손을 내밀어 크게 악수를 나누었다. 힘이 불끈 들어갔다.

얼마 만에 보는 건진 나도 자세히 모르겠다. 부산 갔다 와서 처음 만나는 것이니 아무래도 정수만큼은 되지 않았나 싶다. 여하튼 몇 개월은 족히 되었구나. 연 단위로 면상 보는 친구는 아닌지라 지난번 봤을 때와 달라진 점이 하나 없다. 이래서 부모님들 어느덧 늙은 모습에 가끔 깜짝깜짝 놀라는 건가보다. 역시 사람은 자주 봐야 하는 갑다.

“뭐 그렇게 보기 힘들어?”

몇 번을 전화했는데 번번이 퇴짜를 먹었던 사실이 못내 앙금으로 남아있었는지 현태가 살짝 핀잔을 올린다.

“먄하다. 먹고 사는데 별 수 있냐.”

“이 새끼, 예전엔 심심하면 찾아와 밥 내노라고 시위하더니.”

“야~ 그때는 백수였고.”

“알어 인아 알어. 그래, 새로 다닌 직장은 할 만하냐?”

“그러니까~. 벌써 반년 다 되어간다.”

“짜식, 신수 훤~해졌네. 양복도 빼입고 다니고. 예전엔 어디서 후줄근한 거지같은 옷만 입고 다니더만 킥킥킥.”

“아이씨~ 패션이야 패션~ 요즘 유행하는 빈貧티지 몰라?”

“패션은 지랄~.”

이거 만나서부터 계속 얼척 없는 소리만 오간다. 우리가 시간 넘치는 한량은 아닌지라 이쯤에서 맥을 끊어야겠다.

“아 시끄럽고, 어서 앞장서~ 맛 집 어디야.”

“그래, 따라와라. 그래도 일부러 쫌 일찍 나왔으니 서둘러야지.”


식당은 이 인근 어딘가로 접어든 허름한 골목길과, 그와 궤를 같이하여 서있는 건물에 허름하게 터전잡고 있었다. 간판 역시 재래시장 어귀에서 간간히 볼 수 있는, 글자 막 몇 개 떨어져나가고 그 흔적만이 남아있어 세월의 평지풍파 고스란히 담아낸 것 같은 고물중의 상 고물 모양새다. 현태와 난 그 묵은 때 퀴퀴이 박혀있는 음식점 안으로 빨려들듯 들어갔다.

겉에서 보기와 달리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그러나 벌써 자리는 반이나 차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굉장한 집에 온 것 같다. 난 이런 곳도 좋아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사방 벽면 붙어있는 낡고 아담한 차림판에 오로지 「양푼이 김치찌개」하나만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것이 더욱 맘에 들었다. 자고로 맛 집은 식단이 단순해야 한다. 순댓국집은 순대국 하나, 그리고 냉면집은 냉면 하나. 거기에 내장탕, 육개장, 뼈다귀 해장국 등 갖가지 음식들이 같이 올라있으면 부득이한 사정이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일단 거르는 게 상책이다.

“야~ 이집 맘에 드는데?”

갈비집에 있는 것과 같은, 가운데 화구가 뚫려져있는 원형 탁자 주변에 여장을 내려놓으며 난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디 한번 먹어봐라. 어딜 가든 계속 생각 날 테니.”

그런 나의 모습에 맞장구 쳐주는 왕이다.

“그래그래. 오늘 맛있는 걸루다 입이나 한번 즐겁게 해보자.”

“좋았으~ 여기 주문요~.”

그러나 친구가 고개를 돌리며 말을 채 다하기도 전에 이미 아주머니 한 분이 물과 밑반찬이 담겨진 쟁반을 들곤 우리 앞으로 당도해 있었다.

“예~.”

왕은 귀신같은 손놀림으로 접시들을 상위에 포진시키고 있는 아주머니께 말을 이었다.

“안녕하세요 이모.”

“네에~.”

하여간 어딜가나 다 이모 삼촌이다.

“저희 2인분이요.”

“네 삼촌~.”

응당 그러해왔다는 것처럼 음식이름도 말하지 않았고, 되물어보지도 않는다. 햐~ 정말 효율적인데?

“야 너 라면사리 괜찮냐?”

“못 먹는다.”

“뭐?”

“없어서.”

“아이 씨!! 이모 저희 라면사리도요.”

“네~.”

주문을 받은 이모는 번개같이 다가왔던 속도 그대로 다시 주방 쪽을 향해 멀어졌고 나와 왕은 각자 앞에 놓여진 젓가락을 들어 마침 심심하다고 아우성치던 뱃속을 달래주기 시작했다.

“반찬도 맛있네.”

“여기가 보기는 그래도 조금 늦으면 자리가 없다 야.”

“그래 보여~ 나 이런 곳 좋아해.”

“다행이네. 크크.”

“케헤헤~.”

