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없는 드루이드는 희귀종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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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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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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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 잡는 사냥꾼

DUMMY

날이 조금씩 저물어가는 히말라야.

눈표범의 활동이 시작되는, 황혼의 시간이었다.


“그놈들은 최대한 기척을 감추면서 이동할 거야. 반대로 네가 접근한다면 금세 알아채겠지.”

“음···.”

“놈들의 움직임이 확인되는 순간 그 경로를 앞지른 다음, 거리를 좁혀 가면서 찾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스마우그는 시온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어차피 이쪽의 목적은 먼저 희귀종을 확보하는 것이니 처음부터 불필요하게 충돌할 이유는 없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오래 걸리면 마주칠 수도 있겠지만, 운 좋으면 충돌이 아예 없을 수도 있으니까.”

“오, 결국 조카랑 같이 가려는 모양이네?”


진오가 옷 위에 조끼를 덧입으며 갑판실로 들어왔다.

조끼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장비가 매달려 있었다.


“혼자 가도 된다니까 그러네.”

“됐어. 보호자 한 명은 따라가야지.”

“나 스물두 살인데···?”


아까부터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시온이었지만, 진오는 그 말이 도통 미덥지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각성한 지 일주일 된 초짜였으니.


“그런데 내 기술로는 안 느껴져. 근방에 없는 건지, 놈들이 능력으로 기척을 감추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현대 기술의 힘을 빌려야지. 잠시만 기다려 봐.”


밀렵꾼들의 위치 파악이 안 되고 있다는 진오의 말.

스마우그는 갑판실의 화면에 위성지도를 띄워 뭔가 이동한 흔적이 있는지를 샅샅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빙고. 그래도 이동할 때는 손전등을 쓰나 보네.”

“벌써 찾았어요?”

“계속 끊기기는 하는데, 북쪽으로 이동 중인 불빛이 있어. 꽤 앞지른 다음 내려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고급 장비 덕분에 어느 정도 놈들의 동선을 파악했으니 이제 움직일 시간이었다.

스마우그가 고도를 높이고 배의 속력을 내는 동안, 시온은 팔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몸을 풀었다.


“안주머니에 무전기 넣고, 이건 오른쪽 귀에 끼고.”


타륜을 잡은 스마우그를 대신하여 진오가 시온의 무전기 착용을 도와주었다.

전에도 해본 적이 있는 듯, 꽤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난 배에서 대기한다? 여러 명이 움직이면 눈에 띄기도 쉽고, 여기도 무슨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


서정은 스마우그에게서 받은 무전기를 흔들며 말했다.

물론 같이 가면 도움이 되겠지만, 소수로 움직이는 게 훨씬 안전한 상황이었기에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쪽으로 이동하면 돼. 필요하면 바로 와 달라고 무전 때리고, 근본 없는 친구는 목숨 간수 잘 해라.”

“제발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


적당한 지점에 도착한 후 배에서 내리기 직전, 스마우그는 가볍게 웃음기를 섞은 충고를 시온에게 전했다.

먼저 배에서 내려 새하얀 눈을 밟은 진오는 목숨이란 단어가 불길했는지 스마우그에게 눈을 흘겼다.


“유령 눈표범인지 뭔지, 한번 찾아보자고.”


서정과 스마우그만이 남은 플라잉 더치맨은 눈에 띄지 않는 장소로 떠났고, 이제 단둘이서 움직여야 했다.

오늘만 벌써 몇 번째인지, 진오는 또다시 「목표물 감지」 기술로 주변의 생명체들을 탐지해 나갔다.


“어때?”

“내 범위 안에는 없는 것 같은데. 일단은 움직이자.”


눈표범은 원래도 환상의 고양이라고 불릴 만큼 발견하기 힘든 동물.

거기에 대놓고 유령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라면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었다.


“···마코르, 교감.”


손전등을 움직이는 것을 빼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시온은 주먹을 쥐며 중얼댔다.

몇 시간 전 새로 교감한 녀석의 능력을 확인하기에는 지금이 적기였다.


[‘악마 눈의 마코르’와 교감합니다.]

[지구력 수치가 상승합니다.]

[추위 저항이 활성화됩니다.]


“오, 느낌 괜찮은데.”


현지에서 찾은 희귀종이어서 그런지, 지금의 환경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능력이었다.

얼굴을 때리던 바람이 덜 차갑게 느껴지고, 다리도 한결 가벼워진 것을 확인한 시온이 만족감에 씩 웃었다.


