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없는 드루이드는 희귀종을 찾는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공포조
작품등록일 :
2024.08.11 12:38
최근연재일 :
2024.08.26 16:40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437
추천수 :
14
글자수 :
78,605

작성
24.08.25 16:40
조회
8
추천
1
글자
12쪽

관서의 로닌

DUMMY

“휴···.”


다행히 네 사람은 늦지 않게 열차에 탑승했다.

오늘이 특이한 건지, 첫차가 원래 이런지는 몰라도 기대 이상으로 한산한 열차 안이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일본에서 실력 좀 있다고 하는 각성자들은 다 관리국 소속으로 있는 거야?”


속내는 몰라도 일단 겉으로는 친절한 가이드를 만났으니 궁금한 것을 다 해결하려는 시온이었다.


“우선 이름 알려진 사람들은 다 그렇다고 보면 돼. 웬만한 실력은 다 업어가는 게 우리나라 관리국이니까.”


미호는 시온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설명해주었다.

그 말대로라면 일본에서 각성자와 접촉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아, 예외가 하나 있긴 하다. 관리국을 나와서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라는데, 별명은 관서의 로닌.”

“로닌?”

“옛날 전국시대 때, 주인 없는 무사를 그렇게 불렀다나.”


관서의 로닌이라는 별명대로라면, 분명 오사카와 나라가 포함된 간사이 지방에서 활동할 터.

시온은 어쩌면 그 사람과 마주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람에 대해서 좀 알···.”

“그런데 나라에 가서 뭐부터 할 계획이야? 여기저기 명소가 많은데.”


시온은 그 로닌이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 더 캐묻고 싶었지만, 미호가 먼저 꺼낸 질문에 말이 가로막혔다.


“나라 공원 가보려고 했어. 사슴 돌아다닌다는 거기.”“아, 나도 그 공원 좋아해! 사슴들이 막 달려들 때도 있지만.”


서정이 미호의 질문에 대신 대답하면서 시온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슬쩍 찔렀다.

세 사람은 분명 여행을 왔다는 설정인데, 관리국과 각성자에 관한 이야기만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어색했다.


“근데 서정이는 표정에 변화가 없네? 피곤한 거야?”

“아니. 평생 이렇게 살아와서 그렇지, 멀쩡한 상태야.”


미호가 평상시의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서정에게 관심이 끌린 틈을 타, 시온은 뒤쪽 좌석에 앉아있던 진오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들은 관서의 로닌이라는 사람, 스마우그한테 연락해서 좀 알아봐 줘.”

“걔 지금 어딘가에서 자고 있을 텐데···.”


아까 봤던 스마우그의 상태를 고려하면 지금쯤 곤히 자고 있을 테니 전화를 거는 건 실례였고, 대신 문자를 보내는 진오였다.


“더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도 돼.”

“일본은 미퇴치 몬스터가 간간이 출몰한다고 들었는데, 대처는 어떻게 해?”

“너희 여행에 문제 생길까 봐 그러는 거면 걱정 안 해도 돼. 소문만큼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니까.”


서정이 자연스럽게 꺼낸 몬스터 이야기에 미호는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고, 시온은 작게 혀를 찼다.

몬스터와 교감할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은 운이 억세게 좋지 않은 이상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세 사람 다 왜 이렇게 안 즐거워 보이지?”

“켁.”


뜬금없는 미호의 말은 세 사람의 허를 찔렀다.

시온은 순간적으로 사레가 들려 연신 기침을 했다.


“아까 얘가 말했듯이 셋 다 일본이 처음이라 어제 내내 헤맸거든. 다들 의욕이 좀 꺾여 있네.”

“어쩐지. 오늘부터는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서정이 전혀 당황하지 않고 상황을 꾸며내서 다행이지, 의심받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다행히 미호는 한 발 더 들어오지 않은 채 분위기를 띄워주었다.


시온과 진오는 눈빛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있어 보이는 현지인 가이드와 같이 움직이는 동안에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것 같았다.


***


“···봄에 오면 훨씬 예쁜데, 늦가을이라 좀 그렇네.”


생각했던 것보다는 칙칙한 사슴 공원.

미호는 민망한지 머리를 긁적였지만, 사실 공원의 풍경 따위가 세 사람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사슴한테 뭐 주고 싶으면 노점에서 과자 팔거든?”

“오.”


미호가 근처의 노점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슴 중에 희귀종이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한 시온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미친···.”


과자를 손에 든 순간, 근처에 있는 사슴이란 사슴은 전부 모여드는 광경이 시온의 눈앞에 펼쳐졌다.

