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을 꼬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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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카츠
작품등록일 :
2024.08.1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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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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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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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DUMMY

눈을 떴다.


낯선 곳이었다.



벌떡 일어나 주위를 훑었다.


40평은 되는 듯한 넓은 창고 같았다.


내가 앉아 있는 소파, 그리고 한쪽에 냉장고 하나, 반대편에 작은 옷장같은 가구가 전부였다.


한쪽에 있는 문은 아마 화장실인 듯 싶었고.



출구로 보이는 곳으로 달려갔다.


한눈에 봐도 튼튼해 보이는 철문이 굳건하게 잠겨져 있었다.



" 이봐요! 누구 없어요! 여기 사람이 갇혔어요! "



철문을 한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질러봐도 소용이 없었다.


철문은 도대체 뭘로 만들어졌는지 발로차고 두드려도 흠집하나 나지 않았다.



슬슬 지쳐갔다.


" 빌어먹을.."



한 밤중에 칼로 위협을 받더니 이제는 납치에 감금이었다.


철문에 기대 앉아 잠시 멍하니 앉았다.


문득 시선이 냉장고에 닿았다.



우습게도 이 와중에 목이 말라왔다.


비척거리며 일어나 냉장고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에는 생수, 그리고 샌드위치가 잔뜩 들어있었다.



' 뭐, 굶어 죽이겠다는 것은 아닌듯 싶은데..'



이번에는 옷장 안을 살폈다.


하얀색 티셔츠, 반바지가 여러장 놓여 있었다.


살펴보니 모두 같은 사이즈로 크기가 티셔츠도 바지도, 2XL 정도로 엄청 컸다.


티셔츠야 박스티 처럼 입는다 치더라도, 반바지는 허리가 맞지 않아서 입기도 어려울 듯 했다.



" 씨발, 속옷은? "



아무리 뒤져도 속옷은 나오지 않았다.


지금 입고 있는 한장으로 버티든지 아니면 노팬티로 있으라는 건데..


바지 사이즈가 저 모양이니..



' 챙겨놓으려면 좀 배려있게 해놓던가..'



투덜거리며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살폈다.


심플하게 변기, 샤워부스, 세면대가 다였고, 역시 창문도 없었다.



" 하..뭐, 올드보이야? 만두 대신 샌드위치만 처먹고? "



한 숨이 절로 나왔다.


...




철컹.


대략 4일 만에 바깥에서 처음 기척이 들려왔다.


소리를 들어보니 이 철문 밖에 또 뭔 철창이라도 있는 모양.



잠시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컥.



누어있던 소파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실내에 불이 켜졌다.



예상대로 카리아였다.


눈이 마주쳤고, 그녀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자연스럽게 눈길에 따라 내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어깨가 축 늘어진 박스티를 원피스처럼 있고, 그 안에는 팬티 한장.


속옷이 한장 뿐이니, 매일 빨아 말려입기 어려워서 하루는 팬티만, 하루는 노팬티로 바지만 걸쳐야했다.



그녀의 눈에는 훤한 맨다리를 드러내고 티셔츠 한장을 걸치고 있으니 보기 민망했던 것 같지만..


' 뭐, 어쩌라고. 이렇게 만들어 놓은게 누군데? '



사일 정도 시간동안 할게 없다보니 이런저런 상념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당연히 이렇게 갇힌 상황에 대해 무엇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지금 이 상황이 어쩌면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생각에도 도달했다.


자신조차 모르는 곳에 있으니, 또 다른 은빛 달부족의 칼잡이에게 위협을 받을 걱정은 없을테니.


그리고, 이곳에 가둔 것으로 의심되는 카리아의 경우, 준비해놓은 식량이나 옷 등을 봤을 때는 악의적인 감금이라고 보기는 조금 어려운 것 같기도 했다.


막말로 카리아가 내게 딱히 얻어낼 것도 없을 것 같았고.



물론, 크게 고맙거나 반갑지는 않았다.


뭐가 어쨋거나 내 의지에 따라 갇힌 것은 아니었으니까.



" 보기 뭐하면 속옷이라도 준비해놓던가? 바지나 사이즈에 맞춰 준비해놓던가..뭐? 어쩌라고. "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살짝 쪽팔리긴 했지만, 정말 말처럼 어쩌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제야 불쾌감이 그득하던 시선이 거둬졌다.



" 당분간 이곳에 있어야 될 거다. "



카리아가 담담히 말했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 암담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 언제까지? 그 당분간이 얼마나 인데? "


" 죽고 싶다면 당장 나가도 좋아. 나 역시 너를 애써 잡아두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그저 알라이의 마지막에 대한 보답일 뿐이니. "



" 씨발.."



