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길을 걷는 용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새글

태대비
작품등록일 :
2024.08.22 10:36
최근연재일 :
2024.09.18 19:0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3,947
추천수 :
2,097
글자수 :
178,837

작성
24.09.15 19:00
조회
529
추천
58
글자
12쪽

승단전

DUMMY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물방울 용사는?”

“마지막에 별 먹는 것에게 습격당했어. 죽었겠지. 그년이면 여기까진 금방 와. 우리는, 우리 목숨 걱정부터 해야지.”


존 본드의 의수가 벌어지며 안에서 포대가 나타났다.


그가 뿜어낸 연기가 포대로 계속 흡수되고 있었다.


시밀 앞에는 새빛별보다 큰 함선 한 대와 뒤틀려 괴물로 변해가는 별 하나가 있었다.


‘새빛별이라는 기준도 수정할 필요가 있겠어.’


빛의 영역에 들어오니 새빛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하늘에 많고 많은 별 중 하나였다는 게 실감이 났다.


일개 함선조차 새빛별보다 크지 않은가.


“함선을 보면 일단 흘러들어온 자의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그래. 물이 있는 바다도 아니고, 하늘에서 저 설계는 비효율의 극치지.”


하늘을 누빌 거라면 배보다 적합한 다른 형태가 더 있을 것이다.


함선이 하늘을 누비기 적합한 형태가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그러니 저건 지구의 지식을 가진 흘러들어온 자의 작품이다.


“별을 가꾸는 사제는 죽었나?”

“별의 근원이 뒤틀렸으니, 살아 있어도 멀쩡한 모습은 아니겠지. 왜? 만나고 싶었어?”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왜 공장 설립을 방관했는지.”

“흘러들어온 자란 놈들은 새로운 지식을 가지고 사람을 유혹하지. 성과를 보여주고, 그걸로 별의 주민들을 유혹하면 사제도 별수 없어. 별을 가꾸는 사제는 별을 가꾸는 자. 가지치기 정도라면 몰라도 자기 손으로 줄기를 자르는 건 허락되지 않으니까.”

“결말을 알고도, 별이 멸망으로 가는 꼴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

“별을 가꾸는 사제는 할 게 못 되는 것 같아.”

“그건 동감.”


한편으로 시밀은 왜 사제들이 별의 독재자가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사제들은 도읍에서 나고 자라 빛도 들지 않는 별에 파견된다.


그들은 정답을 안다. 최소한 잘못된 길을 피할 분별력을 가지고 있다.


수백, 수천 년 동안 키운 별이 제 발로 멸망을 향해 걸어가면, 독재자가 될 법도 했다.


‘사심으로 독재자가 된 사제가 없지는 않겠지만.’


사제의 독단을 허락하면 독재자가 탄생한다.


별의 주민을 존중하면 별은 너무나 쉽게 멸망의 길에 들어선다.


정답은 없다. 그냥 골치 아픈 문제였다.


“별의 주민은 전부 죽었으니, 네가 고민할 필요도 없어졌군. 뭘 맡을래?”

“별 먹는 것.”


별 먹는 것은 괴물로 변한 별 위에서 시밀과 존 본드를 향해 조소를 날리고 있었다.


별의 근원이 뒤틀려 괴물이 되었다. 별의 주민은 당연히 몽땅 죽었다.


이게 일반적인 상황인지, 아니면 저것의 특별한 능력인지는 나중에 알아봐야지.


별 먹는 것이 앞에 있고, 시밀은 별 먹는 것의 멸종을 맹세했다.


“저 함선은 내 건가?”


존 본드가 아까부터 모으고 있던 연기를 발사했다.


그의 몸이 저 멀리 밀려났다.


쏘아진 연기는 검은색 폭탄으로 변해 함선에 구멍을 뚫고, 안쪽에서 폭발했다.


뒤틀린 별은 다섯 개의 팔과 비틀린 안면을 가진 괴물이 되었다. 얼굴에서 공장 굴뚝이 무수히 자랐다.


붉은빛이 검을 감쌌다.


시밀은 별과 별 먹는 것을 향해 반원을 그렸다.


하늘에 빛과 색이 뿌려졌다.


