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없는 드루이드는 희귀종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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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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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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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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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천재 도박사

DUMMY

“일대일로 붙을 거면··· 인디언 포커라고 들어봤나?”

“TV 프로그램에서 하는 걸 봤던 것 같기도 하고.”


인디언 포커.

각자 카드 한 장씩을 이마 위에 올린 후, 상대의 카드만을 보고 베팅을 결정해 숫자가 더 높은 쪽이 승리하는 간단한 게임이다.


“기본 베팅 1개에, 칩 50개씩 들고 하면 적당하려나.”

“50개면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겠어?”

“그럼 10 들고 죽으면 페널티 10개 더 넘기는 거로.”


서정이 사용할 카드를 추리면서 세부적인 규칙을 정했고, 시온은 똑같은 수의 칩을 각자의 앞에 위치시켰다.

양쪽이 한 번씩 카드 뭉치를 섞은 후 가운데에 놓는 것을 마지막으로 게임 준비는 끝이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따로 딜러는 없어도 되는 건가?”

“사기당할 걱정은 안 해도 돼. 나도 자존심이 있거든.”


그렇게 시작된 시온과 서정의 일대일 게임.

각자 카드 한 장씩을 이마 위로 들어 올리고는 서로의 표정을 읽는 데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레이즈 두 개.”

“죽어.”


서정의 카드가 1인 것을 확인한 시온은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하고는 추가로 칩 두 개를 베팅했지만, 서정은 어림도 없다는 듯 즉시 베팅을 포기했다.

시온의 이마 위에는 10 카드가 떡하니 있었으니 타당한 선택이었다.


“아까부터 운이 계속 좋은 것 같네?”

“앞으로도 계속 좋을 예정이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어떤 카드 게임이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인디언 포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카드 운이었다.

이미 오소리가 가져다주는 행운의 수준을 확인한 시온은 자신이 지는 경우의 수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죽어.”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연속해서 승리를 따낸 시온이 뻐근한 목덜미를 잡고 스트레칭을 했다.

서정의 보수적인 플레이 탓에 칩의 차이는 벌어졌지만, 그녀의 포커페이스는 좀처럼 무너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미리 말하는데, 내가 온 이유는 널 섭외하려고야.”


바로 다음 게임, 카드를 이마 위에 올린 시온이 별안간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공개했다.

100개의 칩 중 70개쯤을 가지고 있는 유리한 상황,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기에도 괜찮은 타이밍이기는 했다.


“이야기는 네가 이기면 들어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머지않아 온 세상이 위험해질 거고, 난 그걸 어떻게든 막을 생각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동료가 필요해.”

“그런 건 이 게임부터 잡고 나서 말하라니까. 동료든 뭐든.”


구구절절한 설명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서정은 이마 위로 카드를 들어 올렸다.

10이라는 숫자가 시온의 눈에 들어왔다.


“레이즈 서른 개.”


10을 들고 죽으면 페널티로 10개를 내야 하는 만큼, 이건 커다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이쯤에서 승기를 제대로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한 시온은 칩 서른 개를 추가로 밀어 넣었다.


“음···.”


서정이 베팅을 따라오려면 남은 칩 전부를 거는 모험을 해야 했고, 포기한다면 차이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진짜 어디서 구르다 온 놈은 아니었구나.”

“뭐?”

“아, 콜이라는 소리야.”


그러나 서정의 반응은 예상 범위 밖이었다.

그녀는 큰 고민 없이 본인 앞에 놓인 칩의 개수를 세더니, 그대로 시온의 승부수를 받아버린 것이었다.


“눈 굴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미세하게 떨린 목소리, 결정적으로 느닷없는 큰 베팅. 너무 티 나잖아.”


시온이 보인 이상행동을 근거로 자신이 10 카드를 들고 있다는 것을 완벽히 예측한 서정의 승리였다.

그 와중에 시온의 카드는 9였기 때문에, 어쩌면 유리할 수도 있었던 판을 스스로 말아먹은 것이기도 했다.


“이런···.”

“이제 말도 안 되는 블러핑이었던 거 이해하겠어?”


