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없는 드루이드는 희귀종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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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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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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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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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눈의 마코르

DUMMY

깎아지른 절벽에 불규칙하게 난 길은 사람 두 명이 나란히 서기 힘들 정도로 좁았고, 군데군데 녹지 않은 눈 때문에 미끄러져 추락할 위험도 충분했다.


“내가 어떻게 해 줘야 하는데?”


그런 길에 서 있는 녀석과 안전하고 확실하게 교감하기 위해서는 서정의 도움이 필요했다.

시온의 도움 요청에 서정은 불을 붙이려던 담배를 도로 집어넣고는 물었다.


“저 녀석의 움직임을 통제해줘. 최소한 몸부림이라도 못 치게 만들어야 내가 뭘 해 볼 수 있을 것 같거든.”

“확답은 못 하겠지만, 일단은 알겠어.”


도박사라는 직업의 능력 자체가 무작위성이 강하기 때문에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서정은 곧바로 카드를 만들어 공중에 띄웠다.


“뒤에 있는 놈들부터 걷어낼게. 「4 – 원 페어」.”


뒤집힌 두 장의 카드에서 4의 형상이 튀어나가 그대로 절벽에 꽂혔다.

뒤쪽의 무리는 서정의 기술에 놀란 듯 뒷걸음질 치며 시온이 목표로 하는 마코르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후우욱···!


시온은 녀석의 콧김이 더욱 강해진 것을 확인했다.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내는 것이 서로에게 이득이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서정이 서둘러줘야 했다.


“[다이아몬드 – 플러시].”


수많은 다이아몬드가 늘어서며 길을 만들었다.

서정은 공중에 놓인 그 길을 한 발씩 딛으며 날개를 펼치고 있는 시온의 곁으로 다가왔다.


“저번에 했던 것처럼 클로버 쏟아내는 건 안 돼?”

“족보는 내 마음대로 뽑히는 게 아니라니까.”

“흠, 시간 끌리면 더 힘들어질 것 같은데···.”


며칠 전 도박장에서 수많은 사람의 움직임을 막았던 기술을 떠올린 시온이 입을 열었지만, 어림없는 소리.

다만 서정도 시온의 중얼거림은 더 듣기 싫었는지 곧바로 카드를 띄워 상황에 알맞은 족보를 뽑아냈다.


“「K – 포카드].”


4개의 K 모양 형상들이 날아가 마코르를 밀어붙였고 그 끄트머리들이 절벽에 깊숙이 꽂혔다.

날아온 공격에 밀려 넘어진 녀석은 몸부림을 쳤지만, K의 벌어진 부분에 몸이 낀 탓에 움직일 수 없었다.


께헥!


괴상한 울음소리와 함께 더욱 이글거리는 녀석의 눈.

몸을 떼어놓고 머리만 본다면 악마의 현신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이 정도가 최선이야. 충분해?”

“기대 이상이야.”


자신을 돌아보며 묻는 서정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 시온은 곧바로 날개를 움직여 절벽으로 접근했다.

이제부터는 떠올린 계획을 실행으로 옮길 시간이었다.


“오소리, 교감.”


[‘새하얀 오소리’와 교감합니다.]

[행운 수치가 크게 상승합니다.]


아까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자세로 절벽에 착지한 시온은 부엉이의 날개를 거두고 새하얀 오소리의 능력을 불러왔다.


“저거 맞냐? 오소리랑 교감해서 뭘 하려고···.”

“궁금하네. 도대체 뭘 보여주려는 건지.”


진오와 스마우그도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볼 정도로 그 의중을 알 수 없는 행동.

시온은 녀석이 마구 휘두르는 다리에 걷어차이지 않게 조심조심 거리를 좁혔다.


“자, 눈에 힘 좀 풀어보자.”


아무리 봐도 보통이 아닌 이 녀석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힘을 완전히 빼놔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시온은 서정의 기술로 완전히 노출된 마코르의 복부에 양손을 가져다 대고 정신을 집중했다.


“「오소리 땅굴」.”


사실 새하얀 오소리의 능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하나뿐이었지만, 지금은 그 기술을 조금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시온이었다.


쿵-


「오소리 땅굴」 기술을 사용할 때마다 에너지의 파동이 땅으로 전달된다는 것 정도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최대한 약하게 강도를 조절한 시온은 그 힘을 그대로 마코르의 몸에 밀어 넣은 것이었다.


우지직.


