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없는 드루이드는 희귀종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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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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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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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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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없지만 오리지널

DUMMY

“다 온 것 같은데. 생각만큼 오래 걸리지는 않네?”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땅굴을 얼마나 걸었을까.

몇십 발자국 앞에서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것을 본 진오가 손전등을 끄고 시온을 돌아보았다.


“내가 안전할 것 같다고 그랬잖아.”

“그런 말은 이 앞에 도적놈들이 없다는 게 확인되고 나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진오는 엽총을 제대로 견착한 후 출구로 다가갔다.

이제 이 거대한 땅굴이 두 사람을 어디로 인도했는지 확인할 시간이었다.


“내가 먼저 나간다. 신호 줄 때까진 여기서 대기해.”


먼저 땅굴 밖으로 나가는 진오의 등판이 시온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엄청나게 넓지는 않지만, 언제 봐도 든든한 뒤태였다.


“···이게 말이 돼?”


몇 초간 주위를 훑으며 안전을 확인한 진오는 무언가를 확인했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시온에게 손짓했다.

그 신호를 받고 밖으로 나선 시온 역시 전혀 기대하지 않은 장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여긴···.”


진오에게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검은색 승용차가 얌전히 주차되어 있었다.

오소리 땅굴이 끝난 지점이 두 사람의 목적지와 정확하게 일치한,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타!”


우선은 추격자들이 다시 거리를 좁히기 전에 이 근방에서 벗어나야 했다.

진오는 그대로 운전석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고, 시온도 재빠르게 발을 움직여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뭐, 등산객 끊기고 나라에서도 내버려 둔 이유가 있었겠지. 한동안 별일 없었다고 우리가 너무 경솔했어.”

“우리가 아니라 삼촌이지. 밀렵꾼 하나 잘못 따라갔다가 큰일 날 뻔했네.”


다른 차들이 보이는 도로에 진입하자, 진오는 차고 있던 장비들을 하나씩 풀어 조수석에 던졌다.

진오의 행동을 본 시온은 안심해도 될 장소까지 왔다는 걸 눈치챘고, 이제야 긴장을 풀고 등을 기댔다.


찌잉.


“윽.”


긴장이 풀리자 각성한 순간부터 머리를 건드리던 통증이 한 번에 몰려왔고, 동시에 의식이 흐려지고 있었다.

시온은 기댄 자세 그대로 눈을 감았고, 몽롱한 두통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건 그렇고, 처음부터 설명···. 얼씨구.”


신호등에 걸린 진오는 자초지종을 듣기 위해 뒷좌석을 곁눈질했지만, 이미 시온의 의식은 끊겨 있었다.


“각성 신고식 한번 제대로 하네.”


들숨과 날숨이 일정한 것으로 보아, 각성에 익숙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긴박하게 힘을 사용한 반동일 뿐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묘한 표정으로 혀를 찬 진오는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


시온이 자신의 방 침대에서 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다섯 시간 후였다.


“그러니까 그 하얀 오소리한테서 빛이 뿜어져 나왔고, 정신을 차려보니 드루이드로 각성한 상태였다?”

“어. 상태창에 그렇게 뜨던데.”

“드루이드라···.”


시온의 설명을 들은 진오는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건 뭐, 어이없을 정도로 뜬금없는 각성이었다.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아. 큰일 난 것처럼.”

“네가 드루이드로 각성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해. 너 평소에 자연 친화적인 놈이었냐?”

“나? 어렸을 때 동물 좋아하긴 했는데···.”

“그 정도로는 부족해. 각성자의 직업은 평소에 그 사람이 깊게 가지고 있던 사상이나 생활을 따라가니까.”


사냥꾼 직업 각성자이자 밀렵꾼인 진오를 따라다니며 보조 역할을 하는 시온이었다.

그런 그가 사냥꾼도 로그도 아닌, 자연의 힘을 사용하는 직업 드루이드로 각성했다는 게 의문점이었다.


“그건 일단 미뤄두고, 상태창 열어서 프로필부터 확인해 봐.”

“내 마음대로 열 수 있는 거야?”

“머릿속으로 대충 떠올리면 자동으로 나와. 이 상태창 시스템이 생각보다 편리하거든.”


[이름 : 박시온]

[직업 : 드루이드]

[교감 가능한 생물 : 새하얀 오소리]

[오리지널 : 희귀종의 발견]


시온은 진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태창을 불러낼 수 있었다.

생각보다 간단하게 정리된 프로필이었지만, 마지막 줄에는 한눈에 이해하기 힘든 단어가 존재했다.


“다른 건 다 알겠는데, 오리지널이란 건 뭐야?”

“오리지널? 그게 뭔데.”

“글쎄. 뒤에 희귀종의 발견이라고 적혀 있는데.”


[박시온 오리지널 : 「희귀종의 발견」 – 당신은 일정 희귀도 이상의 동물과만 교감 가능합니다. 일정 희귀도 이상의 동물과 조우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라도 하려는 듯, 시온의 눈앞에 상태창이 추가로 나타났다.

