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길을 걷는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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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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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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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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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사냥꾼

DUMMY

노인은 구석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가져와 앉게. 서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니, 이대로 괜찮다.”


노인이 가리킨 의자 다리는 반쯤 썩어 부러지기 직전이었다.


아무리 봐도 제대로 된 생활을 하는 노인은 아니었다.


사냥꾼을 찾는다면, 농부의 말대로 별 반대편에 있다는 다른 사냥꾼을 찾아가는 게 맞겠지.


그러나 시밀은 오두막을 나가지 않기로 했다.


오두막 벽에는 각종 무기와 덫이 걸려 있었다.


오두막 안에 있는 다른 물건들과 마찬가지로 한참을 쓰지 않은 걸로 보였지만, 그래도 사냥에 쓰는 도구들이었고, 사용한 흔적도 있었다.


“무엇을 원해 여기까지 왔는가?”

“나보다 훨씬 강한 놈을 사냥하는 방법을 찾아서.”

“그거라면 잘 찾아왔네. 그런 종류의 사냥을 나보다 오래 연구한 사람은 없어.”

“아까 밭에서 일하고 있던데.”

“크흠! 오면서 녹음이 우거진 별을 보았겠지? 이 별에 두 개 있는 자원별 중 하나네. 저기가 내 사냥터였지.”

“였다?”

“수십 년 전 떨어진 우울의 빛 한 조각이 괴물로 변했네. 괴물은 별을 자기 영역으로 삼았고, 별의 자원은 쓸 수 없게 되었지. 나는 그놈을 잡을 걸세. 그놈은 내 인생 마지막이자 최고의 사냥감이 될 거야.”

“나는 사냥을 배우러 왔어.”

“알려줄 걸세. 내 일을 돕다 보면 자연스레 배우게 될 걸세.”


밭일? 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입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의자에서 일어난 노인은 오두막 구석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내 걸작이네. 어떤가?”


그건 무기였다.


하늘에서 찾는 것보다 유리의 지식에서 찾는 게 더 빠를 무기.


‘가장 비슷한 건... 역시 총?’


시밀은 총을 그림으로도 본 적이 없다. 총에 대해 아는 건 유리의 설명이 전부였다. 그래도 시밀이 보기에 노인이 가져온 물건은 총이었다.


총은 섬세한 무기라고 했다. 개인이 만드는 건 아마 불가능할 거라고.


노인이 가져온 무기는 조악했다.


철과 나무를 대충 덧댔고, 발사체가 지나갈 통로는 미세한 금이 있었다.


하나하나 위태롭지 않은 부분이 없었지만, 가장 위험한 건 역시 별빛이었다.


철과 가죽으로 만든 직사각형 주머니 안에 담긴 거칠고 불안정한 별빛.


“그 별빛은?”

“내 평생의 역작이라네. 한 푼씩 모은 돈으로 사제에게 축성 받은 별빛들이지.”


직접 별빛을 다루는 입장에서 평하자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물건이었다.


대단한 폭발을 일으키진 못하겠지. 그러나 저걸 들고 있는 노인을 형체도 남지 않게 만들 정도는 되었다.


노인은 그걸 들고 자랑스레 웃고 있었다.


“이걸로 그놈을 쏴 죽이는 거야. 하지만 두 가지가 부족하네.”

“뭐지?”

“하나는 자원별까지 갈 별빛. 그리고 하나는 마지막 부품. 대장간에 주문해 뒀지만, 도통 결과물이 안 나와. 그것만 해결하면 언제든 최고의 사냥을 보여줄 수 있다네.”

“둘 다 내가 해결할 수 있다. 그러면, 바로 사냥을 배울 수 있는 건가?”

“그, 그렇다네.”

“잠깐 나갔다 오지.”


시밀은 오두막에서 나왔다.


대장간은 멀리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연기가 가장 많이 나는 장소를 찾아가면 되었다.


천천히 걸으며 시밀은 별의 분위기를 살폈다.


자원별을 두 개나 둔 별이었다. 인구가 수백만 단위는 되겠지.


연합 소속 별을 두세 개 합친 수준의 규모였다.


그리고 별에 사는 주민의 숫자가 늘어나면.


“별의 용사이십니까?”

“그래.”


사제 한 명으로는 일손이 부족해진다.


별을 가꾸는 사제는 간이 사제를 임명할 수 있다. 규모가 큰 별에서는 간이 서품받은 해당 별 출신의 사제들이 별을 가꾸는 사제를 돕는다고 했다.


시밀 앞에 나타난 사제도 간이 서품을 받은 사제였다.


“용무를 알려주시면,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도움은 필요 없다. 전부 내가 알아서 해결하고, 조용히 떠날 거니까.”

“겔푸스 노인을 찾아온 거라면, 아마 잘못 찾으신 것 같습니다.”

“모두 그자를 사냥꾼으로 보지 않는 것 같더군. 달리 이유가 있나?”

