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든 자들은 다 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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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디마
작품등록일 :
2024.08.27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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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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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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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달 (10)

DUMMY

***


천인위전 아흐레 차의 밤.

나는 마루에서 하늘을 바라봤다.


위전 첫날 사라진 달은 제법 차올랐고, 기분 탓인지 만월로 향할수록 정신이 맑아진다.

어검을 펼친 반동도 해소해 몸 상태는 만전이야.


“언제 주무시려고요?”

“음······ 조금만 이따가.”


가까이 다가와 묻는 화월에게 답했다.

은은하게 달빛을 받은 뺨이 사랑스러웠다.

슬쩍 검지로 눌러보자 웃음기 없는 의문이 돌아왔다.


“왜요?”

“그냥, 좋아서.”


이런 류의 장난에는 둔감한 아이다.

반기거나 싫어하기 전에 감흥을 못 느낀다고 할까.

가끔은 맞춰줄 적이 있어 그것만으로도 기뻤다.

예컨대 지금처럼.


“왜?”

“그냥, 좋아서요.”


학습된 태도로, 받았으니 빚을 갚듯 내 어깨에 기댄 화월이 답한다.

동생의 여린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나는 웃었다.


안온하고 행복한 시간.

하지만 빠르면 내일, 늦어도 모레에는 막을 내리겠지.

슬슬 정도 십오문이 들이닥칠 때다.


“새벽까진 괜찮을 거야.”


캄캄한 밤은 어검술을 갖춘 나한테 이롭다.

도망치든 싸우든 효율을 극대화할 여건이기에.

적들은 해가 뜨고서야 찾아올 거라 일러주는데 화월이 속삭였다.


“충분히 즐거웠어요.”

“응.”

“걱정하지 마세요.”

“······응.”


열흘 가까이 함께 지냈다.

숲을 산책하고, 노래를 부르고, 서로 요리를 만들어줬다.

동생은 충분히 즐거웠단다.


할 수 있는 만큼 가르쳤다.

역용법과 호신술을 비롯한 여러 생존법.

동생은 걱정하지 말란다.


이제껏 쌓은 추억이면 족하다고.

혼자서도 어려움이 없으리라고.

나는······ 둘 다 너무나 아쉽건만.

괜히 기지개를 켜서 슬픔을 다스리며 권했다.


“반 시진 정도만 명상하려는데 먼저 자겠니?”

“달이 예뻐서 오래 보고 싶은걸요.”


내가 심신을 가다듬는 동안 호법을 서겠다는 의미다.

배려를 받아들여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기의 흐름이 잔잔하되 또렷이 느껴진다.


내 무공을 구성하는 축은 크게 셋이다.

우선 입성하기 전 유년 시절부터 수련해온 공부가 근원.

그다음이 화월과 만나고부터 익힌 강호의 무학.

마지막으로 이소청이 내린 가르침까지.


근원은 간결하고, 실전적이며, 재능에 의존한다.

무얼 배우든 결국 학습자의 소질과 기량이 판가름한다는 냉정한 논리로.

그 기반에다 천 년 강호 무학을 더해 법도를 갖추었다.

양측을 조화하며 생기는 틈은 이소청의 가르침이 메웠다.


그리하여 태어난 것이 월광무.

달의 현상을 본뜬, 초식 개념보단 도구로서 가변 상황에 대응하는 무공이다.


“동롱(朣朧), 은파호(銀波湖), 조(朓)······.”


기존에 물리친 문파들은 배제하고 조만간 치를 싸움을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소림사, 무당파, 화산파, 종남파, 공동파, 곤륜파, 개방.

남궁세가, 하북팽가, 제갈세가.


본산이 너무 멀어 곤륜파는 성 내의 무인들만 참전하려나.

그렇다면 최고수는 위전 서열 6위인 송일헌이다.


개방은 만통협개와 양소봉의 성정을 볼 때 반반.

