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길을 걷는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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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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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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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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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DUMMY

환결의 이마에 구멍이 뚫렸다.


작은 점이었다.


“좀 봐줘라.... 나쁜 놈.”


시밀의 앞에서 환결의 몸이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웃는 얼굴이었다.


저 아래 별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무수한 피가 흐르고 용사들이 빛과 같은 속도로 별을 누볐다.


고통과 분노로, 또는 죽음으로 각성한 용사들은 한계를 벗어나 한층 더 높은 경지에 도달했다.


그들은 악을 쓰며 적을 죽였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용사에게 대응할 수 있는 건 같은 용사밖에 없었다.


용사와 용사가 싸우고, 한쪽이 죽었다. 되살아난 용사가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며 복수에 성공했다.


복수당한 용사가 다시 복수에 달려든다. 끝나지 않는 복수의 굴레가 굴렀고, 용사가 죽을 때마다 별에서 하나의 생명이 사라졌다.


하나의 빛이 시밀 앞에 멈췄다.


“첫 살인을 이룬 소감은 어때?”

“벌써 움직여도 돼?”

“누군가 깔끔하게 머리를 뚫어줘서 별로 아프지도 않더라.”

“환결, 이 전쟁을 끝내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레이부터 제압해야겠지. 저기 보여? 이제 혼자 별 세 개를 막고 있네. 저거 성장 속도가 이상한데?”


레이는 한 줄기 빛이 되어 별 세 개를 돌며 무기를 든 자를 모조리 죽이고 있었다.


사방에서 용사와 기사, 그리고 특수한 힘을 가진 무기들이 레이를 노렸지만, 레이는 그것들마저 모두 힘으로 뚫어냈다.


“자신 없냐?”

“아니.”


시밀은 레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레이는 상대를 확인도 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챙!


공격이 막히자 비로소 레이는 시밀을 보았다.


“시밀...? 네가 왜?”

“전부 죽이면 이긴다며. 그러니까, 내가 먹게. 연합.”


레이가 시밀을 밀어냈다.


“저걸 봐라. 모두 수준이 몇 단계나 올랐다. 별길을 따라오는 것조차 겁내던 약골들이 빛이 되어 움직이고 있다. 시밀, 이게 답이다. 별 먹는 것을 죽이는 유일한 방법! 나를 막지 마라. 그러면 너라도 죽이겠다.”

“해봐.”


레이의 검이 시야의 사각에서 목을 노렸다. 시밀의 눈은 특별했다.


하늘을 보는 눈은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변화를 감지한다.


챙!


“너는 이상하다. 검을 배운 흔적은 없고, 검술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데, 능숙하게 공방을 이어가. 나를 상대로도, 별 먹는 것을 상대로도.”


이번에는 시밀이 먼저 공격했다.


점.


시밀에게 가능한 최속의 공격이었다.


레이의 검에 작은 별빛이 찍혔다.


뒤로 밀려나며 충격을 흡수한 레이가 다시 시밀에게 접근하며 검을 휘둘렀다.


시밀은 불가능한 각도로 휘어지는 진짜 검술을 눈으로 보고 받아냈다.


레이가 손목을 움직였다. 레이의 검이 시밀의 검과 엉켰다.


처음 당하는 기술에 시밀이 검을 놓쳤다.


레이의 손에는 여전히 검이 있었다.


레이가 시밀의 목을 노렸다.


시밀의 손이 빛이 되었다. 레이의 검도 빛으로 변했다.


용사의 무기는 용사의 영혼.


몸을 빛으로 만들 수 있다면, 검 또한 빛으로 만들 수 있다. 둘은 같은 근본에, 같은 영혼에 종속되어 있으니까.


목이 꿰뚫렸다.


‘아.’


사람한테 살해당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가?


***


침대에서 일어난 시밀은 바로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유리가 집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요한이 다른 사람에게 만지지 못하도록 하던 책이었다.


