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없는 드루이드는 희귀종을 찾는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공포조
작품등록일 :
2024.08.11 12:38
최근연재일 :
2024.08.26 16:40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433
추천수 :
14
글자수 :
78,605

작성
24.08.22 15:50
조회
23
추천
1
글자
11쪽

유령 눈표범

DUMMY

“역시. 아무리 조용히 살았어도 그 실력은 여전하네?”

“호들갑 떨지 말고, 얘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 좀 해 봐.”


스마우그가 도착하자마자 본 것은 자신과 머리카락 색이 똑같은 남자가 거꾸로 매달려있는 광경이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이 진오의 기분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잘 아는지, 큰 움직임 없이 눈치만 보고 있었다.


“당신은···!”

“그래. 우리 몇 년 전에 한 번 봤었지?”


금발 머리 밀렵꾼은 진오에 이어 스마우그의 얼굴도 알아보았고, 스마우그 역시 기억한다는 듯 오른손을 까딱였다.


“그런데 나머지 둘은 그대로 도망간 거예요?”

“검은 머리는 못 잡았고, 갈색 머리는 올가미 끊고 튀는 거 그냥 보내줬어.”

“그러면 그 두 놈은 네 조카랑 마주칠 수도 있겠네.”


진오는 한발 늦게 배에서 내린 서정의 질문에 덤덤하게 대답했고 스마우그는 시온의 안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냐는 뜻의 말을 꺼냈다.


“마주칠 수도 있겠지. 놈들이 이런 상황을 겪고도 그 눈표범을 잡아야겠다는 의지가 남아 있다면.”

“그럼 그 부분부터 어떻게 해야겠네. 저것 좀 풀어줘.”


스마우그는 올가미에 걸려 있는 포로에게 다가갔다.

그는 장시간 거꾸로 매달려있느라 힘이 많이 빠졌는지, 이제는 별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 밀렵꾼 아저씨. 내가 특별히 기회를 줄게.”


진오는 스마우그의 말과 동시에 손가락을 튕겼다.

올가미가 사라지면서 금발 머리 밀렵꾼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큭···.”

“그냥 보내줄 테니까, 동료들 찾아서 얌전히 사라져. 혹시 누구 건드리면 어떻게 될지는 알아서 생각하고.”


어차피 이 밀렵꾼 팀에게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본인들 발로 사라져 준다면 나쁠 게 전혀 없었다.

물론 포로인 처지에서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고.


“···알겠다.”

“그럼 잽싸게 움직여.”


스마우그의 제안을 들은 금발 머리 밀렵꾼은 잠시 고민하더니, 금세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일으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도 이제 박시온 쪽으로 합류하는 건가요?”

“아니. 우린 일단 여기서 대기한다.”


당연히 곧바로 시온에게 붙을 줄 알았던 서정의 예상과는 다르게 진오는 전혀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위험하다고 해 봐야 상태 멀쩡한 놈은 겨우 한 명인데, 그 정도도 감당 못 할 거면 여기서 발 빼야지.”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사실 여기 온 목적도 걔 성장시키는 거였으니까.”


진오는 시온에게 추가적인 도움을 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본인의 선택으로 각성자들의 세계에 들어왔으면, 그에 걸맞은 수준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진짜 안 따라가 봐도 되겠냐?”

“어차피 별로 멀지도 않을 텐데, 본인 입으로 도와달라고 무전 칠 때까지는 여기서 기다려도 상관없어.”

“뭐, 네가 강하게 키우겠다는데 내가 할 말은 없지.”


진오가 마음을 먹었다는 걸 확인한 스마우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세 사람은 차례로 플라잉 더치맨에 올랐다.


“후···.”


장비를 풀어놓고 가벼운 몸이 된 후, 진오가 할 수 있는 것은 태연한 척 밤하늘을 쳐다보는 것뿐이었다.


***


“마코르 능력, 기대 이상으로 쓸만하긴 하네.”


진오가 세 사람과 총격전을 벌이던 그 시간부터 쭉, 시온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악마 눈의 마코르와 교감해 지구력이 좋아져서인지 아직 숨도 엄청나게 가쁘지는 않았다.


후두두.


돌이 굴러떨어지는 소리에 잠시 뒤를 돌아본 시온은 발을 헛디디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아찔함을 느꼈다.

총격전의 현장에서 뒤로 빠져서 방향을 꺾은 후 높은 각도의 경사를 쉬지 않고 오른 결과였다.


