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든 자들은 다 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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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디마
작품등록일 :
2024.08.27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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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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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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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달 (13)

DUMMY

무어라 답해주기엔 곡절조차 몰라 침묵만.

기대로 반짝이던 소녀의 눈에 실망감이 스친다.

고작 찰나였다.



참치행채(參差荇菜)

들쭉날쭉 노랑어리연


좌우류지(左右流之)

이리저리 흐르니


요조숙녀(窈窕淑女)

아리따운 아가씨를


오매구지(寤寐求之)

꿈에서도 그리네



맑게 노래하며 그녀가 왔다.

화월과 내 앞에 멈추고선 추격대를 향해 이른다.


“여러분!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러는데 잠깐만 와주시겠어요?”


저벅, 저벅-

흩어진 무인들이 되돌아온다.

표정은 당혹스러우나 실제로 저항하진 않고.

절정고수 여섯도 홀린 것처럼 방관한다.


“후우.”


깊이 거두어내는 호흡.

소녀가 말했다.


“얼핏 들어보니까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요.”


다름이 아니라 여기 두 사람과는 안면이 있다.

아까 낮에 마을을 지나다가 우연히 마주쳤다.

보다시피 이분 소협은 나랑 동년배며 서천검월이 아니다.


“아하하, 실은 부끄럽지만 첫눈에 반해서 쫓아왔답니다.”


다행히도 만난 터라 통성명은 나누고 싶다.

그러니 오해를 푸셨다면······.


-어서 돌아들 가셔서 서천검월을 찾는 편이 낫겠죠?


나는 느꼈다.

보이거나 들리진 않되 천지간에 휘노는 자연지기가 방금-


“오?”


내 눈길을 알아챘을까.

감탄처럼 고개를 주억이던 소녀가 이젠 화월을 쳐다본다.

무지(無知)가 아닌 무감(無感)으로 아이는 미동도 없고.


“하아······.”


시무룩한 낙담.

그즈음 추격대의 수장 여인이 선언했다.


“다그친 일 먼저 사과해야겠군. 깊은 산중이니 맹수를 조심하거라. 우린 바빠서 이만 내려가마.”


이어서는 곧장 발길을 돌린다.

여인은 물론이거니와 수하들까지 전원이.


한마디로 불가사의한 기사(奇事)다.

내가기공에 입문치 않은 민초라면 모를까 제법 무공을 익힌 고수들이거늘.

심지어 섭혼술조차 아니고 마음이 따른 결과였다.


무학으로서 이룬대도 지금 시대 한 사람뿐이겠지.

천하 사법의 일인자, 사도련주 불사혼안(不死混眼).


“신기하죠? 기운을 따르는 무인들이라 응한 거예요.”


웃으며 재잘거리던 소녀가 저를 일러줬다.

복숭아색의 머리칼 예쁘다고 받은 애칭이 도홍(桃紅).

그리곤 도원향을 아시느냐 묻는다.


“신선혈세?”

“하하······ 맥만 이어왔거든요.”


천여 년 전 사악한 신선들은 멸절한 지 오래란다.

이제는 수행자라고.


“그랬구려. 한데 이곳에는 무슨 연유로?”

“아까도 거짓말은 안 했어요. 오늘 밤 액운이시길래 도와드리려고 왔달까- 서천검월 맞죠?”

“······다시 인사드리지. 은서천이외다.”

“역시나! 으흠.”


의미심장한 헛기침.

잠시 날 둘러보던 도홍이 능청스러운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들은 모습과는 쪼오금, 많이 다르시네요?”

“내 독문기술이니 양해를 구하겠소.”


상단전과 진법, 역용술 외에도 서넛.

연원은 불명확하되 강호 무학을 내려다볼 신기다.


“우와아! 대단한걸요.”


혼자 들뜨는 도홍에게서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무턱대고 믿진 못하니 지금이라도 따돌려야 할까.

하지만 그때.


“읏-”

“아월!”


나지막이 소리 낸 아이가 쓰러진다.

급히 끌어안았으되 나로서는 무력할 따름.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물음에 돌아봤다.


“천지열인가요?”

“맞소.”


단번에 알아보았다.

나아가서 치료할 수도 있을까.


자책감과 희망.

신선의 후예는 다만 고요하게 화월을 바라본다.

그 부드러운 시선을 내가 헤아리기보다 앞서 말한다.


“증세를 가라앉힐 정도는 되겠는데 어떠세요?”


***


타닥-

불길에 장작 타오르는 소음(韶音)이 간혹 일렁인다.

내 곁으로는 새근새근한 숨소리가 들린다.


······다행이야.

아프지 않아서.


앓던 병세가 거짓말인 마냥 화월은 편안히 잠들었다.

구명지은에 나는 말했다.


“도와주신 일 잊지 않으리다.”

“에이, 괜찮아요. 제 맘대로 따라왔잖아요. ······됐다.”


손사래를 친 도홍이 일어났다.

불길 맞은편 내게 다가와선 부적을 몇 장 건넨다.


“다음에 또 아프면 힘을 불어넣으세요. 넉넉히 썼답니다.”

“감사하오.”


답하고서 잠든 아이의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혹여나 깨어날까 조심스러운 손길.

문득 도홍이 물어왔다.


“동생을 참 아끼시는가 봐요.”

“내 전부니까.”


이 아이를 만났기에.

은화월이라는 존재가 있기에.

낯설고도 무의미하던 세상을 나는 살아간다.

네가 없다면······ 아무것도 없어.


