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난나 케이스:프로이트가 남긴 멸망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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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ei
작품등록일 :
2024.06.03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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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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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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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 않은 벚나무

DUMMY

일본 나라현(奈良県) 이코마시(生駒市) 시기(信貴山)산 남쪽 기슭의 조그마한 마을 초입 골목 어귀에 버스 한 대가 도착한다. 버스에서는 할아버지 한 명과 한 아이가 내리고, 뒤이어 반찬거리를 한가득 담은 장바구니를 어깨에 맨 젊은 여성 한 명이 내린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를 입고, 상의로는 회색의 얇은 롱패딩을 입고 있는 그 여성은 패딩 밖으로 긴 머리를 꺼내놓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하얀 입김은 살갗을 에는 듯한 차가운 기운과는 다르게 쟁쟁하게 빛나고 있는 햇빛에 반짝반짝 빛난다.

그녀는 꽤 가파른 골목을 마치 보통의 평평한 길을 걸어가듯이 편하게 올라간다. 어깨의 무거운 장바구니도 은근히 힘차 보이는 그녀의 걸음걸이를 방해하지 못한다.

10여 분 이상을 걷고 나니, 올라온 골목보다 더 좁아 보이는 골목이 나온다. 하지만, 그 골목은 경사가 없는 보통의 평평한 길이었다. 다만 골목길이 좀 구불구불해서, 골목 입구에서는 골목 전체가 다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어깨에 맨 장바구니를 다시 고쳐 매고는 다시 힘차게 걸어간다. 어느새 그 골목을 다 지나가고, 맨 마지막 골목 코너를 돌자 사찰의 산문(山門) 하나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산문 앞쪽에는 꽤 넓은 공지가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큰 벚나무가 하나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 벚나무는 비록 앙상한 가지들 밖에는 없었지만, 몸통을 이루는 줄기는 양팔을 벌린 사람이 네 명이 서로의 손을 잡아도 끝에서는 손을 못 잡을 정도로 굵어 보였다.

장바구니의 그녀는 사찰 산문 공지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식 전통가옥 현관문으로 걸어가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그 벚나무 쪽으로 다가간다. 그녀는 벚나무 앞에 서서, 천천히 아래서부터 위까지 나무 전체를 살펴본다.

그때 그녀가 서 있는 벚나무의 뒤편에서 한 어린 남자아이가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벚나무를 돌아서 나온다. 반쯤 돌아서도 아직 장바구니의 그녀는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다. 한두 발자국만 더 걸어도 그녀에게 닿을 수 있을 정도까지 다가온 아이는 단번에 뛰어서 그녀를 놀라게 할 준비를 한다.

”왁!“

아이가 디딤발을 힘껏 짚으면서 장바구니 그녀의 허리춤을 와락 껴안았다.

”あら? これは誰だ、私たちの隆です。(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다카시이네.)“

그녀는 사실 이 벚나무 뒤에 다카시가 숨어 있는 것을 벌써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집으로 들어가려는 길을 멈추고, 벚나무로 발걸음을 돌린 것이었다.

”隆は忍者、お母さんが完全にだまされました。(다카시는 닌자네. 엄마는 완전히 속았어요.)“

그녀는 장바구니를 살포시 땅에 내려놓고는 이 추위에 숨어서 엄마를 놀라게 하려고 기다리다가 양 볼이 얼어서 빨갛게 되어버린 다카시의 볼을 입김으로 덥힌 손바닥으로 문질러준다.

그리고는 한 손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다카시의 손을 붙잡고, 장바구니의 그녀는 자신들의 집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今夜はお母さん特製カレー作って食べよう、大丈夫、隆?(오늘은 엄마 특제카레 만들어 먹자, 괜찮지, 다카시?)“

”うわー、カレダ。おいしいです。(와, 카레다. 맛있겠다.)“

그런데 여느 모자처럼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대화를 나누고 걸어가고 있는 그들 앞을 가로막고 서는 한 남자가 있다.

