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난나 케이스:프로이트가 남긴 멸망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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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ei
작품등록일 :
2024.06.03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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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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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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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협객

DUMMY

나나와 최호의 거리는 20m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최호는 그녀를 금방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흑발의 나나는 은발의 그녀하고는 생김새만 비슷할뿐 체력만큼은 남달랐다.

비록 최호가 각력에 더 진기를 불어 넣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와의 거리는 좁혀지니는 커녕 서서히 벌어지기까지 하였다. 입김만 불어도 넘어질 것 같은 은발의 그녀하고는 완전 딴 사람이었다.

최호는 그녀는 이대로 놓칠 수가 없었기에, 진기를 하체에 밀어 넣으면서 발걸음을 빨리했다. 그러자마자 그녀와의 거리는 바로 반으로 줄었다. 최호는 땅을 한차례 더 세게 굴러 바로 그녀의 뒷덜미를 낚아채려고 한다.

그때, 최호와 나나 사이에 한 남자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최호는 바로 천근추(千斤錘)로 앞으로 나아가는 다리를 땅에 붙잡고는 앞으로 기울어지는 몸의 허리에 진기를 넣어서 바로 세웠다.


“훌륭한 보법이고, 대처네.”

최호와 나나 사이에 끼어든 남자는 바로 사곡이었다. 이제 어둑어둑해지는 골목길을 서서히 밝히고 있는 가로등 아래, 입김이 나올 정도로 싸늘한 밤공기를 더 차갑게 만들어줄 것 같은 하얀 재킷만 걸치고 있는 사곡의 모습은 묘한 괴기스러움을 풍겼다.

“여길 어떻게?”

사곡은 오래간만에 반가운 친구에게나 보여줄 만한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어깨를 살짝 으쓱거렸다.

“그때는 우리가 너무 대화가 없었지?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무정검법 곽한의 제자이지?”

사곡이 단번에 자신의 스승 이름을 대자, 최호는 한청검자루에 오른손을 가져갔다.

“네 스승하고도 한번 대결하고 싶었는데, 어찌나 잘 도망을 다니던지 못 만났는데, 이렇게 그 제자를 만나게 된다니, 역시 마루두크는 약속을 잘 지키는군.”

“마루두크?”

최호가 마루두크라고 되묻자, 사곡은 갑자기 자신의 입을 틀어막더니 눈쌀을 찌푸린다.

“아이, 또 말실수했네. 마루두크라는 이름을 들은 사람들은 모조리 죽이라고 했는데, 어쩐다,,,”

최호는 사곡의 건너편에 나나가 어디 있는지를 살폈다. 어쩐 일인지, 사곡이 나타나자 나나는 더 이상 도망가지 않고 골목어귀에 서서 그들을 살피고 있었다.

“내 말실수로 오늘 또 생명 하나가 사라지게 되었네. 대신 무정검법의 후계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겠네.”

사곡은 자신의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의 허리띠는 검 모양의 손잡이가 있었고, 사곡은 그 손잡이를 잡고 앞으로 쭉 빼냈었다. 그러자 얇은 판금으로 검 모양을 낸 요도(腰刀)가 최호의 눈앞에서 드러났다.

실제로 최호도 요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지만, 알루미늄 호일처럼 얇은 철판으로 만든 칼날이 사람을 벨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사곡은 요도로 허공을 몇 번 베어본다. 그런데 검이 똑바로 괘적을 그리지 않고 흔들리면서 나풀거리기만 한다. 최호는 왜 저런 장난감 같은 검을 꺼냈는지 당장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안, 내가 검술은 잘 하지 않는 편이라서. 하지만 한때 중원제일검이라고 불리었던 무정검법의 후계자에게 적수공권으로 덤빈다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이 요도를 가져왔지. 내 부족함을 자네가 채워주길 바라네.”

사곡은 말을 마치지 마자, 요도를 그대로 최호를 향해 찔렀다. 최호는 요도가 자신의 가슴께로 밀려왔지만, 그 기세는 둘째치더라도 똑바로도 들어오지 못하자 그냥 한청검을 뽑지 않고 검집으로 쳐내려고 하였다.