천재 도박사 추서정.

평상시에는 일개 딜러일 뿐이지만, 가끔가다 선수로 게임에 참여했을 때의 승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소문.


고작 행운에 취해 그런 그녀를 얕보고 있던 것이었다.

순식간에 반대로 넘어간 게임의 주도권에 시온의 입술이 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서로 바쁜 것 같으니까 그냥 카드 다 떨어지기 전에 끝내줄게.”

“한 판 이겨놓고 허세가 좀 심한 거 아닌가.”

“글쎄. 지금 남은 카드가 40장인데, 보아하니 넌 숫자마다 몇 장씩 남았는지도 모를 것 같아서 말이야.”


서정의 도발을 애써 여유로운 말투로 받아친 시온이었지만, 속으로는 큰일이라는 생각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서정이 지금까지 나온 카드들을 전부 세고 있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이쪽이 불리해지는 것은 당연했으니.


“레이즈 세 개.”


능수능란한 심리전을 펼침과 동시에 수학적 확률에도 기반을 두는 서정의 베팅.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죽어.”


그 한 번의 패배 이후로 평정심이 뒤흔들리고 있었다.

물론 시온의 행운이 꺼진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카드를 확인하지 못하고 베팅해야 하는 게임 특성상 그것을 완벽히 활용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게임을 하면 할수록 이 사람을 반드시 동료로 만들겠다는 욕심도 시온의 마음속에서 커지고 있었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듯한 단단한 태도와 짚을 베는 칼날같이 날카로운 판단, 무조건 필요한 사람이었으니.


“음···.”


그렇게 게임을 계속한 결과, 아까와는 반대로 서정이 70개 정도의 칩을 확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만 이제 남은 카드는 단 두 장뿐이었고 카드를 다시 섞어 게임을 이어간다면 결과는 확신할 수 없었다.


“카드도 딱 두 장 남았는데, 여기서 제안 하나 할까.”

“제안이라면?”

“어차피 난 남은 카드 두 장이 뭔지 알아. 네 카드만 보고도 승패를 알 수 있다는 소리지.”


게임을 시작할 때부터 모든 카드를 계산하고 있었다면 마지막 두 장의 카드는 확실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유리한 타이밍에 뜬금없이 입을 연 서정이었고, 그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시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내가 조금 앞서고 있기는 하지만··· 질질 끌지 말고 깔끔하게 끝내자고. 난 이번 판에 무조건 올인할거야.”


무조건 올인, 즉 50%의 확률 싸움에 들어가겠다는 것.

지금까지 서정이 보여준 냉철하고 계산적인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내용의 발언이었다.


“어차피 카드를 다시 섞으면 나도 계산쯤은 할 수 있는데, 내가 벌써 올인이라는 모험을 해야 하나?”

“선택은 네가 해. 네 행운을 믿는다면 따라와 보라고.”


서정은 자기가 한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듯, 자신의 칩을 전부 테이블 가운데로 밀어놓은 후에야 카드를 집어 이마 위로 올렸다.

어차피 그 숫자가 무엇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고, 이제 5할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느냐는 시온에게 달려 있었다.


카드를 다시 섞어서 계속한다면 그때부터는 똑같이 카드를 세어가며 플레이할 수 있다.

행운이 따라준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이쪽이 더 유리할 수도 있고, 어쩌면 그것까지 고려한 서정이 무리한 승부수를 내건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게임을 계속 이어나간다고 해도 서정을 상대로 이기는 미래가 쉽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서정이 보여준 실력을 생각한다면 지금 깔끔한 50%의 확률에 걸어보는 것이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다.


몇 초 동안 시온을 스쳐 지나가는 엄청난 갈등.

어느 쪽이든 고르기가 쉽지 않았고, 시온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로 마지막 남은 카드에 손을 뻗었다.


“고민하는 건 자윤데, 이러다 나 팔 떨어지겠어?”


카드를 든 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시온을 압박하기 시작한 서정이었다.

6이라는 애매한 숫자를 들고 있는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이 시온에게 숨이 막힐 정도의 부담감을 선물했다.


