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없는 드루이드는 희귀종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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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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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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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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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행 유령선

DUMMY

배가 출발하자 세 사람은 넓은 선실에 자리를 잡아 앉았고, 곧 스마우그가 쟁반 하나를 들고 선실 안으로 들어왔다.


“너 혼자서 이 큰 배를 몰고 다니는 거냐?”

“네가 쓰는 덫이나 올가미랑 비슷한 취급이야. 실제로 존재하는 물건은 아니지만,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불러내 사용할 수 있는 거지.”


따뜻한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하나씩 나눠주면서 자신의 오리지널이자 애마, 「플라잉 더치맨」에 대해 설명한 스마우그였다.


“···믹스네요?”

“뒷골목 로그 출신 입맛에는 달달한 한국 커피믹스가 잘 맞더라고.”


스마우그는 노란색 커피믹스 봉지를 시온에게 보여주면서 자리에 앉았고, 바로 앞의 진오에게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들려주었다.


“3년 전에 밀항선 타다가 풍랑에 휘말려서 뒤질 뻔했었거든. 근데 정신을 차려 보니까 이 배에 실려 있었던 거지.”

“오리지널을 얻은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다?”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리고 그 덕분에 다른 쪽으로도 재미를 보는 중이고.”


스마우그는 선실 한쪽에 쌓여있는 상자들을 가리키더니 엄지와 검지를 비비면서 미소를 지었다.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이곳저곳 다니면서 부업으로 밀수에도 손을 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근데 난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되는데. 그 오리지널이라는 거, 생기는 기준이 뭐냐?”

“나도 꾸준히 정보를 모으고 있는데, 각성하자마자 오리지널을 달고 있다는 사람이 생겨서 더 복잡해졌어.”

“컥.”


각성하자마자 오리지널을 달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시온을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커피를 목 뒤로 넘기던 시온은 뜬금없이 나온 자신의 이름에 기침을 연신 해댔다.


“너도 잘 모르는 거면 그걸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네.”

“일단 나도 각성하고 12년 만에 얻은 거니까, 시간이 더 흐르면 오리지널 보유자 수도 늘어나지 않을까.”


진오와 스마우그가 오리지널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서정은 변함없는 무표정으로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 너무 우리 둘만 이야기했나? 다른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은데, 불 좀 붙여도 되나요?”

“밖에 나가서 태워. 발 헛디뎌서 다이빙하지 말고.”


나머지 세 사람은 이미지들과는 다르게 비흡연자였다.

서정은 홀로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묶으며 선실 밖으로 나갔다.


“근데 쟨 또 뭐야. 어떻게 된 게 표정에 변화가 없냐.”

“얘 여자친구··· 가 아니라 당분간 같이 다닐 동료지.”

“그 나이에 연애하는 게 쪽팔린 건 아니지 않나?”


스마우그의 질문에 장난을 치려던 진오는 시온이 눈을 흘기는 것을 보고 곧바로 말을 정정했다.

하지만 스마우그는 그 짧은 시간에 분위기를 읽고는 두 사람을 엮어대며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안타깝지만 제 스타일은 아니라서요.”


담배를 태우고 돌아오는 길에 이야기 소리를 들었는지, 서정이 고개를 저으면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정확히 시온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는 건 덤이었다.


“말 잘했다. 나도 마찬가지거든.”

“딱 동료 관계만 유지하자고. 서로를 위해서.”

“둘이 얼굴 합이 딱 괜찮은 것 같은데. 아쉬워라.”


그러나 스마우그는 진오가 그쯤 하라고 등을 칠 때까지 킥킥 웃으면서 두 사람을 엮었고, 시온은 관자놀이를 문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건 담배 피우다가 생각난 건데, 다른 나라 감시망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 거죠?”

“아, 이게 유령선이라 그런지 일반적인 레이더에는 걸리지 않아. 직접적인 충돌만 안 일어나면 상관없을걸.”


서정이 주제를 바꾸어 이 항해의 안전에 관해서 물었고, 스마우그는 안심해도 된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스마우그 본인이 지금까지 잘 살아있는 걸 보면 그리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실제로 본 놈이 있다고 해도, 각성자를 상대하는 위험을 감수하기 싫으니 조용히 지나갔을 수도 있겠지.”

“생긴 것부터가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이 생겼잖아.”


