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길을 걷는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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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대비
작품등록일 :
2024.08.2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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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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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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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최고의 사냥꾼

DUMMY

시밀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요한은 시밀이 나갈 때와 똑같은 자리에 있었다.


속에 든 걸 모두 비워냈더니 머리가 차가워졌다.


“몇 명 남았습니까?”

“956명. 하지만 그게 당신의 남은 기회는 아닙니다.”

“어째서?”

“새빛별은 이미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고, 당신이 기회를 소모하는 것보다 빠르게 새빛별 주민들이 어떤 형태로든 죽음을 맞이할 테니까요.”

“별의 모든 사람이 죽고, 마지막 남은 기회로 제가 그놈을 죽이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새로운 사제가 파견되어 제가 했던 일을 하나부터 다시 시작하겠죠.”


별이 사라지지만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힘이 필요합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습니다. 별의 용사는 스스로 깨달아 강해지는 존재니까요. 실제로 당신은 천 번이 넘는 죽음으로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습니다. 안 그런가요?”


이전의 시밀이었다면 아무리 머리끝까지 화가 나 한계 이상의 힘을 발휘했다고 해도 별 먹는 것을 상대로 그런 짓을 벌이는 건 불가능했다.


천 번이 넘는 죽음 끝에 시밀은 별 먹는 것의 공격을 버티는 육체와 별 먹는 것의 눈을 찌를 수 있는 날카로움을 손에 넣었다.


“이걸로는 부족합니다.”


별 먹는 것의 덩치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상처다.


시밀이 바라는 건 그놈을 상처 입히는 게 아니다. 영원히 남을 흉터로는 부족하다.


그것의 죽음이 되어야 한다. 영원한 침묵이 되어야 한다.


“수만 번 죽어도... 아니, 그 이상의 죽음으로도 그것의 죽음이 되지는 못합니다.”

“하늘에는 여러 세력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빛, 색, 하늘이 있고, 흘러들어온 자들이 만든 자체적인 세력, 그리고 다른 군소 세력들이 있죠. 세력이 아니라 ‘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무한한 갈래가 존재합니다.”

“그것들을 익히면, 별 먹는 것을 죽일 수 있습니까?”

“시밀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시밀은 우레길에게 색의 그림을 배웠고, 하늘의 관리자 상연에게 하늘의 보는 눈을 얻었다.


그 둘로 시밀은 연합의 모든 용사를 합한 것보다 강해졌다.


연합에서 특별 취급이던 레이도 결국 시밀에게 패배했다.


“새빛별은 빛의 영역 외곽에 있습니다. 다른 세력도 손대지 않는 암흑에 있죠. 빛이 닿지 않는 곳에는, 빛을 피해야 하는 자들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힘을 가진 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배우고, 또 훔치는 건 한두 번의 죽음으로는 힘들 겁니다.”

“불가능하다고는 안 하시는군요.”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충분합니다.”


시밀은 문을 열었다. 집을 나서기 전 시밀은 마지막으로 집을 돌아보았다.


유리가 죽었다.


이제 이곳에 유리의 온기가 깃드는 일은 없다.


시밀은 가슴에 손을 가져갔다.


“괜찮아.”


유리는 여기 있다. 시밀의 안에 유리가, 그녀가 준 모든 것들이 남아있다.


시밀은 별길을 만들었다.


시밀의 성장을 상징하듯, 커다랗고 튼튼한 별길이 하늘 높이 이어졌다.


별길을 타고 나아가자.

미지가 넘치는 저 하늘로.

오직, 호기심만이 별 먹는 것을 죽이리.


***


시밀을 별길을 걸었다.


몸을 빛으로 만들면 별길은 필요하지 않았지만, 그건 자신이 별의 용사라는 걸 사방팔방 떠들고 다니는 행동이었다.


별길을 이용하면, 시밀의 속도를 수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있더라도 용사라는 걸 바로 알아차리는 사람은 없다.


시밀은 별 먹는 것의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별길을 만들며 하늘을 나아가는 자들이 보였다.


행상도 용병도 아니었다. 시밀이 처음 보는 부류의 인간들이었다.


말 그대로 황금빛 마차였다. 황금색 빛을 뿜어내는 마차. 별빛인 듯했지만, 시밀이 아는 별빛과는 미묘하게 성질이 달랐다.


백지와 흰색의 차이?


마차를 끄는 건 말이 아닌 처음 보는 생물이었다.


시밀이 마차에 다가가자 기사를 닮은 자들이 무기를 들고 시밀을 경계했다.


‘강해.’


개개인이 연합 용사들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가장 강한 사람은 환결과 비슷해 보였다.


“너는 누구냐.”

“길 가던 행인.”

“그 말을 믿으라고?”


시밀은 항복의 의미에서 양손을 들었다. 그래도 경계심은 누그러들지 않았다.


“당신들은 외곽 아닌 쪽에서 왔지? 그냥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어.”

“말해봐라.”

“이 근처에서 가장 사냥을 잘하는 사냥꾼을 찾고 있어.”

