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들이 몰려오는 치유객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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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씨
작품등록일 :
2024.08.20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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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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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잔 마련의 꿈

DUMMY



드디어.


드디어!


“으으아아아아아아악!!”


나의 꿈, 나의 모든 것.


드디어 객잔을 샀다!


아무도 없는 허름한 객잔 앞을 방방 뛰고, 물구나무서서도 보고, 뱅글뱅글 돌아보기도 했지만 좀처럼 이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급기야, 심장이 두근거리다가 터질 것 같은 이 느낌에 라마즈 호흡법을 시작했다.


“습습 후우, 습습 후우···.”


진정하자, 진정.


내가 얼마나 개고생했는데 여기서 심장마비로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잖아.


“크흐흐흐, 크흐흐.”


하지만 나도 모르게 모 만화책의 광대 악당처럼 입꼬리가 쭈우욱 올라갔다. 20억짜리 아파트에 청약이 되어도 이만큼 기쁘지는 않을 거다.


[소요객잔(逍遙客棧)]


정문에 붙은 고색창연하고 낡은 현판을 보자마자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이 객잔을 사기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를 겪었던가?


시작부터 그러했다.


자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의 내 자취방에 있었는데, 눈을 뜨니 빨가벗고 대로에 뚝 떨어져 있었다.


그것도 마차에 치이기 딱 10초 전에 눈을 떴다니까? 얼마나 위험한 상태였는지 대충 짐작이 갈 거다.


하지만 나의 적절한 판단과 놀라운 지혜로 그 위기를 벗어났다. 치부만 손으로 가린 채 벌떡 일어나 도망가기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양손으로 가리기에는 내 치부가 너무나도 컸다는 위기가 있었으니까. 그보다 더 빨리 달린다는 비책으로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비책으로 살아남기에는 이 세계가 너무나도 비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세계는 내공으로 물 위를 걸어 다니는 오리엔탈 지저스, 검 하나로 강을 가르는 얼티메이트 모세가 다니는 낭만의 무협 세계였으니까.


그런 곳에 컴활 2급과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가진 내가 떨어져서 뭘 한단 말인가? 흙바닥에다가 팡숀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인데.


결국 믿을 것은 자격증 따위가 아니라 내 몸이었다.


‘무슨 놈의 거지가 왜 이리 덩치가 커?’

‘힘세고 강한 아침, 대협! 당신의 한 푼, 나의 즐거움이 된다!’

‘무슨 실혼인처럼 말하는구만.’


개방과는 단 한 톨만큼의 인연조차 없는 거지로 푼돈을 벌며 말을 배웠고.


‘어이, 황 씨. 글자 그만 배우고 수레에 표물이나 얹어.’

‘예, 표사님!’


표사와 함께 중원을 떠돌아다니는 쟁자수도 했으며.


‘황가 놈아, 어디 있느냐? 가서 호광에 있는 내 조카에게 서신을 전달해주고 오너라.’

‘예? 아니, 여긴 하남인데 호광까지요?’

‘하라면 할 것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가뜩이나 덩치도 커서 밥값도 엄청 나가는데!’

‘대체 거기서 덩치가 왜···?’


서신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하인 일도 해 보고.


‘아저씨! 밭 그만 메시래요!’

‘왜?’

‘새참 너무 많이 먹는다고 저녁까지만 일하래요.’

‘야! 밥심으로 일하는 거지, 뭐 때문에 일하는데!’


산골 마을에서 열심히 쟁기질하며 농사일도 도와주기도 했다.


그야말로 억까의 연속 같은 삶이었다.


얼마나? 장장 오 년 동안.


좋은 사람도 많았지만, 못난 인간들도 수두룩했다. 말 못 하고 덩치 크고 험악하게 생겼다고 못난 놈들이 얼마나 멸시하는지.


‘돈을 모아서 객잔을 산다고? 그게 되겠는가?’

‘사면 말해라. 한 백 년쯤 걸리겠지만. 크하하하!’

‘얼굴만 험악한 줄 알았는데, 생각도 참 험악하군.’


생각해 보니까 마지막은 그냥 욕 아니냐? 하남 개봉에서 장씨 푸줏간을 하는 장칠 그놈이 했던 말인데, 나중에 성공하면 그놈 죽빵부터 때리러 가야겠다.


어쨌든, 그런 놈들이 내지르는 핍박을 견디면서 어떻게든 절약하고 절약해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리고 오늘.


나만의 객잔을 마련하겠다는 그 목표에 도달했다.


무와 협이 판치는 세계에 떨어졌으면 당연히 무공을 배워야지, 왜 하필 객잔을 운영하냐고?


나도 남자이니만큼, 장풍을 펑펑 쏘는 무림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했었다. 한창 점소이로 일할 때 은자를 턱턱 내고 다니는 일류 무사들을 보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무관을 다녔던 부잣집 도련님 말에 따르면 무림인은 빛 좋은 개살구나 다름없다고 하더라고.