검집이 요도의 날에 닿는 순간, 최호는 자신이 큰 착각을 했다는 것을 바로 깨닫는다. 요도의 날에 검집이 닿자, 요도는 분명히 옆으로 밀려나갔다. 그런데 검끝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그대로 희어서 계속 최호의 가슴으로 찔러 들어오는 것이었다.

사곡이 검술이 미숙하다는 것은 허언이었다. 그의 요도는 중국검이 가져고 있는 유연함과 날카로움이 어떤 것인가를 정확하게 보여주었다. 최호는 가슴으로 들어오는 요도의 검끝을 피하려고 몸을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바로 한청검에서 검을 엄지로 팅겨 뽑아서는 요도가 방향을 돌려 자신의 가슴을 다시 찌르지 못하도록 요도의 검신을 휘감도록 회전시켰다.

과연 최호의 예상대로 사곡의 요도는 최호가 몸을 돌리자, 그대로 공중에서 살짝 꺾이어 다시 그의 가슴을 노리고 돌아왔다. 하지만 최호가 회전시킨 한청검에 얽히면서 그 기세가 떨어졌고, 그 틈을 타 최호는 몸을 반대로 방향으로 돌려서 요도에 얽히 한청검의 검자루를 쥐고는 사곡의 어깨를 베어나갔다.

그러자 사곡은 요도를 거두지 않고, 왼쪽 검지와 중지로 검결을 만들고는 자기 어깨로 베어져 오는 한청검의 검날 옆을 살짝 밀어서 그 공격을 무마시킨다. 그리고는 다시 요도를 자신의 거두고는 이번에는 몸을 낮추어, 요도를 양쪽으로 휘두르면서 최호의 하반신을 쓸었다.

최호는 발을 굴러 공중으로 그 공격들을 피할 수는 있으나, 몸을 공중으로 뛰었을때 다음 공격을 받으면 속수무책이 될까봐, 한청검으로 그 요도를 쳐내려고 하였다.

-타당, 타, 타당!

한청검과 요도가 여러 번 검날을 부딪치며 소리를 내었다. 최호는 계속되는 사곡의 공격에 반격의 기회를 쉽게 잡을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사곡의 검법이 하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찌르기 공격은 분명 가장 널리 알려진 달마검법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두번째 펼친 것은 태극검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공격은 검법도 아닌 도법인 지당도법이었다.

물론 그 검법들은 너무나 평범한 것이라서 중국검술의 초입에 일반인들도 다 익히는 그런 기본초식이었다. 하지만 그 보통의 검법을 저 하늘거리는 요도로 마치 보통의 검과 도처럼 펼치는 것이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이 사곡이 지닌 높은 내공의 덕이라는 것도 최호는 알고 있다. 하지만 지난 쿄토역에서의 대결에서 느꼈지만 사곡의 내공은 다 권각의 내공이었지, 절대 검술 고수의 그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와 검날을 부딪치면서 최호는 자신의 한청검이 살짝 밀릴 정도로 강한 내력이 요도에 실려 있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뭐야, 저번처럼 초반에는 실력을 숨기는 거야? 이런 애들 장난같은 검법으로 자네가 밀리면 안 되지 않나?”


맞는 말이었다. 최호는 더 이상 밀리면 안 되는 것이었다. 사곡은 요도로 허공에 X자를 크게 그리면서 최호의 상반신 전체를 노리는 공격을 펼쳤다. 만일 최호가 한청검으로 요도를 막으면 그 틈을 타 요도가 한청검을 타고 올라와 최호의 손목을 칠 것 같았고, 뒤로 피하면 몸의 좌우 위 아래 기혈들이 그대로 요도의 검 끝에 노출될 것 같았으며, 앞으로 피하면 그대로 최호의 목덜미를 뚫을 수 있는 절초였다.