어차피 정보 문파라는 특성상 추적은 경계해야 한다.


“하나, 하나, ······둘, 하나.”


성을 나서려면 적어도 한 번의 어검이 필요했다.

상단전에 모아둔 기운으로 최대 셋.

하나를 채우는 데 보름이고, 전날 한 차례 운용했으니 위전 종료까지 두 번인데.


기습적인 도주를 택할 시엔 온존하겠으나 악수(惡手)야.

앞서 타격을 입히고 따돌리는 편이 낫다.


그만한 자신은 있다.

놈들에게 여유를 주는 손실보다 단숨에 돌파하는 이득이 크다고.

저쪽은 나와 반대로 판단해 기다렸듯이.


“두 번.”


넉넉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다.

성에 머무르기만 해선 필패지만 탈출한 이후부턴 목표를 달성하리라.

내 생사와 무관하게 화월은 반드시 사는 길.

때마침 입신경을 여느니······ 헛된 기대는 접어야겠고.


절정고수의 극한에서 이 년.

벽을 넘어서 얻을 상천현계만 구상해뒀을 뿐 흐릿한 안개에 가로막힌 경지다.

이소청이 경고한 대로 천살(天殺)을 버린다면 이룰까.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버림으로써 연명하는 삶 따윈 사양한다.

살려서 죽겠다.


“들어가서 잘까?”

“네.”


나란히 놓인 이부자리에 우리는 누웠다.

마지막일지 모르는 일상이 안타깝고도 소중했다.

두 뼘 거리 숨소리를 들으며 옥가락지를 쥐어본다.

동생의 신분을 증명해줄 흔적.


“아월.”

“왜 그러세요?”

“······잘 자렴.”


결국 말하지 않았다.

아직은 내가 짊어져야 할 일이니까.

조바심에 덜어버리면 칼끝이 무뎌질까 봐서.


죽음을 각오했지만, 그래도 나는 살아가고 싶어.

너와 함께하는 동안은.


그리고 밤이 지나간 묘시(오전 5시~오전 7시).

멀리 숲 외곽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정도(正道)는 아닐지언정 가장 확실한 전략인가.


화르르륵!

결계 범위가 점차 줄어간다.

기운을 실은 자연물이 소멸하면 당연히 유지되지 않기에.

어느새 깬 화월이 차분하게만 묻는다.


“기다릴까요?”

“응, 망(望)부터 다섯을 세고 뛰쳐나오렴.”


아이에게 단검을 건네며 기감으로 파악했다.

적의 숫자는 일백.

사천 네 문파와 규모가 비슷하되 실력은 훨씬 윗줄이다.

섣불리 달아난들 추격할 테니 승부를 내야지.


불과 일각이면 화염이 도달할 집에 동생을 남겨두곤 숲길로 나아갔다.

힘겹게나마 버티는 결계를 통해 적을 가늠한다.


일류 중에서도 내로라할 자들이 칠십여 명에 나머지는 모두 절정고수.

곤륜파는 불참했고, 개방은 양소봉만 왔다.

······그럭저럭 해볼 만하네.

나는 검을 쥐었다.


“삭(朔, 초하루).”


월광무 어검술의 기수식.

상단전에 충만하던 공력이 흘러나와 전신을 감싼다.

머리가 지끈한 현기증은 이를 악물어 견뎠다.

다음 순간 타오르는 숲을 헤치며 검이 날았다.


서걱, 서걱- 파아아아!

나무를 베고 불꽃을 몰아내는 힘에 시야가 트였다.

무림인인데도 유생처럼 입은 삼명수재 제갈현승이 보인다.

꼴같잖은 모습을 비웃곤 오른손을 한 치만 그었다.


“······!”


놈이 흠칫해 웅크렸지만 역부족.

어검이란 단지 검을 움직이는 수단이 아니다.