카리아는 그 말만 마치고 몸을 돌려 나가려고 했다.



" 야! "


카리아가 몸을 돌려 쳐다보았다.



" 일단 속옷 여러장. 옷 사이즈는 M, 상의는 L. 그리고, 샌드위치 말고 차라리 햄버거. 물 말고도 콜라도 필요해. 그리고, 비누만 쓰니까 머리카락이 뻣뻣해지더라. 샴푸도. 아, 칫솔도 없더라. 손가락으로 하는게 얼마나 찝찝한지 아냐? "


" ..."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한동안 쳐다본다.


뭐?


갇혀있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필요한 건 필요하니까 요구하는데 뭐?



카리아가 몸을 돌려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4일만에 첫 외부공기가 잠깐 들어왔다가 금방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한숨을 푹 내쉬고 소파에 퍼질러 앉았다.


답답했다.



" 아! 비디오 게임기라도 가져다 달라고 할걸..시계도.."



하루종일 누워서 천장만 보고 있으니 미칠 것 같았다.


그리고 하루가 가는 것을 배고픈 것으로만 알 수 밖에 없으니, 그 또한 답답했다.


다음 필요한 것들을 떠올리다보니 서서히 눈이 감겨왔다.


그렇게 또 하루가 허무히 사라졌다.



다음 날.



철컥.


다시 철문이 열리는 소리에 설핏 잠에서 깨어났다.


부스스 몸을 일으키는데 실내에 불이 켜졌다.


눈이 부셨다.



" 야! 넌 예의도 없냐? 물어보고 불을 켜든지해야지..어? 누구세요? "



처음보는 여자였다.


그것도 상당한 미인.


순간, 내 차림이 머리를 퍼뜩 스쳐갔다.



' 이런 씨..'



훤희 드러낸 다리를 어떻게 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보니 엉거주춤 자세가 이상해졌다.



" 아, 죄송해요. 너무 어두워서 미처 그건 생각을 못했네요. 다음부턴 조심하겠습니다. "


진짜로 미안해하며 고개를 숙이는데 오히려 내가 미안해졌다.


" 아..뭐, 그.. 아닙니다. "


" 저는 한이서라고 해요. 언니가 보내서 왔어요."



' 언니? '


여기를 아는 것은 카리아 뿐이니, 언니라 부르는 것은 카리아 일 텐데.


호칭을 보니 보통 친분은 아닌 것 같아보였다.



근데 문제는 카리아가 엘프이라는 것이고, 상대는 엘프 같지는 않아보인다는 것.


뭐, 엘프라고 크게 티가 나는 것은 아니었으니 또 모르는 일이기는 했지만..



" 저..저는 김우현이라고 합니다. "



그렇게 어색한 통성명이 끝나자, 한이서가 생각이라도 난 듯 손바닥을 치더니 말했다.



" 아, 필요하신것들을 챙겨왔거든요. 잠시만요. "



그런더니 잠깐 문을 열고는 문 앞에 잔뜩 쌓인 것들을 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보기에는 여리여리해 보이는데, 한 발로 문을 척 받치고는 척척 들어 옮겨다 안으로 가져왔다.


그렇게 물건들을 다 옮기고는 상자들을 열어보였다.



" 이건 칫솔, 이건 샴푸고요. 이건 속옷. 사이즈는 M.. "


" 저..잠..잠깐만요. "



한이서의 손에 들린 팬티 박스를 낚아채며 말했다.



" 아, 일단 고맙습니다. 정리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


" 어? 안되는데? 그거 안맞을 수도 있잖아요. 한 번 입어보시고, 혹시라도 크면 제가 바꿔야 하는데?? "



' 뭐야? 그럼 여기서 뭐 입어보라는 소리야? 뭐야? 그리고 뭐 크면?..'



황당해하는 눈빛을 읽었는지 한이서가 씩 웃으며 말했다.



" 아~, 괜찮아요. 부끄러우시면 저기 화장실 안에서 입고 오셔도 되는데? "



그 씩 웃어보이는 미소에 약간 기분이 상했다.


아니, 사실 아주 많이.



뭔가 무시당하는 듯한.. 남자의 자존심을 깎아내는 듯한..


자격지심 같은 소리를 들을 법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굉장히 기분이 상하는 듯한 이 느낌.



' 확, 벗어버려? 사이즈가 M이면 그것도 M이라는 어, 그런 편견은 어? 내가 어?! '




...




" ...잘 맞습니다. "



화장실에서 나오며 내가 말했다.


사실 살짝 컸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작아지고 고분고분 해진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 그래요? 이상하네. 속옷가게 언니가 M치고는 큰 편이라고 했는데..뭐, 맞으면 잘 됐네요. "


" 예.."