‘무림인? 야, 나이 서른까지는 혼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겠지. 하지만 마흔 넘어가면 어디 불러줄 데도 없고, 부잣집 아들내미 호위무사나 전각을 지키는 별볼일없는 일만 시킨단 말이야.’

‘미래에 대한 대비가 하나도 안 되는 직업이다, 이 말입니까?’

‘당연히 그렇지! 그런 놈들만 보면 얼마나 불쌍한지··· 아, 손청 너 보고 한 말은 아냐.’

‘······예.’


참고로 손청은 부잣집 도련님의 호위무사였다. 나이도 딱 40대인 그 양반이 도련님의 말을 듣자마자 얼굴을 와락 구겼던 게 생각나네.


또, 내가 어찌어찌 무림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혈연, 지연, 학연, 흡연도 없는 21세기 한국인 아닌가. 내가 칼을 맞는다고 해서 누가 불쌍히 여겨줄 것 같지도 않고.


21세기 검은 머리 한국인이 이 혼란한 중원에서 평온하게 살 수 있는 미래는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아까도 말했듯이 작지도 크지도 않은 조용한 마을에서 작은 객잔 하나 운영하면서 소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 되었다.


주방장이 어디 출신이고 뭐 하는 사람인지 궁금한 경우는 별로 없잖아? 싸고 맛있게 팔면 그만이지.


특히 오 년 동안 이곳저곳 돌아다녔더니, 이제는 안주할 곳이 필요했다.


특히 내가 있는 이 신양현이라는 곳은 하남과 호광 사이에 있는 곳인데, 근방에 숭산, 무당산, 융중산이 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채식폭력배 소림사와 태극전사 무당파, 포브스 선정 무림맹 책사 최다 배출 가문 제갈세가가 바로 근방에 있단 소리다.


어중이떠중이 흑도 놈들은 안 올 것 같은 조용한 마을, 포기할 수가 없잖아?


“후우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오늘부로 필부(匹夫) 황정은 사라지고, 객잔 주인 황정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 생각과 함께 굳은 표정으로 객잔의 문을 벌컥 열었다.


덜컹!


찌이익, 찍찍!


“엄맴매!”


식겁했다. 무슨 놈의 쥐가 팔뚝만 하냐?


다행히 아무도 안 봤으니 괜찮겠지. 머쓱한 얼굴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객잔이 방치된 지 거의 십 년이 넘었다던데, 생각 외로 멀쩡했다.


먼지 쓸고, 거미줄 좀 치우고, 지붕에 구멍 뚫린 거 메우면 당장 장사해도 될 정도.


거기에, 객잔 바로 앞은 탁 트여 있어서 마을의 전경이 훤히 보이고 뒤에는 숲과 공터가 있어서 텃밭을 가꾸기에도 바람직한 곳이었다.


혹자는 물을 것이다.


고작 오 년 일해놓고서 이 객잔을 사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이게 다 이유가 있다.


‘소요객잔’은 사고 매물이거든.


중원식 공인중개사라 할 수 있는 거간꾼 양 씨와 대화했을 때로 돌아가 보자면.


‘근데 이 객잔은 왜 망한 겁니까?’

‘으, 으응?’

‘마을이랑 좀 멀리 떨어져 있긴 해도, 망할 이유가 안 보이는 곳인데? 풍경도 좋고, 위치도 좋잖습니까?’

‘음, 그게··· 그러니까.’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은 느낌으로 눈치를 살살 보던 양 씨.


얼른 말하라는 뜻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쳐다보니 흠칫 놀라며 실토했다.


‘그게, 밤마다 객잔 안에서 귀곡성이 들린다지 뭔가.’

‘귀곡성? 귀신이 내는 소리요?’

‘아, 그렇다니까. 언제부턴가 밤마다 객잔 전체에서 으흐흐, 으흐흐 하면서 괴상한 소리가 난다지?’

‘아니, 제사라도 지내보시지.’

‘고명하신 도사님이나 스님도 데려와서 천도재를 지내보고 다 해봤는데 소용이 없어. 결국 십여 년 전에 객잔 주인이 객잔을 싸게 내다 팔고 야반도주했다네.’


그러면서 나보고 기가 세냐는 둥, 헛것은 본 적 없냐는 둥, 돈 낸 순간부턴 환불은 불가하다는 둥 별의별 소리를 다 했다. 확 씨 소보원에 가버릴까 보다.


그리고,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나?


지평좌표계 뭐시기는 언급할 필요도 없다. 흑도 놈들은 칼 맞고 죽은 점소이 귀신한테 시달려서 밤잠을 못 이루어야 정상일 테니까.