유리는 요한을 대신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졌구나.”

“응.”

“이길 자신은 있어?”

“아니.”

검술이 아니라 빛을 이용한 공격의 위력이라면 시밀이 훨씬 강하다.


하지만 레이는 제대로 무기술을 배웠고, 빛처럼 움직일 수 있는 용사였다.


시밀은 그러한 존재와 싸울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보다 훨씬 빠르고, 훨씬 정확해.”

“하지만 이겨야만 하고.”

“응.”

“그러면, 대답은 정해져 있잖아?”

“맞아.”


서로의 생각은 이미 안다. 모든 건 형식.


형식 안에서 서로를 찾고, 확인한다.


유리 안에 있는 시밀을.

시밀 안에 있는 유리를.


“다녀와.”

“다녀올게.”


시밀은 집을 나서 빛이 되었다.


다시 레이 앞에 서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연합의 별들은 더 엉망이 되어 있었다. 일부가 뜯겨나간 별도 있었다.


누구도 레이를 막지 못했다. 레이를 보는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고, 레이의 시선이 닿은 자들은 다가올 죽음에 체념하거나 발악했다.


“시밀. 왜 나를 막는 거지? 우리는 비약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 별 먹는 것에 닿을 수 있다. 네게는 어떤 피해도 없다. 고로 막을 이유도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겠지. 연합도, 별들도, 그리고 너도.”


레이가 자세를 잡았다.


“너는 나보다 강하다. 별빛을 다루는 요령도, 일격의 위력도 나와는 비교가 안 되지. 하지만 그게 나를 이길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조금 전의 전투로 깨달았지 않나?”

“그렇겠지.”


레이는 강하다.


실시간으로, 비정상적인 속도로 강해지고 있다.


저게 용사가 가진 진정한 가능성일까. 그냥 레이라는 천재의 재능이 개화한 걸까.


궁금하지만, 중요하진 않다.


시밀은 레이를 이길 수 없다.


‘검술로는.’


검술로 이기지 못한다면, 검술로 싸워주지 않으면 된다.


상대가 유리한 영역에 들어가지 않고, 내가 유리한 영역에서 나가지 않는다.


쉬우면서 어려운 필승법.


시밀이 레이를 이길 수 있는 것.

연합에 속한 모든 별을 압도할 수 있는 것.


그림.


시밀은 검을 가볍게 잡았다.


별빛을 검에 모았다.


레이가 몸 일부를 빛으로 바꾸었다.


시밀이 검을 뻗었다.


레이는 몸을 피했다. 그는 시밀의 불가해한 위력의 찌르기를 몇 번이나 보았다. 천재 용사는 이미 아는 공격에 당해주지 않았다.


공격을 피한 레이는 즉시 반격에 나서려 했다.


빛의 속도로 다가가 무방비한 목에 다시 한번 검을....


“이건...?”


천재들의 검술에선 손가락 한 마디 간격의 오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레이의 위치는 그가 움직이려 했던 위치에서 한참이나 벗어났다. 목적지까지 절반도 움직이지 못했다.


시밀이 한 번 더 허공에 점을 찍었다.


허공에 찍힌 점을 향해 레이의 몸이 강제로 끌려갔다.


시밀은 단순히 점을 찍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하늘에 구멍을 뚫었다.


하늘을 구부려 레이를 구멍으로 빨아들였다.


레이는 더 빠른 속도로 시밀의 공격에서 벗어나려 했다.


시밀은 검을 옆으로 뿌렸다.


종이에 물감을 뿌리듯, 하늘에 별빛을 뿌렸다.


하늘에 점점이 별빛이 박혔다. 별빛은 각자 흡입력을 발휘하며 주변의 물건을 끌어당겼다.


레이는 공간의 구부러짐 사이를 지나 시밀에게 접근했다. 거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사방이 구부러짐투성이고, 그걸 피해 시밀에게 접근하려 한다면, 접근할 수 있는 경로는 한정되었다.