살짝 찾아오는 안도감이 더 자존심에 흠집을 내는 것 같았다.


한이서는 냉장고 안에 이미 있던 거는 꺼내서 다른 곳에 옮겨 담고, 새로운 생수와 샌드위치를 넣고 있었다.



' 햄버거랑 콜라 달라고 했었는데..'


속으로 궁시렁 거리고 있는데, 한이서가 돌아보며 말했다.



" 아, 저기 샴푸랑 칫솔 좀 욕실로 옮겨 줄래요? "


" 아, 예.."



" 혹시 탈모 있어요? "


" 예? "



' 뭐? 스트레스 때문에 좀 빠졌나? 아닌데? '


나름 아직 풍성한 모발로 한 번도 염려해본 적은 없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했던 건데..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살짝 부족하긴 하셨는데, 그게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스트레스성으로 그랬다고 하셨었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내가 아니라 내 자식 놈이 걱정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 아, 그거 그냥 샴푸라서요. 필요하시면 탈모용으로 바꿔야 하나 싶어서 물어봤어요. "


" ..."



저 여자.


은근 기분 나쁘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 여자였다.


역시 초록은 동색이라더니.


카리아도 매체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영 별로이더니, 그 동생이라는 얘도 영..



" 없습니다! "


" 다행이네요. 요즘 탈모가 은근히 많더라고요. 탈모라고 굳이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게 잘못도 아니고, 유전이고 스트레스 때문인데.."



저 화제가 싫었다.


난 아니라고 하면 그게 또 요상해지고, 듣고 있으면 왠지 기분이 나빠지고.



" 저, 혹시 저기 다른 박스들은 뭐죠? "



나름 화제를 돌리고자 한 말이었다.



" 아? 저거요? 휴지랑 성인잡지랑 만화책 같은 건데. 어떻게 알았어요? 아, 필요했구나? "



한이서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웃어 보였다.



요..요즘 누가 이런 걸 본다고?


아주 오래 전에 졸업했거든?



그런데 저 미소.


다 안다는 저 미소도 역시나 굉장히 불쾌했다.


아주..상당히.. 기분 나쁜 여자였다.



**



철컥.


바깥에서 기척이 들렸다.



" 오..왔다! "



이곳에 들어온지 벌써 한달은 된 것 같았다.


그 사이 내 유일한 낙은 한이서가 챙겨오는 만화책.


약간 일본 성년코믹 위주라는 것만 빼면 시간을 보내는데 그것 만한 것이 없었다.


게다가 한이서는 성년코믹물의 덕후였다.


가져온 대다수가 그녀가 섭렵한 것 중 고르고 고른 것들을 가져다 준 거라서, 대화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흘렀고, 그녀와 키득거리며 대화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갇힌 삶의 유일한 재미랄까.


그리고 의외로 소탈하고, 솔직 담백한 그녀와의 대화가 익숙해지자 그녀만큼 편한 상대도 없었다.




냉큼 달려가 문 앞에 섰다.


문이 열렸다.



" 이서씨, 이번꺼는 꽤 괜찮더라. 수위도 장난 아니게 높... 어? "



문 앞에는 카리아가 서 있었다.


그녀의 눈이 내 손에 들린 만화책에 꽂혀 있었다.



' 아..이런 씨발..'



- 발기 대책부 우츠노미야 사키의 일상.




- 테이밍 대상이 당신에게 혐오감을 품습니다.


- 테이밍 대상의 친화도가 10 감소 합니다.



' 하..이런 씹..'



겨우 5 올려 놨더니, 다시 원점이었다.



" 네..네가 왜 왔지? 이서씨는? "



당황스러움에 만화책을 서둘러 감추며 물었다.



- 테이밍 대상의 친화도가 10 감소 합니다.


- 칭호 효과 '은빛 달의 이끌림'이 적용됩니다. 친화도 10으로 고정됩니다.



- 테이밍 진행 중.




" ..."



사실 친화도와 카리아의 테이밍 미션은 이미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아쉽지도 않았다.


다만.


좀..쪽 팔렸다.



그렇게 잠깐의 어색한 정적이 지나고.



카리아가 뭔가를 내밀었다.


주춤거리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처음에는 무슨 보석의 원석인 줄 았았는데, 받고보니 그것에서 온기가 느껴져왔다.


뭔가의 알인 모양이었다.



" 이..이게 뭐지? "



카리아는 대답도 없이 몸을 획 돌려버렸다.


찬바람이 쌩하게 불어왔다.


알림음에 혐오 어쩌고 뜨더니, 태도에서 냉기가 폴폴 피어오른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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