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 작군. "
' 썅! '
" 추우니까! "
쾅!
문을 거칠게 닫았다.
테이블을 마주 보고 나와 카리아가 앉았다.
카리아의 왼쪽에 제루나스가 앉아 있다.
뭔가 굉장히 거슬렸지만, 옷을 입고 나오니 이미 저 새끼가 차지하고 있는 터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카리아의 오른쪽에 앉는 것도 뭔가 이상하고 해서, 그냥 맞은편에 앉았다.
카리아가 입을 열었다.
" 제루나스, 봤지? "
" 예. 카리아님. 아주 잘 봤습니다. "
놈이 나를 슬쩍보며 입가에 아주 실낱같은 미소를 지어보인다.
' 저 개새끼가? '
아깐 정말 춥기도하고, 위축되서 그런건데 저게 자꾸 그걸로 심기를 긁어댄다.
" 어떻게 생각해? "
다시 카리아의 물음이 나왔다.
놈의 시선이 또 내 다리 사이에 살짝 머물렀다.
쾅!
내가 거칠게 책상을 내려쳤다.
" 아깐 분명히 내가 추워서 그랬다고 했지! "
카리아의 시선이 내게 머물렀다.
곧, 그녀의 고운 눈매가 와락 찌푸려졌다.
" 쿡쿡쿡.."
제루나스 새끼가 아주 듣기 거북한 웃음을 흘려내고 있었다.
' 어? 이게 아닌가? '
카리아가 손을 살짝 들어 검지 손가락을 펴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그녀의 입술 앞에 세로로 세워보였다.
카리아 특유의 박력이 느껴져 온다.
입 닥치라는 제스쳐였다.
제루나스가 웃음을 지우고 카리아에게 말했다.
" 갉아내는 이빨이 맞습니까? "
" 그래. "
' ..지랄이 얘기였어? ..씨발..아, 쪽팔려.. '
아무리 내색하지 않으려고 해도, 귓가가 뜨거워진다.
" 저 자가 해낸거군요. 그래서, 카리아님께서 보호하려고 하신 것이겠군요. 맞습니까? "
" 그래. "
" 부족장님께는..아마 비밀을 지키셔야 하겠군요. "
" 맞아. "
" 또..제 것이 필요하시겠군요. "
" 그것도 맞아. 네 것까지 있다면 확률은 더 높아질테니까. "
" 처음부터 의도하신 것입니까? "
" 아니, 나도 성공할 줄은 몰랐어. 그리고, 저렇게 만들 줄도 몰랐지. "
둘 만의 대화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아니, 내가 아니라 내 어깨 위의 지랄이에게.
정작 두 사람의 시선을 받은 지랄이는 내 어깨 위에 웅크리고 태연하게 자고 있었다.
' 빌어먹을..주먹보다 작은 청솔모한테도 밀리는 존재감이냐? 내가? '
배알이 더 꼴린다.
" 조건이 있습니다. "
" 말해. "
" 제 소달리스의 지위를 인정 해주십시요. "
" 그러지. "
너무나 간단한 대답.
쾅!
다시 내가 책상을 내려쳤다.
카리아가 다시 잔뜩 이마를 찌푸리고 나를 돌아보았다.
' 이런 씨..'
안다.
난 카리아와 그저 돈 때문에 계약했고, 그저 돈만 받으면 그 뿐.
카리아 역시 나란 존재를 곁에두는 이유는 지랄이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일 뿐이다.
잘 안다.
잘 아는데..
이 뭔가 더러운 기분은..
이 차오르는 배신감은..
나도 잘 모르겠다.
억지로 뽀뽀 한 번 했다고, 카리아랑 잘 될 것이라는 나만의 상상이라도 한 것일까?
미친 놈..
정말 멍청하고 속없는 놈이다.
나란 놈은..
그런데 생각과 달리 나는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 야! 카리아! 나 안해. 너랑 더 이상 거래고 지랄이고 안한다고. "
" ..."
카리아는 그저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눈빛이 아까와 다름없다.
한심하고, 어처구니 없이 바라보는 눈빛.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다.