그렇지만 점소이 귀신이 붙어서 고생한다는 무림인은 내가 본 적이 없거든.


아니, 점소이까진 안 가도 된다. 하다못해 무림인들끼리도 생사결이니 뭐니 하지 않나. 나 같았으면 억울해서라도 화장실 갈 때도 붙어있겠다.


어쨌든 말도 안 되는 귀신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객잔 주인이 머무는 방을 찾아서 먼지를 털어내고 몇 안 되는 짐을 옮겨놓았다.


빈집 특유의 텁텁한 냄새가 좀 나긴 하지만, 그래도 며칠 더 지내면서 환기도 하면 냄새도 빠지겠지.


내 집이자 내 꿈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쓸고 닦으니 뿌듯함이 차올랐다.


그러고는 객잔 주변을 쭉 돌아다니며 수리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적었다.


객잔 사는 데에 돈을 거의 다 써버려서, 망가진 부분을 수리하는 건 일꾼을 부르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손을 봐야 하거든.


물론 오 년 동안 했던 일 중에는 목수와 미장이도 있었으니 그렇게 어려울 건 없었다. 뚝딱뚝딱 하면 되지 않겠어?


그렇게 혼자서 열심히 알아보고, 청소하고, 정리하는 사이 해가 뚝 떨어졌다. 바로 뒤가 숲과 산이라 그런지 해가 더 빨리 떨어지는 느낌이네.


한국이었다면 머리맡에 둔 폰 좀 만지다가 자겠지만, 이 시기 중원에 그런 게 어디 있겠나? 잠이 보약이다. 곧바로 이부자리를 펴고 잠을 청했다.


······.


·········.


[흐으으으···!]


“흐기이이익!”


이게 갑자기 뭔 소리야?


피곤했던 마음은 싹 사라지고, 대신 의구심이 들어찼다. 잠결에 잘못 들은 건가? 아니, 오늘 피곤해서 꿈도 잘 안 꿀 게 분명했는데.


[흐으으으···!]


방이 한 차례 웅, 하고 떨리더니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밤마다 객잔 안에서 귀곡성이 들린다지 뭔가.’


오늘 낮에 양 씨가 벌벌 떠는 시늉과 함께 말했던 그 대사가 떠올랐다.


설마, 이게 그 귀곡성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을 그때, 다시금 귀곡성이 울렸다.


[흐으으으···!]


또 들려온다.


짝, 짝!


힘들어서 들리는 환청인가 싶어서 뺨을 내리쳐 봤지만 귀곡성이 들려오는 건 똑같았다. 아오, 뺨만 드럽게 아프네.


착각이 아니라 진짜로 들리는 소리였다. 문제는 귀곡성이 웅웅 울리는 바람에 어디서 들려오는 소린지 감을 못 잡겠다는 것.


대관절 어디서 들리는 건가 싶어서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귀를 최대한 기울이며 귀곡성이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흐으으으···!]


찾았다.


계산대 바로 위의 천장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곧장 사다리를 가져와서 천장을 슬쩍 만져보았다.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을 구성하는 판자가 들렸다.


“······.”


잠깐만.


혹시 이 안에 무슨 형체가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다. 인간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상상력 아닌가. 아무것도 아닌데 지레 겁먹지는 말자고.


‘혹시 아나? 누가 객잔에다 시체라도 숨겼을지.’


아잇, 오늘 낮의 양 씨는 입 다물고 있어. 왜 타이밍 좋게 그런 대화가 갑자기 왜 생각나는 건데.


사나이 황정, 귀신이나 시체 따위에 뒤로 물러나지 않는다.


이를 앙다물며 크나큰 결심을 짓고는 판자 안으로 손을 내뻗었다.


“흐이익!”


그러면서 눈을 가늘게 뜨며 천장 안쪽을 살펴보았지만, 다행히 캄캄하기만 할 뿐이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더듬거리고 있자니, 뭔가 딱딱하면서도 부드러운 무언가가 만져진다.


곧장 잡고 끌어내렸더니, 그 정체는 먼지가 소복하게 쌓인 자그마한 보따리였다.


“쿨럭, 쿨럭!”


아이고, 먼지야. 보따리를 풀어보니 안에 있는 건 다름 아닌 헝겊에 싸인 중식도와 낡고 오래된 책 한 권.


헝겊을 조심히 풀자, 눈이 따끔거릴 정도로 형형한 예기를 뿜어내는 중식도가 그 정체를 드러냈다.


건달채도(乾達菜刀).


하늘에 도달하는 중식도?


참 괴상한 이름이라는 생각과 함께 칼자루를 쥐는 순간.


따끔!


[우우우웅···!]


“어, 어어어?”


갑자기 시야가 캄캄해지더니, 뒤로 나동그라지는 느낌과 함께 저 깊은 무저갱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아오오오오오!”


내 운이 그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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