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든 자들은 다 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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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디마
작품등록일 :
2024.08.27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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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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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달 (15)

DUMMY

***


천인위전 열닷새 차.

달빛 휘영청한 술시정(戌時正, 오후 8시~오후 9시).

무정검후는 고요하게 수를 세었다.


‘하나.’


반의반 각(약 4분)을 일백으로 나눈 바.

짧은 기다림보다 앞서 마칠지도 모른다.


소성주가 깨닫든.

끝내 못 버리고서 싸우다 죽든.

강호를 멸할 악, 천살(天殺)은 사라진다.


‘넷- 다섯.’


촌각마다 위태로웠다.

어검비행의 부담 때문에 월광무를 쓰기 어렵다.

오래 버틴들 몇 차례 공방일까.


열일곱, 단리선아가 필두 중심인 매화검진.

스물여섯, 무당파 칠성검진과 남궁세가 창궁무애검진.

서른, 전방위로 뻗친 강기공.

힘겨우나마 막아낸 강호제일기재를 보며 심옥진은 바랐다.


‘소성주······ 부디 투항하시오.’


오늘 스러지기엔 너무도 아까운 자다.

무뎌빠진 칼 따위가 직전제자라 분수 모르고 우쭐대는 철부지들과 격이 다르다.


살아야 한다.

장차 만검을 영도해나갈 무황성주여야 한다.

그것으로 오롯할진대 어찌 홀려서 외면하느냐.


피싯-

강(罡)이 소성주의 어깨를 스쳐 지나간다.

한순간 잘못 대처한다면 팔다리째 베일 위기다.

심옥진은 참았다.


‘서른아홉.’


천하제일인께서 이르셨다.

헛된 욕심을 바로잡은 때만 도우며 그 외엔 놓아두라고.

후계자가 중한들 재림혈세보단 하찮으니.


······마흔넷.

답은 애초부터 두었다.


‘미혹을 끊으시오.’


참람스럽되 내 여의검에 반드시 죽소.

그대 타고난 천품, 영광토록 빛날 길인데.

어리석게 속고도 왜 모르는가.


저것은 망령이외다.

단지 꾸며낼 뿐 티끌만큼의 진실조차-


콰아아!

휘몰아치는 공세.

어째선지 멍한 표정인 소성주가 비틀거린다.

그 틈을 노리고 직전제자 세 사람이 쇄도했다.


“쳐라!”


창궁무애검(蒼穹無涯劍).

이십사수매화검(二十四手梅花劍).

태극면장(太極綿掌).

입신 절대고수로 올라설 무정검후기에 본다.


‘위험하다.’


소성주는 지친 상태다.

제 머리를 부서뜨릴 장공만 겨우 받아치리라.

단리선아와 남궁산 둘의 검격까진 대응할 수 없다.


왼손이나 오른발.

어쩌면 양쪽 다 잃어야겠지.


‘애썼소.’


사지 불구라도 후기제일지수는 여전히 소성주다.

내력기관이 으깨진들 별일 아니다.


소림영보 대환단 셋.

사도련주이자 천하절세명의, 불사혼안의 재생(再生).

확정적으로 살린다.


뉘우친다.

한마디 말만 고해준다면.


‘쉰넷.’


그래서 무정검후는 기다리고······.

소성주의 망양(茫洋)처럼 헤매던 눈에 반짝임이 일었다.


카앙!

신비하리만치 간단히 튕겨냈다.

쓰러졌어야 마땅할 찰나 직전제자들의 절기를.


“뭣?”

“방금-”


남궁산과 현오 두 반편이는 당황스러워한다.

실로 불가해.

단리선아만 입술 깨물고 날 서린 매화검을 떨쳐나갔다.


“하아앗!”


화산 유수일인(唯授一人, 한 사람만이 배우는 비전) 자하옥류검(紫霞玉流劍).

소성주도 맞선다.

지금껏 품은 번뇌로부터 피어나듯 눈부신 기운 빛내고서.


콰드득- 서걱!

예순, 단리선아가 부러진 검을 놓치며 주저앉았다.


“합공하라!”


절정고수들이 덤빈다.

대해와 같은 강기공의 향연에 밀려나건만 소성주는 오직 평온하다.

완전무결한 검아일체.


심옥진은 무심코 손을 내려다봤다.

······떨리고 있다.


등줄기 서늘해지는 초조.