“왜 또 없어진 거야. 분명히 아까 봤는데.”


아까 시끄럽게 울리던 총성이 끝나갈 때쯤, 시온은 비탈을 올라가는 하얀 짐승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었다.

마침 무전이 왔던 진오에게 찾은 것 같다고 말한 것은 덤이었다.


문제는 분명히 시야 안에 존재하던 눈표범이 어느 시점부터 다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


물론 주위에 하얀 만년설과 회색 바위들이 천지이긴 했지만, 녀석의 그건 보호색 수준이 아니었다.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진 것이, 말 그대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쪽팔리는데, 진짜 유령이냐고···.”


혼잣말로 투덜거리긴 했지만, 끝을 보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은 시온이 다시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크르릉.


별안간 들려오는 맹수의 소리에 뒤를 돌아본 시온은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부터 머릿속에 그리던 그 눈의 주인을 드디어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밝은 회백색의 몸에 박힌 검은색 점과 장미무늬들.

깊지만 날카로운 하늘색 눈과 크고 긴 꼬리.


“와···.”


보자마자 감탄이 나오는 생김새의 동물이었다.

녀석이 대놓고 드러내는 공격적인 태도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야야, 나는 네 가죽 벗기려고 온 게 아니야!”


시온은 본능적으로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는 대화를 시도했지만, 녀석은 사람 말 따위 알아듣지 못한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으앗!”


시온은 간신히 몸을 비틀며 눈표범의 공격을 피했다.

비탈 아래로 몸을 던지는 꼴이었고, 다행히 몇 바퀴 구른 후 커다란 바위에 부딪히며 멈출 수 있었다.


탕.


시온이 옆구리 부근을 만지작거리며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난데없는 총소리가 근거리에서 들려왔다.

바위 뒤로 최대한 살짝 고개를 내밀어보니, 아까의 밀렵꾼 중 두 사람이 오르막을 올라오고 있었다.


시온의 경우 빙 돌아오느라 몇십 분이 걸렸지만, 그들은 아까의 위치에서 최단거리로 이동했으니 그만큼 시간이 적게 걸린 것이었다.


방금의 사격은 유령 눈표범을 향한 것이었을 게 분명했고, 시온은 복잡해진 상황에 이를 악물었다.

총성 직후 녀석이 또다시 모습을 감췄기 때문이었다.


“맞춘 거야?”

“아니, 스쳤어. 표범 새끼가 사람 귀찮게 하네.”


진오가 무전을 통해 일러줬던 대로, 한 명은 팔을 다친 와중에 총도 들고 있지 않았다.

시온은 두 사람을 제압하고 유령 눈표범과 교감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았다.


“사람도 한 놈 있는 것 같은데, 어떡할 거야?”

“다를 게 있나? 보이는 건 다 쏴 재껴야지.”


사냥꾼 각성자들인 놈들은 이미 시온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고, 이렇게 되면 혼자서는 벅찬 게 당연했다.

그런데 시온이 안주머니에서 무전기를 꺼내려는 찰나, 다른 목소리와 함께 예상치 못한 전개가 시작되었다.


“리더, 리더!”

“뭐야, 살아있었어?”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올가미에 매달려있던 금발 머리는 얼마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숨이 넘어갈 정도였다.


“우리 이쯤에서 돌아가야 해. 내려가서 재정비를···.”


탕.


“아까 그 새끼가 꺼지라고 했나 본데, 내가 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리더인 검은 머리 밀렵꾼이 동료를 향해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사실 저 정도면 최대한 돌려서 말한 수준이었지만, 성난 리더를 설득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었다.


바위 뒤에서 이 모든 내용을 듣고 있던 시온은 뭔가 큰 특이점이 오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반드시 잡는다. 여기까지 온 이상 포기할 수 없어!”


검은 머리 밀렵꾼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산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 목표물을 잡겠다는 의지였다.


그리고 뭔가 익숙한 것 같은 그 문장이 시온의 귀에 들어온 순간, 바로 근처에 있는 바위틈에서 하늘색의 눈동자가 빛났다.


“이건···!”


드디어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부엉이의 능력으로 봤던 미래의 순간,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유령 눈표범의 눈은 시온을 향해 있지 않았다.

녀석의 시선에 있는 것은 몇십 걸음 정도 떨어져 있는 두 사람.


카아오-


가공할 속도로 밀렵꾼들에게 달려들면서 제 모습을 드러내는 유령 눈표범.

드디어 자신의 적이 누구인지 깨달은 행동이었다.