“자원별을 영역 삼은 괴물의 이야기는 들으셨습니까?”

“들었다.”


시밀은 노인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별 먹는 것을 죽여야 하는 시밀.

괴물을 죽여야 하는 노인.


시밀과 발맞춰 걸으며 사제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겔푸스는 자원별을 관리하는 사냥꾼의 제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단 하나뿐인 자원별인 만큼 사냥꾼은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실력은 단연 뛰어났죠. 하지만, 우울의 빛에서 태어난 괴물을 잡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야 우울의 용사가 혈투 중 흘린 빛의 조각이니까요. 별의 용사는 되어야 그놈과 상대가 될 겁니다.”

“나보고 그놈을 죽여달라고?”


사제가 고갤 저었다.


“아닙니다. 괴물의 처우는 이미 정했습니다. 작은 조각에서 태어난 녀석이라면 수명은 길어봤자 백 년 정도겠죠. 저희는 놈을 방치하기로 했습니다. 때마침 만들어진 두 번째 자원별로 별의 자원이 부족할 일도 없어졌고, 백 년쯤 지나면 방치한 자원별의 식물들도 상당히 자랐을 테니까요.”

“그러면 그 노인은?”


괴물은 시간이 지나면 죽는다.


자원별을 방치해 얻는 손해도 크지 않다.


노인의 행동은 완전한 헛짓이었다.


“별의 차원에서 보면 무의미한 행동이지만, 겔푸스 본인에게는 의미가 각별할 겁니다. 겔푸스는 겁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조그만 장난에 깜짝깜짝 놀라곤 하죠. 괴물이 탄생한 날, 겔푸스는 선대 사냥꾼과 함께 자원별에 있었습니다. 그는 괴물과 대치하는 스승을 두고 도망쳤습니다. 가지고 있던 각종 도구와 함께 말입니다.”

“죄책감인가.”

“고집에 가까울 겁니다. 선대의 제자는 둘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다른 자원별을 관리하는 현명한 사냥꾼이 되었죠. 겔푸스는 자신이 스승의 유지를 이어 방치한 자원별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사제들은 어떻게 했지?”

“그러라고 했습니다. 겔푸스가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할 걸 알았으니까요.”


대장간에 도착했다.


허드렛일하는 소년들이 사제를 보고는 허리를 숙였다.


“별의 다른 사냥꾼에게도 언질을 주겠습니다. 사냥꾼의 지식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그리로 찾아가시면 됩니다.”


사제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대장간에서 노인 한 명이 나왔다.


노인은 이미 시밀을 아는 눈치였다. 작은 마을은 아니지만, 연합에서 보았던 수만 명의 사람이 모여 사는 규모의 도시도 아니었다.


거기에 겔푸스의 취급까지 생각하면, 시밀의 소문이 빠르게 퍼지는 것도 이해되었다.


“겔푸스, 그놈이 시켜서 왔소?”

“그래.”

“물건은 완성했소. 주문 당일 완성했지. 물건을 가지고 싶거든 돈을 가져오라 전해주시오.”

“그는 돈이 없나?”

“그 나이 먹도록 밭도 땅도 없이, 오두막 하나가 전부인 인간에게 뭐가 있겠소.”

“그런 것치고 부품을 남겨뒀군.”

“언젠가 값을 치를 테니까. 언제나 그랬듯.”


언젠가, 언제나.


겔푸스의 삶을 알 수 있는 단어였다.


“별빛으로 값을 치러도 되나?”

“별빛 안 받는 멍청한 놈은 이 하늘에 없을 거요.”


대장간 안으로 들어간 노인은 쇠로 만든 공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별빛은 어디에 담으면 되지?”

“저 용광로.”


노인은 대장간 안에 있는 용광로를 가리켰다.


“뜻밖의 수입을 얻었으니, 자그마한 사치에 써볼까 하오. 별빛을 연료로 용광로를 태우면 그렇게 대단하다지.”


시밀은 별빛을 약간 뽑아내 용광로에 던졌다.


용광로 안의 불길이 환하게 빛나며 용광로 자체를 녹이기 시작했다.


“괜찮나?”

“허허! 용광로조차 녹이는 불이라니! 녹지 않던 괴물들의 가죽과 뼈도 녹여볼 수 있겠어! 이놈들아! 창고에 있는 물건 다 꺼내와!”


시밀의 걱정이 무색하게 대장장이 노인은 열정적으로 아랫사람을 부렸다.


시밀은 겔푸스가 주문했다는 물건을 살폈다.


단순한 쇠공이 아니었다. 중앙을 돌려 두 개로 분리할 수 있었고, 쇠공 안에는 무언가를 담기 위한 공간이 있었다.


“폭탄?”


하지만 너무 조악했다.


괴물을 죽이기 전에 주인을 먼저 죽일 폭탄이었다.


시밀은 겔푸스의 오두막에 돌아왔다. 문을 두드렸지만, 반응이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겔푸스는 작업대 앞에 앉아 잠들어 있었다.