“이 정도 움직였으면 슬슬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


이미 새까매진 하늘을 배경으로, 달빛과 손전등 두 개에 의존해 경사진 산길을 오르내리는 것도 한 시간째.

서로 가까워지는 이동 방향을 고려한다면, 언제 놈들과 마주쳐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음?”


시온은 별안간 걸음을 멈추고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눈 덮인 바위들이 가득한 경사면에서 무언가가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왜, 뭐라도 있어?”

“삼촌. 감지 한 번만 다시 해 줘.”


착각이 아니라면 분명 유령 눈표범과 관련이 있을 터.

진오는 일정한 주기로 사용하고 있던 「목표물 감지」 기술을 다시 한번 사용했고, 순간 표정이 바뀌었다.


“걸렸다. 바로 주변에 짐승 하나, 그리고···!”


탕.


진오는 말을 끝맺을 틈도 없이 시온의 옷을 잡고 바로 옆의 커다란 바위 뒤로 내팽개쳤다.

거의 동시에 귀를 찢을 듯한 총성이 울렸고, 바위에는 검은색의 총알 자국이 진하게 새겨졌다.


“전방에 각성자 둘, 이놈들 먼저 묻어버리고 간다!”


누군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함께 이어지는 총성.

최대한 피하고 싶었던 바람과 다르게 기어코 밀렵꾼 세 사람과 마주친 것이었다.


“박시온, 넌 도움 안 되니까 가서 눈표범이나 찾아.”

“···삼촌도 조심해.”


바위 뒤에 몸을 바싹 붙인 진오가 등에 메고 있던 엽총에 손을 가져가며 시온의 등을 떠밀었다.

시온도 자신이 총격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즉시 자세를 낮추고 신속히 움직였다.


“사람한테 총질하는 건 웬만해선 피하고 싶었는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시온이 어느 정도 멀어진 것을 확인한 진오는 순식간에 바위 너머로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


“총소리···!”

“누구 건지는 몰라도, 계획대로는 안 되고 있나 보네.”


그 시각, 대기하고 있던 서정과 스마우그의 귀에도 분명한 총성이 들려왔다.

연속적으로 들려오는 총성은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러면 우리도 합류해야 하는 건가요?”

“아직 무전도 안 왔는데, 굳이 먼저 움직일 것까지야.”

“상대가 업계 최고라고 했던 것 같은데요.”


스마우그는 서정의 말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여유로운 하품을 내뱉었고, 늘어지는 말투로 설명을 시작했다.


“물론 그 업계 탑이고 위험한 놈들인 건 맞는데, 주제가 사냥에서 벗어난다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지지.”

“일방적인 사냥에서 쌍방적인 싸움으로 바뀐다면···.”


확실히 서정은 머리 굴러가는 속도가 빨랐다.

아무리 사냥에 뛰어나다고 해도 서로의 목숨을 걸고 맞붙게 된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요지였다.


“···그런데 그 사람도 사냥꾼이잖아요. 심지어 상대는 세 명이고, 박시온은 아직 전투에 도움이 안 되는데.”

“근본 없는 초짜 드루이드면 몰라도, 진오가 그놈들한테 죽을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불안 요소가 큰 것 같다는 서정의 말에도 불구하고, 스마우그는 진오의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조용히 지내는 진오지만, 그의 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스마우그였으니.


“그 정도였나?”

“내가 걔를 마지막으로 본 게 5년 전인데, 그동안 완전히 퇴물이 된 게 아니라면 아무 문제 없을 거다.”


스마우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려주는 듯, 여전히 무전기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


각성자의 특징이 있다면, 일반인을 웃도는 신체 능력.

사냥꾼 직업 각성자들의 감각은 그중에서도 뛰어난 편이었으니 희미한 달빛만 비추어도 교전하는 데에는 서로 문제가 없었다.


“이 정도 소리면 눈표범이고 뭐고 다 도망갔겠는데.”


몇 분간 견제를 위한 사격을 주고받았고, 진오는 메아리치는 총성을 신경 쓰며 탄을 재장전했다.


“슬슬···.”


진오의 예측대로라면 지금쯤 시온은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간 후 방향을 꺾었을 것이었다.

이 정도면 시간은 충분히 끌었으니 이제 움직여야 했다.


타다당-


진오는 총구만 바위 위로 내밀어 방아쇠를 연속적으로 당긴 후, 곧바로 몸을 일으켜 후퇴하기 시작했다.

세 명을 동시에 상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만든 구도에 놈들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저기 있다!”

“···빨리도 쫓아오네.”


