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없는 드루이드는 희귀종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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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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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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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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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안전한 도주로

DUMMY

퍽.


시온은 카드를 든 자세 그대로 오른쪽 팔꿈치를 대각선 위로 휘둘렀고, 공격의 대상은 바로 옆에 서서 테이블에 양손을 짚고 있던 도박장의 사장이었다.

그가 끼고 있던 노란 선글라스가 땅에 떨어지자마자 시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을 뛰어넘었다.


시온이 마지막 승부를 받아들인 직후에 서정이 보인 표정은 지금부터 협조해 주겠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그렇게 동료를 구한다는 목적은 어렵사리 달성했고, 이제 새로운 과제는 여기서 안전하게 빠져나가는 것.


“아, 이 새끼들이···.”


사장은 덩칫값을 하는 듯 정확히 턱을 노린 공격을 맞고도 큰 충격이 없어 보였고, 이내 손가락 관절을 꺾어 소리를 내며 시온을 노려보았다.

아까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 역시 각성자라는 것이 확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너 싸움은 못 하는 거야?”

“그건 아닌데, 각성자랑 싸워본 적은 한 번도 없어서.”


멀쩡해 보이는 자신의 전 사장을 바라본 서정은 믿음이 안 간다는 말투로 시온에게 질문을 던졌고, 시온은 변명 아닌 변명과 함께 머리를 긁적거렸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각성자이자 밀렵꾼인 진오를 따라다녔던 시온이었기에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꽤 거칠게 살아온 인생이 맞았다.

물론 그게 각성자에게도 통하는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지만.


“···이 년놈들 잡아서 무릎 꿇려.”

“예!”


사장의 지시를 받은 부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온은 급한 김에 주먹을 쥐고 나서려 했지만, 서정이 한발 먼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오래간만에 짭짤한 직장이었는데···. 조금 아쉽네.”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온 서정이 팔을 움직이자 허공에 커다란 트럼프 카드 다섯 장이 생겨났고, 그녀의 손짓 한 번에 카드들이 뒤집히며 족보가 나타났다.


“「7 – 원 페어」.”

“크헉!”


7이라는 숫자의 형상이 카드에서 튀어나와 가장 먼저 달려오던 두 명의 남자를 저 멀리 튕겨냈다.

무작위로 나타나는 족보에 따라 각기 다른 기술이 발현되는 것, 그게 도박사 직업 각성자의 기본 골자였다.


“「클로버 – 플러시」.”


촤라락-


서정이 또 한 번 기술을 사용하자 카드 다섯 장에서 수많은 검은색 클로버가 쏟아져 나왔다.

파도처럼 몰아친 클로버들은 테이블을 넘어뜨리는 건 기본에, 밀려난 사람들의 허리께까지 쌓여 움직임을 막아버리기까지 했다.


“뭣···!”

“맨날 앉아만 있던 딜러가, 이 정도의 각성자였다고?”


도박장에서 오가며 보던 사람들도 서정의 능력을 몰랐던 것인지 당황한 기색이었고, 시온도 마찬가지였다.

두뇌 쪽으로 특화된 각성자인 줄 알았지, 전투력을 겸비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어떡할 생각이야?”

“···글쎄. 이 정도로 일이 커지는 건 계획에 없었거든.”


멍하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구경하고 있던 시온을 깨운 것은 서정의 질문이었다.

하지만 딱히 답해줄 수가 없었던 것이, 애초에 여기서 이 정도 시간이 걸린 것도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었다.


“날 영입하고 나서의 원래 계획은 뭐였는데?”

“그걸 몰라서 머리 좋은 너한테 물어보려던 거지.”

“이거 줄 잘못 선 것 같은데···.”


대책 없는 시온의 말에 혀를 찬 서정이 정면을 바라보더니 다시 카드 다섯 장을 만들어 공중에 띄웠다.

아까의 기술은 급한 대로 적들의 발을 묶은 것에 불과했고, 다시금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쨌든 여기서 빠져나가야 하는데, 다른 건 몰라도 저 사장 놈은 감당 안 될 것 같거든?”

“아, 그럼 굳이 정면으로 뚫고 나갈 필요는 없지. 잠깐만 시간 끌어줘.”


몇 분 사이에 호칭이 사장님에서 사장 놈이 된 남자는 언제 주워 썼는지 다시 노란색 선글라스를 얹은 채로 클로버 더미를 뚫고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정면으로 맞붙는 것이 무리라면 충돌 없이 빠져나가는 방법이 한 가지 있기는 했다.