그 후로는 다시 아까처럼 진오와 스마우그가 그동안의 회포를 푸는 이야기가 선실을 채웠고, 시온과 서정은 가끔가다 한번 대화에 끼어드는 정도였다.


“안 그래도 너희들 도와주고 난 다음에 아프리카 한번 찍고 와야 해. 다이아몬드 좀 실어 날라야 하거든.”

“예전보다 더 바쁘게 사는 것 같다?”

“돈 벌어야지. 필요한 장비들도 사고 해야 하니까.”


일정이 바쁘다는 스마우그의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한눈에 봐도 비싼 장비들이 배 곳곳에 널려있었는데 웬만큼 열심히 벌지 않고서야 저런 고급 장비들의 가격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


“그리고 너희한테도 받아야지. 인당 큰 거 한 장씩?”

“···농담이겠죠?”

“농담이지. 네 삼촌 부탁이면 언제든 무료 서비스야.”


몇 시간 정도 같이 있어 보니 스마우그가 상당히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시온이었다.

그리고 과거에 사연이 있었는지, 몇 년간 만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진오와 매우 돈독한 사이라는 것도.


“지금부터 속력을 낼 건데, 피곤한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자 두라고. 일어날 때쯤이면 도착해 있을 테니까.”


스마우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고, 세 사람은 각자 자리를 잡은 후 다음 일정을 위해 눈을 붙였다.


***


옆 선실의 소파에서 잠을 잤던 시온은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겉옷을 단단히 챙겨입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는 이른 아침, 플라잉 더치맨은 구름과 거의 비슷한 높이에 떠 있었다.

유령선이라는 이름값에 한술 더 떠 거의 비행기나 다름없는 수준을 자랑하는 스마우그의 오리지널이었다.


“오···.”


하얀색 봉우리가 눈에 들어오는 것에 앞서서 차가운 공기가 뇌 안쪽까지 자극하는 것이 느껴졌다.

목적지인 히말라야의 한 봉우리에 도착한 것이었다.


“근본 없는 친구, 생각보다 늦게 일어났네.”

“그놈의 근본···. 언제까지 할 거예요?”

“아마 재미없어질 때까지?”


갑판에 있던 스마우그가 입김을 뿜으며 말을 걸었다.

아마 당분간은 계속 저 호칭을 유지할 생각인 듯했다.


“나머지 둘은 어디 있어요?”

“저기 갑판실. 지도 띄워놓고 얘기하고 있던데.”


시온은 자는 동안 멋대로 뻗친 머리를 고쳐 묶으며 진오와 서정이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갑판실로 향했다.

시온과 마찬가지로 복장이 무거워진 두 사람은 갑판실의 커다란 화면에 띄워진 지도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지금 누구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건데, 잘만 자더라?”

“하하···. 그래서 어떻게 움직일 생각이야?”


진오가 간략하게 설명해주는 계획은 이러했다.

어차피 시온이 보고 온 미래의 장소를 정확하게 특정할 수 없으니, 가까운 산을 하나씩 둘러보면서 느낌이 오는 동물이 확인되면 접근하자는 것.


“너무 맨땅에 헤딩 아닌가.”

“네가 희귀종을 만날 운명이라면 금방 끝나겠지. 그 오리지널 설명에도 확률 올라간다고 쓰여 있다며.”


서정의 말대로, 시온의 오리지널 「희귀종의 발견」에는 희귀종과 조우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언급이 있었다.

시온의 경험상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전들은 다 짜셨나? 내가 어떻게 해 줘야 해?”

“고도를 조금 낮춰서 천천히 둘러봐 줘. 네가 배만 몰아 주면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진오가 종이컵을 입에 물고 갑판실로 들어온 스마우그에게 계획을 전달하자, 스마우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타륜을 잡았다.


“지금부터 세계에서 8번째로 높은 산, 히말라야의 마나슬루 관광 시작하겠습니다.”

“관광은 무슨···. 「목표물 감지」.”


마치 관광 가이드처럼 입을 놀리기 시작한 스마우그.

친구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내저은 진오는 근처에 존재하는 동물들을 탐색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들쥐, 직박구리, 다람쥐···.”

“이거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는데.”


진오가 감지된 동물들을 하나하나 나열해줬지만, 딱히 시온의 희귀종 기준에 맞는 녀석은 없는 듯했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대로 장기전이 될 모양새였고,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냥 별거 아닌 것 같은 동물이라도 일단 내려서 확인을 해 보는 게 나을 수도 있겠는데?”