내리막을 미끄러져 내려간 진오는 잠시 무릎을 꿇고 무언가를 중얼대더니, 그사이 추적해온 밀렵꾼들의 총알을 피해 근처의 커다란 바위 뒤로 몸을 날렸다.


“대응 사격이 없다. 저놈 총알이 떨어진 모양인데?”

“어쩔 수 없지. 우리의 사냥을 방해했으니 말이야.”


거리가 좁혀지고 있는데도 진오는 총구를 내밀지 않았고, 세 사람은 승리를 확신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잡았다.”


섣부른 확신은 경계를 느슨하게 만든다.

상대의 부동심이 깨지는 바로 그 순간이 진오가 노리고 있던 타이밍이었다.


“「낚아채는 매듭」.”

“으아앗···!”


진오가 미리 깔아 놓았던 스킬이 앞장서서 다가오던 두 놈의 발목을 낚아채 위로 끌어당겼다.

놈들은 올가미에 잡힌 사냥감처럼 거꾸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처먹어.”


진오는 매달린 두 놈의 팔을 노리고 총알을 발사했다.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비명이 울려 퍼졌고 올가미에 잡히지 않은 한 사람은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름 업계 최고라면서··· 리더가 팀원들 버리고 도망치는 것 봐라?”


진오는 놈들이 떨어트려 땅바닥에 나뒹구는 총기 두 정을 산 아래로 내던지고는 올가미에 매달린 두 사람 앞에 섰다.


“내가 사람 죽이는 걸 안 좋아해서, 급소는 피했다.”

“크윽···.”

“그러게 왜 남의 조카한테 총을 갈겼어. 그래놓고 건방지게 몸 성히 돌아갈 생각을 하면 안 되지.”


뜨거운 탄피가 바닥에 깔린 눈을 녹이고 있었고, 진오는 발끝으로 탄피를 건드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달빛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지나가면서 진오의 얼굴이 확실하게 비추어졌다.


“당신 설마, 5년 전 몬스터 사냥에 참여했던···.”

“정 안 드니까 케케묵은 옛날얘기는 집어치우시고.”


금발 머리가 진오의 얼굴을 알아본 것인지 입을 열었지만, 딱히 흥미 없다는 듯 말을 끊는 진오였다.


“이익···!”


진오가 안주머니를 뒤적여 무전기를 꺼내는 순간, 아까부터 꼼지락거리던 갈색 머리가 순식간에 단검으로 올가미를 끊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총기를 잃은 데다 팔에 상처까지 입은 놈이 변수가 되지 않으리라 판단한 진오는 구태여 놈을 쫓지 않았다.


“야, 박시온.”

-삼촌, 몸은 멀쩡한 거지?

“두 놈이 빠져나갔는데, 몸 상태 멀쩡한 건 하나뿐이다. 혹시 마주칠 수도 있으니까 알고 있으라고.”


진오는 무전을 통해 시온에게 현 상황을 알려주었다.

이제 남은 것은 시온이 유령 눈표범이라는 희귀종과 교감하는 것뿐.


“그리고 앞으로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돌아다닐 생각이면 지금 희귀종 찾아서 증명해라.”

-안 그래도 찾은 것 같아. 지금 쫓아가고 있어.

“그럼 넌 할 일 계속하고, 스마우그는 이쪽으로 배 끌고 와 줘라.”


더 이상의 무전은 시온에게 방해되리라 생각한 진오는 스마우그를 이쪽으로 부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무전기를 다시 집어넣었다.


“그, 혹시 저도 좀 풀어주시면···.”

“닥쳐봐.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니까.”


그 와중에 아직도 매달려있는 밀렵꾼은 눈치 없이 말을 꺼냈고, 그 입을 다물게 한 진오는 생각에 잠겼다.

시온의 부엉이 능력처럼 시간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사냥꾼 특유의 직감이 계속해서 외치고 있었다.


앞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일에 몸을 던지게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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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냥꾼 잡는 사냥꾼 24.08.21 17 0 12쪽
9 악마 눈의 마코르 24.08.20 19 0 12쪽
8 히말라야행 유령선 24.08.19 24 0 12쪽
7 강해져야 한다 24.08.18 29 1 12쪽
6 안전한 도주로 24.08.17 30 1 11쪽
5 천재 도박사 24.08.16 34 2 11쪽
4 오소리의 행운 24.08.15 40 1 12쪽
3 시간을 쫓는 부엉이 +1 24.08.14 51 2 12쪽
2 근본 없지만 오리지널 +2 24.08.13 53 2 13쪽
1 새하얀 오소리 +2 24.08.12 6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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