영원토록 소중한 마음.

그러자 뜻 모를 눈빛으로 도홍이 일렀다.


“꼭 무조 같네요.”

“백은(白銀)?”


내가기공의 창시자.

무림사 유일하게 신이 되고 혈세마저 끝마친 고금제일인.


“저도 수행자라 얘기를 들었거든요. 당신에게 동생이 있듯, 무조에겐 유일한 가족인 여동생이 있었다고요.”


현시대엔 사멸한 비사.

오랜 옛날을 들여다보는 말이 이어졌다.


“무조는 사라진 그 여동생을 찾기 위해서 싸웠대요.”


천하가 귀 기울일 이야기지만 그보다도 신경 쓰였다.

나와 백은이 닮았다면서 왜 안타까워하는 어조인지.


“외진 마을에 놀거리도 형편도 궁핍하지만, 서로 아끼며 무조와 여동생은 오순도순 행복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은 사라졌다.

누가 데려갔는지조차 모르며 땅에 꺼지거나 먼 하늘로 날아오른 듯이.


“해서 세상으로 나섰더래요.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 가족을 찾으려고.”


처음엔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객이었다.

간혹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온 세상 가득한 자연지기와 친해졌다.


몇 년이 지나서 약관(弱冠, 20세).

무조는 어느덧 일만 정예병을 거느려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대장군이 되어 있었다.


“결국 알아냈어요. ······팔대진선.”


입신을 넘어 무후팔존과 견주거나 어쩌면 더 강했을지도 모른다는 여덟 절대자.

저들 중 일부가 흉수임을 파헤치고야 말았다.


그러나 졌다.

천운으로 목숨만을 건졌다.


포기하지 않아 기어이 만들어냈다.

신선을 쓰러뜨릴 힘.

자연지기를 들이켜 단련하는 역천을.


“계속 싸워갔어요.”


신선을 죽이고, 요마를 죽이고, 난세 횡행하는 악인과 탐욕스러운 권력자도 죽여서.

이번에야말로 도달했다.


누이가 있을 곳.

오라비를 반겨주리라 믿던 곳.

무조의 여동생은 없었다.


“다르군.”


얼음장처럼 차갑게 나는 단언했다.

무조와 닮았다는 말은 틀렸어.


절대로 실패하지 않아.

화월만은 반드시, 내가 죽더라도 살린다.


“그러네요. 완전히 닮진 않았어요.”


도홍이 속삭인다.

슬프고, 안쓰럽고, 타이르듯이.


“무조는 살았거든요. 여동생을 만날 수 없지만 힘껏.”

“달리 소중한 바 있어서겠지.”


혹은 복수하고자 제 손으로 신선들을 죽일 결심이었거나.

아니라면 말이 안 돼.

가당치 않아.


“글쎄요? 그 이유 때문만은······ 아마도 아닐 거랍니다.”

“무슨 이유를-”

“맞다, 배고픈데 만두나 먹어봐야지. 음! 사바세계 맛이야.”


콧노래를 흥얼댄 도홍이 날 바라본다.

더운 불길에 발그스름한 눈동자가 이른 듯했다.


알려줘선 안 된다고.

스스로 깨우치라고.


밤공기가 고즈넉하다.

환한 달빛만이 묵묵히 흘러내렸다.


***


“안녕! 잘 잤어요? 어제 말했는데 내 이름 생각나요? 도홍! 너······ 라고 부르는 게 맞나? 아무튼 네 이름은요?”


천인위전 열나흘 차 아침.

역용한 모습으로 앳된 소녀가 제 곁에서 수다스러운 도홍을 본다.

두어 번 눈을 깜빡이고, 오라비까지 확인한 다음 답해준다.


“은화월입니다.”

“푸흡! 앗, 미안해요. 놀릴 마음은 전혀······ 아하하!”


열두 살 남짓인 생김새와 존대.

귀엽고 웃긴 상황이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되려 실례다.

호칭이야 마땅한 게 없어 ‘너’였으나 도홍 자신도 말끝에다 ‘요’를 붙이고.


‘화월(華月).’


예쁜 이름이네.

외견과 잘 어울리는데 서천이 지었을까.


크음- 합격.

이만하면 괜찮군.


“그럼 전 갈게요. 북경까지 조심하시고 다음에 봬요!”


산길을 걸어가며 도홍은 못내 아쉬워했다.

함께 가주고 싶건만.

북경까지 이끌어주고 싶건만.


‘안 되겠지?’


이미 천리를 거슬렀다.

넉넉지는 않되 한계치리라.

욕심을 부리다간 자칫 근원이 어긋나버릴 터.


‘힘내요.’


괜찮은 사람이었다.

조금 고집이 센 면모지만 그만큼 소중하다는 거다.


생각했던 대로 올바른 욕심.

버리지 않고 한 걸음을 더한다면······.


‘천하제일.’


필시 올라선다

애달픈 꿈 이루어낼 신역에.



구지불득(求之不得)

그리운들 볼 길 없어


오매사복(寤寐思服)

꿈에서도 생각네


유재유재(悠哉悠哉)

그립고도 그리워


전전반측(輾轉反側)

잠 못 이뤄 뒤척이네



“······보고 싶어요.”


누구도 없는 천지 경계로 돌아와서 부른 노랫말.

그리워하며 잠든 도홍의 뺨, 바람결 날린 복사꽃이, 상냥히 내려앉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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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 (序) 24.08.28 559 5 10쪽
1 정천리격문 (訂天理檄文) 24.08.28 653 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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