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에서 유일무이 마탄 쏘는 마법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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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yp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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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2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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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5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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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UMMY

로버는 공상을 좋아했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대한민국에 있었을 때부터였단 건 확실했다.

당시 로버는 게임을 즐겼는데 게임이라는 매체는 그가 좋아하는 공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볼 수 있는 최적의 도구이자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게임은 ‘Fantasy’.

마력이 존재하는 중세풍의 게임이었다.

그는 게임에 등장하는 갖가지 판타지적 요소들과, 마력을 사용해 싸우는 자신의 검사 캐릭터에 심취했다.

Fantasy는 그의 공상 욕구를 잘 충족시켜주었는데, 그는 거기서 로버라는 이름의 계정으로 해당 게임 내의 최고 레벨에 등극하며 마침내 마지막 단계까지 클리어했다.


[해당 시대의 마지막 단계를 클리어했습니다. 캐릭터를 재연성하여 다음 시대(서부)로 넘어가시겠습니까?]


그러자 뜬 문구.

그 문구는 로버에게 있어 굉장히 강한 자극이었다.


- 미친. 서부?!


서부 시대.

각종 창작물에 등장하는 이른바 낭만의 시대.

보안관, 카우보이, 현상금 사냥꾼 등 여러 매력 넘치는 직업들이 등장할 뿐만 아니라 꿈과 보물을 찾아다니는 개척 정선을 가진, 이른바 모험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시대 아닌가.

서부라는 단어를 본 로버의 심장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 서부. 서부라니. 거기다가 여기서 계속 이어지는 거라면 마력도 존재한단 거잖아?!


서부. 마력. 이 두 가지의 이질적인 조합이 로버의 심장을 더욱 세게 강타하기 시작했다.

로버는 고민할 것도 없이 ‘예’ 버튼을 눌렀다.


[다음 시대로 넘어갑니다. 이전 캐릭터가 지닌 능력치를 다시 재능으로 투자하삽쇼.]


- 이번 시대에서는 일단 재능으로는 끝판왕을 찍겠군.


만렙을 달성한 캐릭터의 능력치를 재능으로 환산한 터라 분배할 수 있는 재능 수치 자체가 어마어마했다.

이전 캐릭터는 검사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몇 가지 부분의 재능만을 체크하고 들어갈 수 있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작정하고 한 직업을 겨냥한다면 해당 직업에 유리한 모든 재능들을 전부 마스터할 수 있을 정도였다.

로버는 잠시 고민하더니 재능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력 이해도, 마력 감응력, 원소 이해도, 마법 이해도, 마력 흡수력, 마력 방출력, 마력 전환력, 전투 친화력, 마력 탐구력, .....]


그가 이번에 겨냥한 직업은 마법사. 따라서 마법사와 관련 있어 보이는 재능들을 모두 마스터 레벨로 투자했다.

사실 Fantasy는 따로 직업을 선택하는 시스템은 아니다. 그저 재능들을 가지고 원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나갈 뿐이다.

그러나 마법 관련 계열은 유독 재능이 중요한 직업이기에 막대한 재능을 투자할 수 있는 지금, 마법사가 적절하다고 판단했을 뿐만 아니라 마법이라는 요소로 공상의 끝을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 크. 낭만의 시대에 마법사라니. 시작하기도 전에 두근거리네.


그렇게 마법사로서 최고의 재능을 가진 캐릭터를 생성한 로버는, 서부 시대를 플레이할 준비를 마치고 게임 시작 버튼을 눌렀다.


번쩍.


“어. 뭐야. 씨발.”


그때 문구와 함께 모니터에 생성된 빛.


[캐릭터로 직접 현현합니다.]


그렇게 갑작스레 이 시대로 떨어진 로버였다.



*



“처음엔 좋았지.”


벨즈는 당황스러웠다.

즐거움을 찾는다며 자신이 도박 빚을 지고 있는 두목의 동생을 쏘아버린 마법사가 갑자기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dead or live인 범죄자라 죽인다고 해도 딱히 처벌은 없었지만 그래도 저렇게 갱단 두목의 동생을 한치 고민도 없이 죽여버리다니.


“푸슝 푸슝. 도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막 손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오잖아. 굳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고. 아, 나는 천재구나. 내가 내뿜는 능력이 여기서도 일반적인 게 아니구나. 투자한 재능들이 온전히 적용됐구나. 이 몸 자체에서 생생히 느껴지니까 말이야. 실제로 마법사들이 모여있는 동부에서도 다들 나를 천재라고 불렀고.”


“게다가 여기 배경은 또 어떻고. 동부가 여기 서부랑은 많이 다르긴 하다만 그래도 영화나 소설에서 나올 법한 광경이었다고.”


얼굴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하니 벨즈는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게 말이야.”