교감이고 뭐고 시도해볼 틈도 없이, 시온은 몰려드는 사슴들에게 이리저리 치이기 시작했다.


“야! 내 가방은 먹는 거 아니야!”

“저게 사슴 공원의 참맛이지.”


사슴들은 제대로 정신이 팔린 듯 시온을 둘러싸고 과자를 가져가려 했는데, 미호는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했는지 서정의 옆에서 킥킥대고만 있었다.


“이제 과자 없어! 없다고!”


과자를 전부 뺏긴 이후에도 몸 여기저기에 미친 듯이 부딪히는 사슴들을 겨우겨우 밀어낸 시온이었다.

아무래도 오리지널의 희귀종 기준에 부합하는 녀석은 없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래도 나름 드루이든데, 여기 놈들은 날 싫어하나.”

“일본 동물들은 근본 없다는 걸 알아보나 보지.”


시온은 흐트러진 옷을 손바닥으로 털며 투덜거렸다.

그 와중에 여행객 설정에 충실한 것인지, 진오는 과자를 씹어먹는 사슴을 휴대폰으로 찍어대고 있었다.


“아, 시온이는 드루이드였구나. 그런데 여기 사슴들이랑은 영 궁합이 안 맞나 보네?”


어느샌가 곁으로 다가온 미호가 사슴 한 마리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시온과 진오의 대화를 통해 시온의 직업을 눈치챈 듯했다.


“어. 여행 온 김에 나랑 맞는 일본 동물이 있나 보려 했더니, 쉽지 않겠어.”

“음, 동물들이 좋아하게 생겼는데.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널 원하는 동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잘 찾아봐.”


시온은 대충 얼버무렸고, 미호는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공원 안쪽으로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미호. 넌 왜 온종일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 거야?”


계속 생각하고 있었지만, 태도가 상식적이지는 않았다.

미호의 말에서 이질감을 느낀 시온은 그 뒤통수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 나 한국 좋아한다고.”

“다른 나라 각성자들인데,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 해?”

“음···. 그런 생각은 안 드는데.”


미호는 시온의 돌발적인 질문에도 태연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진오가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냐는 듯 얼굴을 찌푸렸고, 서정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진짜로 순수하게 궁금해서 묻는 건데, 혹시 아까 말한 관서의 로닌이 너인 건 아니지?”

“말도 안 되는 소리. 난 그런 느낌은 질색이거든?”

“뭐, 그러면 다행이고. 계속 움직이자.”


계속 궁금했던 것에 대한 답을 들었는데도 시온의 머릿속은 점점 꼬여갔다.

아직은 미호의 정체와 의중을 포함해,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


사슴 공원 이후로도 몇 군데 장소를 돌아다녀 봤지만, 해가 넘어갈 때까지도 딱히 수확은 없었다.


“아직 비수기라 좋은 호텔도 자리 있을 텐데.”

“호텔은 어딜 가나 똑같잖아. 가격도 가격이고.”

“뭐, 그렇긴 하죠.”


일행은 고급 호텔 대신 도심 외곽에 있는 작은 숙소로 향하는 중이었다.

미호는 선택이 의아한 듯 물었지만, 계속 인파가 많은 곳에 머무르는 것도 불안했던 진오가 애써 둘러댔다.


시온은 가장 뒤처져 걸으며 오늘 보고 들은 일들의 키워드를 하나하나 되짚고 있었다.


코사카 미호, 관서의 로닌, 사슴 공원.


“흠···.”


동물과 접촉한 건 사슴 공원이 다였으니, 아무리 기대가 없었어도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일부터는 어떻게 움직일지 막막한 것도 사실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도착···.”

“잠깐. 저거 사람이야?”


그 순간 미호와 진오가 동시에 걸음을 멈추었다.

인적이 없는 길 끄트머리에 사람의 형체 하나가 귀신처럼 서 있었다.


시온은 그 형체를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작게 만들었지만, 그럴 필요 없었다.

저쪽에서 먼저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찾았다.”


놈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허리에 찬 검을 뽑더니, 문장 하나를 중얼거리고 그대로 미호에게 달려들었다.


“으앗!”

“이게 무슨···!”


몇 걸음을 앞장서 걷고 있던 미호는 뒤로 공중제비를 돌면서 칼날을 피했고, 진오와 서정도 뒷걸음질했다.


여자치고는 큰 키에 기다란 은발 생머리.

느낌 있는 얼굴의 오른쪽 눈을 가로지르는 흉터까지.


습격자의 외모를 그대로 시온의 눈에 담겼다.