그 영향으로 절벽 안쪽에서 소리가 났고 마코르의 움직임을 막고 있던 K 모양의 형상들도 부서져 내렸다.

녀석은 기술을 정면으로 받은 충격이 컸는지 기세가 한풀 꺾였고, 눈에도 힘이 빠진 것이 대놓고 드러났다.


“교감이 아니라 그냥 동물 한 마리 잡은 거 아니야?”

“이렇게라도 안 하면 이 무서운 놈이랑 어떻게 교감하는데.”


서정의 말처럼 지금 시온이 행한 것은 인간과 동물의 일반적인 교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시온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생각,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녀석의 머리 쪽으로 다가갔다.


“바로 일으켜 세워주고 갈 길 가게 할 테니까, 잠시만 힘 좀 빌려줄래?”


아무리 동물이라 할지언정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는 능력은 충분히 있을 것이었고, 그렇다면 녀석이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뿐.

악마처럼 이글대던 마코르의 눈이 감기자 시온은 드디어 녀석의 머리에 손을 올릴 수 있었다.


[교감 대상에 ‘악마 눈의 마코르’가 추가됩니다.]


“하나, 둘···!”


상태창이 나타나며 세 번째 희귀종이 교감 대상에 추가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시온은 온 힘을 다해 마코르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래. 잘 가라.”


몸을 일으킨 녀석은 몇 초간 시온을 쳐다보더니 뒤돌아서 자신의 무리에게 돌아갔고, 용건이 끝난 시온은 손을 흔들면서 염소 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걸로 끝인가? 그래도 생각보다는 무난했네.”


다시 플라잉 더치맨에 오른 서정은 살짝 흐른 땀을 닦고 어깨를 풀었지만, 정작 기뻐해야 할 시온은 아까부터 뭔가 석연찮은 표정이었다.


“···이 녀석은 내가 봤던 놈이 아니야. 암만 생각해도 이런 눈이 아니었거든.”


방금 교감한 녀석의 눈 역시 악마가 떠오를 정도로 기이했지만, 미래에서 마주치고 온 것과는 궤가 달랐다.

시온이 느끼기에 그것은 훨씬 더 깊고 날카로운, 굳이 표현하자면 포식자의 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네가 봤다는 희귀종은 또 따로 있다는 거네?”

“아마. 내가 본 상황은 아직 벌어지지 않은 것 같아.”


현장에 도착한 지 반나절이 다 되어가는 시점, 누군가의 고함이나 총의 발포 소리는 들려온 적이 없었다.

아직 시온이 본 미래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


“야, 잠깐만 다 들어와 봐.”


그 순간, 어느새 갑판실 안에 들어가 있던 스마우그가 세 사람을 불러모았다.


“지금 여기에 우리만 있는 게 아닌 것 같아. 업계 최고라고 불리는 밀렵꾼 팀, 그놈들이 와 있다.”

“그거, 설마 내가 아는 그 새끼들 말하는 거냐?”

“업계 최고가 따로 있나? 당연히 그놈들이지.”


느닷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는 스마우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고, 진오의 얼굴도 순식간에 찡그려졌다.


“그렇게 위험한 놈들인가요?”

“일단 너한테는 많이 위험해 보이긴 하는데.”

“나 같은 생계형 밀렵꾼이 아니야. 돈을 밝히는 건 기본에, 생명을 죽이는 걸 신나게 즐기는 악질들이지.”


스마우그와 진오의 말을 들은 시온은 직감했다.

부엉이의 능력으로 본 미래는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그놈들, 지금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나요?”

“이제부터 찾아봐야지. 업계 최고라는 놈들이 자기들 위치를 광고하면서 다니지는 않을 테니까.”

“그럼 그놈들이 여기에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죠?”


시온은 스마우그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고, 그런 모습이 불안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진오였다.


“알다시피 나는 정보상이야. 수많은 협력자가 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고, 그중 한 명한테서 받은 정보다.”

“정보 준 사람한테 하나만 물어봐 줘요. 그놈들이 무슨 동물을 잡기 위해서 여기에 온 건지.”


그 정도 되는 놈들이 노리는 동물이라면 절대 평범한 녀석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한 요청이었다.

스마우그는 시온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바로 뒤에 있던 장비를 조작해 누군가와 연락을 취했다.


“물어봐 놨으니까 곧 답이 올 거고, 나는 상관없으니까 셋이서 이제 어떻게 할 건지 의견 모아 봐.”