순간 최호는 그제야 요도가 가진 비밀이 무언가를 깨달았다. 최호는 주저하지 않고, 한청검을 그대로 손에서 놓아 가로로 회전시켰다.

“역시 무정검법의 고수 답군!”

사곡의 칭찬에 최호는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살짝 기뻐했다. 최호는 사곡이 실제 요도로 여러 검법을 펼쳤지만, 이번 공격으로 그 비밀을 최호는 알아챈 것이다. 최호는 사곡이 요도를 들지 않고 권각으로 자신을 공격한다는 생각으로 한청검을 쓰기 시작하였다.

검을 공중에 회전시킨 것도 적수공권의 상대에게 기선제압을 할 때 자주 쓰는 무정검법의 초식이었다. 최호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하였다. 사곡은 그대로 요도로 그 초식을 막아도 되었을 텐데, 검을 뒤로 물리고 두어 발짝 물러섰다.

“빨리 눈치챘네? 역시 흉내 가지고는 무정검법의 고수를 속일 수 없겠지.”

사곡은 그 말과 함께, 요도를 양손으로 잡고 그대로 꾸겨서 땅 바닥에 던져버린다.

“이제 장난은 그만하지. 곧 다른 손님도 올 것 같으니, 그 때 교토역에서 못 낸 결판을 내자고.”


그 말과 함께, 사곡은 반괘권의 역건위천(易乾爲天) 기수식을 펼쳤다. 김청과 분명 같은 자세였지만, 그 위압감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사곡은 오른 손바닥으로 원호를 그리다가 살짝 주먹으로 바꾸어 앞으로 뻗었다. 사곡과 세, 네 발짝 떨어져 있었기에 그런 주먹공격이 자신에게 닫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최호는 그가 의미 없는 허초를 펼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긴장을 풀지 않았다.

최호의 경계는 헛된 것이 아니었다. 사곡은 주먹을 살짝 치면서 동시에 바닥에 발을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뻗어서 단번에 최호 사이의 간격을 줄이면서 바로 최호의 명치를 노리고 들어온다.

최호는 우선 검날을 사곡의 주먹 앞으로 뻗어서 그의 주먹이 닿으면 베어지도록 방어를 했다. 그런데 당연히 피할 줄 알았던 사곡을 주먹을 거두지 않고 그냥 검날을 주먹으로 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연히 주먹이 검날로 베어져서 피가 터져 나올 것이라고 최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만다. 사곡의 주먹은 검날에 닿는 순간 최호는 무슨 쇠망치로 검을 치는 듯한 충격을 검을 통해 받는다. 그 기세로 한청검은 뒤로 밀리자, 최호의 자세가 흐트러지자마자 지체없이 사곡은 두 번째 초식을 전개한다.

사곡은 땅으로 발을 차고, 그대로 오른쪽 무릎을 세워 그대로 최호의 턱을 쳤다. 방비가 없었던 최호는 그대로 턱을 사곡의 무릎에 내주었다. 혹시라도 충격에 턱이 으스러지거나 혀를 깨물지 않기 위해, 급하게 고개를 최대한 뒤로 제쳤지만, 무릎에 맞자마자 최호는 그 충격에 갑자기 몸에서 급격하게 힘과 진기가 빠져나갔다.

최호가 휘청거리며 뒤로 나자빠지려고 하자, 사곡은 한청검을 들고 있는 최호의 오른손목을 금나수(擒拿手)로 오른손으로 부여잡고는 다시 일으켜 세우더니, 몸을 뒤로 돌리면서 그대로 뒤 등으로 최호를 쳤다. 그 공격은 분명 방금전 김청이 썼던 반태위택(反兌爲澤)이라 생각한 최호는 그의 몸통 공격이 허초이고 그 다음에 사곡의 팔꿈치나 주먹, 혹은 장 공격을 대비하였다.

