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몸의 변화
“허어억···!”
나는 눈을 뜨자마자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검은 피를 토했다.
“우웨엑!”
피를 토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여긴 학교 뒷산인데···?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정신이 좀 들어?”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거대한 바위에 앉아 달빛을 조명 삼고 있는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바위에서 가볍게 내려왔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상처는 잘 아문 것 같네.”
나는 그녀의 말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몸을 훑었다.
“상처?!”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입고 있던 교복이 찢어져 너덜너덜해지긴 했지만, 몸엔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이런 황당한 상황에 혼란이 밀려왔다.
“나··· 나, 왜 이래?”
“너, 죽을뻔한 건 기억해?”
“내가 죽을 뻔했다고?”
“충격에 기억을 잃은 건가?”
그녀는 인상을 쓰며 이마를 짚다 되물었다.
“뭐, 떠오르는 건 없어?”
그녀의 질문에 어렴풋이 떠오른 기억.
“늑대···”
“늑대?”
“나한테 늑대가 달려오던 것 같은데···”
그 순간 머리를 깨는 듯한 두통이 몰려왔다.
“으으윽···!”
그녀는 괴로워하는 내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기억하려 하지 마. 별로 좋은 기억도 아니고, 기억해 봤자 힘들어질 테니까.”
“응?”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오늘 있었던 일을 잊은 채 조용히 살아.”
“그게 무슨···”
“아, 그리고 빚은 갚았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허공을 걷듯 가볍게 튀어올랐고,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
그날 밤.
저택으로 노인이 들어서자, 주방에서 일하던 중년 여성이 그를 맞이했다.
“오셨어요?”
“시간도 늦었는데 퇴근하지 않고, 왜 아직 계셨습니까?”
“서재에 불이 켜져 있어서 확인해 보고 퇴근하려고 했어요.”
노인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재요? 분명히 내가 불을 끄고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는 잠시 고민하다 그녀에게 말했다.
“제가 올라가 볼 테니, 아주머니는 얼른 퇴근하세요.”
서재로 올라가 문을 열자, 책상 위에 앉아 있는 명월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고요한 밤과 어울리지 않게, 눈부신 모습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한백.”
명월의 말에 한백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 오랜만입니다.”
“내가 너무 늦은 시간에 왔나?”
“아닙니다. 아가씨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명월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그나저나 그동안 잘 지냈어?”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명월은 한백의 모습을 보다 머리를 긁적이고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이미 은퇴한 사람한테 이런 말 하기 미안하지만, 네 도움이 필요해.”
“미안해할 필요 없습니다. 전 언제나 아가씨와 이랑 가문을 위해 움직일 준비가 되어있으니깐요.”
“그럼, 일단···”
명월이 배고프다는 듯 배에 손을 올리자, 한백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준비해 드리죠.”
잠시 후, 한백이 부엌에서 요리를 내오자, 명월은 음식을 먹으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 한백이야.”
“다행이군요.”
한백의 목소리에는 명월을 향한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가주님께서는 잘 계시는가요?”
한백의 질문에 명월은 들고 있던 갈비를 내려놓았다.
“왜 그러십니까?”
“엄마··· 아빠···”
명월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자, 한백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눈물을 쏟아낸 명월은 눈가가 빨개진 상태로 한백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전부 설명했다.
“미안··· 오랜만에 만났는데, 추태를 보였네.”
“아닙니다. 설마 가주님께서 그런 일을 당하셨을 줄은···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이 상태로 가문에 돌아가게 되면, 할아버지가 실망하실 거야.”
명월은 잠시 뜸을 들이다 한백을 바라봤다.
“할아버지를 위해서라도··· 또 이랑 가문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두억시니에게 복수하겠어.”
***
깜깜했던 방 안으로 햇빛이 들어오자 슬며시 눈을 뜨고 창밖을 바라봤다.
“젠장···”
자려고 침대에 누웠지만, 어제 있었던 일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피곤함을 이겨내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침대 밑에 어젯밤 입었던 교복이 눈에 들어왔다.
피투성이에 찢겨 너덜너덜해진 교복이었다.
“어제··· 꿈은 아니었어.”
잠시 고민하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태권도 트로피를 바라봤다.
“그렇다고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뒹굴던 교복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러고는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학교로 향하던 길에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부터 한 끼도 못 먹었네.”
근처 편의점에 들러 참치마요 삼각김밥과 사이다를 사서 나왔다.
삼각김밥을 한입 물자,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 맛도 안 나···’
참치가 가득 들어있는 부분을 베어 물어도 식감만 느껴지고,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사이다를 마셔도 탄산만 느껴질 뿐,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갑작스러운 무미건조함에 당황스러웠다.
그 순간 등 뒤로 누군가 날 향해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등 뒤로는 장신에 노란 머리의 남성이 살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서지승···”
“어우, 아침부터 이런 걸 먹으면 어떻게 해.”
서지승은 빈정거리며 내 손에서 삼각김밥과 사이다를 쳐내버렸다.
삼각김밥은 바닥에 나뒹굴고, 사이다는 터져 나와 길가에 흩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삼각김밥과 사이다를 한 번 스윽 살피고는 녀석을 바라봤다.
녀석은 웃음을 참는 듯 쿡쿡거리며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하냐?”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고 녀석을 바라봤다.
서지승은 겁먹지 않고 덤비는 내 모습에 잠시 당황한 듯 움찔했지만, 곧 비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네가 꼰질렀다며?”
나는 그 말을 듣고 기억이 떠올랐다.
서지승과 그 패거리가 애들을 괴롭히는 장면을 보고, 선생님께 알렸던 일.