“끄어억···!”


유령 눈표범이 갈색 머리 밀렵꾼의 목을 물어뜯었다.

이미 오른쪽 팔이 정상이 아니었던 그는 별 저항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경동맥을 내주어야 했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기습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검은 머리 밀렵꾼은 빠르게 총알을 재장전하고 총구를 돌리려 했다.

사냥감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난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와중에 시온은 유령 눈표범이 뛰쳐나간 순간부터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성보다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나선 돌격」.”


시온은 마코르의 기술로 땅을 박차고 나가서 그대로 검은 머리 밀렵꾼에게 부닥쳤고, 함께 나뒹굴었다.

그 충돌 탓에 밀렵꾼의 엽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목표를 맞추지 못하고 바닥에 처박혀야 했다.


“크아악!”


그렇게 시온이 만든 틈을 놓치지 않은 눈표범은 쓰러진 검은 머리 밀렵꾼에게 달려들어 발톱을 휘둘렀다.

빨간 선혈이 하얀 만년설에 꽃을 수놓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두 밀렵꾼이 순식간에 사냥당했고, 이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사람 하나와 짐승 하나뿐.

유령 눈표범의 입가와 앞발에도 붉은 핏자국이 서려 있었지만, 시온의 눈에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 정도 했으면 너도 교감 좀 해 주자.”


시온은 함께 싸운 동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추후우욱.


유령 눈표범도 시온을 바라보며 특이한 소리를 냈다.

해칠 의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콧바람, 프루스텐이었다.


“내 손은 물어뜯으면 안 된다.”


시온은 한쪽 무릎을 꿇은 후 장갑을 뺀 오른손을 내밀었고, 녀석의 두꺼운 앞발이 그 위에 포개졌다.


[교감 대상에 ‘유령 눈표범’이 추가됩니다.]


마코르에 이어 히말라야에서의 두 번째 희귀종.

상태창을 확인한 시온은 눈표범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볼일이 끝났다는 걸 눈치챈 듯 곧바로 뒤돌아 걸어갔고, 이내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 진짜 한계다.”


시온이 내내 교감 중이던 마코르의 능력을 풀었고, 그 즉시 밀려오는 것은 거대한 피로의 쓰나미.

오늘이 22살의 인생에서 가장 피곤한 날이었을 거라 확신한 시온이었다.


바로 옆의 바위에 상체를 기댄 시온은 무전기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상황 종료됐으니까 빨리 배 끌고 와 줘요.”

-아무 문제 없는 거지?

“피곤해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것만 빼면.”


진오는 무전이 가자마자 시온의 상태부터 확인했고, 몇 분 지나지 않아 플라잉 더치맨이 청록색의 불빛을 달고 시온의 눈앞에 나타났다.


“뭐야. 설마 저 세 놈 네가 죽인 건 아니지?”

“당연하지. 한 놈은 팀킬, 나머지 두 놈은 지들이 사냥하려던 짐승한테 당한 거야.”


근처에 널려 있는 밀렵꾼들의 시신을 본 서정이 시온에게로 고개를 돌렸고, 시온은 오해받지 않기 위해 곧바로 상황을 설명했다.


“나머지는 나중에 묻기로 하고, 일단 타.”

“···조만간 내 전화기가 시끄러워지겠는데.”


진오가 정신없이 시온을 챙기는 사이, 현장을 죽 훑어본 스마우그는 모호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근본 없는 드루이드는 희귀종을 찾는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중재하는 한국인들 24.08.26 5 0 11쪽
14 관서의 로닌 24.08.25 8 1 12쪽
13 친절한 현지 가이드 24.08.24 8 0 11쪽
12 다음 목적지는 24.08.23 18 1 11쪽
» 유령 눈표범 24.08.22 24 1 11쪽
10 사냥꾼 잡는 사냥꾼 24.08.21 17 0 12쪽
9 악마 눈의 마코르 24.08.20 20 0 12쪽
8 히말라야행 유령선 24.08.19 25 0 12쪽
7 강해져야 한다 24.08.18 30 1 12쪽
6 안전한 도주로 24.08.17 30 1 11쪽
5 천재 도박사 24.08.16 34 2 11쪽
4 오소리의 행운 24.08.15 41 1 12쪽
3 시간을 쫓는 부엉이 +1 24.08.14 52 2 12쪽
2 근본 없지만 오리지널 +2 24.08.13 53 2 13쪽
1 새하얀 오소리 +2 24.08.12 69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