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들이 몰려오는 치유객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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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씨
작품등록일 :
2024.08.20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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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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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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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손맛 (2)

DUMMY



“정말이지··· 깜짝 놀랐소.”


홍제육이 헛기침과 함께 뒤집힌 목소리를 진정시키며 답했다.


“특히 생강의 향이 두드러지게 나는 것이 어머니의 총초갑해와 너무나도 닮았지 뭐요. 혹시 객잔에서 일을 배울 때 태호 사람에게 배웠소?”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신양현의 살아있는 양심이라고 불렸던 나지만,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스승이나 다름없는 분의 출신까진 물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강소 출신인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요? 요리책이 홍 대협의 어머니만 알고 있는 요리법을 알려줬는데요?’라고 말하면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잖아.


그렇게 적당히 둘러대니 홍제육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러했군. 총초갑해 말고도 해육초반도 무척이나 맛이 좋았소. 너도 그렇지 않느냐?”

“예에.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 맛있을 줄은··· 정말로 할머니께서 해주신 그 맛이 나서 더 놀랐습니다.”


계속 까불거리던 홍대불도 나를 힐끔 보면서 고개를 슬며시 끄덕였다.


“맛있게 드셔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나친 겸양도 해가 되오.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당연히 자부심이 있어야 하거늘.”


그 말에 얼굴에 뜨끈하게 열이 올랐다.


실력은 소림사 식방각 스님들, 요리법은 고금지미총록에 나온 홍제육 모친의 요리법.


어느 것 하나 내 거라고 시원스레 말하기 조금 그렇지 않나. 당연히 내 사정을 알 길이 없는 홍제육은 그게 그냥 겸손해하는 모습으로 비쳤던 모양이다.


하지만, 홍제육의 이어서 하는 말은 내가 조금 전까지 했던 생각을 와장창 깨버렸다.


“그러니 너무 고개 숙이지 마시오. 객잔의 주인은 이 홍제육도 아니고 손님도 아니오. 결국 나 자신 아니겠소?”

“······!”


생각해 보니 그랬다.


누군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결국 객잔을 이끄는 나 자신이 행동을 펼치지 않으면 무용한 일 아닌가.


경험과 지식은 결국 행동의 보조 수단일 뿐.


도움을 받으면 감사하다고 하고, 항상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갚아가면 될 일 아닌가.


내가 그러한 소소한 깨달음을 깨우치고 있을 때, 홍제육은 흐뭇한 미소를 보였다.


“앞으로도 이 맛을 유지한다면 신양현에서 제일 가는 객잔이 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소.”

“그게 정말이십니까?”

“양 선생, 그렇지 않소?”

“아무렴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대협과 도령을 여기까지 데려오지 않았겠습니까? 허허허.”


양 씨의 금칠 서포트까지 이어지자, 얼굴이 부끄럽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만큼 기분도 째졌기에, 황제나 권력자들이 뒷구멍 헐 정도로 아첨하는 양반들을 어여삐 여기는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그러더니 홍제육은 소매에서 은자 세 냥을 내밀었다.


“아니, 이건 뭡니까?”

“개업을 축하한다는 뜻에서, 그리고 오래간만에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 맛을 보여주어 감사하다는 뜻에서 내는 것이오.”

“아니, 이건 너무 큽니다.”

“받아두시오. 앞으로도 자주 볼 사이인데 이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겠소?”


앞으로 자주 본다고? 왜? 내가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바라보니, 홍제육이 피식 웃었다.


“우리 상단 사람들에게 단단히 소문낼 테니까 말이오. 나 또한 짬 날 때마다 이 객잔으로 오리다.”

“어이구, 정말 감사합니다!”


따흐흑, 역시 대-협이시다. 무창금검 센세···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역시 잘 나가는 사람은 한참 다르다. 거금도 쾌척하고, 손수 홍보까지 해준다니 얼마나 좋아.


홍제육이 흐뭇한 미소와 함께 밖으로 나가는 사이, 같이 있던 홍대불은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쭈뼛쭈뼛 다가왔다.


또 트집 잡으려나 싶어서 꼬롬하게 보고 있자니, 홍대불은 의외의 행동을 보였다.


나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 것이다.


“조금 전에는 죄송했습니다.”


홍대불은 머쓱하면서도 어딘가 죄송하다는 얼굴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겉만 보고 별것 없는 객잔인 줄 알고 그랬는데··· 그, 정말로 저희 할머니 음식 솜씨랑 똑같으셔서 놀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진짜 맛있었어요.”


미안하단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홍대불의 모습에 나 또한 입에 발린 말을 해주었다.


“괜찮습니다. 앞으로도 홍 대협과 자주 오셔서 부자의 정을 나누시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괘념치 마십시오.”


그래, 뭐 젊을 때는 실수할 수 있는 거지. 삼십 대인 내가 할 말은 좀 아니긴 하지만.


홍제육이 나에게 기회를 줬으니, 나 또한 홍대불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나중에 밤길에 납치해서 꿀밤 때리는 건 취소해야겠다.


마지막은 역시나 거간꾼 양 씨.