시온과 서정이 마지막 카드를 이마 위에 올린 채로 서로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바로 그 순간.


“자, 브레이크 타임입니다~ 다들 나가 주십쇼~”

“무슨 브레이크야! 지금 중요한 순간인 거 안 보여?!”

“너희 장사 이런 식으로 해?!”


별안간 도박장이 핏대 높이는 소리로 시끄러워졌다.

도박장의 운영진으로 보이는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들이 떼거리로 들어와 도박꾼들을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게 무슨···.”

“함부로 고개 돌리지 말고 선택해. 올인 받을 거야, 말 거야?”


서정은 소란에도 개의치 않고 시온을 재촉했다.

노란 선글라스를 낀 덩치 큰 남자 하나가 안쪽으로 걸어오고 있었지만, 그보다 이 게임이 더 중요한 두 사람이었다.


“어이, 추 딜러. 지금 혼자 무슨 게임을 하는 중이야? 미리 말도 안 하고.”

“사장님네 사람들이 여기다가 갖다 바친 돈 회수하려는 거 안 보여요? 대충 봐도 오천은 되는 것 같은데.”


어느새 테이블에 다다른 도박장의 사장이자 거구의 남자가 시온의 바로 옆에 서서 테이블을 내려쳤지만, 서정은 한 치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고 무심히 대꾸했다.


“···.”


딱 봐도 위협적인 사람이 손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온 그 순간에도, 시온은 입을 꾹 닫은 채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머리를 열심히 굴리고 있었다.


“아쉽지만 그 게임은 여기까지야. 둘 다 카드 내려.”

“하···. 언제부터 제삼자가 게임에 끼어들 수 있었죠?”

“추 딜러가 여기 있는 꽁지머리랑 짜고 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와서 말이야.”

“참나, 그러면 이 판만 마무리하고 얘기하시죠.”


이건 또 한 번의 예상치 못한 국면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의심을 담아 게임의 중단을 요구하는 본인의 사장님을 쳐다본 서정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장님이 그렇다고 하시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진짜 갈아타는 게 어때.”

“넌 잔말 말고 선택이나 해. 따라올 거야, 말 거야!”


서정이 의심받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시온이 능청스러운 말투로 합류하라는 말을 꺼냈지만, 서정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이면서까지 시온의 선택을 강요했다.


“흠···.”


그 와중에 양복 입은 남자들이 도박장 내의 사람들을 전부 내보낸 후 테이블 근처에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 구태여 승부에 집착하는 서정의 의중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선택의 시간이었다.


이런 상황에 놓인 이상, 어차피 다음 게임도 없었다.

그 말은 결국 서정에게 승리할 기회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뜻했고, 그럼 과감히 결단을 내릴 수밖에.


“···오케이, 따라간다. 어차피 내가 딴 돈으로 놀고 있는 거니까 조금 모자란 건 거기서 채우고.”


시온이 두 눈에 힘을 바짝 넣은 채 남은 칩들을 테이블 가운데로 밀었다.

시온의 선택을 본 서정은 곧바로 카드를 확인하는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승리를 위해서 따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저 지금의 상황까지 끌고 와준 새하얀 오소리의 행운을 믿는 것뿐.


“좋아. 그럼 이야기는 끝났네.”


처음으로 서정의 입꼬리가 왼쪽 위로 당겨지며 눈 밑의 점이 살짝 움직여졌고, 시온은 순간적으로 변한 그녀의 표정이 의미하는 것을 정확히 읽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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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관서의 로닌 24.08.25 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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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악마 눈의 마코르 24.08.20 19 0 12쪽
8 히말라야행 유령선 24.08.19 24 0 12쪽
7 강해져야 한다 24.08.18 29 1 12쪽
6 안전한 도주로 24.08.17 30 1 11쪽
» 천재 도박사 24.08.16 34 2 11쪽
4 오소리의 행운 24.08.15 40 1 12쪽
3 시간을 쫓는 부엉이 +1 24.08.14 51 2 12쪽
2 근본 없지만 오리지널 +2 24.08.13 53 2 13쪽
1 새하얀 오소리 +2 24.08.12 6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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