이유도 잘 모르겠다.
' 뭐! 어쩌라고! '
품 속에 애지중지 넣어둔 마정석을 꺼내 들었다.
그것을 소리나게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카리아는 조금도 시선을 떼지않고 내 눈만 바라보고 있었다.
성질이 폭발할 것 같다.
기분같아서는 쌍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벌떡 일어나 그대로 몸을 돌렸다.
잡을 생각도 안한다.
' 빌어먹을! '
객실의 문을 열고,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
" 쿡쿡쿡.."
" 너도 그만하지? "
" 아, 죄송합니다. 카리아님. "
" 데려와. "
" 안됩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으니까요. "
" 나 지금 더 이상 네 장난을 받아줄 기분이 아니야. "
카리아의 목소리가 더 차분하게 가라 앉았다.
" 저를 보냈으니, 잠시간은 아무 위협이 없을 것입니다. 보아하니 뚫어내는 이빨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 같기도 하더군요.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
" ...제루나스. "
" 제가 왜 소달리스의 지위를 유지해달라고 했는지 혹시 아십니까? "
" ..."
" 역시. 카리아님은 변함 없으시군요. 저는 '열려버린 피토스'를 넘긴 것을 비밀로 해달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
" ..."
" 카리아님의 반려자의 지위를 유지해달라는 뜻이었죠. 그래서, 저 자가 저렇게 반응한 것이고요.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
" 계속 헛소리 할 거면 내 눈 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는데? "
" 아까 제가 드린 모든 말이 제 진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카리아님. "
" ..네, 귀저기를 내가 갈았어. 제루나스. 넌, 내게 그저 꼬맹일 뿐이야. "
" 저 인간은요? "
" ..."
쾅!
제루나스가 테이블을 후려쳤다.
" 빌어먹을! 4876번째 차인 것과 동시에 대답을 들어버렸군요. "
" 제루나스..내가 분명히 더 이상의 장난은.."
" 아까 카리아님께서 저를 막는데 조금이라도 주저하셨다면 저는 진심으로 저 인간을 죽였을겁니다.. "
" ..."
" 저 인간은 카리아님의 카스티나스의 낙인을 가져갔으니까요. 이건 제 진심입니다."
" ..."
늘 무덤덤하던 카리아의 얼굴에 아주 미미하게 붉은 기운이 돌았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너무 순간적이라 착각이라 오해할 정도였다.
" 그만. "
그것을 보던 제루나스가 눈을 지그시 감고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리고, 곧 카리아를 향해 무겁게 입을 열었다.
"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부족장님은 진심으로 움직이고 계십니다. "
" 나무의 씨앗만 얻는다면 모두 뒤집을 수 있어. "
" 아니요. 카리아님은 부족장님의 야망을 모르고 계십니다. 그분은...이미, 아렐리아를 잊으셨습니다."
" 그건..곧 알 수 있겠지. "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
" 딜리겐스님께 소식을 전했어. "
" ..설마, 그렇게까지 부족장님을 생각하고 계실 줄은 몰랐군요. "
" 혹시나 해서였지만, 널 내게 보낸 것만 봐도.. 지금은 잘 했다는 생각이 드네.."
" ..!?."
순간 찾아온 정적.
카리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이 부족장을 잘 아는 만큼, 부족장 테나키스 또한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 제루나스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지만, 이미 카리아는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녀의 뒤로 제루나스의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 위험합니다! 카리아님! "
**
※※ ※※ ※※
-스킬명: 컨슘(Consume) -강화형
-등급: 유니크(U)
- 종류: 액티브(Aactive)
- 소모마력: 16
-효과: 친화력을 소모하여 테이밍 대상으로 부터 생명력을 흡수합니다.
- 설명: ▶ 테이밍 대상의 친화력을 소모시켜 대상의 생명력을 흡수합니다. 흡수한 생명력은 능력치로 변환 적용되며, 변환 정도는 친화력 정도와 대상의 능력치에 기인하여 결정됩니다.
