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없는 드루이드는 희귀종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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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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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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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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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오소리

DUMMY

“아, 더럽게 춥네. 옷 하나 더 입고 올걸.”

“내가 말했잖냐. 생각보다 추울 거라고.”


10월 말의 지리산은 쌀쌀했다.

박시온이 묶어놓았던 꽁지머리를 풀어헤치며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는지, 허리춤에 각종 장비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짧은 머리의 최진오는 무심하게 대꾸했다.


“이 계절에 지리산까지 따라오는 게 아니었는데.”

“단골손님이 오소리 쓸개랑 기름이 필요하시다잖아.”

“그럼 지금 해야 하는 게 맞긴 하네. 걔들도 슬슬 겨울잠 자기 시작할 테니까.”


오소리는 겨울잠을 자는 동물.

긴 수면 동안 쓸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닐 녀석들을 잡기에 지금보다 좋은 시기는 없었다.


“삼촌, 옛날부터 궁금했던 건데, 사냥꾼 각성자는 뭐 특별한 거 없나?”

“이 덫들부터가 내 능력으로 만든 건데, 이 정도면 특별하다고 볼 수 있지.”


두 사람은 사냥꾼 직업 각성자이자 불법 수렵꾼인 진오가 어제 배치해 놓은 덫을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다.

은색 이빨이 빛나는 덫들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닌, 사냥꾼 각성자인 진오의 능력으로 만든 것들이었다.


“오늘 죄다 허탕이네. 날이 아닌가.”

“후···. 그런 김에 좀만 쉬었다 하면 안 되나?”


사람이 다니는 길도 아닌 험한 산비탈을 오르내리다 보니 조금씩 숨이 가빠지고 있었다.

흘러내리는 머리가 거슬렸는지 다시 꽁지머리를 묶으면서 휴식을 제안하는 시온이었다.


“저 바위 뒤에 하나 더 있어. 저것까지만 보고 쉬자.”

“보나 마나 꽝일 것 같은데···. 어!”


진오가 가리킨 곳으로 앞장서서 걸어간 시온의 입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그륵.


온몸의 털이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얬지만,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며 덫에 걸려 있는 것은 분명 오소리였다.


“뭐야, 알비노?”


뒤이어 따라온 진오도 덫에 걸린 녀석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바닥에서 나름 잔뼈가 굵은 진오도 이 정도로 몸 전체가 새하얀 오소리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근데 얘는 놔줘야 할 것 같은데?”

“왜. 털이 눈처럼 하얀 놈이었다고 고객한테 입 털면 얼마라도 더 받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새하얀 오소리의 맑은 눈을 쳐다보자 문득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시온은 녀석을 해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 듯 넌지시 말했고, 진오는 굳이 그럴 필요 있냐는 듯이 반응했다.


“예로부터 몸이 새하얀 동물은 상서로운 징조라고 했거든. 원래 이런 놈은 건드리는 거 아니야.”

“누가 보면 나보다 나이 더 처먹은 줄 알겠다?”

“아무튼, 얜 놔주자. 나중에 은혜 갚을지도 모르잖아.”

“대단한 동물애호가 나셨네.”


딱.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진오가 손가락을 튕기자 새하얀 오소리의 뒷발을 붙잡고 있던 덫이 입을 열었다.

덫에서 풀려난 녀석은 곧장 자리에서 벗어나는 대신 천천히 움직이면서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았다.


“앞으로는 이런 못된 밀렵꾼한테 잡히면 안 된다?”

“그런 식으로 말할 거면 지금이라도 내 보조 때려치우고 건실하게 살든가.”

“사나이가 은혜를 갚아야지. 그래도 삼촌이 나 먹여주고 키워줬는데.”


시온과 진오가 오소리를 가만히 두고 그다지 영양가 없는 말을 주고받는 동안에도, 녀석은 자리를 뜰 생각이 없는지 여전히 두 사람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근데 얘 엄청 귀엽네. 데려가서 키우면 안 되나?”

“괜히 까불다가 잘못 물리면 광견병 걸린다. 조심해.”


시온은 바닥에서 나뭇가지를 하나 집어 새하얀 오소리의 눈앞에서 이리저리 흔들었다.

녀석의 고개가 나뭇가지를 따라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본 시온의 입가에는 약간의 미소가 걸렸다.


“아, 진짜 근래 본 동물 중에서 제일 귀여운···.”


그 순간이었다.