그보다 더욱 큰 무인으로서의 고양감.

강호팔대명검 여의(如意)를 겨누었다.


‘당장 죽여야만 하리라.’


약조대로 방관할 수 없다.

그러면 늦어버린다.

하늘 윗자리, 도달키엔 아직 먼 안개구름을 우러른 마냥 무정검후가 읊었다.


“검결(劍訣).”


————!

섬(閃)이 떠났다.

훗날 상천현계를 바라볼 어검술일진저.

매섭게 번뜩이며 소성주의 목과 심장을 위협해간다.


일흔.

온 사방으로 무궁자재하는 검기에 아름다운 흰옷 자락 나풀대었다.


여든.

밤하늘 넘쳐흘러든 월하(月下), 무어 그리도 행복함인지 소성주가 맑게 웃는다.

······어검이 비껴갔다.


아흔.

강호팔대명검 상아(嫦娥, 달 선녀)와 맞닥뜨렸다.

무정검후는 인정했다.

열여섯 해를 더 살았건만 힘겨룸마저 열세다.


“영(影).”


상아에 막힌 여의가 흔들리며 둘로 나뉘었다.

진원까지 불태운 비술.

군신황검의 만재(萬在)를 따르긴 부족하되, 그나마 발 디딘 최고봉이다.


휘리릭!

되돌아온 본신과 분신 쌍검을 쥐고 무정검후가 내달린다.


‘마지막 기회로다.’


어검비행이 성공하면 전부 허사다.

혈겁으로부터 억조창생을 지키리라.


“랑(鋃, 사슬)-!”


그림자 검이 어스름히 떠돌았다.

네 갈래 동서남북 흩날려 호신강기의 대척점인 무형 결계를 구성한다.

소성주에게 맹진.


“검후께서 가두셨구나.”

“총공격!”


아흔일곱.

결의 다잡아 분골쇄신할 최정예가 모인다.


아흔여덟.

운신할 수 없는 우자(愚者, 어리석은 이) 멍하니 푸른 달 올려다본다.


아흔아홉.

탄(彈).


슈아아아앗!

여의가 파공성을 내며 날았다.

절정고수들의 강기공이 뒤따른다.

방어무용에 회피불허.


‘잘 가시오.’


무정검후는 확신했다.

강호 천년제일기재 은서천.

애달프나 이곳에서 생을 마치노라고.


그리고 영겁과도 같던 반의반 각.

······일백.


“상천(上天: 하늘에 오른 자)-”


빛 저편의 목소리로 무정검후는 달리 확신한다.

아스라이 보름달 서린 땅.

새로운 절대자가 탄생하였음을.


***


그때를 생각한다.

너를 만나고, 이름을 지어주고, 네 말과 몸짓 하나로 웃고.

내게 이유를 주었던 너를 생각한다.


그때를 생각한다.

나를 믿고, 불안을 물리쳐주고, 내 존재와 꿈 하나로 살고.

네게 의미를 주었던 나를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너는 함께할 수 없어, 세상에 내가 남았으면 했다.

나는 함께할 수 없어, 세상에 네가 남아야만 했다.

서로를 위함이나 많이 달랐던 우리를 생각한다.


“합공하라!”


쿠오오오오!

사제 셋의 공격을 쳐내고, 단리선아를 제압하고, 이제 절정고수들이 나선다.

강대한 힘의 파동이 다가옴에도 두렵지 않은 가운데서 나는 자책한다.


아아—— 어리석었다.

깨닫건대 내가 틀렸다.

네가 옳았다.

마음속으로 이르며 검을 그어냈다.


“허억!”

“서천검월······ 정녕 신기로다.”


밀려난 절정고수들이 경악한다.

심옥진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검결(劍訣).”


————!

날아오는 어검이 고강하나 대수롭잖다.

그저 지난날 돌이키며 되뇐다.


아월······ 용서하렴.

그토록 못나고 한심스러운 꼴을 몰랐어.

내 다만, 용기가 없을 뿐이었구나.


피싯- 자유자재한 여의검에 옷깃이 갈라진다.

살갗이 베이고 피가 흘러나온다.

고통 따위는 무시하면서, 나를 위협하던 어검이 차츰 잘 보여가면서 떠올린다.


<갈수록 짐이 될 거예요.>


너는 말했다.

너를 버리면 내가 산다고.


<이 세상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어지는걸.>


나는 답했다.

근본이 성립하지 않는 미래라고.