“창작물과 현실은 정말 다르더라.”


“거기는 완전 싸아코패스 집단들이 머무는 곳이었어. 그래서 서부로 왔지. 그런데 서부도 뭐 다른 의미로 미쳐있어. 낭만의 시대? 웃기지 말라 그래. 사람을 죽이는 게 낭만이야? 매일매일 총질하는 걸 보고 들으니 사람이 돌아버리겠더라고. 미친놈들이 목숨 알기를 우습게 알아.”


‘저게 재밌다고 사람 죽인 놈 입에서 나올 말이야?’


“지긋지긋해! 끊이지 않는 총소리, 갱단, 강도, 무법자 등 판치는 범죄자들. 부패했거나 현실적으로 치안 관리가 안 돼 책임 의식이라고는 없는 보안관. 전부 끔찍해!”


“배경은 또 어떻고. 마을과 마을 사이는 멀어서 말이 없으면 이동하기도 힘든 데다 땅도 죄다 건조한 땅들 뿐이지. 생각만 해도 토가 나올 것 같다고. 우웩.”


“그래서 나도 포기해버렸지. 같은 놈 아니, 더한 놈이 될 거야! 다른 건 무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즐거움을 찾을 거라고. 이러니 내가 이 지긋지긋한 시대에서 술과 도박 같은 걸 안 찾고 배겨? 이봐, 주인장. 그래도 내가 당신 딸을 구해줬는데 술 좀 마실 수 있을까?”


딸과 함께 지하에서 올라오는 주인에게 로버가 말했다.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으앙앙.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하면 이번에는 진짜로 여기서 제일 독한 술이나 주라고. 아까는 엘런 이놈 때문에 크게 못 움직여서 대충 준 거 같은데.”

“알겠습니다. 지하에 저희 가게 최고의 술이 있습니다. 그걸 가져다 드리죠. 그동안 목마르시면 앞에 계신 술들 맘대로 드시고 계시면 됩니다.”

“딸도 데려가. 애들이 보면 보기 안 좋은 걸 할 거거든.”


주인은 딸과 함께 다시 지하로 내려갔다. 아이는 내려가기 전에 로버를 보더니 한 번 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크으.”


주인의 허락에 로버는 앞에 놓인 술을 병째로 들어 한 모금 마신 후 내려놨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쭉 피더니 그 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손 주위로 마력이 모여들었다.


“저게 뭐야?”

“손 주위에 뭐가 일렁이고 있어.”

“저것도 마법인가?”


마력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무언가가 지금 로버의 손 주변에 존재한다는 걸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신기한 현상이었지만, 술집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랐다.

그러나 벨즈는 저게 마력임을 짐작하였다.


“마력...!”


로버는 들고 있던 손을 그대로 내려쳤다.

손날 쪽이 아래를 향했으며 포물선을 그린 경로는 죽은 엘런의 목에서 마무리됐다.


싹둑-


엘런의 시체가 머리 부분과, 몸을 포함한 나머지 부분으로 깔끔히 이분됐다.

바닥과 시체에, 방금 분리되며 생긴 피가 추가됐다.

허나 로버의 손에는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마력이 둘러쌌기 때문이다.


“어떻게 손으로 마탄을 쏘나 했더니 아예 도구 없이 마력을 그 자체로 사용할 수 있었군. 마법사일지라도 그런 게 가능하단 걸 들어본 적은 없는데. 그게 가능한 건가?”

“보고 있잖아.”


할 일을 한 로버는 다시 병을 들고 술을 꿀꺽꿀꺽 마셨다.


“엘런의 머리통을 어떻게 할 생각이지.”

“바운티 헌터가 모가지 딴 머리 가지고 할 게 더 있어? 보안대에 넘겨서 빚 갚아야지.”

“여기 보안관한테서는 현상금을 받는 게 무리일 거야.”


벨즈가 단정적인 어조로 말했으나 로버는 태연했다.


“알고 있어. 안 그래도 근처 다른 마을로 갈 거야. 여기 보안관은 게으름뱅이에 탐욕 덩어리라 돈 받기가 힘들지. 엘런 이 녀석도 그걸 알고 있으니 자기가 범죄를 행한 곳이 바로 옆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감시가 느슨한 이 마을로 온 것일 거고.”


탁.

로버는 술병을 내려놨다.

술병 안은 완전히 비어졌다.


“꺼억. 당신들도 이제 돌아가.”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생각만 해.”

“....재밌는 생각이 있는데.”

“뭔데?”


로버의 흥미를 당기는 데 성공한 벨즈가 슬며시 말을 하나 꺼냈다.

저 술 한 병을 다 비웠으니 판단이 조금 흐려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 마을에 농장이 있는데 혹시 알고 있나.”

“마을에 어울리지 않게 큰 농장 하나가 있는 걸 보긴 했어.”