그러나 추가적인 설명도 이해가 쉽지 않았던 시온은 그 내용을 그대로 진오에게 읊어주었다.


“···이거 아무래도 네가 좀 특수한 경우인 것 같은데. 내가 각성한 지 햇수로 15년 됐는데, 처음 들어본다.”

“삼촌도 모르는 거면 진짜 이상한 거 아니야?”

“기다려 봐. 모르는 건 전문가한테 물어봐야지.”


나름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다는 진오 역시 감이 오지 않는지,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아까 것까지 더해 두 가지의 의문점을 해결해 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이러다 얼굴 까먹겠어?

“···오랜만에 연락해서 미안하다. 스마우그.”

-뭐, 그 최진오라면 언제든 환영이지. 무슨 일이야?


무미건조한 통화음을 지나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통화 상대인 스마우그는 진오와 꽤 친한 사이인 듯,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용건을 물었다.


“첫 번째. 내 보조로 일하는 애가 각성했는데, 직업이 드루이드래. 좀 이상하지 않냐?”

-아, 네가 전에 말했던 꼬맹이? 네 은인 아들이라는?

“다른 데로 새지 말고. 짚이는 거 있으면 말 좀 해봐.”


휴대폰 너머의 스마우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원래의 삶과 관련 없는 직업으로 각성한 경우가 전에도 있긴 했을걸? 그냥 근본이 좀 없다는 것뿐이지.

“근본 없다는 표현이 딱 맞네. 다른 문제는 없겠지?”

-드루이드라는 직업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거 빼면.


스마우그가 드루이드란 직업 자체에 회의적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마법사와 전사,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애매한 직업.

좋게 말해 다재다능하고, 나쁘게 말하면 특출난 장점이 없는 드루이드는 상당히 안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어찌 됐든 첫 번째 의문은 각성에 근본이 없는 것뿐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되었고, 모든 대화를 듣고 있던 시온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두 번째. 오리지널이라는 게 뭔지 알아?”

-오리지널? 갑자기 그건 또 왜?

“이놈 프로필에 그런 게 적혀 있다는데. 희귀종이 어쩌고 하면서···.”

-뭐?!


그 순간, 스마우그의 목소리 톤이 두 단계는 높아졌고, 내내 말투에 담고 있던 웃음기도 단번에 사라졌다.


“아이씨. 왜 갑자기 소리를 질러.”

-내가 잘못 들은 거지? 오늘 각성한 놈이 오리지널?

“똑바로 들었는데. 그게 뭐길래···.”

-지금 이거, 당사자도 듣고 있는 거야?

“네, 듣고 있습니다.”


진오의 투덜거림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로 휴대폰 너머의 시온을 찾은 스마우그는 이내 설명을 시작했다.


-각성자의 비율은 0.001%. 전 세계에서 8만 명 정도지.

“음. 그 정도는 저도 알고 있는···.”

-그리고 그 안에서도 0.1% 정도만이 오리지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이해가 쉬우려나?


일억 명 중에서 하나, 전 세계에서 단 80명.

시온은 하루아침에 그 말도 안 되는 비율에 속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한, 각성한 순간부터 오리지널을 가지고 있었다는 놈은 여태까지 하나도 없었어.

“얘가 오늘 쓴 스킬 규모가 장난 아니긴 했는데, 역시 뭔가 있긴 했구나.”


진오는 오늘 낮에 시온이 만들어냈던 거대한 땅굴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온의 각성이 그 정도로 특별한 경우라면, 초심자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도 설명이 되었다.


-어떻게 잘 해보든지. 근본은 없어도 그 정도면 미국 복권 맞은 거나 다름없으니까.

“···이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줘라. 스마우그.”

-나도 눈치는 있지. 조만간 얼굴 한번 보자고.


통화는 그 정도로 마무리되었고, 몇 분 사이에 다크서클이 더 내려온 진오는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았다.


“근데 통화한 사람은 누구예요?”

“스마우그 뤼터. 뒷세계에서 정보상으로 활동하는 네덜란드 놈이야.”

“오, 근데 한국말도 잘 하시네?”

“지금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냥 각성자의 특권이라고 생각해.”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도 각성자들끼리는 완벽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가 지금의 유일한 중대 사항이었다.


“네가 골라. 국가에 정식으로 각성자 등록을 할지, 아니면 그냥 조용히 네 힘을 키울지.”

“글쎄? 난 이 바닥에 깊게 발들일 생각은 없는데. 그냥 살던 대로 살면 안 되나?”


진오가 선택지를 줬지만, 시온은 어깨만 으쓱거렸다.

자신이 어느 정도로 강해진 것인지에 대한 실감도 나지 않았고, 굳이 지금의 삶에서 벗어날 생각도 없었다.


“그건 네가 정하는 게 아니야. 소문은 생각보다 빠르고, 각성한 시점부터는 언제든지 표적이 될 수 있어.”


각성이라는 것이 나타난 지도 15년이 넘었다.

그동안 사회는 아슬아슬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속을 파고들면 온갖 군데가 썩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오래간만에 제대로 정색하는 진오였다.