강호에 이름 높은 쾌검보다 빠르고, 중검보다 강하며, 환검보다 변화무쌍한 검격을 전방위 자유로이 휘두른다.

또한 내력 순도에서도 통상의 강기공을 압도하니 제깟 얼간이가 맞서겠는가.


촤아악!

미세하게 투로를 바꾼 습격이 놈의 어깨를 갈랐다.

내 심령과 연결된 검을 조종해 이번에는 목을 노렸다.

제갈현승 근처에 있던 노고수가 외친다.


“승아!”


황급히 내달린 그가 소가주를 보호하고자 발검했다.

여기 제갈가 무인 가운데선 으뜸이야.

삼십여 장 떨어져 놈들을 응시하며 나는 일렀다.


“광랑(黋朗, 환한 불빛).”


스아아앗!

검강이 주변 대기를 태우면서 발생한 빛무리가 적의 시선을 가렸다.

극히 짧은 순간이었으나 최적의 효과였다.

어검은 방향을 틀고, 노고수의 대처는 빗나가고, 폐를 찔린 제갈현승이 핏덩이를 토한다.


간발의 차로 죽이진 못했으되 너는 오늘부터 말보다 기침을 많이 할 신세야.

그나마도 목숨을 부지해야만 누릴 호사고.


“이리 모이거라-!”

“커허억!”


책임자들의 지시가 늦었다.

소리가 닿기 전 베어내는 어검이 문파마다 한두 명, 개중에 약한 축을 골라서 무력화하곤 하늘로 솟구쳤다.

방어 태세였던 적에게 기습한 것치고는 괜찮은 성과네.

이제 저들이 반격할 차례인데.


타앙!

무당과 화산, 남궁가와 팽가의 책임자 넷이 도약했다.

각자 동서남북 사방을 점하더니 강기가 깃든 병장기로 검을 막아선다.

지상에선 쓰러진 제갈현승을 살필 노고수와 소림 승려를 제외한 종남·공동의 책임자가 여럿을 이끌고 내게 접근해왔다.


어검과 시전자를 분리해 개별로 상대하려는 전법.

말하자면 각개격파의 위기다.

물론 이쪽이 아니라 너희들이.

다가오는 무리에 쇄도하여 내력을 일으켰다.


“만간조(滿干潮, 밀물과 썰물).”

“헛!?”

“이런!”


지상과 하늘에서 동시에 경악성이 나왔다.

무기도 없이 적수공권인 내가 날린 기운이 무인들을 끌어당겼고, 어검은 절정고수 넷을 밀어내 공간을 확보했기에.

달이 바다 높낮이를 정하듯 상단전을 통해서만 가능한 최고 수준의 집적·발산으로 적과 간격을 조절하는 기술이다.


피유웅-

자유로워진 검이 하강해 손아귀에 잡힌다.

당황하는 놈들을 노려 그어냈다.

만간조 연계 영허사(盈虛絲, 차고 기우는 달의 실타래).


강기와 강기가 맞붙으면 강한 쪽이 이긴다.

만간조의 파동이 회피조차 허용치 않는다.

따라서 필승(必勝), 필중(必中).

밝고 둥근 빛이다가 회전해 테두리부터 풀려나간 상단전 검강의 실이 피하지 못하는 적들에게 닿았다.


“끄아아악!”


목과 팔다리와 검이 잘려 어지러이 나뒹군다.

셋을 죽이고, 둘을 병신으로 만들고, 종남과 공동 책임자는 비교적 무사했으나 내상을 입었다.

여기까지는 최선이라 할 만해.

나로서도 부담이던 찰나의 격돌은 뒤로하고 발을 굴렀다.


콰앙!

한달음에 십여 장을 이동해 숲 입구로 다다랐다.

설핏 눈이 마주한 개방 후개 양소봉에게서 무표정하게 서린 경탄과 울분이 전해졌다.


<난 없는 사람 치시죠.>


너라면 그럴 줄 알았지.