“사냥꾼?”

“재미있네요.”


마차의 문이 열리며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내렸다.


“당신의 질문에 답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전에, 당신도 몇 가지 질문에 답해주세요.”

“내가 답할 수 있는 거라면.”

“이 마차를 어떻게 발견했죠?”


시밀은 질문의 의도를 읽을 수 없었다.


보여서 봤다. 시신경의 작동 원리를 설명해야 하나?


대강은 알지만, 남들을 이해시킬 수준은 아니었다.


소녀의 눈이 살짝 커졌다.


“... 그냥 본 건가요?” “그래.”

“이건 제 숙부에게 빌린 마차에요. 특별한 색과 빛으로 칠한, 평범한 사람은 절대 발견할 수 없는 마차죠. 별의 용사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말을 들어도, 그냥 보였고, 그래서 봤다. 내 대답은 이걸로 끝이야.”


소녀는 물론이고, 소녀를 호위하던 자들마저 놀란 얼굴이 되었다.


‘... 그냥은 못 보는 물건이었나.’


눈부신 황금빛을 뿌리며 달리길래 눈에 띄기 위한 것인가 했더니, 정반대였다.


볼 수 없어야 할 마차가 보인 이유는, 우레길의 제자여서나 하늘을 보는 눈을 가져서, 아니면 둘 다겠지.


“당신은 별의 용사죠? 목적은 그 별 먹는 것이겠고요.”

“... 그놈에 대해 아나?”

“약간은요. 지금은 제 질문 시간이에요. 연합이라는 단체를 아나요? 이 근방에 있는 별들이 뭉친 협력 집단이에요.”

“연합은 왜?”


시밀 스스로도 알아차릴 정도로 목소리가 낮아졌다.


소녀는 양손을 가슴에 얹고 입을 열었다.


“그들을 애도해야 해서요.”

“애도?”

“비탄의 용사의 삼녀 애도. 그게 저예요. 죽은 자들을 애도하고 울어주는 게 제 일이랍니다.”

“들을 사람은 한 명도 남지 않은 애도도 말인가?”

“적어도, 한 명은 남은 것 같은데요?”


소녀의 눈이 시밀을 향했다.


색이 있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지만, 소녀의 검은 눈동자는 모든 색을 삼키고, 소녀를 검게 만들었다.


죽음 이후 찾아오는 잠깐의 암흑을 건져 몸에 걸친 것 같았다.


“그 애도라는 건, 어떻게 하는 거지?”

“별이 있던 자리를 찾아가,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울 거예요.”

“그러면 뭔가 달라지나?”

“아무것도.”


소녀는 이제까지의 폭신하던 목소리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차갑게 말했다.


“애도를 위한 애도는. 그냥 광인의 눈물일 뿐이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게 제 일인데.”

“한 가지 더. 연합이 사라지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이 시점에 너는 여기 있어선 안 돼.”

“미리 출발했으니까요. 삼 개월 전에.”

“연합이 사라질걸. 미리 알았다고?”


시밀은 인내심을 잃을 뻔했다.


사방에서 무기 뽑는 소리가 들렸다.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말을 이었다.


“대단한 능력이 필요한 일도 아니에요. 수백 년 동안 진짜 용사들마저 실패한 대업을, 고작 별의 용사 몇 명이 성공할 리가 없잖아요?”


연합 소속 용사들은 마지막까지 별 먹는 것에게 유효한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별 먹는 것이 별을 삼키고, 별에 사는 사람들이 별과 함께 사라지는 광경을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했다.


“사냥꾼을 찾는다고 했죠? 저쪽으로 가면 녹색 별이 하나 있어요. 그 옆에 있는 별에 외곽 최고의 사냥꾼이 산다고 하더라고요. 최고라는 말을 경솔하게 써서는 안 되는데, 그래도 최고라고 하니 신기해서 기억해 뒀죠.”


소녀는 다시 마차에 오르려 했다.


“네가 누굴 애도하든 내 상관은 아니지만, 단 한 명, 애도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있다.”

“개인적인 원한인가요?”

“친구다.”

“친구의 애도를 바라지 않는다고요?”

“그놈의 죽음에 슬픔은 필요 없으니까.”

“그러면, 그분의 죽음에는 뭐가 필요하죠?”

“웃음. 술 한 잔. 그리고 친구.”

“....”


소녀는 새까만 눈으로 시밀을 바라보았다. 시밀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분의 이름은요?”

“환결.”


금빛 교차별이 삼켜지고 몸이 흩어지는 순간까지 웃고 있던 녀석.


별 먹는 것을 죽이고 술이나 같이 마시자던 녀석.


“제 애도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알고 있나요?”

“아니. 설령 그게 사제의 축복보다 더한 가치를 가지더라도, 죽음을 슬퍼할 거라면 필요 없어.”

“애도는 당신을 위한 게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듣지.”


아까 소녀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마차에 오르기 전 소녀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알았어요. 그분은... 애도하지 않도록 하죠.”