“역시 황 씨야. 내가 믿고 있었다니까?”

“말도 마십시오. 살 떨릴 뻔했습니다. 그래도 좀 언질을 좀 주시지.”

“으흠. 자네가 만든 초반을 맛있게 먹었다고 말하니 대뜸 거기서 아침을 먹자는데 어떻게 하나? 어쩔 수 없이 데려가야지.”


그치, 높은 사람이 갑자기 그러면 어쩔 수 없긴 하지. 나도 되도 안 하는 투정 한 번 부려봤다.


“그래도 일이 이렇게 또 풀리니 다행이죠. 홍 대협께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허, 고마우면 나중에 밥 한 끼 대접하게.”

“그럼요. 자주 오십쇼.”


그렇게 양 씨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세 사람이 떠났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주방 탁자에 올려진 고금지미총록.


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던 장은 다시 백지로 돌아가고 있었다.


넌 대체 정체가 뭐냐?


“······.”


뚫어지게 바라보았지만, 고금지미총록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상황을 천천히 복기해보자.


고금지미총록 위에 손을 올리고 요리법을 생각하니 사삭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당황해서 책을 펼쳤더니 저 혼자 글씨가 뾰로롱 써지는 장면을 목격했고.


이게 무슨 태블릿도 아니고, 저 혼자서 글씨가 써졌다 사라졌다 하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 세계가 무슨 세계인가? 사람이 하늘을 걸어 다니고, 칼에서 기를 뽑아내어 무를 겨루는 세계 아닌가.


이미 이 세계에 온 이상, 기존의 내 상식은 개 같이 박살 난 지 오래. 내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진다면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고, 실제로도 그러고 있다.


그래서 고금지미총록의 원리는 분석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이용하기로 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발동 조건을 알아야 한다.


“흐으음.”


고금지미총록을 다시 펼쳐서 보고 있었지만, 처음에 봤던 것처럼 백지로 돌아와 있었다.


강소의 태호, 그것도 홍제육의 어머니만 알고 있던 요리법을 하남의 작은 마을에 있는 이 책이 어떻게 알았을까?


실존하는 요리라면 다 되는 건가? 아니면 중원의 요리만 되는 건가?


우연히, 정말 우연히 태호의 명물인 털게로 만드는 총조갑해 정도는 떠올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


사실 그것도 벼락 맞고 복권 당첨될 확률에 가까울 정도로 말이 안 되기는 하지만, 이 책조차 아예 모를 만한 걸 떠올려 보자.


중원과 새외무림을 통틀어서 나밖에 모르는 게 뭐가 있지?


아.


우리 집 앞에 있는 중국집, 호잉루.


호잉루의 간짜장은 내 최애 원픽 음식이었다.


거기에 고춧가루 살짝 뿌려주고 군만두랑 같이 씹어주면 이 맛을 모르는 중원 사람들이 불쌍해질 지경이거든.


고금지미총록 첫 장을 펼치고 딱 한 가지만 생각했다.


호잉루의 간짜장, 호잉루의 간짜장.


그러자.


[호잉루의 건작장면(乾炸醬麵)]

[일(一). 철과에 기름을 넉넉히 부은 다음 호랑이표 첨면장을 준비하여 튀기듯 볶아···.]


“이런, 미친.”


경악했다. 중국집 국룰 춘장인 호랑이표 춘장을 쓰라는 것까지 나올 줄이야.


그렇다면 혹시, 이것도 될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생각을 반복해서 되뇌었다.


군대에서 먹던 꼬리곰탕, 군대에서 먹던 꼬리곰탕···.


그러자.


[육군식 우미보탕(牛尾煲湯, 소꼬리곰탕)]

[일(一). 우미보탕이 들어간 금속 통을 물에 넣고 중탕하여···.]


“히이이익!”


들고 있던 총록을 내던질 뻔했다.


이거 진짜, 진짜잖아.


군대에서 배식하는 꼬리곰탕은 사실 사람 머리통만 한 캔에 담겨있다는 건 군대를 다녀온 사람 아니면 사실상 알 수가 없다.


그 캔을 살짝 데워서 안에 있는 굳은 기름을 녹인 다음에 솥에다 부어 왕창 끓이는 방식이라는 건 더더욱 모르고.


취사병과 취사 지원을 나오는 병사라는 극히 제한된 인원만 아는 대외비란 말이다.


그런데 그 대외비가 낱낱이 적혀 있었다.


당장 나조차도 취사병 아저씨가 ‘아저씨, 이거 비밀인데요···.’로 운을 떼면서 겨우 알려줬던 그것을.


확실하다. 아니, 확실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고금지미총록은 천하의 기보(奇寶)라는 것을.



* * *



“잘 먹고 갑니다.”


손님이 웃음과 함께 동전 백 푼을 쾌척했다. 헤헤, 돈이다. 돈.


“예에, 맛있게 드셨는지···.”

“평소처럼 아주 맛있었습니다. 한데···.”

“예예.”

“무슨 일 있습니까? 얼굴 밑에 그늘이 심하신데.”

“아, 요새 잠을 통 못 자서요.”