낮게 호흡하며 현시점 주의할 적을 헤아려봤다.


양소봉과 제갈현승을 뺀 사제 일곱.

소림·무당·화산, 남궁·팽가의 책임자 다섯.

미적대는 꼴을 보니 소림사도 관망하겠고 도합 열 명이네.

사제들 위주로 반절까지 줄인다.


“덤벼라.”


무황이 허락지 않았는데 후기지수 아닌 자가 위전에 개입할 리 만무하다.

기호지세라 설령 사제들을 잃어도 문파 차원에서 속행될 테지만, 명분쯤은 앗아야 내게 유리해.

너희끼리 견제하며 공을 세울 심산이잖나.


카앙- 스아아아!

자그마한 실수가 곧 위기인 싸움이 펼쳐졌다.

손을 거들 최저선의 자격조차 강기공 절정지경.

어검은 아끼되 월광무를 전력으로 구사하는데도 버겁다.


저들이 작정했다면 나는 벌써 죽었어.

큰 틀에선 합공이지만 두서넛씩 여섯 문파가 경쟁하기에 위태로운 생로를 밟을 수 있다.

그마저 한계가 찾아왔고.


“잡았다!”


쿠아아앙!

팽가의 무황 일맥 팽수림이 도격을 내리쳤다.

이에 뒤질세라 화산 단리선아, 무당 현오, 남궁가 남궁산이 검을 긋는다.

보조해줄 책임자가 부재한 종남 곡정의와 공동 사예광도 무시할 순 없다.


······이번엔 쓸까.

결심하고 상단전 내력을 소모했다.

월광무 어검 빙륜갑(氷輪鉀, 얼음처럼 차가운 달 갑옷).


사아아아-

나를 중심으로 시린 강기의 방벽이 피어났다.

백도십절도 구현하기 어려운 무위.

다른 공격들은 튕기곤 정수리를 쪼개려던 칼만 밀어서 쥐자 팽수림이 외쳤다.


“호신강기(護身罡氣)!?”

“잡았다.”


똑같이 돌려받은 한순간 그녀에게 두 선택지가 주어졌다.

칼을 놓고 물러나 왼쪽 팔다리가 잘리거나.

오히려 더욱 치열하게 필생의 힘을 담아내거나.

히죽 입꼬리를 올리며 팽수림이 고른 답은 멍청하고도 용맹했다.


“이야아아앗!”

“훌륭하다.”


콰지직- 서걱!

팽가도문 신병 금강호도와 주인이 일거에 양단되었다.

다만 강호십대보도 중 하나, 그리고 천인위전 서열 4위이자 팽가 백년제일지재는 사멸하되 위명만큼의 상흔을 새겼다.

망자가 단말마처럼 흩뿌린 핏줄기를 넘어 날아든 아홉 강기공이 약해진 빙륜갑을 부쉈다.


사제들과 각파 책임자를 합해 처음 열일곱에서 절반가량 쳐냈다기엔 허상이야.

양소봉, 연허, 제갈가 노고수와 소림 승려는 건재하다.

종남·공동의 책임자들도 내상을 수습하고 싸우려 들겠지.

이대로는 필패다.


“계속 쏴라!”


놈들이 정공법을 포기했다.

호신강기를 본 직후부터 근접전은 절대 삼가며 원거리서 기공만 쏟아낸다.

저들에겐 올바른, 내게 위협인 방식.


당장 사용을 중단한들 앞으로 반의반 각(약 4분)이 어검 발동의 한계다.

월광무로는 아슬아슬하게 두 번인가.


콰아앙! 피싯-

연이어 날아드는 강기를 막다가 몇 군데 살갗이 찢어졌다.

목의 치명상을 피하느라 왼쪽 팔꿈치가 베였다.

그때 검은 토혈을 게워낸 제갈현승이 기진맥진 악을 썼다.