《 친화력 100% 테이밍 완료 대상 기준, 변환율 60%. 친화력 100% 미만의 경우 변환율 10%에서, 친화력 10%마다 단계적으로 0.5%씩 변환율 추가 하락. 》
▶ 컨슘 스킬이 적용되는 순간, 대상과의 친화력은 100 감소되며, 대상은 흡수된 생명력 만큼 생명력이 감소하게 됩니다.
※※ ※※ ※※
'컨슘' 스킬은 예전보다 효과가 좋아진 것 말고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다음은, 테레브로덴테스 마스터의 칭호를 획득하며 얻게된 새로운 스킬인 '신속기동'.
※※ ※※ ※※
-스킬명: 테레브로덴테스의 신속기동(Swiftness Maneuvering)
-등급: 레전드(L)
- 종류: 액티브(Aactive)
- 소모마력: 46
- 지속시간: 3초
-효과: 이동속도 대폭 증가.
- 설명: ▶ 테레브로테넨스의 이동속도를 재현 해낼 수 있습니다.
▶ 능력치(민첩, 힘, 체력)에 기반하여 지속시간이 결정됩니다.
※※ ※※ ※※
스페셜 등급에서 레전드 등급으로 상향되어 기대를 잔뜩했었는데..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단순한 효과에 그저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이건 뭐 그냥 도망 갈 때나 도움이 될 법 했다.
하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지랄이처럼 막 이빨로 물어대는 스킬이 나왔다면 그것도 좀 골치 아프니..
" 그나저나..휴.."
눈 앞에 떠올라 있는 화면을 사라지게 만들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현재 있는 곳은 객실 복도.
호기롭게 박차고 나오긴 했지만, 당장 지금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처음 단단히 화가나서 객실을 뛰쳐나와 엘레베이터를 잡았더니, 이게 무슨..
카드키를 찍어야 버튼이 눌러졌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내릴 수 밖에 없었고, 그때부터 복도를 서성일 뿐이었다.
대책이 없고, 갈 곳이 없자, 머리 속을 가득 채웠던 화도 금방 가라앉았다.
그제야 대책도 없이 밖에 돌아다니다가는 은빛부족에서 보낸 칼잡이한테 언제 어디에서 쓱싹될 지 모른다는 것을 떠올렸고 마음은 더 위축되었다.
다시 객실로 돌아가기는 뭐 하고..
' 에효..'
-띵.
한 스무번쯤 복도를 그저 왔다가갔 서성거렸을까?
문득 엘레베이터 소리와 함께 커플 둘이 내렸다.
하필이면 객실이 이쪽 편에 있는지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행동하며 그들을 지나쳐 가려고했다.
괜히 서성거리는 걸 보이면 오해를 살 수도 있을테니까.
보니 굳이 내가 신경 쓸 필요도 없어보인다.
이미 둘은 그냥 껴안고 부비고, 아주 난리도 아니라서 나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남자가 귓속말로 뭐라 서로 속삭이니 여자가 까르륵 대며 남자의 어깨를 두드린다.
왠지 굉장히 거슬렸다.
' 에이씨..'
살짝 거리를 둬서 더 벽쪽으로 붙었다.
커플은 복도 중심에서 걸어가고, 나는 벽 한쪽에 잔뜩 붙어 걸었다.
여인의 어깨와 내 어깨가 막 스쳐 지나갈 즈음.
벌컥.
정면의 1090호 로얄 스위트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리고 카리아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거리는 적어도 20미터 이상일 듯 한데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눈이 마주칠 수 있는지 나조차 놀랐다.
' 아..이런..씨..'
처음 든 생각은 들켰다는 것과 기껏 밖으로 뛰쳐나가놓고 복도나 서성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다음은..
' 어? '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1090호 양쪽의 객실의 문이 벌컥 열리는 것이 보였다.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 이상하다! '
동시에 객실문이 열릴 수가 있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될까?
습격자!
내가 미끼였던가?!
더는 앞뒤 재지않고 바로 스킬을 발동했다.
-신속기동!
순간적으로 세상이 느리게 흘러간다.
엄청난 압박감에 몸이 쥐어짜여지는 듯하다.
' 크윽..'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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