잠시 이 친구 대해 이야기하자면, 노쇠한 나이에 예비군 훈련 가서 만난 늙다리라는 건 아까 이미 언급했고, 지금은 이곳 그 이름도 높은 종로 「보석거리」를 뒤에서 지탱시켜주고 있는 거대한 세공업계의 기린아로 명성 자자하다고 스스로를 칭하는 녀석이다. 말로는 타칭까지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직접 확인해보지 못했으니 그 부분은 통과~. 어쨌든 이 바닥에 꽤 오래있었다는데 그 말 그대로 내가 근 십여 년 전 처음 봤을 때부터 종로에서 일한다고 했으니 아마 뻘짓만 하지 않았다면 실력도 상당하지 않을까싶다. 여하튼 그렇게 꾸준히 한 우물 파오며 성실한 직장생활을 해왔고 몇 해 전에는 오래 사귀어온 아리따운 피앙세와 백년가약까지 맺었음이다. 거기다가 다행히도 아빠가 아닌 각시를 닮은 이쁜 딸까지 낳았으니, 정말 알콩달콩 재밌게 살고 있는 멋진 사내놈이라 아니 말 할 수 없겠다.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제수씬 잘 지내냐.”

“잘 지내지 물론. 요즘엔 애 보느라 정신없다. 그렇지 않아도 좀 전에 통화하면서 너 만난다고 얘기했는데.”

“내 이름 기억은 하냐?”

“장난해? 내 마누라도 너 「천」이라고 불러.”

“푸허헛~.”

“안부 좀 전해 달라드라. 요즘엔 왜 놀러 안 오냐고.”

“야 이제 더 힘들지. 애기 있는 집에 어떻게 가냐? 아마 몇 년 더 걸릴꺼다.”

“하긴, 그건 그래.”

“그냥 안부나 좀 전해줘. 나도 이~쁜 혜정씨 보고 싶어 미치~겠노라고. 큭큭큭.”

“미친~? ···그래 알았다.”


잠시 후, 붙여진 이름과 추호의 틀림도 없는 커다란 양푼이가 상 한가운데 놓여졌다.

“바로 드셔도 되요~. 다 익혀서 나온 거에요~.”

“예 감사합니다~.”

보기에도 맛깔스러운 붉은 국물이 시큼하고도 상큼한 냄새를 보글거리며 뿜어내는 놈이었다.

참아 온 시간도 아까워 우린 빠르게 국자를 움직여 자기 앞에 놓여 있던 접시 위에 경쟁적으로 녀석의 피와 살을 담아재꼈다. 이 순간만큼은 불필요한 대화로 시간을 지체해선 절대 안 된다.

한참을 서로 그렇게 말이 없었다. 쩝쩝거리는 소리 외에. 솔직히 어제 정수와 먹은 것보다 몇 배는 맛있었기에 감히 음식물을 씹는다는 행위 외에 다른 용도로 입을 놀릴 수가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그러면서도 흥미로운 건 24시간 전에 때운 점심이 이와 비슷하다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부대찌개였는데, 마침 또 그 집이 새 단장하기 전에는 여기와 같은 양푼이 김치찌개 집이었다는 거다. 참 묘한 우연이로다. 아무래도 난 이번 주에 반드시 양푼이 김치찌개를 먹여야만 하는 운명이었나 보다. 또 떠오른다. 유연천리 래상회···.

“풋~.”

잡생각에 못 이겨 처먹다 말고 작은 웃음을 삐죽이었다.

“?”

왕은 그런 날 보며 잠시 갸우뚱한다.

그 탓에 편시 둘 다 먹는 것이 멈추어졌다.

“왜 그래, 뭔 일 있냐?”

“아냐아냐아냐. 별거 아냐.”

“······.”

나의 이런 돌발 행동이 뭔가를 움직였는지 녀석은 뒤로 얼마간은 수저를 들지 아니했다.

“??”

나 역시 친구의 멈춰진 손동작에 차츰차츰 속도가 맞추어 질 수밖에 없었는데···.

“···.”

“야···. 소주 한잔 할래?”

“???”

직장인의 점심시간에 절대 나올 수도 없고 나와서도 안 될 말이 왕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일순 난 입을 열지 못했다.

“······.”

“··· 뭐?”


작가의말

오래전 헤어졌던 연인에게서 온 전화 한통.

과연 천준호의 선택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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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목요일 24.07.27 8 0 18쪽
43 목요일 24.07.18 8 0 20쪽
42 목요일 24.07.12 6 0 20쪽
41 목요일 24.07.05 8 0 22쪽
40 목요일 24.06.28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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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수요일 24.06.13 10 0 24쪽
36 수요일 24.06.12 8 0 26쪽
35 수요일 24.06.11 7 0 23쪽
34 수요일 24.06.11 9 0 24쪽
» 수요일 24.06.09 7 0 13쪽
32 수요일 24.06.09 8 0 13쪽
31 수요일 24.06.07 10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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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화요일 24.06.02 8 0 13쪽
25 화요일 24.06.01 5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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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화요일 24.05.30 8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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