시밀은 연합이 있던 방향으로 나아가는 마차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비탄의 용사라면, 진짜 용사인가.”


작은 별을 지키는 용사가 아니라 빛에게 인정받은 진짜 용사.


수십 개의 별을 일격에 부순다는 격이 다른 존재들.


그리고 그 진짜 용사들마저 별 먹는 것을 죽이지 못했다는 정보까지.


“내가 너의 죽음이, 영원이 될 거다....”


답답함을 짓씹어 뱉으며 시밀은 소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나아갔다.


***


녹색 별은 숲으로 된 별이었다.


새빛별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별 전체가 식물로 가득했다.


녹색 별 옆에는 그보다 수십 배는 큰 다른 별이 있었다.


“자원별이라는 건가.”


특정 자원을 수급하는 목적의 별이라고 들었다.


시밀은 별에 내려섰다.


드물지 않은 일인지 사람들은 시밀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자기 작업에 집중했다.


어딘가로 달려가는 사람도 몇 있었다.


시밀이 그간 만났던 사람들에 따르면 하늘을 건너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자기를 지킬 무력과 지식이 아니라 넉넉한 별빛이다.


별빛을 구하는 방법은 한정적이다. 별의 용사가 아니더라도 별길을 혼자 걷는 건 특별한 사람이라는 게 된다.


시밀은 가까이 있는 농부에게 다가갔다.


“이 별에 최고의 사냥꾼이 산다고 들었다.”


긴장했던 농부의 어깨에서 힘이 풀렸다.


“그 사람이요? 저기 있습니다.”


농부는 손가락으로 농경지 한쪽을 가리켰다. 흙투성이가 되어 밭을 갈고 있는 노인이 있었다.


“저 사람이 사냥꾼이라고?”

“사냥꾼은 사냥꾼입니다. 그런데 허풍쟁이죠.”


시밀은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노인은 농기구를 던지며 일어나더니 등을 돌려 허둥지둥 달아났다.


“어디로 가는 거지?”

“집으로 가는 걸 겁니다. 저기, 녹색 별과 가장 가까운 장소로 가면 오두막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가 노인의 집입니다.”

“고맙군.”

“저 노인이 무슨 말을 하든 듣지 않는 게 좋으실 겁니다. 반대편에 사냥꾼이 한 명 더 있는데, 그쪽은 진짜 사냥꾼입니다. 사냥꾼을 찾으신다면 그쪽으로 가보시는 건?”

“두 명이 있다면, 두 명 다 만나보면 될 일이지.”


시밀은 녹색 별을 향해 걸었다.


마을에서 벗어나 덩그러니 세워진 오두막이 있었다.


똑똑.


“들어오시게.”


근엄한 목소리였다.


문을 열자 아까 봤던 노인이 고급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은 채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다만, 옷은 여기저기 구겨져 엉망이었고, 책은 너덜너덜했다.


“사냥꾼을 찾아왔다. 당신이 이 근방 최고의 사냥꾼이 맞나?”

“제대로 찾아왔네. 내가 바로 최고의 사냥꾼이라네. 무얼 바라는가?”


참으로 기묘한 노인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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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비옌 +16 24.09.16 488 53 12쪽
27 승단전 +11 24.09.15 530 58 12쪽
26 하늘의 규칙 +11 24.09.14 577 54 13쪽
25 하늘의 규칙 +7 24.09.13 570 50 12쪽
24 새로운 생활 +16 24.09.12 599 66 13쪽
23 도읍 +6 24.09.11 619 64 13쪽
22 도읍 +13 24.09.10 636 76 15쪽
21 새빛별, 그리고 나. +18 24.09.09 649 87 12쪽
20 작품명, 새빛별. +14 24.09.08 649 71 13쪽
19 대화 +7 24.09.07 632 71 14쪽
18 대화 +5 24.09.06 659 57 15쪽
17 최고의 사냥꾼 +9 24.09.05 705 72 14쪽
16 최고의 사냥꾼 +5 24.09.04 742 75 12쪽
» 최고의 사냥꾼 +6 24.09.03 773 69 12쪽
14 작은 별들의 용사 +15 24.09.02 849 94 16쪽
13 친구 +9 24.09.01 836 84 12쪽
12 살인 +6 24.08.31 817 75 13쪽
11 용사 +6 24.08.30 829 78 14쪽
10 하늘을 보는 눈 +10 24.08.29 825 82 12쪽
9 어른들 +8 24.08.28 843 75 13쪽
8 용사들 +3 24.08.27 861 61 14쪽
7 검, 별, 원, 색. +7 24.08.26 884 72 13쪽
6 검, 별, 원. +3 24.08.25 916 71 14쪽
5 촛불 +7 24.08.24 945 84 12쪽
4 촛불 +14 24.08.23 1,038 86 14쪽
3 작은 별의 용사 +5 24.08.22 1,139 68 13쪽
2 작은 별의 용사 +5 24.08.22 1,254 75 13쪽
1 작은 별의 용사 +7 24.08.22 2,396 8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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