“심지어 넌 오리지널인지 뭔지도 가지고 있다니까, 멍청하게 손 놓고 있다가는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삼촌은 등록 안 되어 있겠지?”

“당연한 거 아니냐. 난 이 나라를 못 믿겠거든.”


자신의 정보를 드러내는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나라에 헌신할 이유가 없는 세상이었다.

국가 소속으로 양지에서 활동하는 각성자는 극히 일부였고, 진오 역시 그쪽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뭐, 굳이 고르자면 삼촌이랑 똑같이 가야지.”


시온이 마지못해 뜻을 정하자, 진오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승용차 키를 꺼내 시온에게 던졌다.


“그럼 넌 내일부터 네 능력이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제대로 확인해. 어떻게든 희귀종 하나 찾은 다음, 그 오소리처럼 네 컬렉션에 넣으라는 소리야.”

“음···.”


진오가 한 말은 조언보다는 명령에 가까웠다.

부담감과 귀찮음이 동시에 밀려온 탓에, 시온은 긴 머리카락을 이마 위로 쓸어올리며 몸을 뒤로 기댔다.


***


밤과 새벽의 중간쯤 되는 시간, 시온은 서울숲의 벤치에 앉아 자신의 오리지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오리지널 : 희귀종의 발견 – 당신은 일정 희귀도 이상의 동물과만 교감 가능합니다. 일정 희귀도 이상의 동물과 조우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일정 희귀도 이상.

이 세 단어는 며칠째 시온의 골치를 썩이는 장본인이었다.


“오리지널이니 뭐니···. 말도 안 되는 제약이잖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도 못 믿겠고.”


며칠 동안 전국의 규모 있는 동물원과 수족관을 돌아다녔지만, 기준에 부합하는 놈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진오와 스마우그의 말대로 근본이 없어서인지 고생깨나 하는 중인 시온이었다.


“내일은 또 어디를 가 봐야 하나. 좀 멀리···.”


쉬익.


그 순간, 시온은 내뱉던 혼잣말을 끊어야 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재빠른 무언가가 밤공기를 가르는 소리만을 내며 눈앞을 지나간 탓이었다.


머리가 생각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몸뚱이.

시온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그것을 쫓아 뛰었다.


“···저거였구나.”


시온은 몇십 초를 전력으로 달려서야 가까스로 그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날개의 특이한 구조 덕분에 소리 없는 비행이 가능한 맹금류, 수리부엉이였다.


땅에 내려앉은 녀석은 들쥐를 한입에 삼키고 있었고, 시온은 한 발씩 조심스레 다가갔다.

녀석도 누군가가 접근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고개를 돌려 시온을 쳐다봤지만, 자리를 뜨지는 않았다.


쫑긋한 깃과 밝은 주황색의 눈을 가진 새.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이틀 전 찾았던 동물원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동물이었다.


하지만 지금 시온의 눈앞에 있는 부엉이는 특이했다.

사람에게 관심이 없던 동물들과는 다르게, 녀석은 시온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똑바로 시선을 맞추고 있었으니까.


“뭐, 손해 볼 건 없으니.”


며칠간 숱한 실패를 겪었기에 확신은 없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한 시온은 녀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람이 아주 가깝게 다가오는데도 도망치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 부엉이의 머리에 시온의 손이 얹어졌다.


부후.


그 순간, 부엉이 특유의 울음소리와 신비로운 광채가 시온을 삼켰다.

새하얀 오소리와 교감했던 그때와 흡사하게, 몇 초 동안 시각과 청각이 지배당하는 기분이었다.


“···아.”


그 오묘한 체험이 끝나자마자 시온의 눈앞에 작은 상태창이 나타났고, 시온은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며칠 동안 찾아 헤매던 단 한 줄의 문장.


[교감 대상에 ‘시간을 쫓는 부엉이’가 추가됩니다.]


이렇게 두 번째 희귀종이 시온의 컬렉션에 들어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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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없는 드루이드는 희귀종을 찾는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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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중재하는 한국인들 24.08.26 6 0 11쪽
14 관서의 로닌 24.08.25 9 1 12쪽
13 친절한 현지 가이드 24.08.24 8 0 11쪽
12 다음 목적지는 24.08.23 18 1 11쪽
11 유령 눈표범 24.08.22 24 1 11쪽
10 사냥꾼 잡는 사냥꾼 24.08.21 17 0 12쪽
9 악마 눈의 마코르 24.08.20 20 0 12쪽
8 히말라야행 유령선 24.08.19 25 0 12쪽
7 강해져야 한다 24.08.18 30 1 12쪽
6 안전한 도주로 24.08.17 31 1 11쪽
5 천재 도박사 24.08.16 34 2 11쪽
4 오소리의 행운 24.08.15 41 1 12쪽
3 시간을 쫓는 부엉이 +1 24.08.14 52 2 12쪽
» 근본 없지만 오리지널 +2 24.08.13 54 2 13쪽
1 새하얀 오소리 +2 24.08.12 70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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