하지만 사곡의 반괘권은 김청의 반괘권과 운영 방법 자체가 틀렸다. 최호의 예상대로 그의 뒷 등이 최호의 몸에 닿을 때, 그의 예상대로 큰 충격이 없었다. 이에 최호는 그 다음 날라올 그의 다른 진각 공격을 대비했다. 그러나, 그것이 큰 실수였다. 최호는 사곡이 등을 살짝 앞으로 밀었다가 뒤로 팅기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공격이라고는 전혀 생각못했지만, 그의 등이 재차 최호의 몸통을 밀었을 때, 최호는 마치 자신의 몸을 차가 친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최호는 그 충격에 그대로 뒤로 날라가 땅바닥에 내팽겨치고, 그와 함께 그의 손에 쥐고 있는 한청검 마저 사곡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번 공격은 아까 전 사곡의 무릎 공격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공격이었다.

최호는 온몸의 기혈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고, 그것이 그대로 고통으로 온몸에 새겨졌다. 사곡은 바닥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최호를 보고서는 비웃음과 함께, 손에 쥐고 있는 한청검을 땅바닥에 던져버린다.

“실망인걸? 무정검법의 전수가가 이 정도 밖에 안되다니? 아, 결국 무정검법 자체가 별로인 건가?”

최호는 사곡의 비야냥거림조차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충격에 뒤틀린 기혈을 바로 잡으려고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온몸의 혈 자리들을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들이 더해갔다.

“고통스럽지? 내가 곧 편하게 해줄게.”

사곡은 최호 앞에 쪼그려 앉아서 그를 보고 이야기하고는 서서히 손바닥을 올려서 그의 정수리를 노린다.


“왜 이해를 못 하는 거지? 너는 네 스승과 다르다니까.”

최호는 한청검으로 계속 그를 쫓았다. 분명히 그는 자신보다 빠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최호가 한청검을 찌르고 베는 방향을 미리 알고 한 두 동작 먼저 움직이면서 검을 피했다.

최호가 무정검법을 익힌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처음 검을 잡았을 때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나름 무정검법의 진수를 어느 정도 이어받았고, 스승 곽한과 검을 겨루어도 몇 수 정도밖에는 차이가 안 났다. 비록 타츠야와의 대결에서는 무참히 깨졌지만, 이 사람이 자신의 검망을 유유자적하게 돌아다니게 둘 정도로 자신의 실력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최호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생각해 보라고, 네 스승은 정말로 심성을 끊고서 무정검법을 체득했잖아? 자네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너는 지금 그냥 무정검법을 흉내만 내고 있다고.”

그 남자는 최호의 검들 사이를 누비면서, 마치 카페에서 커피를 시켜 놓고 편한 대화를 나누듯이 계속 최호에게 말을 해댔다.

최호는 견딜 수가 없었다. 차라리 검과 검을 맞대고 타츠야에게 패배를 당했을 때는 자신의 수련이 부족하고, 스승의 기대를 저버린 것에 대한 후회는 있었지만 이처럼 참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호에게 기회가 왔다. 그 남자는 최호의 검을 계속 잘 피하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그의 패턴을 최호는 알아챘다. 최호는 그가 최호의 오른쪽으로 도는 순간 그의 몸이 앞쪽으로 드러날 것을 예상하여, 그 순간 천장지구(天長地久)의 초식을 펼쳤다.

그러나 최호는 그가 천장지구에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최호가 진심으로 노렸던 것은 천장지구의 허초들을 그가 파악하고, 뒤로 피하든 아니면 앞으로 나와서 검의 간격을 무너트리려고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때 최호는 제일 자신 있고, 또 무정검법에서 가장 치명적인 살초(殺招)인 아독민민(我獨悶悶)을 펼치기로 맘먹었다. 무정검법의 아독민민은 검을 앞으로 그냥 찌르는 초식이다. 보통 찌르기처럼 보이나 아독민민의 무서움은 검을 찌를 때, 검자루를 손에서 놓는 것이다.

무정검법이 일반 검법과 가장 다른 점은 상황에 따라 검을 손에 놓고, 공격을 하는 것이다. 보통 검의 고수들은 검 자루를 손에 놓지 않으려고 하지만, 무정검법은 그런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난 검법이기에 무서운 것이었다.

