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없는 드루이드는 희귀종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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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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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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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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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리의 행운

DUMMY

“동료를 찾는다는 게 그렇게 쉽게 말할 건 아니야.”“0.001%면 한국에 오백 명은 있다는 거잖아. 그중에 머리 좋은 사람 하나 없겠어?”


3일 동안의 고생 후에 희귀종도 제 발로 굴러들어왔으니, 사람 구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머리 좋은 동료를 하나 구한 후에, 앞으로의 계획을 함께 꾸린다는 것이 시온의 생각이었다.


“똑똑한 사람이면 일단 네 말을 안 믿을 것 같은데.”

“오히려 귀 기울여 들어줄 수도 있잖아. 모르는 거지.”

“네가 꼭 해야겠다고 하면, 생각나는 데가 한 군데 있기는 한데···.”


시온은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어 보였고, 한숨을 내쉰 진오는 최근에 주워들은 소문에 관해서 입을 열었다.

아무 데나 들쑤시면서 시간을 낭비할 바에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쪽에 가 보는 것이 나았으니까.


“내가 철없을 때 다니던 불법 도박장이 하나 있어. 요새 범상치 않은 딜러가 하나 있다고 하더라고.”

“도박장의 딜러···. 혹시 각성자인가?”

“뭐, 이것도 소문에 불과하기는 해. 위험을 감수하고 접촉해볼지는 네 자유지.”


불법 도박장.

듣기만 해도 위험한 냄새가 풍기는 장소였지만, 게이트 쇼크가 덮쳐올 미래를 생각하면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삼촌, 오랜만에 용돈 좀 땡겨줘야겠는데?”


***


“지하 3층···.”


날이 밝자마자 찾아온 경기도 외곽의 허름한 건물.

시온은 진오가 알려준 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온 뒤, 바로 옆에 있는 소화전을 열었다.


“참나.”


소화전 안에 응당 있어야 할 호스와 밸브 대신 시온을 맞이하는 것은 좁고 긴 계단이었다.

허리를 굽혀 안으로 들어간 후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커다란 철문이 나타났고, 시온은 곧바로 문을 열었다.


“이야···. 완전 제대로 만들어놨네?”


환한 조명을 받으며 자리 잡은 수십 개의 테이블.

허름한 건물 지하에 이 정도 규모의 불법 도박장이 있다는 걸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근데, 장사가 잘 안되나?”


가장 안쪽의 테이블 가운데에 앉아 있는 한 명을 제외하고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도박장이었다.

딱히 다른 선택지도 없었으니, 시온은 망설임 없이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기 혹시···.”

“아직 영업 안 해요.”

“아, 그런 게 아니라 딜러 한 명을 찾고 있는데···.”

“영업 시작 안 했다니까.”


느낌 있게 묶은 중단발 머리와 왼쪽 눈 밑의 작은 점.

예쁘다기보다는 잘생겼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여자는 시온에게는 관심도 없이 카드를 확인하고 있었다.


“···여기 서비스 엉망이네. 이래 봬도 고객인데.”

“이런 세상에 겁도 없이 까부는 걸 보면, 우리 고객님 각성자이신가 보네?”


다소 시비가 섞인 시온의 말에도 눈 하나 까딱 않고 대꾸하는 걸 보아, 이쪽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시온은 무표정인 얼굴에서 시선을 내려 여자의 재킷에 달린 명찰을 쳐다보았다.


“아, 다른 사람 찾을 필요가 없었네.”


추서정.

금색 명찰에 각인된 세 글자가 눈에 들어오자 시온은 자신이 제대로 찾아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고, 그대로 바로 앞의 의자에 앉았다.


“날 찾아온 거야? 비싼 몸이라 놀아줄 시간 없는데.”

“박시온이라고 해. 잠깐이면 되니까 말 좀 들어···.”

“10시. 시간 됐네.”


하지만 본론으로 들어갈 시간 따위는 받을 수 없었다.

반짝이는 손목시계를 확인한 서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박장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찼기 때문이었다.


“이게 무슨···.”


시온이 들어온 길 말고도 입구가 따로 있는지, 영업시간이 되자마자 순식간에 인산인해가 된 도박장이었다.


“어휴. 오늘도 한탕 해 봐야지?”

“오늘은 꿈자리가 좋더라니까.”


시온과 서정이 대화 아닌 대화를 나누고 있던 테이블에도 세 명의 남자가 다가와 앉았다.