”잘 있었어? 다카코(貴子)“

한국어로 안부를 물어보는 그 남자는 바로 최호였다. 다카코라고 불리운 장바구니 여자는 그를 보자 잠깐 멈칫한다. 최호를 본 다카코의 첫 표정에서는 이 공간을 채우는 겨울의 냉기만큼이나 차가움이 내비쳐졌다.

”나야, 호.“

다카코는 입술을 잠깐 깨물더니, 한숨을 갑자기 푹 내쉰다.

”올 거면 연락이나 하고 오지. 이렇게 갑자기,,,“

다카코는 비록 어눌하지만 정확하게 한국어로 호에게 이야기한다.

”사실, 어제까지도 여기 올까 말까 고민해서 미쳐 연락 못했다. 미안해.“

”그걸 변명이라고 하냐? 나쁜 놈.“

다카코는 다카시의 손을 꼭 잡고는 최호를 지나쳐서 자신의 집쪽으로 걸어간다.

”연락이라도 했으면, 고기라도 사 왔을 텐데, 오늘은 그냥 같이 카레 먹어.“

퉁명스럽지만 그녀가 자신을 내치지 않는 것 같아서, 최호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맴돌았다.

”나 카레 좋아해. 그거면 충분해“

최호는 바로 그녀를 뒤따라간다. 최호를 처음 본 다카시는 약간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뒤돌아 쳐다보면서 아까보다 더 다카코 옆에 딱 붙어서 걸어간다.

”할아버지가 너를 많이 보고 싶어 하셨어. 먼저 할아버지에게 인사부터 해.“

최호는 그 아이의 얼굴을 보고서 바로 떠오르는 얼굴이 있어, 곧바로 다카코의 말에 대답하지 못한다.

”뭐야, 왜 대답 안 해?“

성을 내는 듯한 다카코의 추궁에 바로 최호는 아이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는 알았다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다카코에게 안내받으면서 최호는 그녀의 집 안쪽 넓은 도장을 지나서, 그 한편에 있는 방으로 간다.

”お父さん、최호が来ました。(할아버지, 최호가 왔어요.)“

문밖에서 먼저 말을 한 다카코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문을 밀어서 연다. 방 안은 등이 많이 켜져 있지 않아서 어두컴컴했다. 다만, 안쪽에 작은 테이블이 있고, 그 위에 스탠드 등이 있어 그쪽만 유난히 밝았다.

그 테이블 건너편 안쪽에는 긴 백발의 머리를 묶고 있는 한 노인이 한텐(袢纏)을 어깨 위에 걸치고 앉아 있었다. 그는 열린 문 사이에 최호를 발견하더니, 활짝 웃는다.

”いよいよ顔を見るようになりました。よく来ました。(드디어 얼굴을 보게 되었네. 잘 왔다.)“

최호는 방에 들어가서 그 노인에게 큰 절로 인사한다. 그 노인은 한때 일본 최고의 검사였던 모리 이치로(森一朗)였다. 그의 과거는 이치로의 뒤쪽에 있는 도코노마(床の間)에 그대로 전시되어있다.

도코노마에는 두 자루의 검이 거치대에 걸려 있다. 둘 다 손잡이인 츠카(柄)가 하얀색이었고, 그에 맞추어서 검집인 사야(さや)도 모두 같은 색을 하고 있었다. 검 하나는 일반적인 길이 카타나(刀)였고, 다른 하나는 짧은 칼인 쇼토(小刀)였다. 그리고 그 검거치대 뒤쪽에는 검(劍)이라는 한자를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써 내려간 글자가 걸려 있었다.

”私たちが5年ぶりに見たのか?“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최호는 당장 이치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옆에 있는 다카코를 바라보았다.

”5년 만에 보게 된 것이냐고 물어보시는 거야.“

최호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카코는 어느새 옆에서 녹차를 달이면서 앉아 있었다.