“가라······ 멍청하니 있지들 말고, 동생 놈이라도 잡아!”


제갈가 무인들이 불타는 숲을 달린다.

구파오가를 막론한 여타 십오문은 한발 늦게 뒤따랐다.

화월을 인질 삼아 전투와 논공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나는 스쳐 지나는 적을 일별했다.

결코 부주의라 칭해선 안 될, 실낱같은 감각의 분산이었다.

그것으로 승부가 갈렸다.


“지금!”


휘오오오오!

절정고수 스무 명이 일제히 강기를 자아냈다.

사각(死角) 없는 총공격이며 빙륜갑을 써도 막아낸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멀찍이서 양소봉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내 결단한 듯이 무언가를 대비하는 자세다.

마음은 고맙지만 사양하겠어.


통증 어린 고양감을 맞이해 시공간이 느리게 흐른다.

검 끝에 조소를 머금고서 내심 일렀다.

너희 버러지들이 아직도 이 은서천을 얕봤구나.


저마다 피워올린 스무 갈래 빛살이 시전자를 떠나기 직전.

검을 겨누어 나직이 읊조렸다.


“망(望, 보름).”


—————.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눈부신 보름달의 은광에 휩싸인 모든 기운이.

나는 땅을 박찼다.


“온다. 강기공부터!”

“음? 사숙 조심하십시오! 내력이 이상-”


유형화해 실체를 두진 못하고 흩어지는 검강 너머 무인들을 단칼에 죽였다.

월광무 어검술 최고절기 망(望)의 진정한 공능이다.

위전 서열 12위 태을승검(太乙承劍) 곡정의와 종남파 장로 풍운산인(風韻山人) 적엽평 외 1인, 살(殺).

······하나.


“이리도 신묘함은 들은 바 없거늘.”

“으하하하! 과연 서천검월이 우리 시대의 제일이로다! 그대 일생토록 패배치 마시게나. 이기고 이겨서······.”


심장을 찌른 두 무인이 절명했다.

만천화우를 지울 땐 감췄으니 모를 수밖에.

위전 서열 3위 복마협(伏魔俠) 사예광과 공동파 장로 소요우사(逍遙羽士) 여문표, 살(殺).

······둘.


“상천현계다. 산아, 피하거라! 커헉······.”

“백부님!”


별안간 대여섯 장을 떠밀려가 살아난 남궁산이 비통해 울부짖었다.

잘못 볼 법하나 상천현계는 아니지.

남궁세가 창궁제일대 대주 창룡무적검(蒼龍無敵劍) 남궁학 외 2인, 살(殺).

······셋.


“훗날 갚아다오.”

“그럴게요.”


선뜻 생명을 내버리는 도사들에게 단리선아가 맹세한다.

피눈물이 나올 만치 소중하다면 일부러 던져준 미끼임을 알아채지 그랬나.

화산파 특위선봉(特位先鋒) 매화검수 3인, 살(殺).

······넷.


“감히 누굴 해치려느냐!”

“사부니이임-!”


제자를 지키고자 희생한 노인 뒤편에서 현오가 소리친다.

너희야말로 화월에게 가는 쳐죽일 작자들을 내가 그저 보냈으랴.

무당파 장로 칠성검로(七星劍老) 도원자, 살(殺).

······다섯.


<망(望)부터 다섯을 세고 뛰쳐나오렴.>


그런대로 됐다.

두엇쯤 더 제거해둘까 싶지만 과욕은 금물이야.

잠시라도 고삐를 놓는다면 혼절할 듯한 탈력감을 억눌러 말했다.


“등영(騰朠, 올라선 달빛).”


파아아아아-

검이 붉은 화마를 가르고서 숲으로 난다.

잔존한 적은 수십이되 빈손인 내게 대항하려는 자가 없다.


하찮고 한심스러운 머저리들아.

다 데려왔어야지.

