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동훈의 이야기(Chapter 5 - 의혹)
Chapter 5 - 의혹
학폭이라는 말에 형식의 눈이 동그래 지는걸 본 미라가 얼른 다시 한번 묻는다.
“그래 학폭, 걔 무슨 학폭 당한거야?”
“에이 학폭은 무슨···아니예요.
걔한테 감히 누가 그래요?
걔 엄마 아빠가 졸라 부자라서 아무도 못 건들었어요.
선생님 아니 교장 선생님도 아무 말 못하는 걸요 뭐”
“그렇게 부자야?
부모님이 무슨 큰 사업이라도 하시나?”
“그건 모르겠구요.
두 분 다 관남시에서 잘나가는 종합 병원 의사라던데요.
그래서 아무도 손 못댔어요.
아마 아빠가 어디 병원 원장이고 엄마도 엄청 잘나가는 사람이랬나 그럴걸요?”
“혹시 무슨 병원인지 알아?”
“그건 모르겠어요.
근데 어쨌든 집이 졸라 부자라서 걔 엄카 신공 장난 아니었어요.”
“엄카 신공?”
“네, 엄마가 학원비랑 밥이랑 먹을 때 쓰라고 카드를 줬는데 아무리 써도 뭐라 안한데요.”
“집이 그렇게 부잔데 걘 왜 막 자살 소동 벌이고 그랬을까?
뭐 짚이는 건 없어?”
“모르죠 왜 그러는지.
근데 아마 공부 스트레스 때문일거예요.”
“공부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길래 그 난동을 부린데?”
“근데 누나, 저 간식으로 생크림 요거트 하나 더 먹으면 안돼요?”
“그래 먹어 먹어.
자 이걸로 결제하고.”
형식이 싱글벙글하며 요거트를 들고 오자 나머지 인터뷰를 진행했다.
“걔 중학교 때 부터 맨날 전교 1등만 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올라오더니 미친 넘 처럼 왔다리 갔다리 지 맘대로 하더라구요.”
“지 맘대로 한다니?”
“기분 좋았다가 갑자기 우울해졌다가 하는 거 그거 있잖아요.
조···머시기 있잖아요?”
“조울증?”
“네 그거요.”
“아 그래, 그래서 계속 이야기 해봐”
“걔가 맨날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진짜 뭐가 되고 싶은지 뭘 하고 싶은지 관심이 일도 없다고 그랬어요.
근데 그거야 뭐 우리 엄마 아빠도 똑같은데···
걔는 그게 그렇게 기분 나빴나봐요.”
“그게 그렇게 힘들었데?”
“그랬나봐요 근데 걔 엄마 아빠가 다 의사잖아요.
동훈이한테 어릴 때 부터 의사가 되라고 했나봐요. “
“성적이 안되는 것도 아니고 동훈이가 어지간히 의사가 되기 싫었나보구나.
스트레스 많이 받았겠네.”
“맞아요 그게 진짜 스트레스 받았나봐요.
걔 부모님이 진짜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 안하면 큰일 나나봐요.
그러니까 하기 싫다고 말도 못했나봐요.”
“그렇구나. 그런데 동훈이 정도면 당연히 과외 같은거 하겠지?”
“중학교때는 한걸로 알아요.
우리 학원 갈 때 걔는 과외 받으러 간다고 집으로 갔거든요.”
“그래? 지금도 과외 받겠지?”
“아뇨, 지금은 학원 다닐걸요.”
“그래? 너 그 학원 어딘 줄 알아?”
“네, 아마 안 바꼈다면 저기 대처동에 있는 엘리트 학원일 거예요.”
“아~ 거기! 상위 1프로만 받는다는?”
“네, 거기 시험 보고 들어가는 학원 인데, 미친! 걔는 거기서도 탑 찍었데요.”
“와~대~박! 걔 완전 천재 인가 보다.”
“옆에서 보면 머리는 뭐 졸라 좋은 것 같아요.
근데요 그것 보다는 걔네 아버지가 뭐든지 2등하면 졸라 가만 안둔데요.
그래서 걔가 더 디지게 공부 하는 것 같아요.’
“걔 아빠가 그정도로 심했데?”
“중3때인가 한번 2등인가 했는데 골프채로 막 팼데요.”
“아니 2등했다고 골프채로 애를 때려?
20등도 아니고 2등인데?”
“그 때 걔 완전 쫄아 가지고는 ···알고보면 걔 졸라 불쌍해요.”
“그러게 동훈이 진짜 힘들었겠다”
“맨날 하는 소리가 대학 가면 집부터 나갈거라고 했어요.”
“집을 나간다고?”
“미친! 새처럼 훨 훨 날아서 졸라 멀리 떠나고 싶다나 ···
어쨌든 모르겠고 일단 집 떠나고 싶댔어요.”
“나 같아도 그런 집이면 벗어나고 싶겠다.”
“저두요”
“그래도 막 처음부터 자살한다고 그러진 않았나봐?”
“처음엔 안그랬죠.
고1 때 까진 괜찮았는데 아니 이 븅신이 갑자기 2학년 올라 가더니 미쳐서 저래요.”
“고2 때부터 갑자기 그랬다고?”
“네 거기다가 요즘 가끔씩 머리 아프다고 쓰러져서··· 그 있잖아요 그···막 몸 뻣뻣하고 거품 물고”
“간질병?”
“맞아요 그거 간질병 환자처럼 머리카락 쥐어 뜯고 막 덜덜덜 떨고, 어떨 땐 코피도 막 질질 흘리고···
그러다가 또 금새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고···.