시온이 놀아주고 있던 오소리에게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온 것은.


“으···.”


제 할 말에 마침표를 찍지도 못한 채로 쨍한 빛에 삼켜진 시온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광채가 길게 유지되지 않고 사그라들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축하합니다. 각성이 완료되었습니다.]

[당신의 직업은 드루이드입니다.]


그러나 당황스러운 일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빛이 없어지자마자 뜬 눈에 보이는 것은 하늘색의 바탕에 박힌 하얀색의 글자들.


“이건···.”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만, 시온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각성자들에게만 나타난다는 상태창이라는 것을.


[당신의 능력은 교감으로 활성화됩니다.]

[교감 대상에 ‘새하얀 오소리’가 추가됩니다.]


쉴 틈 없이 새로운 상태창들이 추가로 나타났고, 그 속에 적힌 문장들은 한눈에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시온이 그 뜻을 자세히 생각해보려는 찰나, 손 하나가 그의 어깨에 얹어졌다.


“뭐야, 박시온. 왜 갑자기 어벙하게 서 있어.”

“···나 각성한 것 같은데?”


고개를 돌린 시온의 눈에 문제 있냐는 듯이 쳐다보는 진오의 얼굴이 들어왔다.

진오의 반응으로 보아, 방금의 엄청난 광채는 시온에게만 보였던 것이 틀림없었다.


“뭐?”

“이유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나도 각성한 것 같다고.”


각성이라는 게 이렇게 쉽게 되는 거였는지, 시온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고 약간의 두통도 밀려오고 있었다.

그 와중에 새하얀 오소리는 볼일이 끝난 듯 오른쪽 뒷다리를 살짝 절면서도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봐. 직업이 뭐···.”


탕.


“···총소리?”

“따라와!”


일단 시온의 상태를 확인하려 했던 진오의 말은 갑작스레 들려온 총성 탓에 그 끝을 맺지 못했다.

진오는 즉시 등에 멘 엽총을 집어 유사시에 대응할 채비를 한 후, 재빠르게 산비탈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젠장, 지리산 깊은 곳에 거점을 두고 도적질을 하는 놈들이 있다는 소문이 진짜였냐고···!”

“삼촌, 방금 그거 뭔데?”

“정신줄 잡고 붙어! 당장 산에서 내려가야 해!”


시온은 갑작스럽게 각성한 것만으로도 혼란스러웠지만, 우선은 군말 없이 진오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저 새끼들 튄다! 산에서 빠져나가기 전에 붙잡아!”


누군가의 굵은 목소리가 메아리치며 시온의 귀에도 들어왔다.

그 내용을 자세히 듣지 않아도 두 사람에게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알기에는 충분했다.


“지들이 뭔 산림공무원이야? 같은 범법자 처지에···!”


세간에서는 각성자를 시한폭탄이라 일컫기도 한다.

각성자의 수는 통계적으로 전 세계 인구의 0.001%뿐이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잠재력을 가진 그들이 마음을 악하게 먹는 순간 어떻게 될지는 뻔하기 때문.


두 사람을 쫓는 지리산의 무뢰배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직은 별일이 없지만, 각성자와 연관되어 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인 것이었다.


“나도 몇 분 전부터 각성자인데, 어떻게 못 싸우나?”

“···「목표물 감지」.”


진오는 시온의 말을 한 귀로 흘리고 정신을 집중했다.

사냥꾼 각성자의 능력으로 근처에 있는 존재들을 감지하는 것이었다.


“대가리 수는 스무 명 정도에, 각성자가 셋. 방금 각성한 네가 상대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

“그러면 이렇게 도망치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거네?”

“그게 제일 안전하겠지. 이 정도 속도면 해볼 만해.”


진오는 추격자들의 정보를 설명하면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두 사람은 산 아래에 대 놓은 차를 향해서 위험한 뜀박질을 이어 나갔다.


“잠깐 스톱.”

“갑자기?”

“여기서부터는 나무가 없어. 까딱 잘못 움직였다가 바로 총알 맞고 대가리 터진다.”


진오는 등산로를 앞에 두고 뜀박질을 멈추었다.

지금까지는 산길에 빼곡하게 자란 나무들이 총에 맞을 위험을 줄여 주었지만, 이제부터는 몸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음···?”


그 순간, 찌릿한 무언가가 시온의 뇌를 스쳐 지나갔다.