게이트니 미래니 하는 말들은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할 판이었다.


“나 일해야 하는데, 돈 없으면 그냥 엉덩이 떼시지?”

“···.”

“혹시나 멋진 여자 하나 꼬시려고 온 거면, 돈 좀 따서 다시 말 걸어 보든지.”


서정은 현란한 손놀림으로 카드를 섞으며 입을 놀렸고,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는 시온의 선택이었다.

이 도박판에 끼는 것이 탐탁지는 않았지만, 지금 얌전히 돌아간다고 해도 답이 안 나오는 건 똑같았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란 것을 깨달은 시온은 겉옷 안주머니에서 노란색 돈뭉치 두 개를 꺼냈다.

생각보다 두껍지도 않은 천만 원이 지금 시온이 가진 전부였다.


“젊은 친구, 겨우 그걸로 되겠어?”

“···일단 이 정도면 담가 보는 거죠, 뭐.”


시온은 바로 옆에 앉은 중년의 남자가 입맛을 다시는 것을 애써 무시했고, 시온이 내민 액수를 확인한 서정이 검은색의 칩 백 개가 담긴 케이스를 넘겨주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서정이 카드를 돌리면서 게임이 시작되었다.

게임 종목이 나름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는 텍사스 홀덤이라는 것이 초보인 시온에게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쯧···.”


물론 규칙을 안다고 저들과 같은 위치인 건 아니었다.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7할이 넘는 칩이 사라진 것을 깨달은 시온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하하, 젊은 친구 덕분에 오늘 배부르게 먹겠네~”


꽤 좋은 패가 나온 상황에서도 베팅 실력의 문제로 이득을 보지 못하고, 상대의 블러핑에 당하기 일쑤.

이대로라면 그대로 돈만 털리고 쫓겨날 위기였다.


“그걸 해봐야 하나···.”


뾰족한 수를 내야 하는 상황, 무언가가 뇌리를 스쳤다.

오소리와 교감했을 때 상태창에 나타났던 문장과 그 속의 행운이라는 단어를 기억해낸 시온이었다.


지금이야말로 그 행운이 필요한 시점.

정확한 의도를 가지고 희귀종과 교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오소리, 교감.”


[‘새하얀 오소리’와 교감합니다.]

[행운 수치가 크게 상승합니다.]


시온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고, 상태창이 나타남과 동시에 상쾌한 기운이 몸 전체에 감돌았다.

어느 정도의 행운이 따르는지는 몰라도 정신이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니 의욕도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그럼 계속하겠습니다.”


내내 무표정이던 서정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좁혀졌다.

시온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눈치챘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별다른 행동 없이 게임은 계속 진행되었다.


“카드 돌립니다.”


그리고 정확히 그때부터였다.

상태창에 기재된 행운 수치 상승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듯, 시온에게 흐름이 완전히 넘어온 것은.


“트리플.”

“풀 하우스네요.”


상대가 적당한 패로 달려들면 그보다 한두 단계 높은 족보가 만들어지고, 상대가 승부를 걸어야 하는 타이밍이면 베팅은 상상도 하지 말라는 듯한 쓰레기 패.

상황에 알맞은 카드가 완벽하게 딱딱 달라붙었다.


“음···.”


시온 본인이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행운이었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와도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을 하다 보니 잃은 것의 몇 배를 복구하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복권을 사도 1등을 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억지로 웃음을 참던 와중, 이번 판은 심상치 않았다.

다들 패가 좋은 것인지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고 마지막 공유카드가 열릴 때까지도 판돈은 쌓이기만 했다.


“마지막 공유카드 오픈합니다.”


다이아몬드 A, 스페이드 10, 스페이드 K, 클로버 10에 이어 마지막 공유카드는 스페이드 Q.


언뜻 봐도 살벌한 공유카드들.

오늘의 마지막 판이 찾아왔다는 것을 테이블에 앉은 모두가 직감했다.


“···올인.”

“따라가야지.”

“콜.”


세 명의 도박꾼이 모든 자본금을 베팅하며 승부를 걸었고, 시온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칩을 앞으로 밀었다.

이 한 판으로 테이블의 생존자가 결정되는 것이었다.


“A 트리플.”

“스페이드 플러시.”

“고맙게도 내가 먹었군. 10 포카드.”


세 사람 모두 올인의 이유가 있었던 강한 족보였다.