창궁제일대도, 매화검수도, 오호벽력단도, 전부 왔어야지.

나를 죽일 요량이니 그만치 수고는 들였어야지.


천운을 얻어 상단전에 축기만 이루었다 여겼더냐.

어검이라 해봐야 입신경의 흉내인 줄 알았더냐.

틀렸다.


월광무는 본디 어검 활용이 전제다.

하물며 망(望)은 내가 구상한 상천현계의 초석으로써 짧게나마 반경 십 장 영역까지 강기 형성을 통제하는, 그 자체로도 이름난 상천현계와 비견할 초능이다.

망의 은광 아래서라면, 오직 어검을 겨룬다면, 천하 절대고수는 여섯만이 아니야.


사아아······.

떠나보낸 검에서 인기척을 감지한 즈음 망이 걷혔다.

나는 이미 달리고 있었다.


“어? 내력이 돌아왔다!”

“쫓아가!”


한참을 멀어졌건만 어찌 따라잡겠나.

방해되는 적은 일수로 물리치며 숲 중심부에 이르렀다.

은빛 찬란한 검이 화월을 호위해 마주 날아온다.

힘주어 아이를 끌어안으니 이윽고 말간 하늘이 지상보다 가깝다.


월광무 어검비행 등영(騰朠).

저편 겁먹은 버러지들이 들으라 선언했다.


“막는다면 모조리 벤다.”


스아아아아-!

새벽녘 햇살을 받아 나아가는 상공에서 화월이 제 옷소매를 쥔다.

피 묻은 내 얼굴을 닦아주고선 묻는다.


“어디로 가실 거예요?”

“글쎄······ 북경?”


머나먼 천 리 길인들 상관없어.

나는 기필코 너를 지킨다.


내려다본 성 외곽의 벽이 웅장하되 작았다.

팔 년을 머무른 거처, 무황성은 기실 저다지나 초라한 감옥이었다.

기쁘게 아이 손을 어루만지며 꿈결처럼 그린다.


바라건대 네가 만날 세상이 더욱 창대하고 아름답기를.

나라는 존재에서 말미암지 않고도 행복을 발견해 웃는 나날이기를.

조금 욕심이지만, 그곳에 여전히 내가 있어 지켜보기를.

그러면······ 정말 좋겠다.


***


어검을 타고 나아가는 하늘 위.

제 손으로 불사른 장원 내려다보며 은화월은 평했다.


‘예쁘네.’


화마(火魔)는 악귀처럼 넘실대었다.

담벼락 아래 앵두나무도, 한밤중 은하수와 사귄 마당도, 정겨워라 함께 만들던 목각인형까지도 스러진다.

정도 십오문이 추격할 단서를 찾을 수 없게끔.


아쉽진 않다.

전부 타오르고 있지만, 전부 기억하고 있으니.


두근-!

불현듯 심장 깊숙이서 박동이 일었다.

몸이 터져버릴 듯한 압박감과 통증.

은화월은 아무런 내색 없이 참았다.


‘모르셔서 다행이야.’


견뎌야 한다.

알지 못하시도록 감춘다.

이리도 외골수신데 말해서 이롭겠나.


하나는 깨달으시길 바라본다.

은서천과 은화월 남매.

둘 중에 누가 살아남든,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음을.


“고마워요.”


다만 은서천의 품에 포근히 안겨 생각한다.

당신과 함께라면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까 방해하지 마.

잊어줄 테니까, 이쯤에서 그만둬.


***


천인위전 열흘 차 진시(오전 7시~오전 9시).

무황성주 이소청은 신검 무극을 바라봤다.


주인이 그러하듯 천하제일의 영명임에 찬연한 칼날이다.

어언 지천명을 향하는 오늘날까지 저 검으로 베어내지 못할 일이 없었다.

베고, 베고, 베어서, 기어이 신화(神化)가 아른거린다.


망념(妄念)은 오로지 하나.