처음 최호도 곽한이 무정검법을 쓰는 모습을 보고는 검을 던지는 것처럼 보였다. 어떨 때는 수평으로, 어떨 때는 수직으로 그리고 어떨 때는 사선으로 검을 회전시키면서 검을 날리는 곽한의 모습을 보면서 무정검법을 제대로 배울 수 있을까 최호는 겁먹었었다.

하지만 최호는 그것이 결국 내공을 기초로 한 금룡공(擒龍功)을 응용한 검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더 무정검법에 빠지게 된 것이다. 물론 최호는 22살의 늦은 나이에 무공을 배우게 되어, 내공의 기초를 쌓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내공은 쌓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깨닫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너는 남다른 재능이 있어. 그러니 조급해하지 마라.’

내공을 빨리 쌓아서 제대로 무정검법을 쓰기 위해서 밤을 세워 운기조식(運氣調息)을 시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곽한의 말이 맞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최호의 내공은 쌓아지기는커녕, 도리어 후퇴했었다.


최호의 예상대로 그 남자는 천장지구의 허초를 정확하게 집어냈다. 최호는 그의 다음 움직임을 기다리며 아독민민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앞으로 뻗어서 마치 풀에 앉아 있는 잠자리를 잡듯이 천천히 엄지와 검지로 한청검날 잡는 것이다.

그의 행동에 최호는 너무 놀라, 어떻게 다음 동작을 펼쳐야 할지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무정검법은 잊어버리고, 네게 배워. 네가 진짜 너의 검을 찾아줄게.”


사곡이 최호의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그런데 사곡의 손바닥은 허공을 치고 만다.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던 최호가 마치 뒤통수에 눈이 달린 듯, 정확히 사곡의 장이 내려치는 타이밍에 고개를 돌리면서 그의 공격을 피한 것이다.

그리고는 최호는 몸을 그대로 뒤집어서, 오른선 감지로 그의 발등에 있는 함곡혈(陷谷穴)을 찌르는 것이다. 사곡은 그의 자세가 불완전하기에, 그의 공격 위력이 세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진기로 혈을 보호하고 대신 아직까지 자신이 최호의 위에 있다는 위치적인 유리함을 계속 누리기로 한다.

그러나 최호의 오른손가락이 발등에 닿는 순간, 사곡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금새 깨달았다. 최호가 오른손가락으로 발등을 찍을 때, 진기로 반동이 생기자 그대로 오른손가락을 때고는 그대로 중지로 살짝 발등을 누르는 것이었다. 그러자 진기의 반동을 무마시키더니 그대로 함곡혈을 찍고, 약지로 내정혈(內庭穴)까지 연달아 찍는 것이다.

함곡혈과 내정혈을 연달아 찍어도 그것이 특별하게 내상을 주는 점혈법은 아니었다. 적어도 사곡이 아는 무술 중에서는 그런 점혈법은 없었다. 그런데, 두 점혈을 찍자, 곧바로 천추혈(天枢穴)을 무슨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밑에서 올라오는 것이었다.

사곡은 너무 놀라, 발을 굴려 우선 최호에게서 두 걸음 정도 거리로 물러났다. 그 틈에 최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입에서 바로 검은 피 한 모금을 뱉어내고는 이번에는 오른 손날을 검 삼아서 작은 원호를 그리더니 면면약존(綿綿若存)의 초식으로 바로 사곡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사곡은 그가 맨손으로 자신을 공격했지만, 아까 전 그가 손가락 하나로 듣도 보도 못한 점혈법으로 공격한 것을 생각해 그가 진짜 검을 들고 있는 것으로 산정해서 그의 공격을 막아섰다.