“「A – 트리플」.”

“우리 도박장을 웃음거리로 만들 수는 없지.”


서정이 날린 알파벳 A 형상 세 개가 사장을 둘러싸더니 이내 형틀처럼 그의 몸을 속박했다.

이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는 완력을 이용해 속박을 몇 초 만에 뜯어버렸지만,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했다.


“여기 인테리어 해놓으신 거 보면 돈깨나 쓰신 것 같은데, 죄송하게 됐네요.”

“이놈들이···!”


각성자가 이성을 반쯤 놓은 채로 달려드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이미 모든 준비는 끝난 상태.

자세를 낮추고 바닥에 손을 가져다 댄 채로 사장을 도발한 시온은 일순간 정신을 집중했다.


“「오소리 땅굴」.”


오늘은 오소리의 능력이 끝까지 활약하는 날.

시온은 지리산 때와 비슷한 감각을 떠올리고는 약간의 이미지를 그리며 기술을 사용했다.


쿠궁-


시온의 바로 뒤에 지름 3m 정도의 구멍이 생겨났다.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경험상 들어간다고 해서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었다.


“이거, 안전하긴 한 거지?”

“정면돌파하는 것보다야 훨씬 안전한 도주로지.”


더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시온은 곧장 어두운 구멍 안으로 뛰어내렸고, 내키지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던 서정도 그 뒤를 따랐다.


“읏차.”

“뭐야, 하수도?”


심하게 퀴퀴한 냄새에,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

서정이 휴대폰을 들어 불빛을 비추고서야 하수도로 들어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뛰어야 할 것 같은데. 저 사장 놈, 눈 뒤집히면 뭔 짓을 할지 모르거든.”

“그 옷으로 제대로 뛸 수 있겠어?”

“너나 신경 써.”


추격이 붙을 가능성을 빼놓을 수 없었기에 두 사람은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서정은 시온이 한 것이 기우였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슬랙스 바지에 단화 차림으로도 크게 뒤처지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나이가 어떻게 돼? 또래 같기는 한데.”

“한국 나이로 스물하나.”

“···한 살 차이기는 해도 나보다 어릴 줄은 몰랐는데.”


확실히 액면가만 따지면 스물하나라는 게 이상하지 않았지만, 사회에 십 년은 찌든 것 같은 서정의 말투와 태도가 나이와는 딴판이었기에 시온이 당황할 수밖에.


“처음부터 말 놓은 사이에 오빠 대접받을 생각은 하지 말고.”

“내가 한 살 차이로 나이 따지는 꼰대는 아니···.”

“야, 이 새끼들아! 빨리 움직이라고!”


서로의 나이를 확인하고 있던 와중, 아직 여유를 가질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누군가가 지른 소리가 하수도 안 전체에 울렸고 덕분에 두 사람은 추격이 붙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굳이 힘 빼면서까지 쫓아올 이유가 있는 건가.”

“이거 어디로 빠져나가야 하는지는 알아?”

“아무 데나 잡고 올라가는 건 좀 불안한데···.”


이번 땅굴은 전과는 다르게 명확한 출구가 없었고, 어느 지점에서 하수도를 빠져나갈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타이밍 좋게 시온의 휴대폰이 울렸다.


“어, 삼촌!”

-너 지금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 거냐? 위치 추적이 계속 끊기는데.

“도박장에서 땅굴 뚫은 다음 하수도로 뛰고 있어!”

-내가 너한테 그런 정신 나간 짓 하라고 가르쳤냐?


시온은 현재 상황을 진오에게 말해 주었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쏘아붙이는 핀잔을 감당해야 했다.

동료 하나 구해오는 데에 이 정도의 긴박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거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던 진오였다.


“알겠는데, 뒤에 꼬리가 붙어서 좀 급하긴 하거든?”

-조금만 더 뛰고 있어 봐. 거의 다 따라잡았으니까.

“삼촌이 내려올 거야?”

-어. 살다 보니까 맨홀 뚜껑 뜯을 일도 생기는구나.


그렇게 전화가 끊겼고, 진오가 지원을 와 주는 덕분에 복잡한 생각 없이 도망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내 보호자가 곧 온다니까 걱정 안 해도 될 듯?”


표정의 변화는 없었어도 슬슬 숨이 차는 듯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인 서정이었고, 그걸 본 시온은 뛰는 속도를 살짝 늦추었다.