이젠 손님한테 보일 지경까지 왔나.


사실 졸려 죽을 거 같아서 그렇다.


정확하게는 고금지미총록을 어떻게 잘 보관할 수 있을지 걱정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었다.


정식으로 중원 요리는 배워본 적도 없는 나에게 음식 조리법을 알려주는 기보 중의 기보 아닌가. 당연히 잘 숨겨두고 나만 이용해 먹어야지.


일단은 내 방 이부자리 밑에다가 숨겨두고 있긴 하지만, 소문이 나는 순간 중원의 대털이라 할 수 있는 신투 같은 양반이 훔쳐 갈 수도 있을 터.


물론, 고금지미총록을 사용하려면 책을 잡은 채로 요리법을 강하게 떠올려야 한다는 고오급 기술이 필요하긴 하지만, 혹시나 또 모르는 일.


잃어버린 블루투스 이어폰 찾는 기능처럼 ‘내 책 찾기’ 기능 같은 거 없나? 그런 게 있으면 반드시 살 텐데.


원시 고대 GPS 추적 기능인 만리추종향 같은 거라도 발라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밤을 꼴딱 새우기 일쑤였다.


“주인장, 힘내십시오.”


내가 안타까웠던 모양인지 동전 열 푼을 더 쥐여주는 손님. 역시 낭만의 시대 중원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아직 많아.


“어이구, 역시 손님 덕분에 힘이 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이 손님이 마지막 점심 식사 손님이었다.


마지막 손님이 나가자, 탁자 위에 있는 수많은 접시와 설거짓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후우우.”


저건 또 언제 치운담?


역시 자영업자는 잘 되어도 힘들고, 안 되어도 힘든 것 같다.


물론 잘 되어서 힘든 건 돈이 많이 벌린단 소리니 그만큼 기분이 좋아지긴 하지만.


다만 이상한 게 한 가지 있었다.


몇 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정도로 손님이 몰려오면 녹초가 되었는데, 요새는 그럭저럭 할만하달까.


게다가 요샌 잠도 잘 못 자는 상황인데도 몸은 멀쩡한 느낌이었다.


단순히 일이 익숙해져서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설마 그건가?


‘빈승의 말만 따르면 조리 실력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이 험난한 중원에서 제 한 몸 정도는 건사할 무력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아무렴. 건달심법과 칠정도는 그런 용도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제포와의 대화가 문득 기억났다.


아무래도 건달심법인가 뭔가 하는 그게 나한테 이런 효과를 주는 게 아닐까 싶다.


근데 보통 심법이라 한다면 가부좌 틀고 혈따라 맥따라 기를 움직이는 ‘운기조식’을 해야 몸이 건강해지고 내공이 쌓이는 거 아닌가?


내가 한 거라고는 매일 재료 손질하고 요리하고 청소하는 거밖에 없는데.


도마 위에 올려진 건달채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지만, 바라본다고 해서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날 이후로 제포가 나를 다시 찾아오는 일도 아직은 없었고.


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팔 운동과 함께 잔뜩 뭉친 어깨를 살살 풀어주고 있는데.


쩔그럭, 쩔그럭.


“······?”


어디선가 들려오는 싸한 소리에 고개를 들어 바깥을 바라보았다.


객잔을 운영하면서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확실했다.


왜냐고? 저 절그럭거리는 소리는 무림인들이 흔히 들고 다니는 검이나 도가 흔들리면서 나는 거거든.


객잔에 무림인이 온다는 것은 둘 중 하나다.


대박, 혹은 쪽박.


대박인 경우는 바로 홍제육이다. 은자를 쾌척하지 않나, 객잔을 개보수해주지 않나 얼마나 도움이 많이 됐던가.


하지만 반대인 경우도 있다.


객잔의 창문으로 바깥을 슬쩍 바라보자, 대여섯 명의 험악한 남자들이 고개를 넘어 우리 객잔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느낌이 온다.


저놈들은 쪽박 중의 쪽박, 개쪽박이라는 것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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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내공과 요리의 상관관계 (2) 24.09.15 70 2 13쪽
14 내공과 요리의 상관관계 (1) 24.09.14 80 2 14쪽
13 우리 마을의 권 선생님 24.09.13 74 2 15쪽
12 제포적 사고 24.09.12 87 2 13쪽
11 준비는 언제나 맑음 24.09.11 101 5 15쪽
10 아침 식사 됩니다 24.09.10 107 5 14쪽
9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세요 24.09.09 106 3 13쪽
8 세가는 역시 제갈세가 24.09.08 119 4 14쪽
7 쪽박, 좋아하세요? (2) 24.09.07 122 3 15쪽
6 쪽박, 좋아하세요? (1) +1 24.09.06 121 3 14쪽
» 공포의 손맛 (2) 24.09.05 135 5 13쪽
4 공포의 손맛 (1) +1 24.09.04 136 6 13쪽
3 안심하세요, 현실입니다 (2) +2 24.09.03 153 6 15쪽
2 안심하세요, 현실입니다 (1) 24.09.03 163 5 13쪽
1 객잔 마련의 꿈 24.09.03 193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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