딱 봐도 보통은 아닌 것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와라, 눈표범.”


[‘유령 눈표범’과 교감합니다.]

[민첩성 수치가 증가합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시온이 곧바로 유령 눈표범과 교감해 능력을 불러왔고, 진오도 가방 지퍼를 열어 언제든지 엽총을 집을 수 있게끔 했다.


“외부인이면 괜히 끼어들어서 피 보지 말고 빠져.”


습격자는 나름의 응전 태세를 갖춘 둘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로 다시 미호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싸움은 정말 하기 싫었는데···!”


미호가 손에서 하늘색의 불꽃 두 덩이를 만들어 던졌고, 습격자는 검을 휘둘러 불덩이를 그대로 베어냈다.

그 움직임에 기다란 하얀 머리가 춤추듯이 휘날렸다.


“저쪽은 눈 감고 봐도 검을 쓰는 전사고, 이쪽은 불꽃 계열의 마법사인가?”


두 사람의 싸움을 본 서정이 중얼거렸다.

미호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아직 아리송했지만, 적어도 습격자의 직업은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제 어떡할 생각이야. 빨리 둘 다 의견 말해봐.”

“얘만 찬성하면 그냥 저기가 말한 대로 빠져주고 싶은데··· 안 그럴 것 같은데요.”


진오는 서정과 시온에게 의견을 물었다.

어차피 셋과는 관련 없는 일 같으니 빠지는 판단이 이상적이었지만, 서정도 눈치챘듯이 또 뭔가를 저지를 것 같은 시온이었다.


“이거 제대로 느낌이 왔어. 저 둘 중 하나가 내가 본 미래에 등장한 실루엣일 거야.”


새 동료는 긴 생머리의 여자라는 것이 시온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단서.

그 단서에 부합하는 인물이 둘이나 등장한 만큼,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저 둘이 뭐 하는 애들인지도 모르면서···. 어쩔 건데.”

“일단 한 명이 죽는 일은 없게 해야지.”


이 와중에도 쉴 틈 없이 움직이고 있는 두 사람의 구도를 봤을 때, 미호가 현저하게 밀리는 양상이었다.

시온은 그 싸움에 끼어들어 간을 볼 생각이었다.


“맨날 본인 마음대로 움직일 거면 왜 내가 필요하다고 도박장에서 끄집어낸 거지?”


서정이 고개를 저으며 한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진눈깨비 미채」.”


[투명화 능력이 활성화됩니다.]


시온은 정신을 집중하여 기술을 사용했다.

순간 허공에 약간의 한기가 돌더니, 시온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투명화 상태가 된 시온은 곧장 두 사람에게로 달렸다.

습격자의 검이 미호를 베기 일보 직전이었고, 시온은 그대로 미호의 옷을 잡고 뒤로 당겼다.


“···방해하지 마, 꽁지머리!”


마무리에 실패하자 주위를 둘러본 습격자는 시온이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했는지 소리를 질렀다.

반대로 미호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는데,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는 눈치였다.


“지금 전화 받을 상황은 아니긴 한데.”


언제든지 시온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던 찰나, 진오의 휴대폰이 울렸다.

진오는 시선을 움직이지 않은 채로 어깨와 뺨 사이에 휴대폰을 끼웠고, 당연히 발신자는 스마우그였다.


“아···. 쟤가 관서의 로닌이었구나?”


진오는 생머리 여자 둘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마우그의 말대로라면, 일을 벌여도 될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근본 없는 드루이드는 희귀종을 찾는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중재하는 한국인들 24.08.26 6 0 11쪽
» 관서의 로닌 24.08.25 9 1 12쪽
13 친절한 현지 가이드 24.08.24 8 0 11쪽
12 다음 목적지는 24.08.23 18 1 11쪽
11 유령 눈표범 24.08.22 24 1 11쪽
10 사냥꾼 잡는 사냥꾼 24.08.21 17 0 12쪽
9 악마 눈의 마코르 24.08.20 20 0 12쪽
8 히말라야행 유령선 24.08.19 25 0 12쪽
7 강해져야 한다 24.08.18 30 1 12쪽
6 안전한 도주로 24.08.17 31 1 11쪽
5 천재 도박사 24.08.16 34 2 11쪽
4 오소리의 행운 24.08.15 41 1 12쪽
3 시간을 쫓는 부엉이 +1 24.08.14 52 2 12쪽
2 근본 없지만 오리지널 +2 24.08.13 53 2 13쪽
1 새하얀 오소리 +2 24.08.12 70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