그 일로 서지승 패거리는 가벼운 징계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녀석의 비웃음에 굴하지 않고 녀석을 노려봤다.
“뭐가 문제야?”
서지승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노려보았다.
“문제? 당연히 있지. 너 때문에 얼마나 귀찮았는지 몰라?”
“일주일 동안 교내 봉사? 그게 귀찮았다고?”
녀석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런 일을 겪었는데도 보복하려고 하려는 걸 보니까, 너, 아직 정신을 못 차렸···”
그 순간 녀석은 나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이 개새끼가! 너, 진짜 뒤지고 싶냐?”
“자신 있으면 해봐.”
그는 내 말에 주변을 살폈다.
주변엔 등교하던 학생들과 출근하던 어른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를 향해 쏠렸다.
“여기서 네가 나 때리면 꽤 재밌어지겠지?”
서지승은 이를 빠득 깨물다 혀를 차고 멱살을 풀었다.
“앞으로 재밌어질 거야. 각오해.”
서지승은 이 말을 끝으로 내 어깨를 밀치며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누군가 날 향해 달려오는 또 다른 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통통한 남자애가 서 있었다.
“김수호, 너 괜찮아?!”
그는 놀란 표정으로 날 이리저리 살폈다.
“권태우?”
“뭐야? 저 새끼가 왜 너한테 시비를 걸어?”
태우는 서지승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다 날 바라봤다.
“전에 저 새끼가 애들 괴롭히는 거 봐서 선생님한테 말했는데, 내가 말했다는 걸 알아냈나 봐.”
태우는 답답하다는 듯 인상을 구겼다.
“아오···! 그러니까 그냥 가만히 있지.”
“저런 놈들을 보면 가만히 못 있겠더라.”
“그래도 좀 참아. 저런 새끼랑 싸우면 너만 골치 아파지잖아. 안 그래도 너, 선수 출신이라 일반인이랑 싸우면 살인미수잖아.”
“그거 터무니없는 낭설이야. 그런 법은 존재하지 않아.”
“그렇다 하더라도 서지승, 저 새끼··· 아빠가 서지욱이라고! 국회의원, 대한당 당대표!”
태우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다는 미소를 지었다.
“부모가 잘났다고 남한테 피해를 줘도 된다는 법이 어디 있어. 잘못을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지.”
“그래도 좀 사릴 땐 사려라. 우리 같은 서민이 무슨 힘이 있다고··· 저 새끼한테 찍히면 답도 없다는 거 몰라? 박···”
태우는 말을 끊고 주변의 시선을 살핀 뒤, 작게 속삭였다.
“박민석도 걔한테 개기다가 서지승한테 죽기 직전까지 맞고, 지금 혼수상태로 병원에 입원했다잖아.”
“그것도 헛소문일 거야.”
태우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학교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태우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축구공이 엄청난 속도로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휘이익-!
퍼억-!
“미안, 미안~ 괜찮···?”
공을 찬 녀석들은 해냈다는 표정으로 헤실헤실 웃으며 다가오던 중 공을 잡고 있는 내 모습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날 바라봤다.
“조심해.”
그들에게 가벼운 경고를 하고, 태우와 함께 다시 교실로 향했다.
“이것 봐! 서지승한테 찍힌 첫날, 축구공이 날아온다고? 이건 100%··· 서지승 짓이야. 그냥 걔한테 가서 사과해.”
“내가 왜? 난 잘못한 거 없어.”
“멍청아. 네가 잘못한 게 없어서 사과하는 게 아니야. 네가 약하기 때문에 사과하는 거야. 세상은 돈과 권력으로 움직인다니까?”
“······”
“그게 현실이야.”
태우의 말에 이를 꽉 깨물고 미소를 지었다.
서지승과 그의 패거리들은 나를 향한 괴롭힘을 조금씩 더 악랄하게 진행해 나갔다.
수업 중에는 종이와 지우개를 던지고, 쉬는 시간에는 내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가거나, 등 뒤에 욕이 적힌 쪽지를 붙이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밥을 받아 자리에 앉자 태우가 내 앞에 앉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 진짜 괜찮아?”
나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귀찮고, 유치하긴 한데, 그것 말고는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아.”
“새끼들 진짜···”
“너도 나랑 멀리하는 게 좋을 거야. 괜히 나 때문에 피해 보겠다.”
“나 말고 네 걱정이나 해. 그냥 선생님한테 말하는 건 어때?”
“선생님한테 말해봤자 이미 자기네들이 뭘 하든 가볍게 끝낼 거라는 걸 알고 있어. 저놈들은 내가 지네들과 싸우길 바라고 있는 거라고.”
말을 마치고 밥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그리고 여전히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표정이 굳어지려는 순간, 누군가 내 머리 위로 국물을 쏟았다.
“아이쿠, 실수. 괜찮지? 그럼 난 간다~”
녀석의 뒤로 서지승 패거리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 또 너네냐?’
지금까지는 참을만했다.
음식을 먹기 전까지는.
음식 맛이 안 느껴지기 전까지는!
“야!”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뱉은 말 한마디에 순간 주변 공기가 싸해졌다.
“뭐?”
녀석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괜찮다고 말하는 건 내가 하는 거고, 너는 사과해야지.”
“그래서? 뭐, 어쩌라고. 불만 있으면 치던가.”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주변을 살폈다.
녀석들은 내가 도발에 걸려들기를 바라고 있다.
“조심해라.”
‘내가 멍청이도 아니고, 이런 유치한 도발에 걸려들 것 같아?’
나는 이 말을 끝으로 급식실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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