그걸 아는 레이도 검을 앞으로 뻗고 방어를 준비했다.


시밀은 눈을 반개했다.


저기 단단한 목판이 있다. 좀처럼 가공할 수 없는 목판이다.


조각은 전문이 아니지만, 물감에 섞을 톱밥을 만들며 나무는 조금 만져봤다.


시밀은 검을 역수로 잡고, 반대편 손은 주먹을 쥐었다.


검이 정이고, 주먹이 망치다.


시밀은 검 손잡이를 주먹으로 때렸다.


지이잉!!


하늘이 떨렸다. 점과는 비교가 안 되는 위력의 일격이었다.


“큭?!”


레이는 달려오던 기세보다 더 빠르게 뒤로 밀려났다.


종이에 점을 찍을 때 필요한 힘과 목판을 파낼 때 필요한 힘은 완전히 달랐다.


억지로 자세를 바로잡는 레이의 눈에 다시 주먹을 높이 쳐든 시밀이 보였다.


‘피해야 한다.’


그런데 어디로?


보이지 않는 함정이 사방을 가리고 있었다.


저기에 걸려들면 끝이다. 하늘에 박제된 별빛처럼 그도 박제될 것이다.


죽음으로 위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쓸 수 없다.


상대는 시밀이다. 레이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훨씬 정밀하게 별빛을 감지할 수 있는 용사.


되살아나 전투 태세를 갖추는 것보다 시밀이 그의 목을 향해 저 무지막지한 공격을 박아넣는 게 더 빨랐다.


하늘을 울릴 위력의 공격이라면 별에 구멍을 내고 레이까지 함께 꿰뚫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시밀이 주먹을 내리쳤다.


지이이잉!!!


막았지만, 손아귀에 힘이 풀렸다. 놓친 검이 아래로 떨어졌다.


시밀이 다시 주먹을 내리쳤고, 거대한 진동이 레이의 몸통을 짓이겼다.


***


정신을 차린 레이는 눈조차 뜨지 못했다. 눈꺼풀에 차가운 감촉이 닿았다.


“가만.”


손이 묶였고, 검이 눌렸다.


레이는 빛을 움직이려 했다.


외부로 발출한 빛은 그의 제어에서 벗어나 어딘가로 빨려들었다.


“가만. 세 번은 말 안 해.”

“나를 제압하면, 다음은 어쩔 거지?”

“다른 용사와 별도 전부 제압해야지. 레이, 이건 아냐.”

“아니. 이게 맞다. 너는 다른 방법이 있나? 패잔병보다 못한 떨거지들을 데리고 그 괴물을 죽일 방법이 있냐는 거다!”

“아니.”

“그러면 나를 풀어라! 내가 저들을 죽이겠다! 성장시키겠다! 작은 가능성이라도 만들어보겠다고!”


레이가 악을 썼다.


“나는 오늘만을 위해 살았다. 내가 태어난 이후 이 별의 용사 후보는 모두 나였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몇 번이나 신분을 바꿔가며 용사 후보 자리를 유지했다.”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어디 있지? 용사 후보는 언제 용사가 될지 모르는 기약 없는 자리인데.”

“내가 사제의 피에서 태어났으니까! 원래 태어나선 안 될 존재니까! 시밀, 그거 아나? 처음 별에 빛을 심을 때를 빼면, 사제는 어떤 생명도 만들어선 안 된다. 그건 빛의 규칙을 어기는 일이다. 나는 규칙을 어겨 태어난 생명이다. 별의 치부란 말이다.”


새빛별에서 용사 후보는 다음 대 기사 취급이었다.


자기가 용사가 될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연합의 다른 별들도 다르지 않았다. 용사 후보는 명예와 권력, 그리고 부가 따라오는 자리다. 진심으로 용사가 되기 위해 용사 후보가 되는 사람은 없었다.


단 한 명.


레이는 쭉 용사가 되기를 바랐다.