겔푸스의 작업대 한쪽에는 수십 권의 책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손수 작성한 문서가 작업대 위쪽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시밀은 문서를 하나하나 읽었다.


-성서 기초 해체에 의하면 모든 빛은 생명을 잉태할 가능성을 가진다. 그놈도 그렇게 태어났다.

-우울의 빛은 아주 작은 조각이었다. 괴물 백과 103페이지에 따르면 빛에서 태어난 괴물의 모든 부분은, 그러니까 힘과 빛을 다루는 능력, 그리고 수명까지도 빛의 크기를 따라간다.

-녀석은 아주 약할 것이다. 그러나 나보다는 강하겠지. 내가 백 명이 있어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냥꾼이다.

-눈이 다섯 쌍, 거대한 앞발과 거친 가죽, 후각과 청각은 형편없었으면 좋겠지만, 기대하면 안 된다. 사냥꾼은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괴물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었다.


-스승님이 죽은 건 내 탓이다. 그러니 저건 내 사냥감이다. 내가 해내야만 한다.

-무섭다. 수십 년이 지났건만, 그놈의 모습만 생각하면 오금이 저려온다. 나는 겁쟁이다.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약한 생각은 안 된다. 해내야만 한다. 겁쟁이도 괴물을 잡을 수 있다.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공포는 사냥꾼에게 꼭 필요한 감정이라고. 나는 해낼 것이다. 나는 사냥꾼이니까.

-그놈을 죽이고, 스승님의 복수를 하고, 어엿한 한 명의 사냥꾼으로 스승님께 인정받을 거다.


중간중간 새겨진 각오까지.


오래된 종이는 색이 누렇게 변해 조금만 힘을 줘도 찢어질 것 같았다.


일이 년 사이 작성된 문서가 아니었다.


시밀은 겔푸스가 들고 있던 너덜너덜한 책을 찾았다.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치자 빼곡하게 메모가 되어 있었다. 책을 새로 쓴 수준이다.


이 책은 오래되어 너덜너덜해진 게 아니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보고 또 본 거다.


“끄응....”


겔푸스가 깨어나려 했다.


시밀은 용사의 덕목을 발휘해 빛과 같은 속도로 어지른 물건들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고, 오두막 입구로 가 막 오두막에 돌아온 척했다.


겔푸스가 일어났다. 그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지 인상을 썼다.


“왔나?”

“대장간에서 물건을 가져왔다. 별길은 지금 당장 만들 수 있다. 출발할 수 있나?”


겔푸스의 얼굴에 고뇌가 깃들었다. 그는 시밀이 손에 든 쇠공과 자신이 만든 ‘걸작’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노인은 쇠공을 품에 챙겼다.


“... 가세.”

“다른 짐은?”

“이미 챙겨뒀네. 나는 준비된 사냥꾼이니까.”


겔푸스는 오두막 구석에서 가죽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제법 묵직해 노인의 몸이 한 차례 휘청였다.


시밀이 가죽 주머니를 향해 손을 뻗자 겔푸스가 몸을 틀어 손을 피했다.


“사냥꾼은, 자기 도구를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법일세.”


두 사람은 오두막 밖으로 나왔다.


시밀은 자원별로 이어지는 별길을 만들었다.


별길 앞에서 겔푸스의 발이 멈췄다. 그는 몇 번이나 망설이다 별길 위에 발을 올렸다.


시밀은 조용히 늙은 사냥꾼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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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하늘의 규칙 +7 24.09.13 570 50 12쪽
24 새로운 생활 +16 24.09.12 599 66 13쪽
23 도읍 +6 24.09.11 620 64 13쪽
22 도읍 +13 24.09.10 636 76 15쪽
21 새빛별, 그리고 나. +18 24.09.09 649 87 12쪽
20 작품명, 새빛별. +14 24.09.08 649 71 13쪽
19 대화 +7 24.09.07 632 71 14쪽
18 대화 +5 24.09.06 659 57 15쪽
17 최고의 사냥꾼 +9 24.09.05 705 72 14쪽
» 최고의 사냥꾼 +5 24.09.04 743 75 12쪽
15 최고의 사냥꾼 +6 24.09.03 774 69 12쪽
14 작은 별들의 용사 +15 24.09.02 849 95 16쪽
13 친구 +9 24.09.01 836 84 12쪽
12 살인 +6 24.08.31 817 75 13쪽
11 용사 +6 24.08.30 829 78 14쪽
10 하늘을 보는 눈 +10 24.08.29 825 82 12쪽
9 어른들 +8 24.08.28 843 75 13쪽
8 용사들 +3 24.08.27 861 61 14쪽
7 검, 별, 원, 색. +7 24.08.26 884 72 13쪽
6 검, 별, 원. +3 24.08.25 916 71 14쪽
5 촛불 +7 24.08.24 945 8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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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은 별의 용사 +5 24.08.22 1,255 7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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