빛인지 색인지 모호한 것이 괴물과 별 먹는 것을 물들였고.


“곡선.”


선이 마무리됨과 함께 붉음이 사라졌다.


몸의 중심이 사라진 괴물은 즉사했고, 별 먹는 것은 간신히 소멸하지 않고 존재를 유지했다.


원리를 사용하진 않았지만, 별 먹는 것이 만든 32개의 별을 조각낸 공격이다. 그걸 버텼다는 것이 내심 놀라웠다.


시밀은 붉은 잔상을 남기며 별 먹는 것에게 접근했다.


“오, 오빠. 살려....”


별 먹는 것의 가증스러운 안면에 점과 선이 그어졌고, 소녀의 형상을 한 별 먹는 것이 조각조각 흩어져 아래로 떨어졌다.


시밀의 뒤에서 날아온 두 발의 연기탄이 함선에 구멍 두 개를 추가했다.


별길을 만들 동력을 잃은 함선이 추락했다.


“너무 쉬운 거 아닌가? 목숨의 위기 같은 건 전혀 없었는데.”

“... 네 전투력이 비정상이라는 것 하나는 알았다.”


존 본드는 시밀이 가른 별을 보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용사는 수십 개 별을 한 번에 부순다고 들었다만.”

“죽음을 각오하면 가능하겠지. 아니면 10위권 안쪽에 들어가던가.”

“10위 안쪽은 뭐가 달라지나?”

“격이 다르다고만 들었지. 10위부터는 임무의 규모도 달라진다고 하던데, 18번째 따위가 그걸 알겠어?”


하늘이 갈라지며 물방울 용사가 나타났다.


존 본드가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그 비싼 걸 쓰다니, 어지간히 급하셨어? 그런데 어쩌나. 이미 전부 끝났는데?”

“헛소리하지....”


물방울 용사는 초상화처럼 굳었다.


저 아래 실시간으로 추락하는 함선, 그리고 반으로 갈라져 하늘을 유영하는 별이었던 것의 조각.


명백히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


“별 먹는 것, 별 먹는 것은?”

“시체도 못 찾고 사라졌지.”

“놓쳤다는 말을 돌려 하는 건 아니겠지?”


물방울 용사가 존 본드를 노려봤다.


무기라도 뽑을 분위기였다.


“아무리 실적이 고파도 동료의 말까지 의심하면 쓰나.”

“천만 단위의 별에서 한순간에 별빛을 뽑아먹을 수 있는 녀석이었다. 18등 따위가 단숨에 죽이는 건 불가능해.”

“18등이라니 줄 세우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잖아. 18번째라고 해줘. 그리고 난 내가 죽였다곤 안 했다? 여기 소멸의 용사께서 직접 손을 쓰셨지.”


시밀을 본 물방울 용사는 얼굴이 구겨진 종이가 되었다.


거의 혐오하는 무언가를 보는 수준이었다.


“보조 인원 따위가 아니라 용사였다고? 그것도 20번째?”

“내가 쟤 어미라도 죽였던가?”

“아니. 17등은 그냥 네가 싫은 거야. 나보다 등수가 하나씩이나 높은 17등께서는 귀족 출신에 별 먹는 것 사냥에도 한 번 실패했거든.”


물방울 용사가 자신을 싫어하는 두 번째 이유는, 역시 예상했던 그거였다. 하지만 첫 번째 이유는 시밀도 인과를 알 수 없었다.


“귀족인 것과 나를 싫어하는 게 관계가 있나?”

“20번째 용사의 예언이지. 20번째가 나타나고, 세계가 진짜 멸망하면 가장 손해 볼 사람이 누구겠어?”

“제임스.”

“마음대로 사람 이름 바꾸지 말아줄래? 난 존이 좋단 말이다.”

“도읍에 귀족이라는 개념은 없다고 들었다만?”


도읍은 모든 권력이 성지의 사제들에게 모인, 일종의 절대 중앙집권제다.


도읍을 벗어난 별 중에는 신분제 사회가 만들어진 곳도 있겠지만, 도읍에 귀족 같은 직책은 없다.


리질란에게 들은 설명이니 잘못된 정보일 가능성은 우선 없었다.