스마우그는 시온의 어깨를 한번 쳐주고는 갑판실을 나갔고, 어느샌가 밖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던 서정이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그 밀렵꾼들이 잡겠다는 동물을 가로채겠다는 무모한 생각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예리한 서정에게 정곡을 찔린 시온은 순간적으로 움찔했고 진오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미 충분히 위험한 짓을 하고 있었는데, 이건 완전히 선을 넘는 생각이었다.


“신중하게 생각해라, 박시온. 까딱 잘못하면 희귀종이 문제가 아니라 네 목숨이 날아가니까.”

“어차피 게이트 쇼크를 막지 못하면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텐데. 지금부터 적응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하하···.”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반박을 대신하는 웃음소리.

시온이 한번 고집을 부리면 말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진오가 내뱉은 헛웃음이었다.


“그래, 게이트 쇼크 이야기를 꺼내면 네 부모님 때문에라도 내가 할 말은 없지.”

“어차피 내가 본 미래에 두 사람은 없었어. 동행은 하되, 배에서 내리는 건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할 거야.”

“그게 문제가 아니라···. 됐다.”


단독 작전이라도 해 보겠다는 시온의 말을 들은 진오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한숨을 쉬었다.


“내가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건데, 자신 있냐?”

“인생 어느 시점부터는 자신 없었던 적이 없어서.”

“더 강해져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도 나라서 반대할 명분이 없네. 네 말대로 해야 본전인 것 같기도 하고.”


서정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건 아니었지만, 확고해 보이는 시온의 의지와 자신감에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그렇게 시온의 뜻에 따르기로 암묵적인 합의가 이뤄진 후, 스마우그가 다시 갑판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

“그 밀렵꾼들보다 먼저 그들의 목표물을 찾을 겁니다. 제 능력으로 본 미래를 따라가겠다는 소리죠.”


스마우그는 서정과 진오의 반응을 살피며 시온의 말이 합의된 사항인지를 확인했다.

몇 초가 지나도 두 사람이 별 반응이 없자 벽에 기대어 천장을 쳐다보는 스마우그였다.


“이것 참 신기한 놈이네. 근본만 없는 줄 알았더니.”

“왜요. 근본 없는 놈이 너무 과감하기까지 한가?”


스마우그는 대답 없이 얼굴을 구기면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별안간 서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둘이야 그 변혁의 시기에 각성한 놈들이니까 15년, 거기 표정 없는 친구는 각성한 지 몇 년 됐나?”

“4년, 이제 5년째인가.”

“그래, 그 정도 됐으면 무뎌졌다고 해도 안 이상하지. 그런데 각성한 지 고작 일주일 됐다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덤덤할 수 있는 거지?”


보통 각성을 한다고 해도 이쪽 세계에 대한 적응 기간이 있기 마련인데, 지금까지 시온이 보여온 행태는 그의 경력과는 도통 어울리지 않았다.


“게이트 쇼크로 가족을 잃어봤으니까 그 사변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 별거 없어요.”

“···요즘 같은 개인주의 시대에 보기 드문 생각인데.”

“사실 지금은 기분이 거슬리는 정도지만, 정말로 그게 다시 터지면 트라우마 제대로 올 것 같아서도 있고.”


띠리리리.


그 순간 갑판실 안에 있는 장비가 울렸다.

스마우그는 연락해온 협력자의 말을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소리를 키웠다.


-아까 부탁했던 거, 확인 완료했다.

“어. 얘기해.”

-그놈들이 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 유령 눈표범을 잡으러 간다고.


유령 눈표범.

그것이 다음으로 교감해야 할 희귀종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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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관서의 로닌 24.08.25 8 1 12쪽
13 친절한 현지 가이드 24.08.24 8 0 11쪽
12 다음 목적지는 24.08.23 18 1 11쪽
11 유령 눈표범 24.08.22 23 1 11쪽
10 사냥꾼 잡는 사냥꾼 24.08.21 17 0 12쪽
» 악마 눈의 마코르 24.08.20 20 0 12쪽
8 히말라야행 유령선 24.08.19 25 0 12쪽
7 강해져야 한다 24.08.18 30 1 12쪽
6 안전한 도주로 24.08.17 30 1 11쪽
5 천재 도박사 24.08.16 34 2 11쪽
4 오소리의 행운 24.08.15 40 1 12쪽
3 시간을 쫓는 부엉이 +1 24.08.14 52 2 12쪽
2 근본 없지만 오리지널 +2 24.08.13 53 2 13쪽
1 새하얀 오소리 +2 24.08.12 69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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