하지만 면면약존의 손날 공격은 사곡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었다. 사곡은 그 손날의 괘적을 보고, 그가 자신의 손목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예상하고, 손목을 돌려서 반괘권의 뇌천대장(雷天大壯)으로 그의 공격을 원천차단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최호는 손날이 뇌천대장의 권에 닿는 순간, 가볍게 주먹을 손바닥으로 감싸는 것이다.

그리고는 최호는 주먹을 손바닥으로 쥐고는 자신의 쪽으로 사곡을 당기는 것이다. 사곡은 주먹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최호의 손바닥에 무슨 강력 본드를 발라 놓았는지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결국 사곡은 균형을 잃고, 최호의 앞쪽으로 몸이 수그러졌다.

그때 사곡은 무언가 서늘한 것이 자신의 턱 아래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이건 위험하다라는 느낌이 그의 뇌리를 강하게 때렸다. 그러나 최호는 사곡을 놓아주지 않았다. 사곡은 몸을 돌려서 아래에서 올라오는 최호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대로 손바닥을 뻗어서 자신의 아래에서 올라오는 공격을 막았다.


사곡을 아래에서 공격하는 것은 한청검의 검날이었다. 사곡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한청검은 그냥 스스로 땅바닥에서 튀어 올라 자신에게 검날을 들이미는 것이었다. 사곡은 손바닥에 진기를 밀어 넣어 철사장(鐵砂掌)의 공력으로 한청검의 검날을 잡았다. 그런데 검날이 미끄러지더니, 검이 회전하며 검자루가 사곡의 머리를 공격하는 것이다.

사곡은 그 순간 자신을 잡고 있었던 최호의 손바닥 힘이 약간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곡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먹을 빼고는 몸을 회전시켜 일단 세 네 걸음 더 뒤로 물러섰다.

최호는 사곡의 머리를 치려다가 빗나간 한청검의 검자루를 공중에서 가볍게 오른손으로 잡고는 현지우현(玄之又玄)의 기수식 자세를 취한다.


그런 최호의 모습을 잠시 쳐다보더니 갑자기 사곡은 하늘보고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사곡의 웃음소리에도 최호는 기수식을 풀지 않고, 사곡을 노려보고 서있는다.

한참 웃던 사곡은 최호를 향해 다시 시선을 돌리고 한 마디 던진다.

“너, 천년협객(千年俠客)을 만났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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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나 케이스:프로이트가 남긴 멸망의 유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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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발경 NEW 6시간 전 1 0 15쪽
37 흡혈 24.09.13 3 0 13쪽
36 이대도강 24.09.06 6 0 13쪽
» 천년협객 24.08.30 6 0 20쪽
34 사투 24.08.23 5 0 15쪽
33 접촉 24.08.16 5 0 15쪽
32 재회 24.08.09 6 0 14쪽
31 탈출 24.08.02 8 0 12쪽
30 1971년, 런던 24.07.26 8 0 14쪽
29 한청검 24.07.19 9 0 15쪽
28 1969년, 취리히 24.07.12 7 0 20쪽
27 원수 24.07.05 9 0 10쪽
26 1967년, 데스밸리 24.06.28 11 0 14쪽
25 시험 24.06.21 8 0 16쪽
24 1965년, 네바다. 24.06.16 13 0 11쪽
23 반괘권 24.06.15 10 0 13쪽
22 1953년, 예일대 24.06.14 8 0 12쪽
21 복마전 24.06.14 7 0 9쪽
20 1941년, 클라인 24.06.13 12 0 16쪽
19 Gold Code 24.06.13 13 0 12쪽
18 1939년, 유혼 24.06.12 10 0 12쪽
17 통성명 24.06.12 11 0 10쪽
16 1909년, 영혼의 두드림 24.06.11 11 0 14쪽
15 탈출 24.06.11 9 0 11쪽
14 죽음의 행진 24.06.10 11 0 15쪽
13 비명 24.06.09 11 0 12쪽
12 격돌 24.06.08 14 0 13쪽
11 첫 만남 24.06.07 12 0 15쪽
10 맥도날드 24.06.07 10 0 19쪽
9 피지 않은 벚나무 24.06.06 1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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