너무 빠르게 이동했다가 진오가 들어오는 위치와 엇갈릴 수도 있으니, 그 부분을 신경 쓰는 것이기도 했다.


“박시온!”

“어, 빨리 왔네.”


그렇게 몇 분이나 더 움직였을까, 강한 손전등 불빛과 함께 나타난 사람의 형체가 시온의 눈에 들어왔다.


“뭐야, 동료가 아니라 여자친구를 구해온 거야?”

“삼촌이 말한 그 천재 도박사 추서정이 얜데.”

“···소문 자자한 딜러가 이렇게 어릴 줄은 몰랐는데.”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서정의 정체를 한 번에 알아보지 못한 진오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던졌고, 아까와는 반대로 시온이 어이없다는 말투로 받아쳤다.


“근데 지금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거든요?”

“그러게. 이쪽 사다리로 올라가서 바로 차에 타 있어.”


그다지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끊는 서정의 목소리.

그 말을 들은 진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뻗어 몇 걸음 뒤에 있는 사다리를 가리켰다.


“삼촌은 뭐 하게?”

“따라올 생각도 못 하게 선물이라도 준비해 줘야지.”


각성자 중에서 강한 편이라는 말은 못 해도, 경험만큼은 풍부한 진오의 말이었기에 시온은 더 이상의 질문 없이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후···.”

“좀 무리였나?”

“오랜만에 뛰어서 그래. 저분은 언제 오시는 거야?”

“올가미나 덫 설치하고 올 것 같은데. 쫓아왔다가는 피 볼 거라는 경고를 남기는 거지.”


고작 몇 시간 전에도 탔었지만, 괜스레 더 반갑게 느껴지는 진오의 검은색 승용차.

시온은 조수석에, 서정은 뒷좌석에 각기 몸을 실었다.


“근데 왜 갑자기 나랑 같이 움직여준 거야? 마지막 판을 내가 이겼던 건가?”


시온은 아직도 마지막 판의 결과를 모르고 있었다.

계속해서 철벽을 치던 서정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이쪽에 협조해 준 이유도 당연히 알지 못했다.


“그 게임 결과는 상관없었지. 어차피 무승부였는데.”

“무승부였다고?”

“남은 카드 두 장 다 6이었어. 나한테도 확신이 필요했으니까 널 한번 떠본 것뿐이고.”

“참나···.”


서정에 따르면 마지막의 올인 베팅은 일종의 테스트.

그것도 모르고 깊은 고뇌에 빠졌었던 자신이 한심해져 헛웃음이 나온 시온이었다.


“그 정도로 내몰린 상황에서 따라 들어올 배짱이 있는가를 본 거지. 내 기준에 약간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넌 도박장 놈들이 끼어들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뭔가 시끄러워질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지. 누가 사장 측근 세 명을 털어버렸으니까.”


서정을 통해 방금 전 사건의 뒷이야기를 모두 전해 들은 시온이 고개를 끄덕일 때쯤, 작업이 끝났는지 진오가 운전석 문을 열고 차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출발할 건데, 박시온 너 얘한테 설명은 충분히 해 주고 끌고 온 거지?”

“아니, 거의 못했는데. 지금부터 해야지.”


진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차 시동을 걸었고, 할 말이 많은 시온의 설명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내가 지리산에서 이 사람 도울 때 일어난 일인데···.”


시온은 세상에서 가장 말이 많은 모 야구선수와 비슷하게 운을 띄웠고, 서정은 자세를 고쳐앉아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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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중재하는 한국인들 24.08.26 5 0 11쪽
14 관서의 로닌 24.08.25 8 1 12쪽
13 친절한 현지 가이드 24.08.24 8 0 11쪽
12 다음 목적지는 24.08.23 18 1 11쪽
11 유령 눈표범 24.08.22 24 1 11쪽
10 사냥꾼 잡는 사냥꾼 24.08.21 17 0 12쪽
9 악마 눈의 마코르 24.08.20 20 0 12쪽
8 히말라야행 유령선 24.08.19 25 0 12쪽
7 강해져야 한다 24.08.18 30 1 12쪽
» 안전한 도주로 24.08.17 31 1 11쪽
5 천재 도박사 24.08.16 34 2 11쪽
4 오소리의 행운 24.08.15 41 1 12쪽
3 시간을 쫓는 부엉이 +1 24.08.14 52 2 12쪽
2 근본 없지만 오리지널 +2 24.08.13 53 2 13쪽
1 새하얀 오소리 +2 24.08.12 70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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