그것마저도 베어야 한다.


“성주님, 속하이옵니다.”

“들어오라.”


문이 열리고 고개조차 들지 않은 여인이 걸어와 부복한다.

명해둔 보고였다.


“소성주(小城主)께서 성을 나섰사옵니다.”

“목적지는?”


황도 북경.

이소청은 간결히 지시했다.


“예정대로 무극 승계와 즉위식을 준비하라.”


닷새 뒤인 중추절에 이 무황성의 주인이 바뀐다.

후보자는 달리 전무하다.


검월 은서천.

그녀의 유일한 제자이자 후계자.

아마도, 분명 무조 이래로 고금제일기재.

향후 백 년 강호를 광영하게 이끌어갈 다음 태양이었다.


“대환단은 셋을 갖추라. 따라가서 그 아이가 마음을 바로잡으면 먹여라.”


수하가 물었다.

끝내 거역한다면 어찌해야 하는지.

이소청은 침묵했고, 답했다.


“놓아두어라.”

“······존명.”


문이 닫히며 소리가 잦아들었다.

적막한 공간에서 이소청은 다시 검을 바라봤다.

고저 없이 환희하던 그날을 생각한다.


<자미(紫微)로 핏빛이 들어 와보았거늘 묘하다. 명운이 엮여 자미도 되고, 천살(天殺)도 되겠구나.>

<배사(拜師)하여라. 내 너를 가장 날카로운 칼, 강호를 수호하는 신장(神將)으로 벼릴지니.>


실재하지 않는 헛것에 홀려 청하던 갸륵함을 생각한다.


<조건이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여야만 가겠나이다.>


언젠가는 오늘이 올 것을 예감하면서도 전해지길 바랐던 당부를 생각한다.


<미혹이 깊고 진하다. 장차 버려라.>


천하 삼라만상에 단 한 사람, 유일무이 소중한 제자를 생각하며, 이소청은 그 아이에게 주고자 하는 신검을 바라봤다.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그리고 닷새 뒤.

당연하고도 믿기 힘든 소식이 온 강호를 휩쓸었다.


천인위전 종료.

강호제일기재 백도십절 서천검월, 사망(死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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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든 자들은 다 죽어야 한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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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이전 제목: 검신급 천재가 무림인을 다 죽임) 24.09.13 8 0 -
공지 9/14(토)~9/17(화) 매일 연재, 시각은 유동적입니다. 24.09.13 24 0 -
21 빛나는 달 (19) 24.09.13 90 0 9쪽
20 빛나는 달 (18) 24.09.12 88 1 15쪽
19 빛나는 달 (17) 24.09.11 90 1 12쪽
18 빛나는 달 (16) 24.09.10 102 1 12쪽
17 빛나는 달 (15) 24.09.09 112 0 10쪽
16 빛나는 달 (14) 24.09.08 116 0 10쪽
15 빛나는 달 (13) 24.09.07 133 0 9쪽
14 빛나는 달 (12) 24.09.06 133 1 10쪽
13 빛나는 달 (11) 24.09.05 147 1 11쪽
» 빛나는 달 (10) 24.09.04 158 1 20쪽
11 빛나는 달 (9) 24.09.03 165 1 15쪽
10 빛나는 달 (8) 24.09.02 180 0 10쪽
9 빛나는 달 (7) 24.09.01 179 0 10쪽
8 빛나는 달 (6) 24.09.01 186 1 7쪽
7 빛나는 달 (5) 24.08.31 204 0 9쪽
6 빛나는 달 (4) 24.08.30 205 0 7쪽
5 빛나는 달 (3) 24.08.29 232 1 10쪽
4 빛나는 달 (2) 24.08.28 301 3 9쪽
3 빛나는 달 (1) 24.08.28 352 2 9쪽
2 서 (序) 24.08.28 559 5 10쪽
1 정천리격문 (訂天理檄文) 24.08.28 653 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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