딱 보면 진짜 미친 놈 같아요.”
“그런 일이 있었어?”
“옆에서 보면 꼭 마약 중독자 같기도 하고···여튼 걔 이상했어요.”
미라는 형식이의 취재를 다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동훈을 생각하니 아이가 얼마나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저런 행동을 할까 싶어 한숨만 나왔다.
그렇게 가게 앞에 서서 자조 섞인 혼잣말을 하는 미라,
“에~휴! 하여튼 대한민국 교육 참 문제야.
이건 뭐 교육이 아니라 애들을 아주 죽게 만드는데 이게 교육이야?”
연신 욕지껄이를 날리는 미라의 마음에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동훈이를 만나야 할 것 같았다. 다음날, 학교 앞 보다는 매일 가는 학원이 나을 것이라 판단 한 미라는 아이들이 학교를 마칠 시간보다 좀 일찍 엘리트 학원으로 향했다.
대처동, 학원가 거리, 대한 민국 사교육의 메카!
그 중에서도 상위 1%만 들어 갈 수 있다는 엘리트 학원!
저녁을 대충 때운 미라는 학원이 잘 보이는 맞은 편 커피숍 2층 창가에 앉았다. 맞은 편에 엘리트 학원이 똭 보이자 혼잣말을 하는 미라,
“돈만 많아도, 공부만 잘해도 못 들어 가는 학원이라···.”
아이들이 학원을 끝내고 나올려면 제법 오래 기다려야 했다. 미라는 지금까지 취재한 내용을 기사로 내보내기 위해 노트북을 꺼내 정리하며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이번 기획 기사의 첫 타이틀 기사는 동훈이에 대한 심층 취재 내용을 쓸 생각이다. 그래서 1편의 제목은 ‘전교 1등의 스트레스’로 미리 정해 두었다. 미라는 그동안 취재한 내용들을 정리하다 문득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 엘리트 학원과 다른 건물 사이에서 미라의 눈에 들어 온 것은···
“어라, 저거 드림 메이커 네!
저게 저기 있었구나!”
학원 빌딩 사이에서 힐끗 보인 건물의 LED 광고판에 반짝이며 보이고 있는 것은 명함에서 보았던 그 ‘드림 메이커’ 였다. 밝은 낮에는 보이지 않아 베일에 쌓여 있던 드림 메이커가 어둠이 오자 불을 밝히면서 눈에 들어 온 것이다. 미라는 살짝 흥분한 채 본능적으로 전화기를 들어 기철에게 전화를 했다.
미라가 동훈의 학원을 찾아간 그 날 낮, 기철은 김 형사를 만나기 위해 경찰서로 향했다. 김형사의 바쁘니까 다음에 오라는 말이 기철에게는 ‘나는 지금 경찰서에 있고 귀찮아서라도 묻는 말에 얼른 대답을 해서 보낼거야’ 라는 말로 들리는 듯 했다.
경찰서로 들어가기 전에 정문 앞에 있는 작은 슈퍼로 가 선물용 인삼 음료 세트를 사는 기철,
모두 보라는 듯 한 손에 방금 산 음료 세트를 들고 경찰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기철이 호들갑을 떨며 경찰서로 들어가자 다른 경찰들 모두 기철을 아는 듯 가볍게 목례를 한다.
들어 서며 거침 없이 형사과로 직행하는 기철,
언제나 정신이 없는 형사과는 요즘은 연일 터지고 있는 연쇄 성폭행 사건 때문에 평소 보다도 더 정신이 없는 듯 했다. 기철은 한쪽에서 서류를 들고 걸어 오는 김형사를 보자 반갑게 인사를 하며 다가갔다. 하지만 기철을 보는 김형사의 얼굴은 마치 빚쟁이를 보는 듯이 떨떠름 하다. 눈치 빠른 기철은 인삼음료 세트에서 한병을 꺼내 쫙 경쾌하게 비틀어 까서 김형사에게 짐짓 공손한 척 두 손으로 건내면서 말한다
“아이고 우리 김형사님 요즘 그놈의 연쇄 성폭행범 때매 바쁘지?”
“형님은 또 왠 일이래요?
어제 전화 통화 해서 바쁜거 알면서 일부러 왔어요?”
“에이 일부러는 무슨···허허허”
김형사는 얼굴에서 귀찮은 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말했다.
“문기자랑 둘이 짰어요?
하루는 문기자가 하루는 형님이···바빠 죽겠구만.”
“우리가 또 그런 걸로 막 작전 짜고 할 사람은 아닌거 알면서 예민하게 또 왜 그러실까?
일단 이거 한병 쭉 들이키고”
기철은 사온 인삼 음료를 하나 따서 김형사에게 내밀자 김형사가 싫지 않은 짜증을 낸다.
“이런 거 좀 가져 오지 말라니까 자꾸 가져오네.
뇌물로 걸려요 우리!”
“아니, 민생 안전을 위해 고생하시는 우리 형사님들 목 좀 축이라고 음료수 하나 샀는데 뇌물은 무슨···”
“형님 저 바쁘다고 아까 말 했잖아요.
대충 왜 왔는지 아니까 다음에 좀 조용할 때 와요.”
“우리 김형사 바쁜줄 알지 아는데··· 딱 하나만 물어보자.”
“아···뭐요 뭐?
나 농담 아니고 진짜 바쁘다니까요, 진짜로!”
“저번에 그 오피스텔 살인 사건 그거 아직 종결 안됐지?”
Chapter 5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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