“귀족이 꼭 왕이나 군주한테 임명받아야 귀족인가. 돈이랑 권력이 있고, 그걸 세습하면 귀족이지. 우리 자랑스러운 17등은 사제를 다수 배출한 소위 명문가거든?”

“사제가 되는 시점에서 가문과의 연이 끊어진다고 들었다.”

“연을 끊었어도, 그래도 가족이 하는 부탁이니 조금 더 꼼꼼히 살펴본다던가, 같은 부탁이 두 개 들어오면 가족들의 부탁을 먼저 들어준다든지 하는 것들은 가능하지. 그런 사소한 편의들이 모이면, 그게 귀족이고.”


요약하자면 그거였다.


시밀은 불길한 예언의 주인인 20번째 용사이자 물방울 용사가 실패한 별 먹는 것 사냥에 성공한 용사다.


그래서 그녀가 일방적으로 시밀에게 적대감을 보인다.


“하나 더. 네가 나타나기 전까지 최연소 용사와 최단기간 출세 기록을 모두 우리 17등께서 가지고 계셨거든.”

“최연소?”

“27살에 위업을 이루고 빛에게 인정받은 용사. 참고로 그 이전 최고 기록은 133살이었다?”


새빛별에서는 70살이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노인이었고, 지구에서도 100살이면 장수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시밀의 나이 개념도 자연스레 거기에 맞춰졌다.


133살이 최연소 용사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했다.


“너, 몇 살이지?”


물방울 용사가 시밀에게 물었다.


“13살.”


더는 일그러질 이목구비가 없을 줄 알았는데, 시밀의 나이를 들은 물방울 용사의 얼굴은 더욱 구겨졌다.


시밀은 불쾌함을 넘어 유쾌해지기 시작했다.


저 얼굴이 어디까지 찌그러지나 보고 싶어졌다.


아주 찌그러뜨려 쓰레기통에 넣어 버려야지.


“거짓말하지 마라. 13살이 그것을 죽이다니. 태어나자마자 검을 들었어도 불가능하다.”

“재능이 넘치나 보지. 누군가와 달리.”

“그 재능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


물방울 용사가 기어이 검을 뽑았다.


얇은 물방울이 그녀의 검을 감쌌다.


“물방울 용사가 소멸의 용사에게 승단전을 신청한다. 연기의 용사, 증인이 되어라.”

“자기보다 순위 낮은 용사한테 승단전? 미쳤냐?”

“나는 지극히 제정신이다. 20등이 정말 나보다 뛰어난 재능과 실력의 소유자라면 하루빨리 높은 등수를 차지하는 게 빛과 성지 전체의 이득이겠지.”

“그렇다는데? 어쩔래?”


물방울은 처음부터 대화가 통하는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떠올린 존 본드는 깔끔하게 대화를 포기했다.


“여기서 물방울을 죽이면, 도읍이 무너지나?”

“상관없어. 우리 따위는 백 단위로 죽어도 아무 영향 없으니까.”

“그럼 받는다.”


시밀과 물방울 용사가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존 본드는 두 사람 사이에서 증인 겸 심판이 되었다.


“발포와 함께 시작. 승패 결정 방식은 패배 인정 혹은 죽음. 하, 모처럼 멀쩡히 임무를 끝냈더니, 지들끼리 죽이고 지랄이야.”


대화를 포기했어도, 상황 자체에서 오는 엿같음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신랄한 비판과 함께 존 본드가 방아쇠를 당겼다.


탕!


시밀은 붉은빛의 세계로 들어갔다.


물방울 용사가 움직였다.


붉은빛의 세계는 별 먹는 것도 자신의 근원을 깎아가며 도달한 영역이다.


물방울 용사는 그 안에서 제법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는 전신에 작은 물방울을 두르고, 그걸로 움직임을 보조했다.


‘극히 일부지만, 원리를 빌린 기술이야.’


물방울 용사의 물방울은 원리를 품고 있었다.


시밀의 것이나 별검의 것과 비교하면 한없이 작다. 원리의 끄트머리에 겨우 닿은 수준이다.


‘원리로 전부가 아닌가.’