10 포카드의 승리를 확신한 남자가 기쁨을 만끽하려는 순간, 가만히 테이블을 바라보던 시온이 입을 열었다.


“아직 저 남았으니까 기다리시죠.”


사실 마지막 공유카드가 오픈되는 순간에 승패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얕은 미소를 지은 시온은 천천히 손을 뻗어 자신의 카드 두 장을 뒤집었다.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


스페이드 J와 스페이드 A.

공유카드와 합치면 스페이드 10, J, Q, K, A로 족보 중 가장 높은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였다.


“말도 안 돼! 로티플이라고?!”


지리산 새하얀 오소리를 숭배하고 싶어지는 기분.

시온은 자신이 교감하는 희귀종 하나하나의 능력이 어느 정도로 강력한지 몸소 체감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의심스러웠는데··· 이건 불가능해!”

“너 이 새끼,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벌인 거야!”


말도 안 되는 패배에 흥분한 도박꾼들은 테이블을 때리며 소리쳤다.

분위기를 읽은 시온은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면 즉시 부엉이의 능력으로 날개를 펼쳐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만.”


나지막한 목소리가 일촉즉발의 상황을 진정시켰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당연히 서정이었다.


“이 도박장에서, 그것도 내가 멀쩡히 눈을 뜨고 있는 이 테이블에서 사기를 치는 게 가능했겠어요?”


공정한 판이었다는 것을 보증하는 강경한 말투.

변함없는 무표정으로 게임에 쓴 카드를 매만지는 서정에게서 좌중을 압도할 정도의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털렸으면 얌전히 일어들 나시죠. 욕 좀 드시겠네요.”

“젠장···.”


서정이 테이블에 수북이 쌓인 칩을 시온의 앞으로 밀어주며 게임을 마무리했고, 패배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한 세 사람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너, 어디서 구르던 놈이야.”

“···갑자기 무슨 소리지?”

“어느 시점부터 카드가 말도 안 되게 들어가던데.”


서정은 담배를 입에 물면서 시온에게 질문을 던졌다.

게임을 진행하며 관찰한 결과 사기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수상하다는 의심을 거둘 수는 없었다.


“마지막에 운이 좋았던 거지. 게임이 그런 거 아닌가.”

“어쭙잖은 실력으로는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있는 테이블이 아니었는데. 애초에 저 아저씨들, 우리 사장이 꽂아 넣은 선수들이니까.”

“그 실력을 덮을 정도로 내 운이 압도적이었나 보네.”


서정은 입에서 연기를 뿜으며 눈앞의 꽁지머리 남자가 어깨를 으쓱거리는 것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을 지나, 굳이 내부 정보를 공개하는 서정의 의도가 궁금해진 시온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그런 것까지 말해준다는 건, 이제 내 이야기를 들어볼 마음이 좀 생긴 건가?”

“아까보다는 관심이 좀 생기네. 여기 가운데로 앉아.”


담배를 테이블에 비벼서 끈 서정은 재킷을 벗고 셔츠 맨 윗단추를 풀더니,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카드 두 세트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일대일로 한판 붙어 보자고. 네가 이기면 어떤 주제로 떠들어도 실컷 들어줄 테니까.”

“그러지 뭐. 그럼 나도 이 정도 판돈은 걸어야 하나?”


여태까지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서정의 눈동자가 잠깐이나마 빛났다.

시온은 조금 전의 게임에서 딴 칩들을 전부 다시 밀어 넣으며 그 게임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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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관서의 로닌 24.08.25 8 1 12쪽
13 친절한 현지 가이드 24.08.24 8 0 11쪽
12 다음 목적지는 24.08.23 18 1 11쪽
11 유령 눈표범 24.08.22 23 1 11쪽
10 사냥꾼 잡는 사냥꾼 24.08.21 17 0 12쪽
9 악마 눈의 마코르 24.08.20 20 0 12쪽
8 히말라야행 유령선 24.08.19 25 0 12쪽
7 강해져야 한다 24.08.18 30 1 12쪽
6 안전한 도주로 24.08.17 30 1 11쪽
5 천재 도박사 24.08.16 34 2 11쪽
» 오소리의 행운 24.08.15 41 1 12쪽
3 시간을 쫓는 부엉이 +1 24.08.14 52 2 12쪽
2 근본 없지만 오리지널 +2 24.08.13 53 2 13쪽
1 새하얀 오소리 +2 24.08.12 69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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