<알겠어요.>


그러자 너는 따라주었다.

내 뜻대로, 내가 죽더라도 너는 기필코 살아남겠다고.

그 수긍의 의미를 깨닫는다.


“생사(生死)······ 불이(不二).”


삶과 죽음이 하나라.

네게는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구나.

스스로 죽어 날 살리는 편이 좋으나, 반대인들 근본은 변치 않기 때문이었구나.


하나가 산다면 다른 하나도 죽은 것이 아니라고.

마음에 두고 기억함으로써, 우리 여전히 함께이리라고.

네 금강석과 같은 각오를 품었던 게로구나.


내게는 그 각오가 없었다.

너를 지키고자 죽음을 기꺼이 여겼으나, 차마 네 없는 세상에서도 살아갈 순 없었다.

홀로 기억함으로써 함께할 각오까지는 없었다.


<무조는 살았거든요. 여동생을 만날 수 없지만 힘껏.>


도홍의 말이 옳았다.

무조가 옳았고 내가 틀렸다.


동생이 없어도 살아갈 핑곗거리를 찾아낸 것이 아니었다.

구차하게 삶을 연명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사랑이었다.


제 살아가는 세상에 동생이 없더라도.

다시는 만날 수 없더라도.

사랑하고 기억함으로써 함께이기에 살았던 게다.


“아······.”


나는 너무도 바보 같았구나.

깨달아서, 정말로 다행이구나.


이제야 알고, 너를 올바르게 사랑할 수 있어 기쁘기에 흘러나온 웃음.

처음으로 심옥진의 어검을 피했다.

더는 날 해치지 못하리라.


사아아아-

하늘과 땅 마음껏 휘돌아다니는 기운이 내게 온다.

거듭 날아든 여의검에 상아를 맞부딪쳤다.

단련해온 세월 한참이나 적건만 공력 대결로도 우위다.


“영(影, 그림자).”


여의가 일렁이며 분신을 만들어낸다.

상단전을 통한 두 자루의 어검이다.

단순한 힘을 넘어선 속박으로 내 운신을 막고, 절정고수 오십이 강기공을 준비한다.


날 죽음으로 인도할 위기.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예쁘네.


보름달이 아름다웠다.

그 찬란함을 받으며 북경으로 향하는 사랑스러운 아이 또한 화월(華月, 빛나는 달)이다.


보고 싶어라.

앞으로도 영원히.


“탄(彈).”


스아아아앗!

심옥진의 어검과 강기공이 날아온다.

절대고수조차 맞는다면 목숨이 위태로울 공격.

하지만 난 이제 죽을 수 없다.


살고 싶다.

네 말간 웃음을 앞으로도 계속 지켜보고 싶으니까.

네가 소중한 만큼, 널 사랑하고 기억할 내가 소중하기에.


그러니까 강해질게.

이겨서, 다시 만나러 갈게.


“상천(上天: 하늘에 오른 자)-”


몸이 가볍다.

발을 구르면 금방이라도 저 하늘로 올라설 것만 같다.

천지간의 기운이 선연하며 그 모두가 나와 함께한다.


내 어리석음을 깨달음으로써.

스스로 속박하던 잘못에서 한 걸음 나아감으로써.

올바르게 너를 사랑함으로써.


절정고수의 극한에서 줄곧 이르지 못했던 경지.

하늘에 올라 신을 엿보는 세상.

입신경(入神境).


나는 이 땅에서,

하늘처럼 자유롭구나.


“현계(現界: 여기 나타나노라).”


사아아아아-!

빛이 눈부시다.

다만 검 한 자루를 움직이는 삭(朔)에서, 반경 십 장 기운을 통제하는 망(望)까지.

초하루로 시작해 보름으로 꽃피우고······ 비로소 그 너머.


만나러 갈게.

머나먼 시공간에서 만난 네가, 또다시 어느 시공간에 있든.

어디까지나, 언제까지나 너를 찾아갈게.


그리하여 나는 너에게 전한다.

내 너를 사랑함으로써 바라온 꿈을.

상천현계(上天現界)—


“시공월(時空越: 시간과 공간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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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빛나는 달 (2) 24.08.28 301 3 9쪽
3 빛나는 달 (1) 24.08.28 352 2 9쪽
2 서 (序) 24.08.28 558 5 10쪽
1 정천리격문 (訂天理檄文) 24.08.28 653 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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