”その間、劍はどのように修練していますか?(그 동안 검은 어떻게 수련해 왔니?)“

또다시 이치로는 일본어로 최호에게 물어본다. 역시 통역해달라고 최호는 다카코에게 눈빛을 보낸다. 하지만 다카코는 그 말은 통역하지 않고, 끓인 녹차를 최호 앞에 한 잔 놓고는, 나머지 잔을 들고서 이치로 옆으로 다가간다.

다카코는 차를 들어서 입김을 불어서 차를 잠깐 식히고는 이치로의 입가로 가져간다. 이치로는 그대로 고개를 살짝 숙여서 다카코가 가져다준 차에 입을 살짝 대고 마신다. 그 과정에서 이치로의 어깨에 걸치고 있는 한텐 한쪽이 떨구어진다. 그리고 드러나는 이치로의 팔은 팔꿈치 아래가 보이지 않았다.

다카코는 바로 그의 한텐을 다시 그의 어깨에 걸쳐준다. 최호는 그런 모습을 처음부터 다 보았지만, 마치 그것을 보지 못한 것처럼 아무 말 없이 다카코가 준 차를 마신다.

”なぜさっき私が質問したのは通訳してくれなかったの?(왜 아까 전 내가 물은 것을 통역해 주지 않니?)“

다카코가 입에 가져다 대준 찻잔이 떨어지자, 이치로는 그녀에게 묻는다.

”おじいちゃん、本当に久しぶりにこの人に会いました。しかし、すぐにそのようなことを尋ねなければなりませんか?(할아버지, 정말 오래간만에 이 사람을 만났어요. 그런데 보자마자 그런 것을 물어야 하겠어요?)“

똑 부러지는 다카코의 답변에 이치로는 더 이상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다.

”おじいちゃん“

분위기가 좀 어색해지려는 찰나에,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다카시가 이치로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의 목을 와락 껴안는다. 다카시의 재롱에 잠깐 싸늘해지려고 했던 방 안의 분위기가 확 풀린다.

”오늘 자고 갈 거지?“

다카코는 다카시가 이치로의 목에 매달려서 놀고 있는 것을 말리지 않고는 툭 하고 최호에게 질문을 던진다.

”오늘뿐만 아니라, 며칠 여기서 머물렀으면 하는데, 괜찮겠어?“

다카코는 최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이치로를 향해 일본어로 말을 한다.

”この人数日間ここに泊まります。だからゆっくり話し合いましょう。(이 사람 며칠 동안 여기서 머문데요. 그러니 천천히 이야기 나눠요.)“

”ええ、うまくいった。さあ、この友人の部屋を用意してください。(그래, 잘 되었네. 어서 이 친구의 방을 마련해줘라.)“

이치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카코는 자리에서 일어나 최호에게 어서 일어나라고 눈치를 준다. 최호는 어중띠게 자리에서 일어나 이치로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다카코와 함께 방을 나간다.


다카코와 최호가 방에서 나가자, 다카시는 이치로의 목에서 떨어져 나와, 엄마를 돕겠다고 아까 전 최호가 마시던 차를 소반 위에 옮겨 놓는다. 그런데 찻잔 속을 바라본 다카시는 다시 이치로의 옆으로 다가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이치로에게 질문을 한다.

”おじいちゃん、あの茶碗の中の茶葉が半分に分かれています。(할아버지, 저 찻잔 속의 찻잎이 반으로 갈라져 있어요.)“

다카시의 말을 들은 이치로는 아이에게 그 찻잔을 이 테이블 위로 가져다 놓으라고 한다. 다카시의 이야기대로 찻잔 속 찻잎은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마치, 가위로 자른 것처럼 자른 단면도 깔끔했다.

”おじいちゃんがそうでした。後で私が大きくて茶碗の中の緑茶葉を触らずに半分に切ることができる人にな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할아버지가 그랬잖아요. 나중에 제가 커서 찻잔 속 찻잎을 손대지 않고 반으로 자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요.)“

이치로는 그 녹차 잔 속을 바라보면서 매우 흐믓한 미소를 지우면서 다카시의 말에 대답해준다.