“그 농장주가 볼튼이라는 놈인데. 정말 쓰레기야. 그놈의 행적만 따지면 현상금이 걸려도 이상하지 않아. 나는 지금 그놈한테서 푼돈을 훔쳐 나온 상태고.”

“쓰레기 거를 훔친 거면 너도 쓰레기군. 그런데 그 놈이 쓰레기란 건 네 사견 아니야?”

“아니야. 마을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어. 그놈에게 딸린 일꾼만 어마어마한데 임금을 주질 않고 있다고.”

“그런데도 버젓이 있는 건 보안관과 관련이 있겠군.”


로버가 단번에 맥락을 파악하자 벨즈는 본격적인 제안을 제시했다.


“그래. 이 마을의 보안관이란 놈이 마을 치안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제 편할 궁리만 하지. 그래서 볼튼에게 뇌물을 받아먹고는 우리 같은 녀석들이 돈을 못 받아 노동력을 착취당하든지 말든지 관심도 없고 말이야..!”

“그래서 뭐. 나더러 정의의 사도라도 돼달란 거야? 내가 엘런의 모가지를 딴 건 이놈이 나쁜 놈이라서가 아니라 나쁜 놈이라 죽여도 아무 해가 없기 때문이야. 거기다 돈까지 벌어다 주고.”

“그거야. 편하게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그 농장 주인놈 삥 뜯으라고?”

“맞아.”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젠장, 괜히 말했나.’


“그럴까?”

“응?”


벨즈는 로버의 입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나왔지만 잠깐 당황했다.

응한 포인트가 조금 이상했다.


“아주 좋은 생각이 났어. 농장주 재산을 삥 뜯을 때 놈에게 엘런 머리통을 던져준 다음, 보안관을 대신해서 놈에게 돈을 받아야겠어. 아냐, 생각해보니 이건 삥 뜯는 게 아니잖아? 보안관한테서 받을 돈을 농장주에게서 미리 받는 것 뿐이니까. 농장주가 엘런 머리통을 들고 보안관에게 가면 자신도 돈을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타고 다닐 말도 없어서 옆 마을까지 또 걸어가기 귀찮았는데 여기서 현상금을 바로 받을 수 있다니 잘 됐군.”

“아, 응, 응. 그거지.”


미친놈이라 생각했고 로버 녀석의 입으로도 자신이 미쳤다고 말하긴 했지만 제대로 정신 나간 놈을 봤단 생각이 들었다.

술이 많이 들어가 취했기 때문인가.


“그러면 지금 갈까?”

“응? 바로?”

“당연하지. 지금이 적기야. 아직 여기서 나간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곧 소문이 날 거야. 그럼 게으른 보안관은 여기로 찾아올 거고 그때가 볼튼을 털 타이밍인 거지.”


정신 나간 놈이다와 술 때문이라는 생각들이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러기에는 지금 이 로버라는 놈의 머리가 굉장히 잘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래. 바로 가지.”

“자.. 잠시만요! 이거 가지고 가세요.”


로버가 잘린 엘런의 머리통을 쥐고 나가려는데 지하실에서 주인과 딸이 올라와 로버를 붙잡았다.

주인의 품에는 술 한 병과 주머니 한 개가 들려 있었다.


“저희 마을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술입니다. 독한 걸로도 꽤 하죠. 그리고 주머니 안에 든 건 소량이지만 보상금입니다. 저와 제 딸을 구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바운티 헌터님.”


로버는 주머니를 열어봤다.

안 보일 때 확인하는 게 현대에선 예의지만, 여기 서부의 로버한테서 그런 건 없었다.


“정말 소량이네. 됐어. 그냥 가져가요. 술은 잘 먹죠.”


로버는 주머니는 도로 주인에게 던지고 오직 술만 소중하게 쥐었다.


“아닙니다. 받아주십쇼.”

“이봐, 주인장. 내가 도박할 때 왜 자꾸 졌는 줄 알아요? 판돈이 소량이라서. 확률이 적은 곳에서 적은 판돈으로 여러 번 들어가니 딸 수가 없었지. 이번에는 큰돈을 가지러 가는 거니까 그거로는 딸 맛있는 거나 사주시죠.”


‘판돈 때문이 아닌 거 같은데.’


“저.. 정말 감사합니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아저씨는 아닌데.. 그래 뭐. 공부.. 아니, 뭐든 열심히 해라.”


로버와 벨즈는 술집 주인과 그의 딸을 뒤로 한 채 스윙 도어를 밀고 나갔다.

그들이 밀고 나간 스윙 도어가 안밖으로 움직여, 술집 안에서 볼 때 로버의 괴상한 카우보이 마법사 모자가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주인은 그렇게 점멸하는 로버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고 딸은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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