“잠깐만. 이 정도면···!”


시온이 오랜 시간 동안 대기한 탓에 굳어버린 몸을 풀면서 다른 방법을 제안하던 순간이었다.

무언가를 감지한 진오가 별안간 갑판실 밖으로 뛰쳐나가 난간을 잡았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슬아슬한 바위 절벽에 난 좁은 길을 걸어 다니는 염소 떼였다.


“박시온, 마코르 염소다.”

“저 정도면 좀 멋있어 보이는데, 가볼 만한 거 아냐?”


그 마코르 떼에서 단 한 마리 있는 수컷의 뿔은 멋들어지게 뻗은 나선형이었고, 늠름한 위압감이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서정이 시온을 돌아보며 의견을 물었고, 시온 역시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저쪽으로 조금 더 붙여 줄까?”


스마우그가 더 접근해야 하는지 물어보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전체가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더 가벼운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감.”


[‘시간을 쫓는 부엉이’와 교감합니다.]

[비행 능력이 활성화됩니다.]


곧바로 부엉이와 교감한 시온은 주황색의 날개를 펼친 후 난간을 딛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이야. 네 조카 멋있는데?”

“자신 있게 뛴 것치고는 휘청거리고 있는 것 같은데.”


히말라야의 설산을 배경으로 하늘을 나는 시온을 본 스마우그는 진오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감탄했다.

정작 시온은 아직 비행에 대한 감을 완벽히 익히지 못한 탓에 사나운 바람이 불 때마다 비틀대고 있었지만.


“우왓···!”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몇 번의 허우적거림 끝에, 깎아지른 절벽의 좁은 길에 가까스로 착지한 시온은 목표로 한 마코르의 모습을 그대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눈동자가 뭐 저래?”


염소라는 동물의 눈이 원래 상당히 특이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이 녀석의 동공은 딱 봐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짙은 회색빛의 털가죽에서 더욱 돋보이는 붉은색의 가로 동공, 타오르는 악마의 눈이라 표현할 만했다.


후욱.


갑자기 날아와 앞길을 가로막은 시온을 본 녀석이 흥분한 것인지 콧김을 뿜었다.

이미 뒤쪽의 마코르 무리가 동요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컷으로서 당연한 행동일지도 몰랐다.


“자자, 진정하고 여기로 좀 와볼···.”

“야, 조심해!”


시온은 녀석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양손을 들고 접근하려 했지만, 나선형의 뿔을 내세운 돌진이 대답으로 돌아왔다.

진오의 외침과 동시에 다시 날개를 펼쳐 공중으로 떠오른 덕분에 가까스로 충돌을 피한 시온이었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


시온은 어깻죽지의 날개를 퍼덕이면서 이번 녀석은 지금까지 교감한 둘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악마 같은 눈을 한 저 짐승은 순순히 시온의 뜻대로 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미안한데, 해 떨어지기 전에는 끝나는 거지?”

“음···.”


플라잉 더치맨의 난간에 걸터앉은 서정은 변함없는 무표정으로 담배를 물었고, 그걸 본 시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끝내려면 네가 좀 도와줘야겠다. 추서정.”


세 번째 희귀종을 손에 넣기 위한 기막힌 방법이 떠오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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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없는 드루이드는 희귀종을 찾는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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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중재하는 한국인들 24.08.26 5 0 11쪽
14 관서의 로닌 24.08.25 8 1 12쪽
13 친절한 현지 가이드 24.08.24 8 0 11쪽
12 다음 목적지는 24.08.23 17 1 11쪽
11 유령 눈표범 24.08.22 23 1 11쪽
10 사냥꾼 잡는 사냥꾼 24.08.21 17 0 12쪽
9 악마 눈의 마코르 24.08.20 19 0 12쪽
» 히말라야행 유령선 24.08.19 25 0 12쪽
7 강해져야 한다 24.08.18 30 1 12쪽
6 안전한 도주로 24.08.17 30 1 11쪽
5 천재 도박사 24.08.16 34 2 11쪽
4 오소리의 행운 24.08.15 40 1 12쪽
3 시간을 쫓는 부엉이 +1 24.08.14 51 2 12쪽
2 근본 없지만 오리지널 +2 24.08.13 53 2 13쪽
1 새하얀 오소리 +2 24.08.12 6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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