”はい、必ず忘れないでください。この技量を。そしてこの男を。(그래, 꼭 잊지 말아라. 이 솜씨를. 그리고 이 남자를.)“


다카코의 안내받은 최호는 본채를 나와서 별채 쪽으로 간다. 다카코는 별채 툇마루에 최호에게 잠시 앉으라고 하고는 먼저 들어가서 별채 방을 치우기 시작한다.

”내가 치워도 되는데.“

최호의 이야기 역시 다카코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최호는 비록 밤공기는 매우 춥지만 툇마루에 걸터앉아서 구름 하나 없이 맑은 밤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어느새 방을 다 치운 다카코가 최호의 옆에 나란히 걸터앉는다. 하지만 추운지, 그녀는 팔짱을 꼭 끼고는 몸을 약간 부르르 떤다.

”한청검(寒靑劍)을 찾으러 온 거야?“

앞뒤 재지 않고 직설적으로 들어오는 다카코의 질문에 최호는 멀뚱하게 뜬 두 눈으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본다.

”놀러 온 것 아니잖아, 네가 우리를 만나러 온 이유는 한청검 밖에는 없잖아.“

최호는 그녀의 말에 곧바로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자신이 왜 여기까지 찾아왔는지를 자신을 이해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모르겠어. 내가 한청검이 필요한지, 안 하는지를.“


다카코는 너무 추운지, 자리에서 일어서서 최호를 바라보고 선다.

”내가 한 가지만 물어볼게. 잘 대답해.“

최호는 앉아서 다카코의 눈을 똑바로 올려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와 내가 다카시에게 검을 가르쳐도 될까?“

최호는 바로 대답하려고 입술을 움직였다. 그때 다카코가 손을 내밀어서 그의 대답을 멈춘다.

”이거 쉽게 대답할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 잘 알잖아. 네가 여기 머물고 떠날 때, 그때 대답을 해줘.“

최호는 입술을 꽉 깨물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는 다카코를 꼭 안아준다. 다카코는 처음에는 그를 살짝 밀쳐내다가, 그녀도 같이 그를 같이 껴안는다.

”이 바보야, 왜 이제야 온 거야? 보고 싶었다.“

최호는 그녀의 말에 반응하여, 그녀를 더욱더 꼭 껴안아 준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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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나 케이스:프로이트가 남긴 멸망의 유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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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발경 NEW 6시간 전 1 0 15쪽
37 흡혈 24.09.13 3 0 13쪽
36 이대도강 24.09.06 6 0 13쪽
35 천년협객 24.08.30 6 0 20쪽
34 사투 24.08.23 5 0 15쪽
33 접촉 24.08.16 5 0 15쪽
32 재회 24.08.09 6 0 14쪽
31 탈출 24.08.02 8 0 12쪽
30 1971년, 런던 24.07.26 8 0 14쪽
29 한청검 24.07.19 9 0 15쪽
28 1969년, 취리히 24.07.12 7 0 20쪽
27 원수 24.07.05 9 0 10쪽
26 1967년, 데스밸리 24.06.28 11 0 14쪽
25 시험 24.06.21 8 0 16쪽
24 1965년, 네바다. 24.06.16 13 0 11쪽
23 반괘권 24.06.15 10 0 13쪽
22 1953년, 예일대 24.06.14 8 0 12쪽
21 복마전 24.06.14 7 0 9쪽
20 1941년, 클라인 24.06.13 12 0 16쪽
19 Gold Code 24.06.13 13 0 12쪽
18 1939년, 유혼 24.06.12 10 0 12쪽
17 통성명 24.06.12 11 0 10쪽
16 1909년, 영혼의 두드림 24.06.11 11 0 14쪽
15 탈출 24.06.11 9 0 11쪽
14 죽음의 행진 24.06.10 11 0 15쪽
13 비명 24.06.09 11 0 12쪽
12 격돌 24.06.08 14 0 13쪽
11 첫 만남 24.06.07 12 0 15쪽
10 맥도날드 24.06.07 10 0 19쪽
» 피지 않은 벚나무 24.06.06 1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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