아까부터 미세하게 머리를 괴롭히던 통증 사이에서 새로운 감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최단거리로 가기는 힘들 것 같고, 등산로를 우회해서 갈 거니까 바로 따라와.”

“···.”


잠시 고민하더니 결심을 굳힌 진오는 시온에게 지시하고는 곧바로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시온은 대답하지도, 그를 따라 뛰지도 않았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각.

처음 마주하는 것이지만 원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몇 가닥의 정보가 시온의 머리 안에 그려지고 있었다.


지금부터의 행동은 일반인의 이성을 대신해 각성자의 본능이 이끄는 대로였다.


“···교감.”


[‘새하얀 오소리’와 교감합니다.]

[행운 수치가 크게 상승합니다.]


시온은 입 밖으로 단어 하나를 내뱉었다.

상쾌한 기류가 온몸을 감싸는 느낌과 동시에 눈앞에 나타나는 상태창.


“박시온! 뭘 꾸물거리는 거야!”


저 앞에서 소리치는 진오의 말이 들리기는 하는 건지.

시온은 뭐에 홀린 듯이 한쪽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땅에 가져다 댔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심호흡을 크게 한 후, 모든 정신을 양손에 집중시켰다.


[스킬 「오소리 땅굴」이 발동됩니다.]


쿠구궁-


시온의 눈앞에 희미한 오소리의 형상이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더니, 이내 땅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소리 땅굴이라···.”


몇 초간의 진동이 잦아든 후, 시온은 바로 옆의 산비탈에 입을 벌리고 있는 구덩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시온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구덩이의 입구로 뛰어들어갔고, 그 안의 시원한 공기가 느껴졌다.


“···이 정도면 각성자 할 만하네.”


세 사람이 나란히 걸어도 남을 것 같은 너비에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깊이.

시온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땅굴은 만든 본인도 믿기 힘들 정도의 규모였다.


“이 긴박한 상황에 뭔 짓을 하는 건가 했더니, 각성하자마자 이 정도로 거대한 작품을 만들어 놨네?”

“아, 삼촌.”


언제 돌아온 것인지, 시온의 뒤를 따라 땅굴로 들어온 진오가 손전등을 켜 안쪽의 어둠을 비추었다.


“네 능력으로 만들었다는 건 알겠고, 그래서 이거 어디로 연결된 거냐?”

“그건 나도 잘···.”

“네가 모르면 도대체 누가 아는데.”

“그래도 바깥보다 훨씬 안전할 것 같다는 느낌이야.”


시온은 이 땅굴로 이동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

아직 자신의 능력에 대해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있었지만, 이건 각성자라면 으레 가진다는 자신감이었다.


“···그래. 잘못돼봐야 사이좋게 죽기밖에 더하겠냐.”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된 탓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진오는 모험해본다는 생각으로 땅굴을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금 너한테 물어봐야 할 게 엄청 많은데, 일단 여기서 빠져나간 후에 들어야겠네.”


궁금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탈출이 우선이라 판단한 진오는 앞장서서 걸으며 손전등으로 땅굴의 이곳저곳을 비추었다.


“방금 각성한 놈이 만든 것치고는 규모가 엄청난데.”

“나도 내가 놀랍다니까.”


산길을 따라 경사가 그대로 나 있어 움직이기 불편한 것은 둘째치고, 구불구불한 것이 꽤 복잡한 땅굴.


그야말로 오소리 땅굴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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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중재하는 한국인들 24.08.26 5 0 11쪽
14 관서의 로닌 24.08.25 8 1 12쪽
13 친절한 현지 가이드 24.08.24 8 0 11쪽
12 다음 목적지는 24.08.23 18 1 11쪽
11 유령 눈표범 24.08.22 24 1 11쪽
10 사냥꾼 잡는 사냥꾼 24.08.21 17 0 12쪽
9 악마 눈의 마코르 24.08.20 20 0 12쪽
8 히말라야행 유령선 24.08.19 25 0 12쪽
7 강해져야 한다 24.08.18 30 1 12쪽
6 안전한 도주로 24.08.17 30 1 11쪽
5 천재 도박사 24.08.16 34 2 11쪽
4 오소리의 행운 24.08.15 41 1 12쪽
3 시간을 쫓는 부엉이 +1 24.08.14 52 2 12쪽
2 근본 없지만 오리지널 +2 24.08.13 53 2 13쪽
» 새하얀 오소리 +2 24.08.12 70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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