저 물방울에서는 원리 말고 다른 힘들도 섞여 있었다.


어떤 기상천외함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처음부터 상대해주지 않는 게 최선.


판단을 마친 시밀은 양손으로 잡고 있던 검을 한 손으로 바꿔 잡았다.


이 근처에는 사람이 사는 별이 잔뜩 있다.


별 먹는 것을 죽일 때처럼 일대를 삭제해버리는 공격은 안 된다.


화가 조합에서 그림을 그리며 붉은빛과 색연필을 다루는 요령을 잡았다.


‘적당히. 별과 사람을 피해서.’


하늘을 보는 눈으로 궤적을 계산한다.


그리는 건 완전한 원.


시밀의 몸이 대각선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빙글. 한 바퀴 돌았다.


“어?”


그런 단말마를 들은 것 같았다.


몸을 한 바퀴 돌린 시밀이 다시 앞을 보았을 때, 물방울 용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시밀은 물방울 용사가 사라진 자리를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존 본드에게 작은 빛을 날렸다.


빛에 이마를 맞은 그가 정신을 차렸다.


“승단전 결과, 소멸의 용사 승.”


그 선언이 신호가 되었던 건지, 낯선 빛이 시밀의 몸을 한 바퀴 감고 사라졌다.


용사가 될 때 보았던 성지 깊은 곳의 빛과 약간 닮은 것도 같았다.


“깔끔한 원샷이었어.”

“샷이 아니고 검이었는데?”

“검으로 쏘면 그것도 샷이지.”


존 본드가 시밀의 어깨를 툭 쳤다. 이제는 없는 누군가가 떠오르는 행동이었다.


“돌아가자.”


시밀은 마지막으로 별이 있던 자리, 천만 이상의 사람이 살던 별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별의 주민들은 별이 뒤틀릴 때 함께 별에 흡수되었다.


외곽이 아닌 빛의 영역에서도 별의 주민이 별과 운명을 함께하는 건 다르지 않았다.


반으로 쪼개진 괴물의 흔적만을 남겨두고, 시밀과 존 본드는 도읍으로 복귀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별길을 걷는 용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비탄의 사랑 NEW +9 7시간 전 265 35 15쪽
29 비탄의 사랑 +8 24.09.17 435 51 13쪽
28 비옌 +16 24.09.16 488 53 12쪽
» 승단전 +11 24.09.15 530 58 12쪽
26 하늘의 규칙 +11 24.09.14 577 54 13쪽
25 하늘의 규칙 +7 24.09.13 568 50 12쪽
24 새로운 생활 +16 24.09.12 598 66 13쪽
23 도읍 +6 24.09.11 619 64 13쪽
22 도읍 +13 24.09.10 635 76 15쪽
21 새빛별, 그리고 나. +18 24.09.09 648 87 12쪽
20 작품명, 새빛별. +14 24.09.08 648 71 13쪽
19 대화 +7 24.09.07 632 71 14쪽
18 대화 +5 24.09.06 659 57 15쪽
17 최고의 사냥꾼 +9 24.09.05 704 72 14쪽
16 최고의 사냥꾼 +5 24.09.04 742 75 12쪽
15 최고의 사냥꾼 +6 24.09.03 772 69 12쪽
14 작은 별들의 용사 +15 24.09.02 848 94 16쪽
13 친구 +9 24.09.01 836 83 12쪽
12 살인 +6 24.08.31 817 75 13쪽
11 용사 +6 24.08.30 829 78 14쪽
10 하늘을 보는 눈 +10 24.08.29 825 82 12쪽
9 어른들 +8 24.08.28 843 75 13쪽
8 용사들 +3 24.08.27 860 61 14쪽
7 검, 별, 원, 색. +7 24.08.26 884 72 13쪽
6 검, 별, 원. +3 24.08.25 915 71 14쪽
5 촛불 +7 24.08.24 945 84 12쪽
4 촛불 +14 24.08.23 1,038 86 14쪽
3 작은 별의 용사 +5 24.08.22 1,138 68 13쪽
2 작은 별의 용사 +5 24.08.22 1,254 75 13쪽
1 작은 별의 용사 +7 24.08.22 2,396 8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