그것만이 그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일이었다.


태어나선 안 될 생명이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방법이었다.


“같잖은 도덕심이나 동정은 집어치워라. 내겐 이게 전부다. 이것만이 내 꿈이며, 희망이며, 존재 의미다.”

“그딴 거 아냐.”

“그럼 날 풀어다오. 너도 보았다면 알겠지? 연합은 이미 틀렸다. 승자가 정해지기 전까지는 모두가 진창에서 구를 일만 남았다.”

“너는 그 진창을 계속 헤엄칠 거고.”

“나라면 가능하다.”

“친구가 정신이 나가서, 완전히 미칠 때까지 미친 짓을 반복하겠다는데. 그걸 보고만 있으라고?”

“뭐?”


레이에게서 독기가 빠졌다. 동시에 계속해서 탈출할 기회를 찾던 몸에서도 힘이 빠졌다.


“우리는 같이 웃고,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꿈을 가졌지. 나는 그걸 친구라고 배웠어. 그리고 친구는 서로 돕는 거고.”

“... 친구? 우리가?”

“환결이 피 토해가면서 주도권을 잡고 있거든? 너만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우리 셋이서 전쟁을 끝낼 수 있어.”

“... 하지만 바뀌는 건 없다. 용사들은 여전히 뭉그적댈 거고, 별들의 지원은 소심해지겠지. 희망과 가능성은 오히려 줄어든다.”

“네 방식대로 힘을 키운다 치자. 힘을 얻은 용사들이 얌전히 별 먹는 것을 죽일까? 아니면 너부터 묶어서 팔아버리려 할까? 애매하게 강해진 용사들에게 네가 먼저 패배할 수도 있지. 별 먹는 것은 죽이지도 못하고.”


레이는 한참이나 침대에 늘어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밀은 조심스레 레이를 제압하고 있던 발을 치웠다. 별 어딘가에서 뽑아온 색도 거뒀다.


“너에게는 별 먹는 것을 죽일 방법이 있나?”

“희망이라면.”


레이가 시밀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아라.”

“그건 원래 내가 해야 하는 대사 같은데.”


시밀은 레이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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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하늘의 규칙 +11 24.09.14 576 54 13쪽
25 하늘의 규칙 +7 24.09.13 568 50 12쪽
24 새로운 생활 +16 24.09.12 597 66 13쪽
23 도읍 +6 24.09.11 618 64 13쪽
22 도읍 +13 24.09.10 635 76 15쪽
21 새빛별, 그리고 나. +18 24.09.09 648 87 12쪽
20 작품명, 새빛별. +14 24.09.08 648 71 13쪽
19 대화 +7 24.09.07 631 71 14쪽
18 대화 +5 24.09.06 658 57 15쪽
17 최고의 사냥꾼 +9 24.09.05 704 72 14쪽
16 최고의 사냥꾼 +5 24.09.04 742 75 12쪽
15 최고의 사냥꾼 +6 24.09.03 772 69 12쪽
14 작은 별들의 용사 +15 24.09.02 848 94 16쪽
» 친구 +9 24.09.01 835 83 12쪽
12 살인 +6 24.08.31 817 74 13쪽
11 용사 +6 24.08.30 828 78 14쪽
10 하늘을 보는 눈 +10 24.08.29 824 82 12쪽
9 어른들 +8 24.08.28 842 75 13쪽
8 용사들 +3 24.08.27 860 61 14쪽
7 검, 별, 원, 색. +7 24.08.26 883 72 13쪽
6 검, 별, 원. +3 24.08.25 915 71 14쪽
5 촛불 +7 24.08.24 945 84 12쪽
4 촛불 +14 24.08.23 1,038 86 14쪽
3 작은 별의 용사 +5 24.08.22 1,138 68 13쪽
2 작은 별의 용사 +5 24.08.22 1,254 75 13쪽
1 작은 별의 용사 +7 24.08.22 2,396 8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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